새재 넘어 소조령길 1코스 '문경새재길'

[여행]by 걷기여행길

옛 선비의 흔적 따라, 산수의 지저귐 따라

아름다운 이 땅 한반도. 전국에 숨겨진 곳곳의 명소들을 널리 알리고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을 선정. 그중 영예로운 1위를 차지한 곳이 바로 문경새재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특히나 눈부신 명소들을 생각한다면 문경새재는 사실 조금은 소박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단순 볼거리가 아닌 우리네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길 박물관에서 시작해 조령산과 주흘산을 넘어 충렬사까지 이르는 36km의 길은 누구나 부담 없이 걷기 좋은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오랜 기간 사랑을 받는 이유다. 겨우내 잔뜩 움츠려있던 만물이 서서히 태동하는 봄. 오랜만에 마음을 다잡고 나들이를 나섰다.

1코스 : 문경새재길 (10Km, 소요시간 2시간30분)

  1. 옛박물관 – 제 1관문 – 제 2관문 – 제 3관문(문경새재도립공원) - 괴산군 연풍면(레포츠 공원) - 이화여대수련원 고사리마을

2코스 : 소조령길 (11Km, 소요시간 3시간)

  1. 고사리 마을 - 소조령 - 수안보면 화천리(사시마을) - 발화마을 - 안보리 - 온천리(서낭당 복원길)

3코스 : 장고개길 (15Km, 소요시간 4시간)

  1. 수안보 온천리 - 오산마을 - 수회리(갈마고개) - 용천리(용당마을) - 설운리 - 장고개 - 문강리(문산 마을) - 달천 - 단월정수장 - 유주막 마을 - 충렬사

코스 문의

  1. 문경시 관광진흥과(054-550-6391)
  2. 문경문화원(054-555-2571)
  3. 문경새재도립공원(054-571-0709)

새재넘어 소조령길은 문경새재길, 소조령길, 장고개길까지 총 3개의 코스, 36km에 이르는 길이다. 그중 1코스는 약 10km 길이의 '문경새재길'. 시작은 문경새재도립공원 옛길 박물관에서부터다. 길이도 적당한데다 난이도까지 낮아 사부작사부작 걷기 좋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길을 걷는 여정만이 아닌 박물관 내부와 오픈 촬영장까지 다양한 볼거리에 마주한다. 다만, 순환형이 아니라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여정을 생각해서 걷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는 문경새재 도립박물관을 출발해 1코스의 중반에 위치한 제 2관문을 찍고, 다시 돌아오면서 코스 내 가장 큰 볼거리인 오픈 세트장을 돌아보며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소개한다.

다른 길과 달리 1코스 '문경새재길'은 코스를 알리는 고유 팻말이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길이 워낙 쉬워 여정을 이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도립공원으로 들어가 시야에 보이는 넓은 길을 따라 그대로 쭉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따금씩 보이는 팻말에는 제 1관문, 제 2관문을 확인하면 된다. 체력을 비축하고 싶다면 제 1관문 넘어 영화촬영지인 오픈세트장까지는 도립공원 내 전동차를 이용해도 좋다. 사방이 뚫려 있어서 도립공원의 빼어난 산수와 볼거리를 감상하다 보면 금세 반환점이 이른다.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유난히 흥겨운 곡들이 많아 유쾌함을 자아낸다. 도립공원 입구에 명소에 대한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는 안내센터와 물품 보관함도 있으니 최대한 정리를 한 후 부담 없이 발걸음을 떼도록 하자.

제 1관문까지는 계속해서 평지가 이어진다. 사방으로 길이 넓다 보니 시야도 좋다. 가까이로는 아름드리나무들과 계곡이 이어지고, 저 멀리 조령산 자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3월 초.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기에 눈을 사로잡는 색(色)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탄성이 나온다.

 

지금에서야 '문경새재길'이라는 불리지만 예전에는 선비길, 과거길, 금의 환향길, 낙방길 등 별명도 많았다. 한가지 재미난 점은 대부분 별명이 과거 시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 옛날 과거 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시절 영남에서 한양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죽령, 추풍령, 문경새재 3개의 고개를 지나야만 했다. 그런데 죽령이라는 이름에서는 죽죽 '미끌어진다'고 해서 그리고, 추풍령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피했다고 한다. 반면, 문경(聞慶)은 '들을 문(聞), 경사 경(慶)을 써서 좋은 소식을 듣는다며 유난히 복이 넘치는 길로 여겼다고 한다. 빼어난 산수를 자랑하는 길에 재미난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걷는 걸음에 절로 흥이 더해진다 :)

준비 운동 겸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이내 곧 제1관문에 이른다. 병풍처럼 이어지는 조령산과 주흘산 자락을 등에 지고 넓게 뻗쳐 있는 관문은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렇게 멋들어진 명소들을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힘을 주는 일도 없다. 문경새재길은 코스 내내 시기적절한 순간에 명소들을 마주해서 무엇보다 좋다.

제 1관문의 이름은 주흘관(主屹關)이다. 영남지방과 한양을 잇는 관문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의 일이다.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 키요마시의 군사와 합류하던 곳이 바로 이곳 어귀. 당시 조정에서는 신립 장군을 보냈었지만 너무 늦었다고 판단 문경이 아닌 충주 탄금대까지 가서 배수진을 쳤지만 결국 패하고 만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지금의 제 2관문에 교통을 차단하고 왜병을 기습하게 되며 다시 한번 지리적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가 숙종 34년에 이르러 제3 관문을 완공한다. 고려 태조 때는, 경주 순행 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 귀순했다는 전설이 있다. 성대 위에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들이 조상들의 의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여느 관문이 그렇듯 주흘관을 통과할 때도 괜스레 뿌듯함이 가슴 가득 채워졌다.

제 1관문을 지나 제 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나지막한 경사길이 계속된다. 원만하게 오르는 길은 운동 삼아 걷기에 제격. 아직은 다소 싸늘한 날씨였지만 걷다 보니 금세 추위를 잊게 된다. 아직 봄을 기대하기에는 조금 이른 듯하다. 길옆으로 벌거벗은 나뭇가지에 이따금씩 사색에 빠지게 된다. 싱그러운 녹음. 알록달록 단풍으로 채워진 모습이 눈을 스친다. 이따금씩 옛날 옛적의 모습이 더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현재의 사람들이건만, 저 멀리 선비들이 눈 인사를 하는 것 같은 상상이 더해진다. 이야기가 있는 길은 그렇게 상상의 길로 이어진다. 눈앞의 모습이 아닌 마음의 길을 보는 것. 길을 즐기는 나름의 방법이다 :)

문경새재길 중간중간에서 옛 조상들의 흔적들을 만날 수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교귀정과 조령원터다.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 구 경상감사가 서로 인수인계를 했던 교인처였던 교기정은 1896년 의병 전쟁시 소실되었다가 1999년 재건되었다. 한 면으로는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산자락이, 또 다른 한 면으로는 마음의 짐까지도 씻어 보내고 싶은 맑은 계곡이 마주하고 있는 교기정은 제1코스 명실공히 문경새재길을 대표하는 제일의 명소. 실제로도 방문했던 당일 바삐 오르내리던 사람들도 모두가 교기정 앞에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멈추고는 그 경치를 감상했다.

아직 갈 길이 멀건 만 고즈넉한 운치가 있는 정자의 자태는 계속해서 잠시만 쉬어가라며 손짓을 한다. 정자에 오르니 선선한 바람이 귓볼을 스친다. 산자락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따스했다. 숲에 가려 모습을 숨긴 우렁찬 용추정 계곡 소리가 아니었으면 언제까지나 상념에 빠진 채 시간을 보낼 뻔.

높은 석축으로 두른 넓은 공터에 위치하고 있는 조령원터는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공익 시설이었다. 예전부터 영남과 한양을 잇는 중요한 통로로서 자연스럽게 역과 원이 발달하게 된 것. 동화원, 신혜원과 함께 세재 내에서만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문경시에서 지난 1977년 2차례 발굴을 조사했으며, 와편, 토기편, 어망추, 철채 화살촉, 마구류 등 역사적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당시에 중요한 역할에 비해 현재에 남아 있는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길 중반 꽤나 넓은 공터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조산(造山)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을 일컫는 조산은 풍수지리적으로 공허하거나 취약한 지점에 쌓음으로써 기를 더한다는 의식이 담겨 있다. 문경지역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조산을 쌓아두었다고 한다. 그 옛날부터 쌓아둔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오고 가는 여행자들이 계속해서 오랜 시간 소중하게 여기고자 하는 마음에 쌓아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마음만은 충분히 전달되고도 남았다. 결국, 발길을 멈추고 잠시 둘러보고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쌓으며 마음을 더했다.

조금씩 가파르지는 언덕길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할 때쯤 제 2관문 조곡관에 당도했다. 선조 27년인 1594년 충주 출신 수문장 신충원이 왜의 침략에 대비해 게릴라 전을 펼쳤던 성인 조곡관은 제 2관문이라는 수식어와는 달리 사실 가장 먼저 지어진 관문이다. 제1 관문과 제 3관문은 제 2관문이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면서 후에 세워진 것. 그 후 을미사변에 이르러 또 한 번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1978년에 이르러 누각과 석성을 재복원했다. 이름 또한 처음의 조동문에서 지금의 조곡관으로 바뀌게 된다. 사방이 빼어난 산수를 이루고 있어서인지 아픈 역사적 사실보다는 괜스레 한 번 쯤 지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게끔 한다. 조곡관 홍예문을 지나면 하늘 높이 뻗쳐 있는 솔나무숲이 새로운 여정으로 들어섰음을 알린다. 계속해서 걸어가면 소조령길 1코스의 종반인 제 3관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솔향에 이끌려 계속 전진을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번 여정의 목적인 완전한 1코스 정복이 아닌 오픈세트장 관람이 더해졌기에 2관문에서 발길을 돌렸다.

제 1관문과 제 2관문 사이에 고르게 다져있는 미사토 길 구간에서는 맨발로 걷는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 2관문을 내려와 조소령터까지 지난 다음에는 석축 다리를 건너 오픈세트장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단순히 문경새재길만 걸을 계획이었으나 안내센터에서 여유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라는 권유에 당일 급하게 일정을 변경했던 것. 게다가, 처음 2관문으로 향하는 길에 계곡 너머로 언뜻 보이는 오픈세트장의 모습은 그냥 지나치기엔 큰 아쉬움을 남길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 정도로 멋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하고 있어서인지 다른 세트장과는 달리 비교적 관리가 잘 됐을 뿐 아니라 규모도 생각 이상으로 컸기에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입장 표를 구입하고 세트장 내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시간 여행을 떠난 것처럼 생생한 조선의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이미 서울의 4대궁을 포함하여 전국의 수많은 궁들을 다녀본 나였건만 이곳 세트장은 실제로 왕이나 귀족들이 거주했던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공을 들인 모습이 곳곳에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고색창연하면서 고즈넉한 옛 궁궐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중 몇몇은 우리네 전통 복장을 한 채 특별한 여정을 즐기고 있었는데 보는 이마저도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로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단순 영화 촬영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 오픈세트장.

평민들이 살았던 초가집부터, 사대부들의 한옥 그리고, 광화문과 경복궁까지 꽤 세세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보존 상태도 상당히 좋았다.

주홀산과 조령산 자락 아래에 있는 마을은 그 옛날 실제로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옛길 박물관에서 시작해 제 2관문을 찍고 다시 옛길 박물관으로 돌아오기까지 빠른 걸음으로 3시간 30여 분 남짓 소요가 됐다. 걷는 여정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부담될 수도 있겠으나 막상 걷고 보면 문경새재의 빼어난 산수와 재미난 이야기에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실제로 문경을 찾았던 3월 초 중순엔 봄의 기운이 아직 문경에 당도하기 전이었지만 다가오는 주말부터는 지척에 이르러 서서히 생명의 태동을 느끼게 될지도. 겨울의 썰렁함이 아닌 봄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문경새재를 떠올리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문다 :)

걷기 여행 필수 정보

  1. 코스 : 옛길박물관→제1관문→제2관문→제3관문(문경새재 도립공원)→조령산자연휴양림→고사리마을
  2. 거리 : 8.9km(왕복)
  3. 소요시간 : 3시간30분
  4. 난이도 : 보통

걷기 여행 TIP

  1. 화장실 :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 KBS세트장, 조령산자연휴양림, 고사리마을 주차장(종점)
  2. 매점 : 휴게소 매점 4개
  3. 식수 : 교구정지 인근 약수터 3개소
  4. 길 상세 보기 : 걷기여행 | 두루누비 전국 걷기여행과 자전거여행 길라잡이 www.durunubi.kr

"해당 길은 2019년 4월 이달의 추천 걷기 여행길로 선정되었습니다"

 

글, 사진 : 노성경 여행작가

2019.04.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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