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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수 거문도 동백꽃섬길 거문도 등대길

찬란한 여름, 작은 어촌 마을을 걷는 이유

by걷기여행길

"누군가 거문도에 왜 가냐고 묻거든 '물빛' 때문이라 답하겠다." 여수와 제주 사이에 있는 거문도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맑은 바닷물을 자랑한다. 세사에 푸른빛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나 싶다. 때 묻지 않은 투명한 바닷물 덕에 일찌감치 낚시꾼들에게 먼저 입소문 난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이 섬을 나의 호흡대로 느리게 걸어볼 생각이다. 정겨운 어촌 마을부터 시작해 바다와 산을 한 번에 갈 수 있는 약 1시간 코스다. 여름철 붐비는 바닷가는 꺼려진다면 여수에서도 배 타고 2시간 남짓 더 들어가야 하는 거문도로 향해보면 어떨까.

거문도로 향하는 길

여수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까지는 약 2시간 가량 소요된다.

좀처럼 바닷길이 열리지 않았다. 장마 기간이라 어느 정도 비가 내릴 건 예상했지만, 날이 흐리거나 안개 낀 날에도 배편은 줄줄이 취소되었다. 거문도 배표 예약사이트 '가고 싶은 섬'을 들락날락 했다. 그러다 애타는 마음에 거문도 여객선 회사인 오션오프해운에 전화했더니 가장 정확한 건 당일 출항 1시간 전에 알 수 있단다. 비가 내려 촉촉해진 여수 밤거리를 거닐었다. 부디 내일은 맑기를.

날씨와 안개에 따라 배편이 취소되기도 한다.

다행히도 다음 날은 씻은 듯이 하늘이 깨끗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첫 배를 타기 위해 여수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며칠간 뱃길이 끊긴 탓일까. 대합실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내륙에서 섬으로 돌아가는 주민들, 낚시꾼들, 단체 등산객들 사이. 원피스 입고 캐리어 끌고 있는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나는 그들이 궁금하고, 그들은 내가 궁금해 자연스레 말을 텄다.

옹기종기, 고도 어촌 마을

인구 2,000명의 아담한 고도 어촌 마을

거문도에 도착해 가장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색이었다. 보통 항구라 하면 오가는 선박에 의해 바닷물도 탁해지기 십상인데 맑다 못해 투명할 정도였다. 카메라 셔터 누루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엔 바닷가를 담다가, 다음은 한적한 어촌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이 많은 동네라 길고양이가 많았고, 교통이 불편한 동네라 집마다 스쿠터도 많았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파란색과 주황색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이 섬의 인구는 고작 2,000명 남짓이란다.

고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삼호교

서도,동도,고도로 이루어진 거문도, 이 중 서도와 고도를 이어주는 다리 삼호교

숙소에 짐을 풀었다. 주인아저씨는 이 먼 곳까지 혼자 사진 찍으러 왔다는 말에 새삼 놀라는 눈치다. 그러며 곁드는 말이 거문도에서는 가장 전망 좋은 곳이 등대라며 꼭 가봐야 한다고 일러주셨다. 가는 길도 수월하다. 길이 하나라 헷갈릴 리 없는 데다 반은 해안가를 따라가는 평지다. 마지막 코스만 약간의 산행이 필요한데 이마저도 해발 194m로 어렵진 않으니, 한마디로 1시간 안에 바다와 산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쉬운 트래킹 코스다.

바다 색이 예뻐 몇 번이나 멈췄던, 거문도 해수욕장

걷기 여행 애플리케이션 '두루누비' 지도를 보며 트래킹을 시작했다. 문제는 1시간이라던 코스가 풍경이 아름다우니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파란색이 있었나 싶을 만큼 한참을 감탄했다. 몽돌 깔린 바다는 쪽빛이더니, 백사장이 깔린 바다는 에메랄드빛으로 변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발을 바닷물에 담갔다. 어찌나 투명한지 물결 그림자마저 비칠 정도였다. 바로 앞에는 샤워시설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여름 휴가철이면 가족끼리 물놀이하러 오기에도 좋겠다.

푸르고 울창한, 수월산

겨울에는 동백꽃으로 터널이 만들어져 '동백꽃 섬길'이라 부른다.

오죽하면 이름마저 수월하단 뜻에서 '수월산'이라고 지었을까. 30분이면 오르는 해발 194m의 낮은 산이다. 여름철 이런 산행이 고마운 이유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니 나무 터널이 나왔다. 사방이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마치 비밀의 숲으로 가는 통로처럼 보였다. 다시 보니 동백꽃 나무다. 겨울철 빨간 꽃잎으로 유혹하는 동백꽃은 거문도의 대표 명물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겨울철인 12월에서 2월 말까지만 볼 수 있으니 동백꽃으로 물든 거문도 풍경은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남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 거문도 등대

1905년부터 바닷길을 밝혔던 거문도 등대

오늘의 종착지인 거문도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작게만 보이던 등대는 점점 더 가까워져 어느덧 내 앞에 우뚝 섰다. 한때는 인구 1만을 넘기던 풍요로운 섬 거문도가 지금은 2,000명의 소박한 어촌 마을이 되기까지. 남해안 최초의 등대로 100년의 세월 동안 어두운 해안 길을 밝혔을 것을 생각하니, 거문도 주민들에게 이 등대는 더 각별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간혹 여행자들만 전망을 보기 위해 찾는다. 한편에는 1년에 한 번 발송하는 달팽이 모양의 느림보 우체통이 세워져있다. 서울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동백꽃 필 무렵이면 이 편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바닷바람 맞고 자란, 거문도 쑥

여행에 먹는 재미를 뺄 수 있을까. 트래킹 후 돌아온 거문도 어촌 마을 '고도'에서는 하루의 피로를 한 번에 날려주는 쑥 막걸리를 맛봣다. 바닷바람의 특성상 농작물은 자라기 힘든데, 유독 쑥만 꿋꿋하게 버텨냈다. 물론 쑥이야 길거리에 널린 친숙한 식물이 아니겠냐 싶겠지만, 거문도에선 말 그대로 '작정하고' 쑥을 재배한다. 돌담 사이 귀하게 모셔두고 쑥을 재배하는 것. 이걸로 쑥떡, 쑥가루, 쑥국 여럿 만드는데 여행자의 입맛엔 쑥 막걸리만 한 게 없다. 막걸리의 단맛과 쑥의 쓴맛이 매우 조화롭다. 슈퍼에서는 2,000원 식당에서는 4,000원에 판매한다.

여수당에서 판매하는 쑥 아이스크림

쑥 아이스크림도 있다. 함정은 거문도 쑥을 쓰지만, 매장은 여수 시내에 있다는 것. 거문도에서 여수로 돌아오는 여수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도보 4분 거리에 있으니 잠시 들러 맛봐도 좋겠다. 이름은 <여수당> 쑥 아이스크림이 가장 유명한데 여행자들 사이에선 '어른 맛'이라는 애칭이 있다. 쌉쌀한데 은근히 중독적이다.

걷기 여행자를 위한 현실 TIP

등대까지 가는 길에 슈퍼가 없으니 미리 식수를 챙기면 좋겠다.

섬 여행을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첫 번째로 날씨에 따라 변수가 많다. 입도할 땐 무사히 들어갔더라도 출도 할 땐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니 날씨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숙박이다.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아 호텔은 '거문도 섬 호텔'이 유일하며, 민박은 항구 근처에만 밀집되어 있다. 그중 '고도민박'은 100년 된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인테리어가 독특하다. 참고로 거문도 고도는 원래 무인도였던 곳을 일본이 점령하면서 건축물을 세운 곳으로 종종 일본식 가옥을 찾아볼 수 있다.

시원한 물회

거문도 특산물 갈치

마지막으로 거문도에서 식사할만한 곳을 찾는다면 '충청도 횟집'과 '오후(OHOO)' 카페를 추천한다. 충청도 횟집은 이름은 충청도지만 우리가 기대한 푸짐한 전라도 밥상을 내어준다. 8천 원이면 반찬이 10가지나 나오는데, 여기서 두툼한 수육이나 갓 구운 갈치구이까지 따로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거문도 갈치는 꼭 한 번 맛봐야 한다. 제주와 가까워 갈치가 크고 두툼한데 살은 더 보드라워 말 그대로 입에서 녹는다. 거문도는 작지만, 먹거리도 볼거리도 풍요로운 보물 같은 섬이다.

걷기 여행 TIP

  1. 코스 경로: 고도 어촌 마을 - 삼호교 - 거문도 해수욕장 - 수월산 - 거문도 등대
  2. 거리 : 3.8km
  3. 소요 시간: 1시간 10분
  4. 코스 타입: 비순환형
  5. 난이도: 보통
  6. 편의시설
    1. 화장실 : 오션호프 여객선 터미널, 거문도 해수욕장 샤워장
    2. 식수: 고도 어촌 마을에서 출발 시 매점에서 생수 구입 필요
    3. 매점: 고도 어천 마을
  7. 교통편:
    1. 자가 이용: 거문도 등대 입구 검색
    2. 대중교통: 거문항에서 마을버스 이용 (시간표: 08:40, 10:50, 14:40, 16:30, 20:00 하루 총 5회)

글,사진: 박수정 여행작가


"해당 길은 2020년 7월 이달의 추천길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