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謙齋 鄭敾)을 잇는 `오리엔탈 특급` 화가 정진용(下)

[요요 미술기행-60]
매일경제

정진용 작 `나는 국회의사당을 폭파했다` 162x97cm, 수묵.아크릴릭과슈.크리스탈비즈.천에 캔버스(2018)

'국회의사당' 작품은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미학자가 자신의 책 출간에 앞서 '나는 국회의사당을 폭파했다'라는 글에 넣을 그림을 요청하였다. 사람들은 불타는 국회의사당을 보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그러한 사람들의 등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폭파'라는 상징적 행위를 누군가 해주기를 바란다. 서로 떠밀고 있다. "네가 해. 네가 해" 정진용은 행하는 부류와 보고 있는 존재를 구분한다. '당대 국회를 묘사한 문장'을 대하는 기록이다. 정진용의 동시대에 대한 기록들은 자신이 스스로 세운 작가적 윤리 안에서는 외면하고 지나갈 수 없는 것들이다.


유럽에서 출발한 앵포르멜(informel)은 한국에도 상륙했다. 한국 미술도 이를 받아들였다. 나름 현실 참여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같은 대학, 화단에 속해도 동양화 쪽은 분위기가 달랐다. 동시대를 직시한 메시지 강한 작업은 다들 꺼려했다. 선생들은 노·장자를 앞세우며 현실을 회피했다. 대부분 순종적으로 이 분위기에 휩쓸려간 이들은 작가군에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그에게 시대적 상황에 대한 분노는 불이었다. 예술가는 무엇을 표현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된다.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로 표현 안되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야 된다. 그것이 존 케이지의 소음이었고, 2011년 백남준의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펼쳐진 고요한 영상 속 얼굴을 감싼 손짓 실존주의적 퍼포먼스인 '손과 얼굴'(1961년작)이었다. 작품 '불타는 피아노'는 학교, 화단에 느꼈던 분노였고 터져나온 게 불이었다. 암전 속의 불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깊은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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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작 `호연지경` 210x110cm, 수묵.아크릴릭과슈.크리스탈비즈.천에 캔버스(2019)

미술관급 작가로서의 행보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더 시급한 현실에 눈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적 표현에 윤리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미학만 있을 뿐'이라는 예술관은 코페르니쿠스 시대 지동설만큼이나 울림이 크다.


중국 미술과 동양 미술은 구분된다. 중국은 당나라 이전의 화론(畵論)이 따로 존재할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당나라 말기 장언원(張彦遠)이 쓴 '역대명화기'가 여전히 중국의 대표적인 화론서로 거론된다. 북송 시대 작품, 범관의 '계산행려도(谿山行旅圖·1010년께·103×206㎝)'에서는 그림의 하단부 길을 지나는 무리, 말의 목에 매단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지 않았나. 역시 북송대 그림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를 화제(畵題)로 한 작품들은 지금도 중국 여느 음식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동양화 학도로서 정진용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고려 시대 대작으로는 불화(佛畵)가 있지만 조선은 직업적으로 그림 그리는 도화서 화원이 아니면 종이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미술이 대중적 문화로 자리 잡기 힘들었다.


우리는 정선이라는 시대 전체를 통해 아주 우월한 화가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비견되는 이가 중국 명대 후기 동기창(董其昌), 근대에서는 리커란(李可染·Li Keran·1907~1989) 정도다. 리커란은 중국화의 구도와 구성의 특징을 '이대관소(以大觀小)', "큰 것으로 작은 것을 보고, 작은 것 가운데 큰 것을 본다"로 여겼다. 화가가 자신을 거인으로 가정하고 마음의 눈으로 대자연의 전경, 위아래 사방을 살펴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들어내었다. 뒷면까지도 보려는 피카소의 큐비즘도 맥락은 같다. 서구 기준으로 전통 중국화는 여전히 흑백의 수채화일 뿐이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이러한 차원을 넘는 엑기스만을 뽑았다. 수평과 수직으로만 그려진 준법과 필획 등은 여전히 현대적이다.


한국이 글로벌 미술의 중심에 다가가려면 범아시아적인 요소들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포함되지 않으려 하지만 동양 미술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을 활용해야 한다. 20세기에 미국을 활용하듯이. 3년여 동안 미군정은 우리 대중문화를 지배했다. 영화 공급 편수 및 장르까지 통제하지 않았나. 통제를 당했지만 우리는 공연 대중문화 분야에서 BTS로 서구의 앞에 선 일원이 되었다.


현대적 판타지는 기괴(uncanny·weird)하다. 과학의 발달은 되려 미스터리와 불명확성을 재등장시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은 미술 시장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컬렉터들은 세상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익숙한 그림만 산다.


예술가는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되며 그러한 상황에서 탈출해야 된다. 예술가는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부수는 직업이다. 머릿속에 머물러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킨다. 이걸 하지 않으면 무기력해진다.


약 8년 전 정진용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의 미학적 수준은 작품을 소화하지 못하였다. 현대 중국화가 이렇지 않나 유추해보곤 했다. 정진용은 이러한 언캐니한 미감을 대중이 받아들일 때까지 직관적으로 밀고 간다. 왜냐하면 그는 전략적으로는 총체적인 아시아성 획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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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용 작 `일월오악금강전도` 194x104.5cm, 수묵.아크릴릭과슈.크리스탈비즈.천에 캔버스(2020)

정진용은 예전에는 갓 콤플렉스가 심했다. 불과 수시간 만에 자신의 손끝에서 꽃이 피고, 나무가 자랐으니. 100호는 2~3시간 만에 그렸다. 산수화는 쉬워서 재미가 없었다. 그리는데 장애가 없으니 무기력해진다. 예술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런 창작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는다. 동시대 미술의 주류에 올라선 중국 스타 작가는 언제든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그의 이러한 창생적 창작관에서 기인한다.


정진용은 말한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해체다. 해체가 빠진 작품을 만드는 이는 예술적 뿌리가 약한 기술자다. 쪼개더라도 곽희의 조춘도는 조춘도처럼, 청명상하도는 청명상하도처럼, 금강전도는 금강전도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가부좌를 튼 부처에 예수 얼굴을 붙여놔도 여전히 부처라는 사실을 안다. 금강전도의 획 하나하나를 수평으로 늘어놔도 금강전도다.


난지 창작스튜디오 시절, 그의 별명은 스스로를 감금한 '올드보이'였다. 벽체를 뚫고 그를 탈출시킨 이가 서양화가 장희진이다. 결혼 후 눈을 뜨니까 현실이 보였다. 아울러 오만할 정도로 우습게 여기던 색이 들어왔다.


디지털 동영상을 보며 시작한 대화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자신이 해체한 '금강전도'가 주변 자본주의 최상위 자리를 차지한 상업 광고들을 제치고 거룩하게 전시되기를 바라는 기원으로 끝났다.


[심정택 작가]

2020.11.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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