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고라더니 침수차 , 당장 부숴버리고 싶다”…싼맛에 중고차 사지 마라?
‘무사고차’라 믿고 샀는데 침수차였다면? 사고보다 사기가 더 무서운 중고차 시장, 안전하게 사는 법과 꼭 확인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했습니다.
상처없는 사랑도 車도 없다
‘사고’보다 ‘사기’ 조심해야
‘싸고 좋은’ 사고차도 있다
구입비 절약한 뒤 소모품 교체를
중고차로 사면 물먹는 침수차. 침수차와 달리 사고차 중에서는 가격에 비해 괜찮은 매물도 있다. [매경DB / 편집 = 최기성 기자] |
#중고차 딜러가 ‘무사고’를 강조하고,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도 무사고로 나온 차를 시세보다 200만원 더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몇 달 뒤 포트홀(도로파임)에 빠져 차체 하부가 손상돼 정비업체를 찾았다가 정면과 측면에 큰 손상을 입은 ‘사고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장 딜러에게 전화해 환불이나 교환을 요구했습니다. 딜러는 자신은 무사고차로 알고 팔았다며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하네요.
중고차는 신차보다 싸지만 절대 ‘싼 차’는 아닙니다. 1000만~2000만원은 기본이고, 1억원 이상 줘야 하는 중고차도 많습니다.
아무리 중고라도 차는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목록 2호에 해당하는데, 차를 탈 때마다 애정이 아니라 부수어 버리고 싶은 분노가 폭발할 때가 있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사고차를 속아 사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실제 중고차 소비자들은 ‘사고차 노이로제’에 걸려 있습니다.
중고차 소비자들은 사고차를 속아 사지 않을까 걱정한다. [매경DB] |
기우가 아닙니다. 소비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한국소비자원 피해구제 건수를 통해서도 중고차 사기 판매의 심각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021~2023년 접수된 중고차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은 총 330건입니다. 2021년 94건, 2022년 112건, 2023년 124건으로 매년 증가했습니다.
피해유형별로 살펴보면 ‘성능·상태 고지 내용과 실제 차량 상태가 다른 경우’가 80.0%(264건)로 가장 많았습니다. ‘계약금 환급 지연·거부’는 6.1%(20건), ‘제비용 부당청구·미정산’은 4.5%(15건)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성능·상태 고지 내용과 실제 차량 상태가 다른 경우’ 중에서 ‘성능·상태 불량’이 57.6%(190건), ‘사고·침수정보 고지 미흡’이 18.8%(62건), ‘주행거리 이상’이 3.6%(12건) 순이었습니다.
중고차 거래 때 금전적 피해는 물론 탑승자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사고차 속여 팔기’가 많다보니 소비자들이 사고차 구입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비자단체나 중고차업체가 실시하는 조사에서도 구입 고려대상 1순위는 ‘사고이력’으로 나올 정도입니다.
온·오프라인 중고차 거래현장에서도 사고 흔적이 있다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구입을 포기하는 소비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고차는 진짜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고차, 사면 탈 나는 문제차?
중고차 평가 장면 [엔카닷컴] |
중고차 딜러와 소비자가 사고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일 때가 있습니다.
딜러가 일부러 사고차를 무사고차라고 속이거나 사고 규모를 축소하는 등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사고’에 대한 개념이 달라 발생합니다.
딜러들은 일반적으로 차의 프레임이나 차체의 주요 부위가 잘라져서 용접돼야만 ‘사고’로 여깁니다. 소비자들은 교체는 물론 판금·도색도 사고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 개념 차이가 분쟁으로 이어지자 학계·업계와 정부는 힘을 합쳐 중고차를 사고차, 단순수리차, 무사고차로 구분했습니다.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 따르면 자동차 뼈대를 이루는 주요 골격(프레임) 부위 판금, 용접 수리, 교환 이력이 있는 차량을 사고차라고 정의합니다.
차 유리를 감싸는 A·B·C필러, 엔진을 감싼 인사이드 패널, 휠하우스, 뒤쪽 펜더 등에 사고 흔적이 있어야 사고차입니다.
자체 보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엔카닷컴과 케이카(K car) 등 중고차 기업은 골격 부위가 절단되거나 용접됐는지 점검하고 체결 부위, 실링, 속 패널 색상, 전체 밸런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사고와 무사고를 결정합니다.
무사고차를 정의할 때 소비자와 딜러 간에 자주 마찰이 발생하는 부분은 범퍼입니다. 범퍼를 교체했다면 차 골격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상 무사고차에 해당합니다.
또 도어, 프런트 펜더 등 외판 부위에 대한 판금·용접·교환은 단순 수리로 분류돼 사고차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단 사고로 구분하지 않을 뿐 구매자에게 반드시 고지해야 합니다.
‘교환’ 때문에 발생하는 소비자 혼선을 줄이기 위해 교환 이력이 있는 중고차에는 ‘무사고차’ 대신 ‘외부 패널 교환’으로 표기하는 매매 중고차 기업도 있습니다.
사고차, 차가 아닌 사람이 문제
차량 수리 장면 [최기성 기자] |
사고차는 사고 난 뒤 문제만 일으키는 애물단지일까요? 문제는 사고가 아니라 사고 이력을 속이는 것에서 발생합니다. 차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딜러와 같은 판매자가 사고 유무만 제대로 알려 준다면 선택은 소비자 몫입니다. 또 사고 유무보다는 사고의 정도와 사고가 차 성능에 미친 영향이 더 중요합니다.
게다가 현재 시중에 나온 중고차 대부분은 크고 작은 사고경험을 가지고 있어 무사고차를 찾기 힘듭니다.
무사고차만 고집할 경우 중고차를 제때 사기 어렵고, 찾는 소비자가 많은 만큼 시세보다 비싸게 판매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구매자가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경우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매력적인 중고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될 수 있죠.
딜러들이 단순 수리차를 무사고차로 간주하거나, 일부 악덕 딜러들이 수리차를 무사고차로 속여 파는 것에서도 돈 되는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비 기술 발달로 웬만한 사고는 사고 흔적도 쉽게 없앨 수 있고 제대로 수리한다면 무사고차와 성능에서도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죠.
어떤 사고차를 사야 돈이 될까요. 사고난 중고차 중 범퍼, 펜더, 도어, 트렁크 정도만 교체됐다면 차 운행에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차는 무사고차보다 가격이 싸므로 소비자 입장에선 구입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구입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가격이 좀 낮은 차를 사고 남은 비용으로 소모품을 교환해주는 게 좋습니다.
중고차 시장에는 소모품 교환 주기가 다 된 차들이 많기 때문이죠. 소유자가 팔기로 마음먹으면 소모품이나 부품을 바꾸지 않은 채 내놓을 때도 많습니다.
소모품을 바꿔주면 차 상태가 좋아져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어듭니다. 향후 더 큰 고장으로 이어져 발생하는 정비 비용 낭비도 막을 수 있죠. 연비관련 소모품·부품이라면 기름 값도 아낄 수 있겠죠.
구입예산이 500만~1000만원 수준이라면 연식이 1년 정도 긴 차를 구입하면 됩니다. 50만~100만원 정도는 쉽게 절약할 수 있죠.
정비업체에서 오일류, 벨트류, 배터리, 휠얼라인먼트 등을 교체·점검하면 연식이 1~2년 짧은 차보다 상태가 더 좋아집니다.
불법 호객꾼에게 사기당할 위험도 줄어듭니다. 불법 호객꾼들은 무사고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타깃으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안전 구매, 결국엔 알뜰 구매
자동차 365 [사진출처=사이트 캡처] |
사고차를 무턱대고 사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알뜰구매보다 안전구매가 더 중요합니다. 안전구매가 결국 알뜰구매가 되니까요.
안전구매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 자동차보험으로 처리된 사고를 파악할 수 있는 보험개발원 카히스토리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단,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기록부에 오류가 많고 카히스토리는 자동차보험이 아닌 자비로 처리한 사고는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사고에 대해 서로 다르게 판단하는 ‘동상이몽’이 있다는 점도 감안, 보조 확인 수단도 활용해야 합니다.
활용법은 쉽습니다. 온라인에서 간단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365’ 온라인 사이트에서 자동차등록원부를 보면 차량번호와 소유자 변경 내역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번호판이 교체되고 소유자가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바뀌었다면 사고 여부를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판매자가 사고차가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정비 이력은 반드시 파악해야 합니다. ‘자동차365’에서는 정비 이력은 물론 검사 이력, 침수 여부, 사고 이력 등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딜러가 무사고차 또는 거의 무사고차에 가까운 수리차라 하더라도 진짜 사고가 없었는지, 사고가 있었다면 어디를 어느 정도 수리했는지 꼼꼼하게 확인해봐야 합니다.
딜러가 보는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녹화·녹음해두면 사기 가능성을 좀 더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특약 사항에 “판매업체가 알려주지 않은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을 넣어둡니다.
딜러가 사실과 다른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준 게 확인되면 자동차관리법 제58조3항(자동차관리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에 따라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최기성 기자 gistar@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