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최악이야”…‘포르쉐에 분홍색 도색’ 남편 만행, 블랙핑크가 해결?
자동차는 결국 본질이 중요하다지만, 색 하나로도 '최악'이 될 수 있습니다. 무채색이 답일까요?
엑솔타 2020~2024 인기색상 분석
자동차 세상에선 ‘흑백논리’가 주도
블랙은 ‘인싸’, 핑크는 ‘아싸’ 평가
조색기술 덕에 ‘블랙핑크·색즉시공’
![]() 아내를 공주로 대접하기 위해 핑크색으로 칠한 포르쉐 파나메라 [사진출처=강남 유튜브] |
“저거 내 차 아니냐. 그런데 왜 핑크냐. 미쳤나봐. 너무 싫다. 진짜 최악이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눈물이 날 것 같다”
‘빙속 여제’ 이상화는 공주 색상으로 도색된 포르쉐 파나메라를 보고 경악했습니다. 남편인 강남이 자신이 아끼는 검은색 계열 파나메라를 분홍색으로 칠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2일 강남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상화 몰래 결국 저질러 버렸습니다. 2억짜리 포르쉐 페인트칠 해서 공주 대접하기’ 영상에 나온 장면입니다.
쉽게 제거할 수 있는 수성 페인트로 도색했다는 말에 이상화는 “다행”이라면서도 “페인트 다 지울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 마라. 날 속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고 분노했죠.
친구가 재미있다며 알려준 이 영상을 보고 난 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 떠올랐습니다.
불교 경전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로 ‘어른용’ 영화 제목으로도 일부 사용됐죠.
영화에서는 색(色)이 원초적 ‘색정’으로 풀이됐지만 원래는 색(물질, 만물만생)은 공(실체없음)과 다르지 않고 세상 모든 존재는 형태에 관계없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시를 들어 좀 더 쉽게 풀이하겠습니다. 물은 얼음이 되고 수증기가 되고 몸의 구성요소가 되는 등 형태와 쓰임이 달라지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색=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물질이나 형태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며 본질에 충실한 올바른 쓰임을 찾고 실천하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 2024 인기색상 보고서 [사진출처=엑솔타] |
세상만사, 불교경전에 나오는 글귀처럼 마음을 다스리며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검은색이든 분홍색이든 포르쉐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색(色)에 집착했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속세로 돌아와 보면 이상화의 분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블랙·핑크가 아니라 블랙을 핑크로 만든 남편의 만행에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죠. 잘 참았습니다.
이상화의 분노 폭발을 완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색이 주도하는 속세에서, 그중에서도 자동차 세상에서는 검은색, 흰색,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어서입니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등 유채색은 차량 색상으로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분홍색은 잘못 사용하면 비싼 포르쉐를 ‘루저 차’로 만들어 버립니다.
17일 글로벌 자동차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에서 입수한 ‘인기색상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엑솔타는 1953년부터 매년 이 리포트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색상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신뢰성도 높다고 평가받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컬러 정책을 결정할 때도 활용합니다.
車 10대 중 8대 가량은 무채색
![]() 혼다 파일럿 블랙 에디션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
엑솔타는 차량 색상을 10가지로 구분합니다. 흰색, 검은색, 회색, 은색, 파란색, 빨간색, 갈색·베이지색, 노란색, 녹색, 기타입니다.
2020년부터 5년간 나온 인기색상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는 색상은 흰색, 검은색, 회색, 은색으로 구성된 무채색으로 나왔습니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글로벌 인기 색상 1위는 흰색이었습니다. 점유율은 38%에 달했죠. 검은색은 19%, 회색은 15%, 은색은 9%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유채색 중에서는 7%를 기록한 파란색이 가장 인기를 끌었습니다. 빨간색은 5%, 갈색·베이지색은 3%, 노란색은 2% 순이었습니다. 녹색은 점유율이 1%로 기타를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였습니다.
![]() 볼보 XC40 세이지 그린 에디션 [사진출처=볼보] |
2024년에도 무채색이 자동차 컬러 세상을 주도했습니다. 흰색 점유율은 31%에 달했습니다. 2020년보다 7%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대세를 형성했습니다.
회색은 23%로 8%포인트 상승하면서 2위를 기록했습니다. 3위인 검은색은 21%로 2% 포인트 증가했습니다. 은색은 9%로 같았고 4위 자리도 지켰습니다.
무채색을 대표하는 흰색, 검은색, 회색, 은색 4가지 색상의 점유율은 총 84%에 달했습니다. 압도적이죠.
유채색 중 1위인 파란색의 점유율은 6%로 2020년보다 1% 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빨간색 점유율도 1%포인트 떨어진 4%를 기록했습니다.
갈색·베이지색은 변함없이 3%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녹색 점유율은 2%로 1%포인트 높아졌습니다. 1%포인트 떨어져 1%로 내려앉은 노란색을 제쳤습니다.
![]() 화이트로 우아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강조한 제네시스 G90 [사진출처=현대차] |
한국 자동차 시장도 글로벌 자동차 시장과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무채색이 대세를 형성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2020년과 2024년 모두 흰색이 점유율 33%로 1위를 기록했습니다. 회색 점유율은 22%에서 26%로 선호도가 높아졌습니다. 검은색은 17%에서 14%로 하락했지만 3위 자리는 유지했습니다.
유채색 중에서는 파란색과 빨간색이 리더로 활약했지만 녹색 선호도가 급등했습니다.
유채색 1위인 파란색은 점유율이 11%에서 10%로 1%포인트 떨어졌습니다. 빨간색도 6%에서 5%로 하락했지만 순위 변동은 없었습니다.
녹색을 상징 색상으로 사용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덕분일까요. 점유율이 급등한 색상은 녹색입니다.
2020년 1%에서 지난해 4%로 3%포인트 상승했습니다. 각각 1%에 그친 갈색·베이지색, 노란색을 제쳤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무채색인 은색은 한국에서는 ‘루저 색상’으로 전락했습니다. 2020년 6%에서 지난해에는 3%로 하락했습니다.
한국의 유채색 선호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대세는 역시 무채색이었습니다. 무채색 점유율은 76%에 달했습니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앙상블, 색다른 변신
![]() 무채색을 메인 컬러로 내세운 랜드로버 디펜더(왼쪽)과 디스커버리 [사진출퍼=JLR코리아] |
무채색이 나라에 상관없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튀지 않는 매력’에 있습니다.
자동차는 한번 사면 5년 이상 타기 때문에 개성을 표현한 화려한 유채색보다는 쉽게 질리지 않는 ‘무난한 무채색’을 고르는 경향을 보입니다.
가전제품과 마찬가지로 차를 구입할 때도 눈에 익숙해진 색상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게 무채색이 장수하는 이유입니다. 중고차로 팔 때도 무난한 무채색이 유채색보다 유리합니다.
자동차 브랜드가 잘 팔리고 생산·관리도 쉬운 무채색 색상 위주로 외장 컬러를 선택하도록 강요(?)한 게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포르쉐코리아가 블랙핑크 제니와 함께 디자인한 ‘타이칸 4S 크로스 투리스모 포 제니 루비 제인(Taycan 4S Cross Turismo for Jennie Ruby Jane)’ [사진촬영=강영국 기자] |
무채색이지만 색상별로 ‘색다른’ 매력을 지닌 것도 무채색이 장수하는 이유로 꼽힙니다.
흰색은 차를 깔끔하면서도 더 크게 보이는 효과를 지녔습니다. 순결함과 우아함도 발산합니다.
흰색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를 ‘애플 효과’에서 찾기도 합니다. 흰색은 예전에는 냉장고나 화장실 타일 등과 연결됐습니다.
애플이 흰색을 제품에 많이 사용한 이후 훨씬 가치 있는 색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은색이나 회색은 튀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외관 디자인도 돋보이게 만듭니다. 까다로워진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인이 다채로워진 요즘 트렌드에 어울립니다.
검은색은 안정감,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의 이미지를 지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품격을 추구하는 대형차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입니다.
플래그십 세단인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제네시스 G90 등에는 검은색이 선호됩니다. 제네시스, 포르쉐, 혼다 등은 블랙 에디션을 종종 선보이기도 합니다.
![]() 제네시스 G90 블랙 에디션 [사진출처=현대차/ 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
무채색의 진화도 무채색 대세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유채색이나 펄 등을 결합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색상으로 변신합니다.
검은색, 흰색, 회색 등으로 뭉뚱그려 표현하지만 저마다 다른 색감을 발산합니다. 희다고 ‘그냥’ 흰 게 아니고, 검다고 ‘그냥’ 검은 게 아닙니다.
파란색, 빨간색, 녹색 등 유채색은 세단에 잘 적용하지 않지만 경쾌한 이미지의 경차, 스포츠카, SUV와는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아 유채색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현대차 캐스퍼, 기아 스포티지, 제네시스 GV80, 포르쉐 911, 랜드로버 디펜더, MINI 쿠퍼, 폭스바겐 ID.5, 푸조 3008, 아우디 Q5, 볼보 XC40, 토요타 수프라 등의 메인 컬러로 사용됐죠.
![]() 무채색과 유채색의 멋진 하모니. 메르세데스-AMG SL43 [사진출처=HS효성더클래스] |
조색 기술의 발전과 차별화된 색감 추구 현상으로 무채색과 유채색을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냥 검은색, 그냥 흰색, 그냥 빨간색, 그냥 파란색은 사실상 없습니다. 빛에 따라 색감이나 색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검은색이 남색이나 검붉은색으로 보입니다. 붉은 계열 색상이나 녹색 계열 색상이 검은색으로 보이기도 하죠. 다채롭습니다.
블랙과 핑크 중 하나의 색상에 얽매이지 않고 오히려 앙상블을 통해 다크하고 시크한데 러블리한 매력까지 갖추고 다양한 장르도 소화하는 다국적 걸그룹 ‘블랙핑크’를 연상시킵니다.
자동차 색상에서도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색에 얽매이지 말고 색으로 자동차나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바뀌지 않은 본질에 맞게 사용하면 됩니다.
블랙이든 핑크든, 무채색이든 유채색이든 색에 집착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면 오히려 더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게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겠죠.
최기성 기자 gista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