팰리세이드, 지금이라도 살까?…신차보다 800만원 비싸진 중고차, ‘반란’ 이유는
1만km 탄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싸졌다… 팰리세이드 ‘가격 반란’
팰리세이드 ‘가격 반란’ 일으켜
1만㎞ 타고 팔아도 ‘남는 장사’
막연한 되팔기 이익 기대는 금물
중고차시장 정보 비대칭이 리스크
![]()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높은 기존 팰리세이드(왼쪽)와 신차 시장은 물론 중고차 시장에서도 수요가 급증한 신형 팰리세이드 [사진출처=현대차/ 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중고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희소성이나 소장가치가 높으면 신품보다 가치가 급상승하기도 합니다. ‘가격 반란’을 일으키죠. 골동품이나 예술품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쉽게 구입할 수도 있는 생활필수품은 ‘반란’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신품보다 기능도 떨어지고 낡으니 가치가 떨어지는 게 정상입니다.
자동차도 비슷합니다. 이동을 위한 생활필수품으로 사용된 대부분의 중고차는 신차보다 싸다는 게 상식입니다.
골동품과 마찬가지로 희소가치가 생긴 중고차는 가격이 오르기도 합니다. 상태가 잘 보존된 클래식카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생필품인데 신품보다 중고품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반란이 간혹 일어나기도 합니다. 공급보다 수요가 매우 많을 때 가끔 발생합니다.
![]() 가격반란을 일으킨 팰리세이드 [사진출처=엔카닷컴/ 편집] |
마침 자동차 시장에서도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싼 값에 판매되는 반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란 주도 세력은 현대차 팰리세이드입니다.
반란은 지난 5월 포착됐습니다. 이달 들어 기세가 더 등등해졌습니다. 국내 최대 자동차 플랫폼인 엔카닷컴에 올라온 매물을 살펴본 결과입니다.
지난 5월 팰리세이드 2025년식 모델 일부는 신차보다 500만~1000만원 정도 비싼 값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이달 1~15일에도 가격 반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2025년식 기준으로 신차보다 500만~800만원 정도 높은 가격대를 형성했습니다.
팰리세이드 가솔린 2025년 3월식(주행거리 1만776㎞)는 7190만원에 등록됐습니다. 신차 가격인 6386만원보다 804만원 비쌉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2025년 6월식(2552㎞)은 6650만원에 매물로 올라왔습니다. 신차 가격은 6078만원이니 572만원 더 줘야 살 수 있습니다.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2025년 6월식(4041㎞)은 매물 가격이 7350만원, 신차 가격이 6841만원입니다. 509만원 차이납니다.
![]() 가격반란을 일으킨 팰리세이드 [사진출처=엔카닷컴/ 편집] |
지난 5월 반란 때와 비교하면 가격 차이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기세가 등등해졌다고 말한 이유가 있습니다.
5월에는 주행거리가 100㎞ 이내이고 비닐도 뜯지 않은 ‘완전 신차급’ 중고차들이 가격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달에는 6개월 이상 운행돼 주행거리가 1만㎞ 이상이어서 신차급이라고 절대로 볼 수 없는 ‘완전 중고차’가 신차보다 800만원 비싼 값에 나왔습니다.
중고차 시세도 높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엔카닷컴이 주행거리 6만㎞인 무사고 중고차 기준으로 10월 시세를 산정한 결과입니다.
국산차 시세는 9월 대비 평균 0.55%만 미세하게 올랐지만 팰리세이드 2.2 2WD 캘리그래피는 1.96% 상승했습니다.
현대차·기아 차종 중 가장 오름폭이 컸습니다. 국내 신차 판매 1위인 기아 쏘렌토보다 시세가 더 많이 올랐죠. 쏘렌토 HEV 1.6 2WD는 전월보다 1.31% 가치가 높아졌습니다.
해외서 인기 높고 출고 대기기간도 길어
![]() 러시아에서 인기높은 팰리세이드 [사진출처=현대차] |
가격 반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고차업계는 러시아를 포함한 구소련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신차급 중고 SUV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한국차는 성능이 우수하고 편의사양을 다양하게 갖춘데다 가격 경쟁력까지 높아 수요가 많다고 하죠.
중고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게 정상이지만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진 차종은 서로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들어 매달 CIS 국가로의 중고차 수출은 증가 추세로 나왔습니다.
러시아의 경우 1월 1425대, 2월 2660대, 3월 3511대, 4월 4328대로 많아졌습니다.
키르기스스탄 수출대수는 1월 5912대에서 2월 9192대, 3월 9342대로 늘더니 지난달에는 1만962대로 1만대를 돌파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1월 1242대에서 2~4월 각각 1976대, 2117대, 2329대로 매달 증가했습니다.
![]() 팰리세이드 주행 장면 [사진출처=현대차] |
업계는 CIS에 수출되는 신차급 중고차 대부분의 최종 목적지는 러시아라고 봅니다. 일종의 우회 수출입니다.
러시아를 제외한 CIS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연식이 오래되고 저렴한 차종들이 인기를 끈다고 하죠.
러시아에 신차급 중고차가 많이 수출되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따른 경제 제재,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의 철수 등으로 신차 시장은 위축된 반면 중고차 시장이 성장해서입니다.
키르기스스탄 수출 물량이 가장 많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데다 중고차 관세가 저렴한 이유가 한몫했다고 합니다.
이들 차종을 수출업자들이 적극 매입하면서 같은 차종의 중고차 가격도 높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팰리세이드는 수출업자들이 가장 선호합니다.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아서죠. 한국보다 2배 가량 비싼 값에 판매됩니다. 1억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신차 출고 대기기간이 긴 것도 가격 반란에 한몫했습니다. 현대차 차종 대부분은 1개월 내에 출고됩니다. 하지만 팰리세이드는 계약한 뒤 3개월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팰리세이드 사면 돈 될까?
![]() 팰리세이드 공개 현장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
팰리세이드 가격 반란에 “미리 사뒀으면”이라고 후회하는 소비자들도 있을 겁니다. 1만㎞ 실컷 타고 팔아도 ‘남는 장사’이니까요.
당장 차를 살 필요가 없지만 지금이라도 계약을 서둘러 구매하면 돈이 될까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부동산 대책 발표 전에 아파트 거래가 요동을 치는 현상이 오버랩되네요.
지금 계약해서 3개월 뒤 받은 뒤 바로 팔면 몇백만원 이익을 얻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신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리스크’가 큽니다. 그 이유는 중고차의 속성에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감정·편향·제한된 정보 등 심리적 요인이 경제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가진 정보는 편향적이고 불완전한데다 불공평하게 배분된다고 봅니다.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죠. 내부자 정보가 대표적입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매매업자와 일반인 간에 심각한 정보 비대칭이 존재합니다.
매매업자는 매매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반면 중고차를 구입하거나 자신의 차를 팔려는 일반인은 제한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합니다.
![]() 팰리세이드 실내 [사진출처=현대차] |
정보 비대칭이 심한 곳을 ‘레몬시장’이라고 합니다. 레몬은 속어로 ‘불쾌한 것’, ‘불량품’이라는 뜻입니다.
1965년에 생산된 레몬 색상 폭스바겐 비틀이 고장이 많았고 견디다 못한 소유자들이 중고차로 많이 팔았는데, 이때부터 레몬은 결함 있는 중고차를 뜻하기 시작했죠.
중고차 시장처럼 사고파는 행위가 모두 발생하는 곳에서는 정보 비대칭 때문에 소비자는 물론 자신의 차를 팔려는 소유자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중고차는 ‘일물일가’ 신차와 달리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사양도 같고 출고일도 같은 1만대의 신차는 가격이 모두 동일하다고 볼 수 있죠.
이들 차량이 중고차 시장에 유입되는 순간 가격 조건은 1만개가 됩니다.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진 매매업자가 매매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니 차주는 적은 이득만 보거나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가치가 높을 때 ‘좋은 값’에 가지고 있는 팰리세이드를 팔고 싶거나 괜찮은 매물을 ‘좋은 값’에 구매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보가 부족한 일반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모범 답안은 ‘품’에 있습니다. 품을 팔면 이득을 보지 못하더라도 피해나 손해를 입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장을 돌아다니고 딜러를 만나는 ‘발품’을 팔면 됐지만 요즘은 ‘손품’도 팔아야 합니다.
레몬시장이기에 정보를 최대한 끌어 모으고, 잘못된 정보는 최대한 배제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처럼 글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정보가 잘못된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데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사고파느냐에 따라 변수가 많기 때문이죠. 챗GPT에 물어봐도 해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고차 시장이 예전보다는 많이 투명해졌다고 해도 ‘레몬마켓’에서 완전히 탈출한 것은 아니니까요.
최기성 기자 gista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