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에 ‘벤츠 침수차’ 샀다”…악취·오물 흔적없다고 안심하다 제대로 당했다
눈으로 봐선 모른다? 악취·오물 흔적도 감쪽같이 사라진 침수차. 1억 넘는 수입차도 속수무책, 침수차 구별법 허점 짚어봤습니다.
중고차는 침수, 딜러는 잠수
돈 세탁 뺨친 ‘침수차 세탁’
‘선무당 구별법’ 맹신 금물
![]() “모르고 사면 물 먹는다”. 침수차 자료 사진 [사진출처=매경DB/ 편집=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
“얘야, 절대로 물가에는 가지 마라.”
여름철만 되면 부모가 아이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당부하는 말이었습니다. 점을 보더라도 물가 조심하라는 말이 많이 나왔죠. 귀한 자식이 안전사고를 당할까 걱정해서죠.
요즘 부모들도 워터파크가 아니라면 어린 아들딸이 물가에 있을 때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아이들만 아니라 자동차도 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수륙양용차가 아니라면. 자동차는 물과는 상극이기 때문이죠.
자동차 구성품인 금속·전기장치는 물에 약합니다. ‘물 먹은 차’는 고장이 쉽게 나 제 기능을 못합니다. 수리비도 많이 듭니다.
평소 폼나게 타던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도 물 먹으면 돈 먹고 제 역할 못하는 애물단지가 됩니다.
당연히 중고차 가치도 떨어집니다. 운전자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죠. 침수차는 무조건 폐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 지난 2022년 8월 12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침수 차량이 집결해 있다. 2022.8.12 [사진촬영=한주형 기자] |
물가에 가지 않더라도 자동차를 해치는 물이 매년 찾아옵니다. 올해도 시작됐죠. 장마, 집중호우, 태풍입니다. 매년 6~9월에 ‘피크’죠.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차량 침수는 매년 6~9월에 집중 발생합니다. 차량 침수가 대규모로 발생했던 시기를 알아볼까요.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은 4만1042대에 달했습니다. 2011년 6~8월에도 집중호우로 1만4602대가 침수됐습니다.
2012년 8~9월 발생한 태풍과 집중호우 등으로 차량 2만3051대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2020년 7~9월에도 장마 및 태풍(바비, 마이삭, 하이선)으로 2만1194대가 침수됐습니다.
수도권에서 차량 침수 피해가 가장 컸던 시기는 지난 2022년 8~9월입니다. 115년만에 쏟아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2만대가 넘는 침수차가 발생했습니다.
‘수입차 메카’ 서울 강남에 물폭탄이 쏟아지면서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테슬라 등이 내놓은 고급 차량 피해가 컸습니다.
손해액은 2147억원으로 ‘4만대 침수’ 매미 때를 뛰어넘어 ‘역대급 피해’로 기록됐습니다.
지난 2023년 6~8월에는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2500여대, 지난해에는 7월 집중호우로 3000여대가 넘는 차량이 침수됐습니다. 결코 적다고는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물 먹은 중고차 사면 물 먹는다”
![]() 지하 주차장에 세워뒀다가 침수된 차량 [사진출처=연합뉴스] |
#A씨는 출시된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벤츠 S클래스 차량을 반값 수준인 1억2500만원에 구입했습니다.
중고차 딜러는 무사고 차량이라 자랑했고, 중고차 성능점검기록부에도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이 차는 구입하기 1년 전 장마철에 침수됐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경찰에 적발된 침수차 사기 행각입니다. 침수차는 중고차 시장의 고질병입니다. ‘물 먹은 차’이면서 ‘(사면) 물먹는 차’로 여겨집니다.
사실 침수차라도 침수 사실만 ‘제대로‘ 밝힌다면 원하는 소비자에게 팔 수 있습니다. 침수차를 사들인 뒤 침수 흔적을 감추고 몰래 중고차로 파는 게 문제입니다.
1차 피해를 입은 침수차 소유자뿐 아니라 침수 사실을 모르고 비싼 값에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피해를 줍니다.
일단 중고차 시장에 유입된 침수차는 문제를 한번만 일으키지 않습니다. 침수된 지 1~5년 뒤에도 제2, 제3의 피해자를 계속 양산합니다.
성능이나 품질에 문제가 생긴 침수차는 타면 탈수록 문제를 일으켜 폐차되지 않는 한 다시 매물로 나오기 때문이죠.
![]() 지난 2022년 침수피해를 입은 테슬라 차량 [사진출처=연합뉴스] |
중고차 시장에는 어떤 침수차가 유입될까요. 차주가 자동차보험 자기차량손해담보(자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침수 피해를 보상받지 못할 때 침수차를 중고차로 파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차보험 가입률은 70% 수준입니다. 단순 계산으로는 이번에 침수된 차량 10대 중 3대는 보험사를 통해 보상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결국 피해를 줄이려는 일부 침수차 소유자, 이들에게 차를 산 악덕 호객꾼들이 침수 사실을 숨긴 채 중고차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자차보험에 가입했지만 가입자 과실로 보상 대상에서 제외돼 피해를 접수하지 못한 차량들도 중고차 시장에 흘러들어올 수 있습니다.
또 물 먹으면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침수차 특성 상 전손 처리되지 않고 분손(부분 손해) 처리된 차량들도 나올 수 있습니다.
중고차로 판매하기 어려운 ‘침수 전과’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자차보험 가입자가 자비로 수리한 뒤 중고차로 팔 수도 있습니다.
‘안전벨트·악취·오물’ 맹신하다 당한다
![]() 2022년 도로에서 침수 피해를 입은 차량들 [사진출처=연합뉴스] |
침수차가 몰래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동차 정비 전문가가 아닌 일반 소비자가 활용하기 어려운 방법들이 많습니다. 일반 소비자가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안전벨트 점검, 악취 및 오물 확인 정도입니다.
차량이 내부까지 침수됐다면 안전벨트에 흔적이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전벨트를 끝까지 감아보면 끝부분에 흙이나 오염물질이 묻어 나오기도 합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안전벨트만으로는 침수 여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침수차를 전문적으로 속여 파는 악덕 딜러나 정비업자 대부분도 이 사실을 알고 세척 작업을 벌이기 때문이죠.
안전벨트가 ‘너무’ 깨끗하다면 침수로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고 의심한 뒤 제조일자로 침수차 여부를 일부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새 상품이 아닌 것처럼 사용 흔적을 만들면 알아채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죠.
![]() 침수차는 오염된 흔적을 말끔하게 없앤 뒤 중고차 시장에 유입된다. [사진출처=연합뉴스] |
침수차를 팔면서 실내 악취나 금속 부위 녹 등 눈에 쉽게 보이는 침수 흔적을 놔두는 경우는 드뭅니다. 자동차 전문가가 시간을 들여 점검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없애죠.
안전벨트, 악취, 오물로는 어쩌다 어설픈 사기꾼이 내놓는 침수차만 골라낼 수 있을 뿐입니다. 오히려 악덕 딜러들은 ‘선무당 침수차 상식’을 악용합니다.
게다가 악덕 딜러들은 침수차를 매입한 뒤 바로 팔지 않습니다. 흔적이 있다면 두 달 정도 세척과 정비 작업을 거칩니다.
흔적과 바로 나타나는 침수차 증상을 없앤 뒤에는 “냄새나 오물이 없다”, “시트 아래에 곰팡이나 얼룩이 없다”, “안전벨트가 말끔하다” 등의 말로 침수차가 아닌 것처럼 소비자들을 속입니다.
선무당 상식에 ‘의존’하다가 눈 뜨고 사기를 당하게 되는 셈입니다.
또 침수차가 여러 번 거래되는 과정에서 침수 흔적은 사라집니다. 1~2년전 유입된 침수차는 전문가들도 흔적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진단·보증·환불제 통해 피해 예방
![]() 침수차 무료 조회 서비스 [사진출처=카히스토리] |
선무당 지식 대신 일반 소비자가 침수차를 가려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보험개발원의 자동차이력정보서비스(카히스토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카히스토리를 발급받으면 침수로 수리 또는 전손 처리됐는지 적혀 있습니다.
한계도 있습니다. 자차 보험으로 침수 피해를 보상받은 차량만 파악할 수 있어서죠.
단점이 또 있습니다. 자차 보험에 가입했지만 침수 피해를 자비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전과’를 남기지 않는 차들을 걸러낼 수 없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카히스토리를 보조해 침수차를 좀 더 솎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 365 홈페이지 ‘침수 정보’를 이용하면 됩니다.
![]() 중고차 사고이력 정보 조회 예시 [사진출처=카히스토리] |
중고차 매매업자가 보유한 차량이라면 정비업자의 정비이력,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업자의 점검이력, 보험개발원의 전손 및 분손처리 정보,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파악한 정보를 통해 침수 여부를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호판이나 소유자를 바꾸는 ‘침수차 세탁’도 파악해야 합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웹사이트에 있는 ‘자동차민원 대국민포털’을 통해 발급받을 수 있는 자동차등록원부를 보면 차량번호와 소유자 변경 내역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카히스토리에서도 소유자 변경 횟수를 알 수 있습니다.
번호판이 교체되고, 소유자가 짧은 기간에 여러 번 바뀌었다면 침수 여부를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중고차 딜러에게 차를 살 때는 계약서 특약사항에 “판매업체가 알려주지 않은 사고(침수 포함) 사실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을 넣어둬야 합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잠수’하는 딜러도 있지만 특약사항이 없을 때보다 문제를 조금이나마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8월부터 ‘자동차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시행한 것도 딜러에게 차를 살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침수 사실을 누락하거나 은폐해 처벌받은 이력이 있는 사람을 고용한 매매업자는 1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 자동차 365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고차 정보 [사진출처=자동차 365 캡처] |
이것저것 따지기 싫고 안심 구매가 최고라고 여긴다면 진단·보상 체계를 갖췄거나 직접 매입한 차량만 판매하는 중고차 기업을 이용하는 게 좋습니다.
중고차 기업인 엔카닷컴의 엔카믿고, 롯데렌탈 티카(T car) 등은 ‘침수차 100% 환불 제도’를 운영합니다.
직영 중고차만 판매하는 케이카(K Car)도 매년 침수차 안심 보상 프로그램을 시행합니다.
차종 선택폭은 상대적으로 좁지만 현대차, 기아, 벤츠, BMW, 포르쉐, 토요타 등 자동차 브랜드가 운영하는 인증 중고차 서비스를 통해 차를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최기성 기자 gistar@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