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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여자의 몸은 여자가 그린다"...수잔 발라동, 모델에서 화가로

by매일경제

수잔 발라동 (화가, 1865~1938)

아름다운 시절

매일경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는 시간 여행에 관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길은 미국인 작가다. 그는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을 온다. 마냥 행복한 휴가는 아니다. 길은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에서 전업 소설가로 전향하려던 차였다. 이 문제로 연인과 계속 부딪힌다. 여행에 동행한 약혼녀 부모와도 갈등을 겪는다. 소외감을 느낀 길은 일행들과 떨어져 홀로 파리 밤길을 걷는다. 그러다 어떤 차량에 영문도 모르고 탑승한다. 차에서 내리자 눈앞에 1920년대 파리가 펼쳐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 세기 이전으로 간 것이다. 길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꿈이면 어떠랴. 길은 당시 파리 예술가들과 어울린다.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초고를 봐달라고 부탁하고, 피카소에게서 활화산 같은 에너지를 느끼기도 한다. 길은 위대한 인물들이 밤새 예술, 사상, 정치에 대해 열변을 쏟아내는 파리와 사랑에 빠진다.


길은 자신이 유토피아 속에 뚝 떨어졌다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이 시대 예술가들은 지금 이곳에 만족하지 않고 향수에 빠져 있다. 1920년대 예술가들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그래서 그들의 예술은 아름다움만을 다룰 수 없었고, 종종 정치적이었다. 길이 어울린 예술가들은 구체적으로 1871년부터 1914년 사이의 파리를 그리워했다. 보불전쟁이 끝나고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틈새였다. 그 시절 파리는 풍요로웠고, 낙관으로 가득했다. 훗날 세상은 이 시기를 벨 에포크라고 부른다. 벨 에포크를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다. 벨 에포크 예술은 오직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길은 다시 한 번 시간여행을 떠난다. 1920년대에서 1890년대로 거슬러 벨 에포크 시대에 도착했다. 그 시절 파리는 인상파 화가들의 무대였다. 길은 폴 고갱, 에드가르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를 만난다.


길은 파리 예술의 황금시대 두 곳을 경험했다. 길이 만난 예술가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제외하면 모두 남성이다. 영화가 일부러 여성 예술가를 생략한 건 아니다. 예술은 오랫동안 남성의 영토였다. '그림 그리는 여성'이란 개념은 역사가 짧다. 이 역사를 개척한 인물 중 한 명이 수잔 발라동이다. 수잔 발라동은 벨 에포크 사람이다. '아름다운 시절'에 태어났지만, 발라동 인생 전반부는 아름다움과 멀었다. 그는 남성 예술가들의 재료이자 장식품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가만히 머물지 않았다. 굴레를 찢고 보란 듯이 벨 에포크 주인공이 됐다.

서커스단원에서 몽마르트르의 연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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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1909)

1909년 수잔 발라동은 '아담과 이브'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미술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성서 내용처럼 이브가 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장면을 포착한 그림이다. 중세시대부터 숱한 서양화가들이 이 장면을 그렸다. 그들 그림 속에서 이브는 죄인이다.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면서 인간 전체가 고통의 수렁에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아담 역시 이 범죄에 가담했지만, 어디까지나 주범은 이브였다. 여성은 오랫동안 인류를 재앙에 빠뜨린 악당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발라동의 그림 속 이브는 달랐다. 사과를 따는 이브의 표정은 당당하다. 죄책감은 없다. 이브 옆에 있는 아담의 표정은 심각하다. 아담은 사과를 따는 이브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얼핏 이브가 사과를 따지 않도록 말리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이브가 사과를 따도록 부추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브가 욕망 앞에서 순수하게 몸을 활짝 열 때, 옆에서 아담은 온갖 계산을 하는 중이다. 발라동은 왜 이런 도발적인 그림을 그렸을까. 아마도 그는 아담을 그리면서 자신이 만났던 비겁한 남성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1865년 발라동은 프랑스 시골에서 미혼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종업원이었다. 모녀는 당연히 가난했다. 둘은 파리로 건너갔다. 발라동은 식당 종업원, 가정부, 행상, 공장 일용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하루하루 먹고살았다. 몸을 쓰는 방법을 터득하고 서커스단에 입단한다. 위험한 묘기를 부리는 곡예사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부상이 심해 다시 서커스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쓴맛을 느낄 대로 느낀 발라동의 나이는 겨우 15세였다.


발라동은 친구 소개로 모델 일을 얻는다. 당시 파리에서 이름을 떨치던 화가 샤반의 모델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 시절 남성 화가의 모델이 된다는 건 순수하게 모델 일만 하는 걸 의미하지 않았다. 남성 화가들은 모델을 하녀처럼 부리고,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발라동은 샤반의 집에 살며 모델, 하녀, 연인 1인 3역을 맡았다. 발라동은 문득 자신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시험 삼아 그림 몇 장을 그려 샤반에게 보여줬다. 샤반은 "쓰레기 같은 그림"이라며 발라동의 도전을 하찮게 여겼다. 발라동은 출신은 초라했지만, 최소한의 자존심은 지킬 줄 아는 인간이었다. 평소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샤반의 민낯을 본 발라동은 고민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

모델에서 화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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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가 발라동을 모델로 그린 `부지발의 무도회`(1883)

다시 거리로 나온 발라동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모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몽마르트르 화가들 사이에 발라동이라는 이름은 금세 퍼졌다. 화가들은 어린 나이에 온갖 풍파를 겪은 소녀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느꼈고, 그것을 그리려 했다. 예술가들이 발라동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중엔 르누아르가 있었다. 르누아르 대표작 '부지발의 무도회'(1883)와 '우산'(1883)에 등장하는 여자는 발라동이다. 둘은 화가와 모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행복의 화가'라는 별명답게 르누아르 그림은 봄날의 미풍처럼 포근하다. 그의 그림에서 발라동은 수줍고, 싱그러운 여성으로 묘사된다. 거기엔 대도시 뒷골목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발라동은 르누아르가 자신의 외모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상처받는다. 결국 발라동은 르누아르에게 버림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들을 출산한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사생아가 사생아를 낳은 것이다.


르누아르를 떠난 발라동에게 새로운 남자 로트레크가 다가온다. 이전까지 발라동이 만났던 화가들은 예술혼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가난한 청년들이었다. 로트레크는 달랐다.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 예술가였다. 하지만 열정보다는 체념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로트레크도 발라동 못지않게 상처로 얼룩진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사고와 유전적인 문제로 키가 150㎝에서 멈췄다. 지팡이를 짚지 않고는 제대로 걷기 어려울 만큼 장애도 있었다. 로트레크의 아버지는 몸이 성치 않은 아들을 제대로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로트레크는 그림에만 몰두했다. 화가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귀족 사교계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는 파리 환락가였던 물랭루주에 머물며 뒷골목 삶을 캔버스에 묘사했다.


로트레크가 그린 발라동은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과 확연하게 다르다. 로트레크 작품 속에서 발라동은 낡은 옷을 입고 지친 눈동자를 하고있다. 그는 발라동을 있는 그대로 바라봤다. 발라동은 자신을 진심으로 헤아려주는 로트레크에게 마음을 연다. 로트레크는 발라동이 연습 삼아 그린 그림을 본다. 그리고 발라동이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로트레크는 친구였던 화가 드가에게 발라동을 데려간다. 발라동은 드가 밑에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다. 발라동은 로트레크에게 청혼한다. 로트레크는 완강히 거부한다. 부모로부터도 외면받은 그에겐 뿌리 깊은 자기혐오가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 진정한 사랑 따위는 가당치도 않다고 믿었다. 발라동은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로트레크의 마음을 얻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둘은 헤어졌다.

여성이 그린 여성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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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Room(1923)

발라동은 드가의 도움으로 전시회까지 열었다. 공식적으로 화가가 됐다. 발라동은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겠다는 듯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했다. 그 뒤로 10여 년을 부르주아처럼 지냈다. 하지만 모험은 계속됐다. 발라동은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가난한 화가와 사랑에 빠졌다. 과거에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자신을 뮤즈로 삼았듯이, 발라동도 젊은 예술가에게서 영감을 얻고 다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남자와 재혼한 발라동을 두고 세상은 수군거렸다. 하지만 발라동은 거리낌 없이 그림을 그렸다.


발라동은 누드화를 많이 남겼다. 모델은 자신이었다.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은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그것들 대부분엔 남성의 욕망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여성의 육체를 다루는 남성 예술가들의 머릿속엔 비너스가 있었다. 그들에게 여성의 몸은 어떤 이상향이었다. 그래서 예술사에 기록된 뮤즈들은 대부분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다. 발라동은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나이가 들며 얼굴에 주름이 늘고, 몸 구석구석에 군살이 붙고, 가슴도 처졌다. 발라동은 그런 몸을 덤덤하게 묘사했다. 저 아래 밑바닥에서 시작해 고군분투하며 삶을 개척한 사람 특유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난 너를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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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ing the Net (1914)

남성 화가들은 발라동을 사랑했고, 싫증 나면 내팽개쳤다. 시간이 흘러 발라동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 역시 사랑을 취사선택했다. 발라동 곁을 스쳐 지나간 남자 중 가난한 무명 음악가도 있었다. 그는 시대를 너무 많이 앞서 태어난 천재 에릭 사티다. 발라동과 사티의 연애 기간은 6개월뿐이었다. 사티는 발라동과 헤어진 이후 죽을 때까지 연애하지 않았다.


사티가 발라동을 위해 작곡한 곡 중엔 '난 너를 원해(Je Te Veux)'가 있다. 사티를 모르더라도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유명한 음악이다. 달콤하고, 감미롭고,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곡이다. 겨울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앞으로 나가 봄을 맞이한 발라동을 닮은 음악이기도 하다.


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