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기"...조커가 사랑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

[컬처]by 매일경제

프랜시스 베이컨 (화가, 1909~1992)

조커가 반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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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2019)는 소시민이었던 남자가 괴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개봉 직후 전 세계 곳곳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평범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불평등한 사회를 꼬집었다며 호평했다. 반대편에선 영화가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혁명가처럼 묘사하면서 폭력을 정당화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조커를 따라한 모방 범죄를 우려해 극장 주변에 경찰이 배치되기도 했다. 영화를 둘러싸고 의견이 충돌했지만, 배우 호아킨 피닉스가 보여준 밀도 높은 연기는 논란 여지가 없었다. 기이하게 굽은 등과 공허한 눈빛으로 조커를 연기한 그는 오염된 영혼 그 자체였다. 호아킨 피닉스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거지 같은 세상 속에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위험한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호아킨 피닉스 이전부터도 세상은 조커라는 캐릭터에 열광했다. 영화 속에서 조커는 결국 배트맨에게 패배하지만, 존재감은 히어로를 압도한다. '다크나이트'(2008)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배우의 요절까지 겹치면서 신화가 됐다. 호아킨 피닉스가 조커 역할을 맡았을 때, 세상은 그가 히스 레저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히스 레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앞서 조커를 연기한 선배 배우들의 그림자에 가려지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조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잭 니컬슨이라는 괴물이 기다리고 있다.


팀 버튼 감독 '배트맨'(1989)에서 잭 니컬슨이 연기한 조커는 역대 조커 중 가장 순수하다. 그는 순도 100% 악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듯 폭력을 일삼는다. 낄낄거리며 때리고, 훔치고, 부순다. 악행의 동기는 불분명하다. 눈을 뜨면 도시를 어떻게 망쳐놓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고민한다. 살인하기 직전에도 상대에게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고,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괴상한 유머를 잃지 않는다. 조커 일당은 인류 유산을 즐겁게 학살했다. 미술관에 쳐들어가서 드가, 렘브란트, 르누아르 그림을 훼손한다. 그러다 조커는 한 그림 앞에 멈춰서 부하들에게 말한다. "이건 마음에 들어. 내버려 둬." 핏물 가득한 고깃덩이 사이에 한 남자가 고통에 앉아 있는 그림이다. 조커가 살려준 그림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고기와 남자 형상'(1954)이다.

끔찍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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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1500억원에 낙찰된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습작`(1969) / 연합뉴스

조커가 반한 그림답게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은 끔찍하다. 그의 그림에서 인간은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이 신세다. 육체는 갈기갈기 찢겼고, 얼굴은 기이하게 뒤틀려 있다.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인간이 산산조각나 있다. 악몽에도 안 나올 것 같은 불길한 이미지를 들여다보면 수위 높은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나도 내 작품을 다 이해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베이컨은 자유로운 해석을 주문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엔 해석 여지가 많지 않다. 고통과 공포 이외의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거실에 걸어두고 싶지 않은 베이컨 그림은 소수 마니아에게만 인기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그는 생전에 스타 화가 대우를 받았다. 죽어서는 몸값이 더 치솟았다. 오늘날 베이컨은 손가락에 꼽히는 비싼 작가다. 201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베이컨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습작'(1969)은 1500억 원에 낙찰됐다. 2012년 1350억원에 팔렸던 뭉크의 '절규'(1893)를 제치고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깼다.


베이컨 그림에 담긴 에너지는 여러 영역으로 뻗어 나갔다. 영화계에도 베이컨처럼 악몽 같은 작품을 만들어온 감독들이 있다. 거장 데이비드 린치는 그 정점에 있는 감독이다. 린치는 일찍이 베이컨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영화에 반영했다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1980년작 '엘리펀트 맨'에는 희소병에 걸려 기형적인 얼굴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다. 뒤틀린 얼굴을 한 그는 베이컨의 작품에서 막 튀어나온 듯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에도 베이컨 그림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분열'이라는 에너지로 가득한 이 영화는 큰 틀에서 뒤틀린 인간이 등장하는 베이컨 그림과 닮았다. 대니 보일 감독 역시 '트레인스포팅'(1996)을 제작할 때 베이컨 그림의 음울한 색채를 반영했다.

그림만큼 불안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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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 출세작 `십자가 책형 발치의 인물들을 위한 세 개의 습작들`(1944) /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소장

베이컨의 삶은 그의 작품만큼 불안했다. 190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꽤 유복한 집에서 성장했다. 10대 때 베이컨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는 엄격했다. 종교적인 엄숙함으로 무장한 남자이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자인 아들이 몹쓸 질병에 걸렸다고 여겼고, 폭력이 치료 약이라도 되는 듯 채찍질했다. 그럼에도 베이컨은 계속 남자들과 육체적 관계를 이어갔고, 여자 속옷을 입으며 부모를 놀라게 했다. 베이컨은 18세 때 사실상 집에서 쫓겨났다. 삼촌들이 있는 베를린으로 건너갔다. 당시 독일은 주변 나라에 비하면 자유로운 편이었다. 베이컨은 동성애 클럽을 드나들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고히 확인했다. 이 시기에 잠시 파리에 들렀던 베이컨은 피카소 작품을 접하고 충격받는다. 자신도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베이컨은 런던에 정착했다. 별도로 전문 미술 교육을 받진 않았다. 가구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생계를 유지하며 짬을 내 습작을 그렸다. 이 시기에 베이컨에게 큰 영향을 끼친 두 개의 콘텐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뭉크의 '절규'였고 또 하나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이었다. 베이컨은 뭉크 그림에 절절히 배어 있는 고통에 사로잡혔다. 그가 '전함 포템킨'에서 본 것도 결국 고통이었다. 이 작품엔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면으로 추앙받는 신이 있다. '오데사 계단 신'으로 불리는 장면인데, 영화 몽타주 기법 교과서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사람이 계단에서 학살당하는 가운데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위태롭게 계단 위를 데구루루 굴러가는 장면이다. 이 신에서 총에 맞은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컷이 등장한다. 베이컨은 입을 벌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베이컨이 끔찍한 그림을 그린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유복하게 태어났지만 성 정체성 때문에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뒷골목을 전전했던 인간의 눈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베이컨에게 '뭉크' '전함 포템킨' 등은 고통을 그리도록 하는 촉매제였다. 베이컨은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다. 반응은 좋지 않았다. 당시 유럽 미술계는 다양한 사조가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화가들은 저마다 똘똘 뭉쳐 세력을 확장했다. 베이컨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미술계에선 외톨이에다 기괴한 그림까지 그리는 베이컨을 하찮게 여겼다. 혹평에 상처받은 베이컨은 1930~1940년에 그렸던 그림 대부분을 제 손으로 찢었다. 베이컨의 시대는 1940년대 들어서야 열렸다. '십자가 책형 발치의 인물들을 위한 세 개의 습작들'(1944)로 스타로 떠오른다. 오렌지색 배경에 정체 모를 생명체가 고통에 울부짖는 작품이다. 베이컨은 세 점을 나란히 이어 붙인 형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것은 기독교 미술의 특징이다. 관객들은 울부짖는 괴물 그림 앞에서 종교화에서 느낄 수 있는 엄숙함을 느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전체가 비명을 지르던 시기였다.

막살았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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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와 남자 형상(1954) / 시카고 미술관 소장

베이컨은 1940년대 이후 수십 년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 거장으로 대우받았다. 1971년 파리에서 대규모 회고전도 열렸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경찰이 출동할 정도로 회고전은 대성공했다. 하지만 베이컨의 삶만큼은 10대 때 집에서 쫓겨난 직후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 막살았다. 병적으로 육체적 관계에 집착했다. 명성에 비해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술과 도박으로 탕진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는 푸줏간을 방불케 할 만큼 엉망진창이었다. 영국 왕가에서 주는 훈장도 모두 거절할 정도로 반골 기질도 강했다. 스타 화가가 된 이후에도 뒷골목을 드나들며 알코올 중독자, 도박꾼, 부랑자들과 어울렸다. 빛보다는 어둠에 속한 삶을 유지했고,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컨의 뮤즈는 당연히 남자였다. 베이컨의 연인 중 널리 알려진 인물은 조지 다이어다. 둘은 1960년대 중반에 만났다. 조지 다이어는 베이컨 집에 든 좀도둑이었다. 둘은 어쩌다 보니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베이컨은 조지 다이어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조지 다이어는 베이컨 못지않게 자기 파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베이컨이 다른 남자에게 한눈을 팔면 서슴없이 자해하며 관심을 받으려 했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베이컨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던 조지 다이어는 우울증, 강박증에 시달렸다. 그는 1971년 자살한다. 파리에서 베이컨 회고전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갑작스러운 연인의 죽음에 베이컨은 충격을 받았다. 조지 다이어가 죽고 나서도 그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 드리운 작품을 연달아 그렸다. 이때부터 베이컨은 인물화에 집중했다. 배경조차 그리지 않았다. 오직 고통과 불안에 떠는 인간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다. 훗날 새로운 연인을 만나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베이컨 그림은 뒤로 갈수록 따뜻하고 밝은 색채를 얻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뒤틀린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베이컨은 1992년 마드리드에서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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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위한 세 가지 연구(1976) / 개인 소장

사람들이 베이컨 그림 앞에서 즉각 압도되는 이유는 끔찍한 이미지가 뿜어내는 어두운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단지 기괴한 이미지를 그렸기 때문에 베이컨이 위대한 화가 칭호를 얻었다고 볼 순 없다. 베이컨은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고통받는 모든 인간은 고기다"라는 말도 남겼다. 베이컨은 살을 가지고 태어난 점에서 인간과 동물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의 또 다른 이름은 고기다. 고기는 연약하다. 언제든지 정육점에 내걸린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베이컨은 동물이든 인간이든 이 세상에서 육체를 지니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비참함을 견디는 일이라고 여겼다.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슬픔을 마주한다. 두들겨 맞고 모욕당하면서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고통이 각인되는 곳은 결국 육체다. 그래서 베이컨이 그린 뒤틀린 육체 안에는 연약한 인간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 이 속절없는 고통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조성준 기자

2020.04.2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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