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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죽은 예술가의 사회-49

`20세기 최고 관종` 살바도르 달리, 모든 건 꿈에서 시작됐다

by매일경제

살바도르 달리(화가·1904~1989)

매일경제

꿈의 힘은 강하다

좋은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꿈도 안 꾸고 잘 잤네." 여기에는 꿈이 잠을 방해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악몽에서 허우적대다 식은땀 흘리며 일어난 날엔, 온종일 몸도 무겁고 기분도 찝찝하다. 꿈은 과학계에서도 활발히 연구하는 영역이다. 꿈은 일반적으로 렘(REM)수면 단계에서 꾼다. 렘수면은 얕은 단계의 수면이다. 이때 뇌는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히 활동한다. 몸은 잠들었는데, 뇌는 각성한 상태다. 전체 수면 시간 중 렘수면 비중은 20~25% 정도다. 렘수면과 숙면 상태가 적절한 주기로 조화를 이뤄야 개운하게 잘 수 있다. 스트레스 받거나 피로가 누적되면 잠의 황금비율은 깨진다. 그런 날 우린 꿈에 시달린다.


꿈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도 있다. 주기적으로 같은 악몽을 꾸는 이유는 뭘까. 아름다운 꿈을 꾸고 깨면 왜 마음이 아릿할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 왜 꿈에 나오는가. 왜 나는 쫓기고 있는가. 꿈을 꾸는 도중 이것이 꿈임을 자각하는 경우도 있다. 가위에 눌린 직후에는 잠시 꿈과 현실 구분이 불가능하다. 꿈은 모호하다. 온통 수수께끼다. 인간에겐 무엇이든 해석하고 결론 내리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다. 꿈은 항상 연구 대상이었다. 꿈을 해석해 미래를 점치는 점술사들은 고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환자의 꿈을 분석해 심리치료에 활용했다. 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조차 악몽을 꾼 날이면 '꿈은 반대'라며 애써 좋게 해석하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이 꿈에서 좋지 않은 일을 당한 날에는 괜히 안부전화를 한다. 꿈의 힘은 강하다. 꿈을 그린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강렬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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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지속(1934) /뉴욕현대미술관

살바도르 달리, 축 늘어진 시계

'기억의 지속'(1931)은 달리 대표작을 넘어 초현실주의 예술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저 멀리 바다, 해안선, 절벽이 보인다. 앞쪽엔 앙상한 나무가 있다. 나뭇가지엔 흐물흐물 녹아내린 시계가 걸려 있다. 나무 아래로 시계 3개가 더 있다. 2개는 나뭇가지에 걸린 시계처럼 축 늘어져 있다. 유일하게 견고한 모습을 유지한 시계 위에는 개미들이 우글거린다. 부패가 시작된 듯하다. 기묘하고 몽환적인 작품이다. 인간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듯한 이 휑뎅그렁한 해변은 무엇인가. 나무엔 왜 시계가 걸려 있을까. 시계는 왜 녹아내렸나.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다. 달리와 마그리트는 모두 '데페이즈망' 기법을 활용했다. 데페이즈망은 어떤 대상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떼어내 엉뚱한 맥락 안에 배치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딸기 케이크가 제과점 진열대가 아닌 변기 뚜껑 위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물속이 아니라 공중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떠올려보라. 케이크와 물고기는 제자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수수께끼가 된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데페이즈망을 통해 관객에게 낯섦이라는 느낌을 전하려 했다. 달리의 '기억의 지속'도 데페이즈망이 적용된 그림이다. 벽에 걸려 있어야 할 시계가 해변에, 그것도 나무에 매달려 있다. 달리는 더 나아가 '데포르마시옹'도 활용했다. 데포르마시옹은 왜곡이라는 뜻이다. 달리의 시계는 벽에 걸려 있지 않을뿐더러 모양까지 왜곡됐다. '데페이즈망'과 '데포르마시옹' 현상이 활발히 일어나는 곳은 꿈의 세계다. 뇌 안에 저장된 이미지가 꿈속에서는 마구잡이로 뒤엉킨다. 그래서 꿈은 신비하고 기묘하고 때론 두렵다. 매일 밤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다. 달리는 왜 꿈에 집착하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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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망의 수수께끼(1929) /뮌헨 주립 현대미술관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달리는 스페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 애호가였던 아버지 영향으로 달리도 현대미술을 접한다. 달리는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 미래파 화가와 프랑스 입체파 화가에게서 깊은 영감을 얻는다. 미래파는 과학, 기계문명을 찬양하는 독특한 예술 사조인데, 입체파의 아류 중 하나다. 피카소로 대표되는 입체파 화가들은 혁명가였다. 그들은 전통 회화 틀을 자비 없이 부쉈다.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그림에서 벗어나 피사체 본질을 탐구하는 데 골몰했다. 피카소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조각조각 나 있다.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 인간 모습을 한 화폭에 모두 담기 위해 피카소는 쪼개고 또 쪼갰다.


달리는 입체파와 미래파에서 영향을 받은 낯선 그림을 그렸다. 당시 스페인에서 이런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드물었기에 금세 주목받았다. 그러나 달리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반정부 활동에 가담했고, 학생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유치장 신세도 졌다. 달리는 퇴학당한다. 달리는 파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초현실주의 사조 창시자이자 시인인 앙드레 브르통은 신비한 이미지를 그리는 달리에게 손을 내민다. 1929년 달리는 초현실주의 클럽에 가입한다.


달리를 본격적으로 꿈의 세계로 안내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다. 달리는 프로이트 저서 '꿈의 해석'을 탐독했다. 프로이트는 정신적 문제를 겪는 환자의 꿈을 분석했다. 무의식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파악해 치료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초현실주의도 프로이트의 무의식 연구를 기반 삼아 탄생했다. 하지만 달리가 프로이트를 추종한 이유는 개인적이었다. 달리도 프로이트의 환자처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달리에겐 형이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형 이름은 살바도르 달리였다. 형은 달리가 태어나기 직전 죽었다. 상심한 부모는 둘째가 첫째의 분신이라고 여기며 똑같은 이름을 줬다. 유년 시절 달리는 죽은 형을 그리워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걸해야 했다. 달리는 형의 그림자를 떨쳐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의 의식 깊은 곳엔 언제나 형이 웅크리고 있었다. 죽은 형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을까. 달리는 프로이트 이론을 접하며 무의식 영역에 뛰어들었고, 꿈을 그렸다. 침대 근처에 이젤을 두고, 잠에서 깨자마자 꿈에서 본 내용을 그릴 정도로 심연의 세계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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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격세유전(1933)/베른 시립미술관

"내가 초현실주의 그 자체다"

달리는 자의식 강한 예술가였다. 그림만큼이나 기행으로 유명했다. 겨우 30대에 자서전을 썼는데 첫 문장은 무려 "나는 천재다"다. 달리의 연애 일화도 유명하다. 달리와 어울린 초현실주의 예술가 중엔 시인 폴 엘뤼아르가 있다. 달리는 엘뤼아르의 부인 갈라에게 반했다. 달리는 공격적으로 구애를 펼쳤다. 달리의 아버지는 아들이 불륜 당사자가 되는 걸 반대했다. 달리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갈라에게 올인했다. 갈라는 엘뤼아르와 찢어지고 달리와 결혼한다. 달리는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 그리고 심지어 돈보다 갈라를 더욱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고 말했다. 불륜으로 시작한 관계였지만 달리는 죽을 때까지 갈라만을 바라봤다.


달리는 꾸준히 꿈을 소재로 신비한 그림을 그렸고 명성은 높아졌다. 초현실주의 예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자 사이에서 달리는 문제아였다.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 폐허 위에서 탄생한 사조다. "이성을 가진 인간이 벌인 일이 겨우 전쟁이라니"라는 비탄을 쏟아내고, 산업혁명이 초래한 물질주의를 비판하던 예술가들이 뭉쳐 초현실주의를 개척했다. 당연히 그들 대부분은 공산주의자였다. 그런데 달리는 마르크스 사상에 의문을 품고 자본주의를 찬양했다. 독재자를 옹호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진심이었는지 위악적인 농담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동료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1934년 달리는 초현실주의 클럽에서 제명당한다. 달리는 버림받은 후에도 기죽지 않았다. "내가 초현실주의 그 자체"라며 큰소리쳤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터졌을 때 달리는 고국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피신했다.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땐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도망쳤다. 스페인 내전 참상을 알리려 비극 한복판에 뛰어들었던 작가 조지 오웰은 달리를 두고 "쥐새끼처럼 도망쳤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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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날아다니는 한마리 꿀벌에 의해 야기된 꿈(1944)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꿈에서 시작한 꿈

명성에 집착한 달리는 초현실주의 예술가 중 가장 현실적인 성공을 누렸다. 2차 대전 이후 꽤 오래 미국에 머물렀는데, 이 기간 여러 분야 예술가와 어울렸다. 영화, 사진, 연극,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월트 디즈니와 알앨프리드 히치콕과도 협업한 달리는 슈퍼스타 대우를 받았다. 달리는 기업 로고를 그려주고, 광고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추파춥스의 유명한 로고도 달리 작품이다. 예술과 상업 경계를 무너뜨린 그는 팝아트 탄생 기반을 마련했다. 달리는 성공한 예술가, 스타, 연예인 지위를 오래 누렸다. 1982년 갈라가 87세 나이로 눈을 감았다. 광기를 추진 삼아 세계를 누볐던 달리는 갈라가 죽은 후 급격히 쇠락했다. 심한 중풍에 시달렸고 정신적 문제도 생겼다. 1989년 달리는 갈라 곁으로 갔다.


달리는 한평생을 그가 그린 축 늘어진 시계처럼 규칙 없이 살았다. 젊은 시절엔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했고, 나중엔 독재자를 옹호했다. 가난한 예술가와 어울리면서도 자신은 돈을 좇았다. 미치광이를 자처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천재라고 확신했다. 애완견이 아니라 개미핥기를 산책시키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 친구를 잔뜩 초대해 대접한 후 종이에 그림을 그려 식사값을 지불할 정도로 뻔뻔했다.


달리라는 인간은 그의 그림만큼 꿈같았다. 종잡을 수 없는 방식으로 행보했다. 이 모든 기행은 결국 관심받기 위해서였다.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달리는 스스로 물었을 것이다. '나는 형의 분신인가?' '나는 나인가?' 이 의문을 떨쳐내기 위해 거친 방식으로라도 세상에 자신을 각인시켜야 했다. 달리는 종종 꿈을 꿨을 것이다. 얼굴도 본 적 없는 형이 나타나 "넌 가짜야"라고 속삭인다. 꿈의 힘은 강하다. 달리라는 인간과 그의 그림은 꿈의 잔여물일지도 모른다.


[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