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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해맑게 웃던 히스 레저,
그를 죽인 건 조커도 마약도 아니다

by매일경제

히스 레저 (배우, 1979~2008)

요절한 가수를 동경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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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드레이크라는 영국인 가수가 있었다. 우울한 시인처럼 쓸쓸함을 풍기는 청년이었다. 그는 통기타를 연주하며 나직하게 슬픔과 허무에 관한 노래를 불렀다. 세 장의 앨범을 발표했는데,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대중의 평가는 차가웠다. 닉 드레이크가 활동한 1970년대 영국은 데이비드 보위 시대였다. 청춘들은 보위 음악처럼 새롭고 다채로운 무언가를 원했다. 닉 드레이크 장르는 포크송이었다. 낡은 음악 취급받았다. 앨범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닉 드레이크는 자신의 음악처럼 정처 없는 우울에 빠졌다. 그는 1974년 항우울제를 너무 많이 삼켜 26세에 요절했다. 닉 드레이크는 죽은 후 성공했다. 1980년대 말부터 닉 드레이크 음악이 조명받았다. 내성적인 예술가가 쓴 섬세한 가사와 우울하지만 아름다운 선율이 라디오 주파수를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 오늘날 닉 드레이크는 "미국에 밥 딜런이 있다면 영국엔 닉 드레이크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포크송 전설로 추앙받는다.


영국에서 1만5000㎞ 떨어진 호주에도 닉 드레이크 음악이 도착했다. 그곳 청춘들도 일찍 저문 천재 가수 음악을 들으며 감상에 빠졌다. 그중엔 히스 레저도 있었다. 닉 드레이크 음악에 푹 빠진 히스 레저는 "나는 닉 드레이크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훗날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스타가 된 이후에도 히스 레저는 닉 드레이크를 향한 애정을 계속 드러냈다. 그는 닉 드레이크 전기 영화를 연출하고 출연할 계획도 세웠다. 닉 드레이크처럼 살고 싶었던 히스 레저는 삶의 마지막 챕터만큼은 그가 뱉은 말처럼 됐다. 그는 닉 드레이크처럼 이른 나이에 갑자기 떠났고, 죽은 후에는 신화가 됐다.

조커의 가면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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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나이트`의 한 장면. 이 작품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악역으로 꼽힌다. /사진=다음영화

스타의 요절에는 그럴듯한 이야깃거리가 달라붙는다. 히스 레저가 떠난 후에도 그랬다. 그가 영화 '다크나이트'(2008)에서 연기한 조커는 악몽 그 자체였다. 걸음걸이, 손동작, 말투, 표정 등 모든 면에서 히스 레저는 악마였다. 배트맨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악당이 영웅의 존재감을 압도했다. 히스 레저는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 예고 없이 죽었다. 세상은 '조커의 저주'가 젊은 배우를 데려갔다며 수군거렸다. 히스 레저가 조커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오랫동안 호텔 방에 틀어박혀 악을 탐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괴물의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라.' 니체가 남긴 말처럼 히스 레저가 조커에 지나치게 몰입한 탓에 착란 증세를 보였고, 그 결과 마약에 빠져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것이란 추측이 퍼졌다.


히스 레저의 사인은 자살이 아니다. 마약을 투약하지도 않았다. 그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 진통제, 진정제 등 독한 약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약물 과다 복용 부작용이 히스 레저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여전히 세상은 이 죽음을 조커와 연관 지으려 한다. 재능 있는 배우가 영혼을 바쳐 조커라는 악마를 창조하고, 그 대가로 소멸해버렸다는 서사는 꽤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히스 레저가 창조한 조커는 분명히 영화사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캐릭터다. 하지만 조커라는 끔찍한 얼굴로만 히스 레저를 기억하는 건 조금 부당하다. 조커라는 악마의 가면 뒤에는 바다 위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청춘이 있었다.

미국 진출 후 곧장 스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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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 레저의 할리우드 데뷔작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이 영화로 히스 레저는 단번에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사진=다음영화

얼굴에 가득했던 주근깨는 바닷마을의 따사로운 햇볕 때문이었을까. 히스 레저는 호주 퍼스에서 태어났다. 퍼스는 호주 서쪽 도시로 인도양을 마주 보고 있다. 일조량이 풍부해서 한겨울에도 따뜻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량한 날씨가 매력인 도시다. 히스 레저는 퍼스와 닮았다. 낙관적이고 쾌활하고 막힘 없었다. 그는 캠코더와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일기 쓰듯이 자신을 기록하고 친구와 일상을 담았다. 영상이든, 사진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연기의 길을 선택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며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시드니로 향했다. 무작정 오디션을 봤고 TV 드라마 조연 역할을 따내며 배우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여러 호주 드라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할리우드에서 연락이 왔다. 스무 살 호주 청년은 미국으로 갔다. 히스 레저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다. 셰익스피어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재해석한 하이틴 로맨스 장르다. 히스 레저는 껄렁껄렁하지만 매력적인 고등학생 패트릭 역할을 맡았다. 하이라이트는 패트릭이 좋아하는 여학생의 화를 풀기 위해 유명한 팝송 'Can't take my eyes off you'를 부르는 장면이다. 운동장 스탠드에서 방방 뛰어다니며 연인에게 노래를 선물한다. 청량함 가득한 이 장면은 미국 하이틴 영화의 상징이 됐다. 호주에서 막 날아온 스무 살 청년은 데뷔와 동시에 할리우드 아이돌이 됐다.

"나는 다시 쌓기 위해 내 커리어를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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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히스 레저는 게이 카우보이 역할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사진=다음영화

히스 레저에게 캐스팅 제의가 쏟아졌다. 대부분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처럼 하이틴 로맨스 장르였다. 히스 레저는 데뷔작과 비슷한 영화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스타의 화려함보다는 예술가의 길을 동경했다. 보통의 성공이 아니라 위대한 성공을 원했다. 그러려면 하이틴 영화처럼 특정 장르에 매몰되면 안 됐다. "나는 다시 쌓기 위해 내 커리어를 파괴한다" 차기작으로 '패트리어트-늪 속의 여우'(2000)를 선택했다. 18세기 미국 독립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히스 레저는 자신처럼 호주 출신 배우 멜 깁슨과 호흡을 맞췄다. 대배우 멜 깁슨을 스승으로 삼으며 그에게서 많은 것을 흡수했다. 이 영화로 히스 레저는 하이틴 무비스타라는 이미지를 덜어냈다. 배우로서 진지하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기사 윌리엄'에서 첫 단독 주연을 맡으면서 존재감을 키웠다.


호주에서 건너온 풋풋한 미남 이미지를 완벽히 증발시킨 영화는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5)이다. 이 작품에서 히스 레저는 카우보이다. 그리고 게이다. '와호장룡'(2000)으로 유명한 이안 감독은 여백이라는 정서를 잘 쓰는 연출가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여백이 탁월한 작품이다. 배경은 미국 와이오밍주 깊은 산골이다. 영화는 너른 들판과 투명한 하늘을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자연이 내준 여백 안에서 히스 레저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한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에는 기쁨과 충만함보다는 상처와 여백이 더 많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조용히 삭이고 삭이는 히스 레저 연기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아릿함을 느꼈다. 영화에서 히스 레저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만년설 같은 서늘한 외로움을 뿜어낸다. '브로크백 마운틴'에 쏟아진 호평에는 히스 레저 연기에 대한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이 영화 덕분에 히스 레저는 진짜로 사랑을 얻었다. 작품에 함께 출연한 배우 미셸 윌리엄스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둘은 딸 마틸다를 낳았다.


히스 레저가 조커 역할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배트맨 시리즈 팬들은 혹평을 퍼부었다. "히스 레저가 연기를 잘하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조커를 맡기에 그의 이미지는 너무 로맨틱하다"라는 식의 불만이 쏟아졌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여린 마음을 지닌 카우보이를 연기한 배우에게서 조커를 떠올리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사람들 머릿속에는 1989년 개봉한 배트맨에서 잭 니컬슨이라는 위대한 배우가 연기한 조커가 선명히 들어 있었다. 히스 레저가 발버둥 쳐도 잭 니컬슨 발끝에도 닿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잭 니컬슨이 히죽거리는 광대 살인광이었다면, 히스 레저는 자연재해와 같은 무자비한 악마였다. 히스 레저는 잭 니컬슨을 흉내 내지 않고 새로운 조커를 탄생시켰다. 이렇게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고 히스 레저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유쾌한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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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코더로 자신과 일상을 기록했던 히스 레저. 그가 찍은 영상을 모아 만든 다큐멘터리 `아이엠 히스레저`의 한 장면. /사진=다음영화

그는 왜 불면증과 우울함에 빠졌을까. 당시 히스 레저는 교제 3년 만에 미셸 윌리엄스와 결별했다. 딸 마틸다 양육권을 두고 골머리를 앓았다.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후 10년간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숨 고르기가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몰입한 탓에 영혼이 지쳤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악재가 하필 한순간에 몰려들었고, 좋지 않은 식으로 화학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히스 레저가 떠나고 9년이 지난 2017년, 다큐멘터리 '아이 엠 히스레저'가 나왔다. 히스 레저가 캠코더로 일상을 기록한 영상을 엮은 작품이다. 홈비디오 버전의 자서전인 셈이다. 다큐 초반에 앳된 얼굴을 한 히스 레저가 카메라를 쳐다보고 말한다. "안녕, 우리는 이제부터 여행을 떠날 거야. 나랑 같이 갈래?" 90분간 히스 레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이 펼쳐진다. 그의 여행은 고향 퍼스처럼 화창했다.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예술을 동경하며 하루를 영원처럼 살았다. 더 넓은 영토를 향해 순항하던 그는 한순간 거대한 파도와 먹구름을 만났고, 여행은 거기에서 끝났다.


사람들은 요절한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볼 때 불현듯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제 이곳에 없는 가수가 혼신의 힘으로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볼 때도 그렇다. 알싸한 감정이 속을 헤집는다. 피와 땀을 쏟아내며 무언가를 창조하고, 원대한 꿈을 꾸던 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새롭게 발견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라고 말하던 히스 레저는 발견하지 않은 것을 많이 남겨둔 채로 갔다. 유해는 퍼스로 돌아왔다. 장례식은 히스 레저가 좋아했던 퍼스 해변에서 열렸다. 가족과 친구들은 노을 지는 해변에서 히스 레저를 배웅했다. 모두가 슬펐지만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춤을 추고, 장기자랑을 하고, 물장구까지 쳤다. 눈물 대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활짝 웃던 청춘을 떠나보내는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


조성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