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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생각보다 더 따뜻했던 북극의 여름

by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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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북극 스발바르 제도의 해안가 모습.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해빙(海氷)이 거의 다 녹으면서 뱃길이 열렸다. 육지의 빙하(氷下)도 점점 녹으면서 바다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 여름에는 영상 10도 안팎으로 기온이 높아져 바다 위로 구름과 안개가 잘 끼고 비가 자주 오는 습한 날씨가 이어진다. /사진=송경은 기자

78°13'. 노르웨이 북부 대서양 스발바르 제도 롱위에아르뷔엔 공항에 내리자 이곳 북위를 나타내는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7월 북극 지질·자원 탐사대원들을 따라 처음 스발바르 제도를 찾았다. 노르웨이령 최북단이자 노르웨이와 북극점 중간 지점에 위치한 스발바르 제도는 북극권 육지 중 북극점과 가장 가깝다. 직선거리로 1000㎞ 남짓이면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다. 스발바르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스피츠베르겐섬의 중심부인 롱위에아르뷔엔은 스발바르 제도의 행정 중심지이자 유럽에서 북극해로 진출하는 이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인구 1800명 규모 마을이다.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북극에 왔다는 생각에 공항을 나서면서 옷부터 여몄다. 그런데 춥기는커녕 공기는 한국의 가을바람처럼 시원했고 겹겹이 껴입은 탓에 등에서는 땀까지 흘렀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현재 기온은 영상 14도. 북극의 첫인상은 '따뜻함' 그 자체였다. 주변 모습도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사방으로 새하얀 얼음이 펼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대부분은 얼음이 녹아내린 자리에 암석만이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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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측사상 가장 더운 7월로 기록된 지난해 7월 스발바르 제도 롱위에아르뷔엔 공항에서 바라본 북극해. 멀리 산등성이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빙하가 보인다. 사진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을 활용해 가로 프레임으로 촬영했다. /사진=송경은 기자

1년 내내 기온이 영하 수십 도인 남극과 달리 북극은 여름철이 되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다. 스발바르 제도 7월 평균기온은 영상 3~7도다. 특히 지난해 7월은 관측 사상 가장 더운 7월로 기록되면서 스발바르 제도 최고기온 역시 한때 20도까지 치솟았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전 세계 평균기온은 20세기 7월보다 0.95도 높은 16.75도를 기록했고, 북극 해빙 규모도 약 190만㎢로 역대 최저치로 나타났다. 올해도 3~5월 북극권의 평균기온은 예년보다 10도 이상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시 롱위에아르뷔엔에 머무는 동안 곳곳에서 기후변화 등을 연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과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여름엔 해빙이 녹아 곳곳을 누빌 수 있는 뱃길이 열리기 때문에 탐사 활동을 벌이기 적합하다고 했다. 얼음이 거의 없는 여름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데 과학자들에게는 이때가 성수기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북극을 뒤덮은 얼음 면적이 감소하면서 과거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지역까지 탐사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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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츠베르겐섬 중앙부의 사센-번소우 국립공원 일대의 빙하(왼쪽). 빙하가 무너져 내릴 땐 `꽈광` 하고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빙하가 파란색을 띠는 이유는 얼음이 쌓이며 압축됐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은 빙하가 암반을 긁고 지나가면서 남긴 흔적이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산에서 바다로 빙하가 밀려 내려오면서 지표면을 깎는다.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긁힌 선을 통해 빙하가 이 위를 최소 2번 이상 지나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기자와 동행했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연구진도 7~8월에 빙하가 녹은 뒤 모습을 드러낸 중생대(2억5100만년 전~6600만년 전) 퇴적층에서 석유·가스 등 탄화수소 자원으로 발달하기 직전 상태의 근원암(根源巖) 샘플을 채취했다. 근원암은 셰일이나 이암처럼 유기물 함량이 높고 오랜 시간 압력과 열을 받아 석유나 가스로 변할 수 있는 암석을 말한다. 이런 암석 샘플은 북극권 에너지 자원 지도를 만드는 밑바탕이 되고, 향후 한국이 북극에서 에너지를 직접 개발하거나 북극해 연안국들과 공동 개발에 나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발바르 제도는 대부분 지역이 보호구역이고 지형이 거칠기 때문에 이동할 때는 배를 이용해야 한다. 거점인 롱위에아르뷔엔 항구에는 매일 수십 대의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갔다. 내빙(來氷)연구선과 노르웨이 오슬로와 스발바르 제도를 왕복하는 관광 크루즈선들도 이곳을 거쳐 갔다. 우리는 11인승 소형 보트를 타고 스피츠베르겐섬 중앙을 가르는 이스 피오르(빙하의 침식과 이동으로 협성된 협곡) 일대를 다니면서 푀스팅엔 지질보호구역 등에 잠시 정박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좌표를 확인하고 샘플을 채취하길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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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발바르 제도 푀스팅엔 지질보호구역(왼쪽). 자연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드물게 야생 동물들이 서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북극곰은 사람을 해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지역에 진입할 때는 총을 소지한 전문 안전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롱위에아르뷔엔 마을에 세워진 북극곰 출현 주의 푯말. /사진=송경은 기자

스발바르 제도 일대를 다니면서 가장 조심해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북극곰의 출현이었다. 이 지역에선 북극곰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총을 소지한 전문 안전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이유다. 앞서 2011년 롱위에아르뷔엔에서 40㎞가량 떨어진 곳에서 북극곰의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다. 북극곰이 영국에서 견학 온 대학생 그룹을 공격해 1명이 죽고 4명이 중상을 입은 것이다. 2018년에는 한 북극곰이 크루즈선의 가이드를 공격해 현장에서 총살됐다. 이 때문에 롱위에아르뷔엔에는 방문객의 안전을 위한 실탄 사격 훈련장도 있었다.


언덕 등에 가려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북극곰이 넘어올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주변을 확인한 가이드가 수신호를 보낸 뒤에 전진해야 했다. 가이드는 일행과 떨어져선 안 되고 암석 등을 등져서도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북극곰을 마주치지는 않았다. 현지인들은 최근 기후변화로 북극곰이 기존 서식지에서 굶주리는 일이 늘면서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인가에까지 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에는 북극곰 한 마리가 며칠 동안 롱위에아르뷔엔 마을 한가운데를 배회하며 먹이를 찾다 결국 지역 경찰에게 총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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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발바르 제도에서 사냥 활동을 했던 노르웨이인의 집을 재구성한 모습. 롱위에아르뷔엔 스발바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스발바르 제도에서는 1890년대 말부터 1941년까지 북극 야생동물 사냥이 전성기를 이뤘다. /사진=송경은 기자

하지만 가이드는 사람의 안전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북극곰 사살이 쉽게 용인되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북극곰이 사살될 때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각종 동물보호단체에서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강력한 반발이 잇따른다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이 북극곰 서식지에 침입한 것인데 왜 죄 없는 북극곰이 죽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기후변화로 멸종 위기에 처한 북극곰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노르웨이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북극에는 북극곰 2만~2만5000마리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과거 스발바르 제도는 한때 북극곰을 비롯한 야생동물 사냥의 성지였다. 17세기 말 모피 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극곰과 북극여우, 물개 등 야생동물 사냥이 시작됐고 1890년대 말부터 1941년까지 전성기를 이뤘다. 이 시기에는 매년 400명에 이르는 사냥꾼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발바르 박물관에 따르면 1924~1940년 사냥으로 잡아들인 물개의 가치만 4100만크로네(약 51억6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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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위에아르비엔에 조성된 국제 종자은행인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 볼트` 입구. 지하 130m 깊이 저장고에 전 세계 식량용 작물종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00만종의 씨앗 샘플이 냉동 상태로 저장돼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롱위에아르뷔엔은 노르웨이 정부의 투자로 2008년 2월 문을 연 국제 종자은행인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 볼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시설은 핵전쟁, 소행성 충돌,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같은 대재앙 이후에도 남은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전 세계 주요 식량 작물의 씨앗을 안전하게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동안 지구의 동식물을 지켜낸 것에 비유해 '최후의 날 저장고'로도 불린다. 지하 130m 깊이 영구 동토층에 지어진 씨앗 저장고는 냉각장치로 영하 18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유사시 전력 공급이 끊어져도 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데는 2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스발바르 제도는 최근 북극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나 트롬쇠를 경유해 하루 2번 롱위에아르뷔엔 공항에 들어갈 수 있다. 인근 도시에서 출발하는 크루즈선을 타고 선상 관광을 하는 방법도 있다. 여름에는 이스 피오르 사파리 관광을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스노모빌이나 개썰매를 타고 설경을 누비는 관광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그동안은 주로 유럽인이 이곳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중국 등에서 오는 관광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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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박스로 지어진 롱위에아르뷔엔의 주택 단지. 단순한 구조에 북유럽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상이 더해져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낸다. /사진=송경은 기자

송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