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테크 ]

[세상만車] "무기여 잘 있거라"…자동차 혁명의 원천 `살인무기`

by매일경제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만車-159] 전쟁은 비참하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승리라는 명분 아래 악행을 자행한다. 평범한 삶을 파괴한다.


전쟁의 광기는 단순히 군인만 죽이는 것에만 만족하지도 않는다. '인간성의 말살'을 불러온다. 군인보다 전쟁과 직접 상관없는 민간인에게 더 가혹하다.


군수업체들은 살판난다. 승리라는 명분 아래 죄책감없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일 무기는 돈을 쓸어 담게 해준다.


전쟁이 끝나면 수요는 줄어든다. 군수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한다. 생존은 전쟁기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전쟁 기술을 민간 산업에 응용하면 된다.


살인을 위해 개발한 기술은 사람을 살리고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비타민, 컴퓨터, 전자레인지, 비닐봉투, 프라이팬, 헤어스프레이, 고어텍스 등이다. 비극이 희극이 된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문명의 이기이자 전쟁의 총아로 활동한 자동차는 전쟁에 '은혜' 를 입었다. 운전자 생명을 지키는 자동차 부품은 전쟁기술의 산물이다.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기술도 전쟁기술에서 유래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투기에 한 수 배우다


비행기는 20세기 전쟁의 총아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적을 발견하는 정찰기로 주로 사용됐다. 이후 폭격기나 전투기로도 개조됐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투기와 폭격기로 맹활약했다.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와 호위 전투기는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했다.


전투기에 사용된 기술은 자동차를 안전하게 만들어줬다. 대표 제품은 안전벨트다. 안전벨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13년이다.


독일 비행가인 칼 고타가 처음으로 고안했다. 이듬해 전투기가 공중 회전할 때 조종사 몸을 조종석에 붙들어 맬 수 있는 가죽 안전벨트가 등장했다.


자동차에는 1936년에 장착됐다. 당시 자동차 기술과 성능이 향상되면서 속도가 올라가고 덩달아 사고 위험도 커졌다. 운전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볼보자동차 직원이 세계 최초 고속도로 '독일 아우토반'에서 운전자를 지켜줄 2점식(띠 양끝이 차체 두 곳에 고정돼 있는 형태) 안전벨트를 차에 달았다.


목적지 방향, 속도 등을 차량 앞 유리에 표시해 운전을 보다 안전하고 편하게 만들어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전투기에서 유래했다.


원래 HUD는 전투기 앞 유리에 각종 정보와 적기를 쫓는 레이더를 표시하는 장치다. 1980년 프랑스 다소가 미라지 2000에 장착했다. 이후 F-15 이글과 F-16 팔콘은 물론 헬리콥터에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폭발적인 주행성능을 발휘하는 터보엔진도 전쟁을 통해 발전했다. 항공기용 터보 엔진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1905년 개발된 뒤 제 1차 세계대전 때 높은 고도에서 날아야 하는 항공기에 장착됐다. 항공기가 고공비행을 할 때 공기 밀도가 낮아져 출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늘에 머물던 터보 엔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땅으로 내려왔다. 1937년 스웨덴 공군의 항공기 제작사로 출발한 스웨덴 항공기 회사 사브(SAAB)는 종전 후 무기 수요가 줄자 자동차에 주력했다. 사브(SAAB)는 스웨덴항공회사(Svenska Aeroplan AktieBolage)의 약자다.


사브 항공기 엔지니어들은 1947년 전투기 터보 엔진을 최초로 적용한 자동차 '사브 92001'을 내놨다.


사브는 전투기 기술을 적용한 고성능 자동차로 명성을 쌓았지만 터보 기술은 그러나 거칠고 다이내믹한 성능을 갖춘 레이싱카나 고성능 스포츠카 전유물에 머물렀다.


소강상태에 빠졌던 자동차용 터보 기술은 2010년대 이후 화두로 떠올랐다. 고유가와 배출가스 규제 강화 때문이다.


자동차업계는 차 몸집을 줄이지 않고 기름을 덜 먹으면서도 힘은 오히려 더 세게 만드는 친환경 엔진 다운사이징에 터보 기술이 제격이라 판단했다.


선루프도 전투기에서 가져왔다. 사브는 조종사가 탈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출장치에서 선루프를 착안했다. 야간 운전 때 속도계를 제외한 나머지 계기판 불을 꺼주는 나이트 패널도 전투기에서 유래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차, 전쟁 기술의 결정체


자율주행차 핵심 장치인 GPS(위치 확인 시스템), 레이더, 라이더, 소나, IMU(관성측정장치) 등은 적군을 죽이고 아군을 살리기 위한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됐다.


GPS는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한다. 항공기, 선박, 자동차 등 이동수단의 내비게이션 장치에 주로 사용된다.


GPS는 미국 국방부가 마사일 폭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군사용으로 개발한 시스템이다. GPS가 개발되기 전에는 목표물을 파괴하기 위해 수천 개의 폭탄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 '융단 폭격'을 사용했다.


융단 폭격은 정확도가 떨어지고 민간인 피해를 일으켜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냈다. GPS는 미사일 외에 탐사, 구조, 수색 등의 군사 임무에 사용되다 민간 기업에 기술이 이전됐다.


레이더(Radar)도 전쟁을 통해 발전을 거듭했다. 레이더는 요약 무선탐지와 거리측정(Radio Detecting And Ranging)의 약자다. 마이크로파(10cm~100cm 파장) 정도의 전자기파를 물체에 발사시켜 그 물체에서 반사되는 전자기파를 수신한 뒤 물체와 거리, 방향, 고도 등을 알아내는 무선 감시장치다.


영국은 1938년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방공망을 구축했다. 레이더 방공망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독일의 공습을 막아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레이더는 초기 자율주행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자동차 간 거리를 계산해 추돌 사고를 막아주는 추돌 예방시스템, 차 스스로 앞 차와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정 속도로 달리게 도와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도 레이더가 있기에 개발됐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 자율주행차의 지붕에 원통 모양으로 달린 뒤 자율주행차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라이더(Lidar)도 레이더 덕분에 등장했다. 라이더는 레이저 방식을 사용하는 레이더다. 레이더는 빛의 일종인 레이저 광선을 사용해 물체 종류를 인식한다.


야간 군사 작전을 위해 개발된 적외선 감시 장치도 자율주행차에서 빼놓을 수 없다. 적외선을 활용하는 카메라인 나이트비전은 어둠에 가린 사람이나 사물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


라이더가 사람의 눈이라면 소나는 귀와 같다. 소나는 시간, 주파수, 반사된 음파를 바탕으로 사물의 위치와 속도를 추적하는 음향탐지장비다. 소나는 적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군사용 목적으로 주로 사용됐다.


햇빛이 닿지 않는 바다 속은 어두워서 눈으로 잠수함을 찾아내기 어렵다. 또 레이더가 내는 전자파는 물속에서 에너지 손실이 많아 짧은 거리만 진행한다.


이와 달리 소나는 물에서도 잘 전달되는 음파를 사용하기에 잠수함을 탐지할 수 있다. 잠수함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보면 "핑"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나가 내는 소리다.


소나는 육지로 올라와 자율주행차에 탑재됐다. 레이더를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소나 음파는 안개, 먼지, 직사광선에 방해받지 않고 느린 속도로 진행된다. 작은 물체도 높은 해상도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바람이나 거리 등에 따라 에너지가 쉽게 분산돼 가까운 범위 내 물체만 추적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에서는 이같은 특성을 감안, 주차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정확성을 필요로 할 때 사용된다.


자율주행차에 사용되는 IMU도 군사적 목적 때문에 개발됐고 개선됐다. IMU는 이동 물체의 속도와 방향, 중력, 가속도를 측정하는 장치다.


인공위성 신호를 잃어버리는 GPS 오류를 해결한다. 원래는 무인항공기, 우주탐사선, 위성에 사용됐다. 현재는 자율주행차는 물론 스마트폰, 정보통신기술 등에서 폭 넓게 사용된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인 지상 차량이라 부르는 UGV(nmanned Ground Vehicle)도 전쟁터를 일탈해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UGV는 1990년대 미 육군이 인명 피해없이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 처음 개발됐다. UGV는 적군 감시나 살상용 무기인 킬러 로봇으로 진화했다.


사람의 조작 없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가는 킬러 로봇의 센싱(인지) 기술은 자율주행차에 적용됐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대응 및 판단 기술,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정밀하게 구동시키는 제어 기술도 완전한 자율주행 구현에 필수적이다.


살인 로봇은 더 나아가 '살신성인'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자동차나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을 살려주는 인명 구조용, 안전사고 위험을 덜어주는 건설 작업 도우미용, 장애인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안내·돌봄용으로 환골탈태한다.


살신성인을 대표하는 로봇은 '스팟(Spot)'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자동차를 파는 기업에서 자동차도 파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1조원을 들여 인수하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이다. '로봇개'라고도 부른다.


국내에는 4~5대가 연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이 변화시킬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지난 17일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경기도 고양시)에서 스팟 시연회를 열었다.


스팟은 이날 인지기술을 활용해 장애물이 나타나면 스스로 피해서 걷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모터가 달린 관절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캉캉 춤도 추고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몸을 비비 꼬며 애교도 부렸다.


스팟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시각장애인 안내용이나 인명구조용 등으로 연구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대형 건설사들이 자동차나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에 투입하는 건설 작업 도우미용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영화 '킹스맨:골든서클'에 나오는 '킬러 로봇개'와 모습은 닮았지만 활용법은 딴판이다.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gistar@mkinternet.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