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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86세 英작가가 그린 손흥민…4골 넣은 짜릿한 순간

by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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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tenham Colours, 4 Goals`

짧은 머리카락이 뾰족 솟은 축구선수 그림 'Son 2020'을 설명하는 오디오 가이드에서 손흥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제 모습입니다. 실제 초상이 아닌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당시 신문기사를 보고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골을 넣은 직후의 제 모습인 거 같은데요."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 홋스퍼 FC의 광팬인 86세 영국 화가 로즈 와일리 작품이다. 그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하는 손흥민을 그린 작품 11점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걸렸다. 어린아이 그림처럼 순수하고 유쾌한 화면으로 손흥민의 특징을 포착했다.


올해 초 이 그림들을 구상했던 와일리는 이메일로 손흥민과 소통하면서 팬으로서 궁금증을 해소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을 담은 영상이 전시장 벽에 흐른다. 와일리가 등번호 7번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손흥민이 "좋아하는 축구 선수들이 7번을 달고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봐서인 것 같다.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도 7번을 달고 경기를 했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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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북한 어린이들`

이번에는 손흥민이 "운동선수에게 가장 큰 목표는 승리인데, 화가들에게 승리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와일리는 "그저 작품은 보는 사람들이 느끼기만 하면 된다"는 현답을 내놓는다.


손흥민은 전시 개막 축하 영상 메시지와 오디오 가이드 녹음 외에도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선물했다. 그 유니폼에 와일리가 그림을 그려 전시 중이다. 손흥민의 멋진 골을 담은 전시작들은 코로나19로 지친 관람객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골을 넣은 후 성취감에 꽉 쥔 주먹과 턱선을 강조한 그림 '눈여겨봐야 할 선수, 손흥민', 지난해 9월 사우샘프턴과 경기를 승리로 이끈 손흥민의 네 골을 의미하는 숫자 4를 써넣은 '4골' 등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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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그림 못지않게 작가의 인생 역전 드라마도 희망과 긍정의 힘을 전달해준다. 45세에 뒤늦게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76세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선정한 '가장 핫한 작가'에 올랐다. 결혼으로 미대 학업을 중단했지만 뒤늦게 화가의 꿈을 이루고 세계적 화랑인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전속 작가가 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와일리는 이번 전시에 손흥민 그림 외에도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VIP룸 전시작품 등 150여 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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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 2020

신문, TV, 영화, 인터넷에서 작품 소재를 찾는 그의 2013년작 '노래하는 북한 어린이들'이 흥미롭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 표정이 천진난만하며 정치적 메시지는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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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tenham go fifth

'검은 고양이와 검은 새'는 코로나19로 영국 켄트 자택에서 고양이 피트와 칩거하면서 완성한 작품이다. 고양이가 담장 너머 새를 바라보고 있다. 와일리는 "그림의 상단과 하단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색 선은 격리 속에서 밖을 내다보는 나의 일상을 생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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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와 검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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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북한 어린이들 그림과 조각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역장 캐릭터로 영국 총리를 풍자한 '뚱뚱한 역장', BBC 토크쇼 '그레이엄 노턴쇼' 오프닝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길게 다리를 뻗은 모습을 그린 'Hullo Hullo, Following-on After the News' 등은 작가의 다채로운 관심사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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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와일리 개인전 전경

맨손으로 칠하고 다른 천을 덧댄 단색 동물 시리즈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기법을 표출한다. 그가 좋아하는 미국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해부학적 그림에 영향을 받아 검은 고양이의 골격을 살린 작품 'Cat Anatomy Chart'도 눈길을 끈다. 이번에 그의 작업실도 재현됐다. 물감 자국이 두껍게 굳어진 신문지 뭉치와 수북이 쌓인 페인트통 등이 그 자체로 표현주의 회화 같다.


마지막 전시실 벽에 붙은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다'는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전시는 3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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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이 사인한 유니폼에 로즈 와일리가 그림을 그렸다

[전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