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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히뜩하네 어붓해 고지팀…딴직장은 ※못알아들음 주의

by매일경제

◆ 어쩌다 회사원 / 직장인 A to Z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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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히뜩하네." "업그레이드 아니고 '옆그레이드' 했네." 은어는 특정 집단에서만 독특하게 사용되는 말이다. 군대·교도소 같은 곳에서 쓰이지만, 직장에도 은어 같은 직장언어가 있다. 업계별 혹은 특정 기업 안에서만 통용되는 표현도 있다. 이를 사용하면 같은 조직 구성원 간 친밀감과 소속감 높일 수 있다. 그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을 준다. 또 평소 자주 쓰는 말을 짧고 간단한 단어로 바꾸는 효율성도 있다. 지친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주는 건 덤이다. 매일경제 '어쩌다 회사원' 팀은 업종별 직장인들의 언어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 바쁘니깐 짧게 아님 재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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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아이디어를 쏟아내야 하는 곳이 광고 회사다. 광고 기획 과정에선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박한 아이디어가 필수다. 머리를 싸매고 몇 시간씩 회의를 이어가다 보면 참신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때 쓰는 말이 '히뜩하다'다. 아이디어꾼들이 모여 있는 만큼 재미있는 단어가 만들어지는 곳이 광고 업계다. '있어빌리하다'란 말은 광고를 광고주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다는 의미다.


정보기술(IT) 업계도 언어 창의성에선 뒤지지 않는다. 개발자 사이에서는 '옆그레이드'란 용어가 사용된다. 제품·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려 했지만, 전보다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의미다. 상황이 전보다 더 나빠졌을 땐 '없그레이드(업그레이드가 없는 게 낫다)'라고도 한다. '네가 만든 개밥을 먹어(Eat your own dog food)'에서 유래한 '도그푸딩'이란 말도 있다. 자사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부에서 먼저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1970년대 개 사료 회사인 알포의 론 그린 회장이 자신의 반려견에게 자사 사료를 먹이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IT 업계에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내에서 먼저 사용한 뒤 불편한 점을 개선한다. '스파게티 코드'라는 용어도 자주 사용된다. 프로그램(코딩) 흐름이 복잡하게 뒤엉킨 것을 면발에 비유한 말이다. 한 온라인 취업포털 회사에선 '어붓해'라는 말을 쓴다. 영어 '어바웃(About)'에 '하다'를 섞은 말로, '대충 하다' '알아서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자주 말하는 긴 단어를 줄인 은어도 상당수다. "오늘 몇 콜 찍었어?" '콜'은 제약사 직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하루에 거래처를 몇 곳 들렀냐는 의미다. '콜을 찍다'라는 말은 거래처를 방문했다는 말이다. 통신 업계에선 통화 품질을 '통품'으로 줄여 쓴다. 예컨대 통품 측정(통화 품질 측정), 통품 불만(통화 품질 불만) 등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 한 통신사에선 회사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이 매장이나 고객센터 등을 둘러보는 걸 '현방(현장 방문)'으로 줄여 부른다. 직원들은 서로 "오늘 현방 있대?" "현방 어디야?" 이런 식으로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 '우린 통하니깐~' 업무語의 일상화


"오늘 점심에 파스타 먹을까?" "그건 부적합이야." 한 외국계 친환경 인증 기업에선 다른 의견을 낼 때 '부적합하다'는 말을 농담으로 사용한다. 이 기업에서 친환경 인증을 받으려면 수백 개가 넘는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높은 기준을 충족하면 '적합', 기준에 미달하면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일할 때 쓰는 '부적합'이라는 말을 평소에 직원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을 때도 사용한다.


철강 업계에선 압연기의 '롤(roll)'이라는 말을 이곳저곳에 쓴다. 예컨대 제품 수주 목표와 실적 등을 총괄 관리하는 직원은 '롤잡이'라 불린다. 매주 정해진 목표 수주량을 달성했는지를 물을 땐 "롤 마감을 끝냈냐"고 묻는다.


반도체 업계에선 반도체를 생산하는 웨이퍼 세트를 의미하는 '랏(Lot)'을 많이 쓴다. '랏을 돌리다'는 웨이퍼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반도체는 두세 달 만에 수백 개 넘는 공정을 거치기에 생산 시간 단축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랏' 상황을 묻는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랏 상황은?" "랏 잘 나왔어?" 같은 식이다.


영어 이니셜을 사용해 일상 대화에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한 자동차 생산업체에선 임원을 표현할 때 '사장님' '상무님' 대신 일종의 이니셜을 사용한다. 부회장은 BHJN, 사장은 SJN, 상무는 SMN라고 불린다.


◆ 일어 안 쓰면 건설현장 근무 불가?


기획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 하나가 '와꾸잡다'다. '와꾸(わく)'는 일본어에서 넘어온 말로 테두리, 틀을 의미한다. "와꾸를 잡으라"고 하면 전체 보고서 방향과 틀을 잡으라는 말로 보면 된다. '마도잡다'란 말도 자주 쓰인다. 누군가 프로젝트를 주도해 끌고 가는 걸 의미한다. "누가 마도잡고 할래?"라고 하면 누가 프로젝트를 맡을 건지를 묻는 말이다. 일본어 '마도구찌(まどぐち)'에서 나온 말이다. 마도구찌란 '창구'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할 일을 모아주는 창구를 마도구찌로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약 업계에선 "오시우리를 치다"라는 말을 왕왕 쓴다. '강매'를 의미하는 일본어 '오시우리(おしうり)'에서 유래된 말이다. 월별·분기별 매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평소 친한 병원이나 약국에 약을 밀어넣을 때 사용한다. 광복 후 한글화 작업이 유독 없었던 건축 현장에서 쓰는 수백 개 용어가 일본어이거나 일어·영어·한국어가 섞인 단어들이다. 오사마리(おさまり·공사 종료), 나라시(ならし·바닥 평탄화 작업), 데나오시(でなおし·재시공) 등이 대표적이다. 건설뿐만 아니라 조선 업계에선 갑자기 눈비가 와서 작업을 중단할 때 작업대기라는 의미의 '데마찌(手待ち)'라는 말을 쓴다. 그 밖에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무대뽀(無鐵砲)'도 일본어다. 일본 전국시대 당시 '칼과 창만 가지고 총을 가진 이와의 전투에 나간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오대석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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