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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관념을 벗은 통찰(洞察)의 건축가 황두진

by매일경제

[효효 아키텍트-77] 중첩된 기하학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며칠 뒤 한옥을 두고 한 말임을 알았다. 건축사무소 홈페이지, 중첩된 기하학(layered geometry) 개념을 '한 건물 안에 다양한 기하학이 공존'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하학이 구조 및 재료와 결합하여 효과가 증폭된 게 한옥이다. 한옥을 <'칸'(間)으로 대변되는 직교좌표계(直交座標界)와 3차원 곡선으로 구성된 지붕이 공존>한다고 규정한다. 한옥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중첩된 기하학, 즉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은 도시 주거와 업무 등 복합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건물이다. 주거가 기본인 건물 안에 숨쉴 수 있는 공간, 소통, 다공질의 상황을 디자인한다. 황두진은 건축사무소인인 서울 통의동 목련원에 20년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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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통의동 ‘목련원` / 사진 = 박영채

한옥과 전통건축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자신은 현대 건축가임을 밝힌다. 논리의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현대 건축에 있어) 그러한 구분이 유효하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70년대 고도성장의 흐름을 이어받은 8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간 황두진은 '지나간 시대의 죽은 건축'은 영감을 취하는 대상으로만 배웠다. 미국 유학과 현지 실무를 마치고 귀국한 90년대 후반부는 저성장기로 접어들어 뒤돌아보니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에 대한 주저하는 마음은 지금도 있다. 어느 순간 건축가로서, '모순을 같이 끌고 갈 줄 알아야 한다'는 깨우침도 있었다.


그의 스승인 김태수(1936~) 건축가에 대해 물었다. 김태수는 국내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금호미술관을 설계했다. 김태수는 50년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떠난 초기 건축가이다. 황두진은 미국 김태수 건축사사무소(TAI SOO KIM PARTNERS)에서 4년, 귀국해서 김태수 건축사사무소 서울지사에서 3년을 근무했다.


김태수는 건축가가 되지 않았으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백남준 등 미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김태수는 대지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건물의 배치 계획이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 전통 건축의 맥락 읽기에도 정통했다. 김태수가 주로 활동하던 미국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은 전통의 입김이 강해 건축 관련 법령이 엄격하다. 김태수는 주어진 환경에서도 자신의 건축 언어를 추구했고, 황두진은 전통과 현대가 대립, 경쟁, 보완하는 관계를 현장에서 체득할 수 있었다.


IMF 경제 상황이 지속되는 2000년에 개업했다. 박세리, 박찬호 선수만이 희망인 시대, 동대문시장의 공용 공간, 거리의 외관 등 리노베이션 작업을 맡았다. 첫 작품은 강북 역사 지구인 통의동 '열린책들' 출판사 신축 사옥이다. 황두진은 경복궁 옆, 당대 문화 전사인 출판사 건물로 답을 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현대사회의 특징인, 전통과 현대 간 긴장, 조화, 상호 기대라는 미묘한 상황에 부딪쳐야 하는 일련의 건축 작업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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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회헌 / 사진 = 박영채

가회헌(2007)은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건물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건물은 델리와 베이커리, 레스토랑 등 다양한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대지 내의 한옥과 양옥, 주변 한옥과 양옥들이 관통·중첩한 경관(景觀)을 고려했다.


건축가는 병렬한 한옥과 양옥의 공통 재료인 나무를 부각하고 싶었다. 부정형 대지에 ㄱ, ㄴ, ㄷ 모양의 배치는 효율이 떨어진다. 대목(大木)에게 ㅅ자 배치는 나무의 결구미(結構美)가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팔각정(八角亭)도 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건축은 관념에서 벗어나 체험적으로 접근하는 게 유연하다는 걸 알았다. 세 번이나 심의를 받아야 했다. ㅅ자 배치 선례를 만들었다. 건물과 건물은 연결되지만 실내에서 내다보는 시선은 구분된다. 팔을 뻗어 마당을 안는 모습이다. 자신의 사무실과 집이 있는 통의동 목련원 또한 그러하다. 그의 건축적 고향은 강북 구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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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외부 / 사진 = 박영채

천안에 연고를 둔 현대 캐피탈 프로배구팀을 위한 훈련시설·숙소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2013) 는 트인 대지, 구릉지에 완전 정사각형의 건축이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리 보이는 '알루미늄 익스팬디드 메탈', 일종의 철망을 씌운 건물은 가로 50m, 세로 50m인 정사각형 건물에 높이 25m로 세워졌다. 사면이 등가인 건축은 도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실내, 한쪽 벽면은 등고차를 이용해 팬들을 위해 열리도록 설계되었다. 건물을 감싼 알루미늄 외피는 한옥의 처마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중정을 덮은 돔의 철골 또한 한옥의 서까래와 모습·구조가 상통한다.


네 귀퉁이(모서리)는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음영 지는 곳 없이 사면 모두 연중 풍부한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자연과 인간, 건축이 혼연일체된 양상이다. 스카이워커스는 한옥의 중정형 배치를 평면이 아닌 입체로 확장한 개념이다. 내부는 배구장 두 개 크기로 코트를 두고 천장을 돔으로 덮었다. 중앙 코트 가장자리를 이루는 벽체는 선수들 숙소와 지원 시설이다. 연습장을 가운데 두고 선수들의 방이 빙 둘러싼 모양이다. 건물은 네모인데 안에는 정확하게 내접하는 완벽한 원형이 들어 있다. 건물 사면 중간에 150m 원형 러닝 트랙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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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내부 / 사진 = 박영채

이 프로구단은 창설 초창기에 명가를 이루었으나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 둥지를 튼 지 얼마되지 않아 2016-2017 시즌 우승, 2017-2018 시즌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황두진은 말한다. '건축은 잉여가 아니다. 원래 어렵게 짓는 거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염원과 갈망을 잘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위대한 시간이 품는 인간의 간절함과 처절함이 깃든 건축물로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말한다. 6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와 로마 이래 찬란한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Duomo) 성당은 1296년에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착공했으나 1347년에 토스카나 지방을 휩쓴 흑사병으로 중단되었다. 1365년에 피렌체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본격화된 공사는 지름 44m, 높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쿠폴라(cupola·dome)가 난제였다. 1418년 세기의 공모전을 통해,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 ~ 1446)의 계획안이 선정되었다. 1420년에 시작된 공사는 1436년에 완공되었다. 브루넬리스키는 메디치가(家)의 지원을 받았다. 메디치는 타 가문과의 치열한 권력 투쟁, 추방 등 위기 속에서 두오모를 건립하였다.


서울 강남대로에 들어선 임대 사무실 건물인 '원앤원 63.5'는 관습을 벗어난 디자인을 적용했다. 15층의 건물 전체를 치장 벽돌로 마감하였다. 벽돌이 갖는 부드러운 느낌을 고층건물에 적용하고자 했다. 정면 입면의 중앙 부분은 벽돌이 가진 픽셀(pixel)적 성격을 최대한 이용, 투과율 50%에 이르는 다공성 벽으로 만들었다. 밤과 낮의 조명 효과가 대비되며, 햇빛을 걸러내는 장치이다. 크고 작은 개구부들은 발코니 난간의 역할을 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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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원앤원 63.5 / 사진 = 김용관

황두진은 스스로에게 연구자의 책무도 부여한다. 근대 서사에 동참코자 건축가 이훈우를 추적하고 있다. 이훈우는 1911년 일본 나고야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졸업 후 조선총독부 영선과 기수(技手)에 임명되었다. 1920년, 개인 건축사무소를 개업하였다. 작품으로는 천도교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1924. 서울), 진주여고(구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1928), 조선일보사 평양지국 사옥(1929) 등이 있다.


'최초의 한국인 근대 건축가'로 알려진 박길룡(1889~1943)이 사무소를 개업한 것은 1932년이다. 황두진은 이훈우의 존재를 최초로 알리고, 2020년 7월 논문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를 다른 두 연구자와 함께 건축역사학회 학술지에 발표했다. 황두진은 건축사무소의 대표로 수행하는 일이 개인적 탐구의 대상이 되자 세상의 기운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다고 했다. 스스로 근대에서 출발한 시간의 흐름을 읽어낼 위치에 있지 않나 뒤돌아본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생각의 흐름이 일관된다. 도시건축은 복합적 상황이 존재하기에 전문가는 이런 변수들을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무지개떡 건축론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선명해지고 확신을 갖게 되었고, 진화 중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일터·거주지 근처인 통의동 7-3에 위치한 공원, '통의동 마을마당'을 지켜내었으며 이 과정을 기록하였다. 황두진은 건축가면서 책을 저술하는 문사(文士)의 경력을 만들어왔다. 건축 이론, 건축사(史), 건축물 등 장르 속 '건축 생각'에 자신의 몫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 상황이 일반적 주거 환경인 집합주택 양식에서 벗어나 단독주택으로 회귀하는 양태가 될수 없다고 본다. 주거는 기본인 '주택+다른 기능의 공간+도시 기능'이 묶여야 된다고 본다. 거리나 기능상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직업인들은 효율을 유지하면서 시내 거주하는 방안으로 4~5층의 협동조합 방식으로 짓는 확장된 주택을 제안한다.


지금의 서울 사대문 안의 인구는 조선시대 수준이다. 유동인구는 많지만 상주 인구는 적다. 개별 필지에 들어서는 복합건물은 높은 수준의 설계를 필요로 한다. 한옥을 설계하고 지은 경험이 창의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한옥은 특히 문과 창의 개폐가 발달되어 있다. 뚜렷한 사계절 기후 때문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상업 공간이 발달하지 않았다. 대소사(大小事)를 집안에서 또는 마을 공동체에서 해결하기 위해 집을 변할수 있게 설계했다. 이 변화는 경량화된 가구들이 있어 가능하다. 큰 음식상인 교자(交子)는 근대에 들어와 사용된 기물이다. 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는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소반(小盤)은 부엌과 방이 멀고 규모가 작으면서 좌식 생활하는 한식 온돌방에 적합했다. 공간과 구조가 생활을 결정하지 않았다. 건축가는 시간과 시간이 대립하는 상황과 모순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


개인 컴퓨터의 등장은 도시 일터를 외부로 확장시켰다. 1983년 애플(Apple)에서 발매한 컴퓨터 LISA의 뜻은 로컬 통합 시스템 아키텍처(Local Integrated Software Architecture)이다.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은 스티브 잡스(1955~2011) 신화의 출발점인 LISA와도 같은 실험적 건축이면서 도시를 품는 슈퍼컴퓨터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효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