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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재심' 환한 미소 속에 비친
강하늘의 진심

by맥스무비

“한번 보시고 느끼는 감정 그대로 받아들여주세요.” 배우 강하늘이 <재심>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 한 마디뿐이다. 관객에게 <재심>(2월 16일 개봉)의 감상을 오롯이 맡긴 강하늘. 그의 말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설명보다 <재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신호다.

'재심' 환한 미소 속에 비친 강하늘

강하늘은 '재심'에 자신의 성장이 포함된 작품 같다고 말했다. '재심' 예민하게 날이 선 현우의 감정적을 가라앉혀야 했지만, 강하늘은 언제나처럼 스태프들과 재미있게 웃으며 지내면서 '재심'이 “사람에게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라고 전했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재심>의 모티프가 된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보고 울분을 토했다고 들었습니다. 출연하게 된 계기도 실화 때문인가요?

 

<재심> 시나리오를 받아 본 건 2013년에 <그것이 알고 싶다>(SBS)가 방영하고 난 몇 년 뒤였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요. 그 프로그램에 억울한 사람들과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시청자로서 ‘그 이면에 뭐가 있을까?’ 항상 궁금증을 품게 되거든요. 그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표면적인 사건 말고, 내가 본 것만이 다가 아니고 다른 것들을 봐야 할 것 같아서 검색을 많이 합니다.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검색하면서 알게된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재심>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실제 사건의 피해자였던 최 군이 <재심> 촬영장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요?

 

일부러 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 한 마디도 안 꺼내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그분이 억울하게 산 10년 중에 단 하루도 살지 못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분에게 이 사건에 대해 말을 꺼낸다는 것 자체가 깊은 아픔을 너무 무의식적으로 꺼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분이 “영화 잘 부탁해요”라고 하셨는데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분의 삶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잘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전주에 내려가면 소주나 한잔 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재심> 시나리오 자체에서 느낀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대본을 받고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건 변호사 준영(정우)이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돈과 자신의 상황 때문에 이 사건으로 안 좋은 상황에서 발돋움해보려고 하다가 점점 현우의 인간적인 진심에 이끌려서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게 되잖아요. 현우 역할 때문에 시나리오를 받았지만 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건 변호사 준영의 변화였습니다.

 

변호사 준영을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나요?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저한테 주어지지 않은 다른 역할을 욕심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캐릭터를 통해서 변신을 꾀하거나 ‘연기 변신을 보여 주겠어’ 하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단지 재미있는 작품이 제 필모그래피에 올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재심>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고 이 작품에서 저를 현우로 원하면 저는 현우를 연기하는 거고, <좋아해줘>(2016)에서 귀가 안 들리는 수호를 원한다면 저는 수호가 되는 거죠.

 

<재심> 실화의 주인공은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촬영할 때만 해도 재심 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현우가 억울한 사람이라고 단정 짓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실화이고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당연히 캐릭터 설정에 갈등이 제일 컸습니다. 그럴수록 실화라는 사실보다 시나리오에 더 몰입하고, 이 시나리오만 보고 연기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현우의 모델이 된 최 군과 이름도 다르고 저는 실화를 극화한 작품 안에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방향이 맞다고 판단하고 연기했습니다.

'재심' 환한 미소 속에 비친 강하늘

'재심'의 모티프가 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유일한 목격자였던 10대 소년이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안타까운 사건이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그렇다면 <재심> 시나리오의 현우를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요?

 

단지 순박한 아이가 누명을 써서 억울해 보이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현우가 순박한 캐릭터였다면 1차원적으로 안타까울 뿐이잖아요. 현우가 어렸을 때 치기 어린 모습들을 먼저 드러낸다면 ‘혹시 쟤가 진짜 살인을 하지는 않았을까?’ 착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현우는 시나리오에도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임에도 장발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제가 브릿지 염색을 제안하거나 문신도 추가로 여러 군데에 새기자고 제안했습니다. 예리하게 날이 선 현우 캐릭터의 느낌은 시나리오에도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녀야 할 10대 청소년 현우는 학교도 가지 않고 동네 다방에서 일하는 엄마(김해숙) 손에 이끌려 교복점에 갑니다. 엄마는 교복을 입은 현우의 모습을 보고 “차인표 닮았네” 하며 뿌듯해하는데, 이 대사를 어떻게 받아들였나요?

 

시기적 배경이 2000년인데 당시 어머니들 사이에서 미남 스타의 이미지가 차인표 선배님이었기 때문에 나온 대사 같습니다. 차인표 선배님은 이미 훨씬 더 일찍 톱스타의 대열에 있었지만, 그 대사를 통해 어머니가 하는 칭찬이라는 느낌을 더 살리려고 한 것 같아요. 원래 이 대사는 교복 입는 장면에서만 나온 대사였는데, 극 중 10년 후에 정장을 맞춰 입은 장면에서 정우 형이 한 번 더 살려주셨죠.

 

<쎄시봉>(2015)에서 한번 연기 호흡을 맞춘 정우와 함께 다시 만났습니다. <꽃보다 청춘>(tvN) 시리즈를 통해 친분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친한 상대 배우와 함께 촬영하는 건 어땠나요?

 

평소에 친해야 호흡도 잘 맞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기할 때나 촬영 현장에서도 편하게 지냈습니다. 정우 형에 대해 잘 알고 친하니까 “형, 이렇게 한 번 해볼까요? 저렇게 해볼까요?” 의견을 내거나 의사소통하는 게 잘 이루어졌거든요. 그런 점에서 한재영 형과 (박)두식이 형, (민)진웅이 형 다 편하게 촬영했습니다.

'재심' 환한 미소 속에 비친 강하늘

강하늘은 '재심'을 보는 관객이 ‘현우가 범인일 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을 하게끔 현우의 10대 시절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보아도 순박한 캐릭터라면 단순하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변호사 준영과 현우 사이의 신뢰가 틀어졌을 때 현우는 “믿지 못할 거였으면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깨지면 더는 ‘재심’을 준비할 수 없게 되니 이 대사도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에 원래 쓰여 있을 때부터 무책임과 책임 회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대사였습니다. 재심으로 무죄를 입증하기로 했지만 한편으로 내가 건드려서 부스럼이 된 일을 책임지지 않고 ‘그냥 두면 나아지겠지’하고 모른 척 손 떼는 것 같기도 하니까요.

 

<재심>을 극과 실화로 구분해서 이야기했지만, 실화이기 때문에 영화가 담고 있는 교훈점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현우처럼 억울한 사람을 만드는 여러 사건이 우리나라에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김태윤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에 “이런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한 인터뷰를 봤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좋죠.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면 참 좋겠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렵다면, 현우처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억울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심>에서 가장 감동했던 장면을 꼽아보자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와 촬영할 때 인상 깊었던 장면이 달랐습니다. 시나리오로 읽을 때는 현우와 준영이 모텔 안에서 만난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극의 클라이맥스기도 하고요. 그런데 촬영할 때는 현우가 어머니를 위해서 갯벌에 나무 막대를 꽂아놓고 줄을 멘 장면이 강렬하게 뇌리에 꽂혔습니다. 그 장면을 촬영할 때 마음도 이상했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자꾸 잊히지 않아서, 촬영 끝나고 두 달 정도 뒤에 후시녹음을 하러 간 스튜디오에서 감독님께 그 장면을 보여 달라고 했어요. 뇌리에 남아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서요. 그때 감독님이 얘기해주시더라고요. “내부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회자가 많이 된 장면이다. 좋았던 장면 같다.” 눈물이 흐르는 장면은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게 뇌리에 꽂히는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엄마와 아들 관계를 처음 연기한 장면이기도 하잖아요. 김해숙 선배님과 촬영은 어땠나요?

 

일단 김해숙 선생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딱 느껴졌어요. ‘아, 나는 할 게 없구나. 다 해 주시는구나’. 메이킹 영상을 보면 정우 형이 “선생님 얼굴만 봐도 감정이 올라온다”고 얘기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선생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재심' 환한 미소 속에 비친 강하늘

“지금에 집중하며 모인 순간이 좋은 미래와 좋은 과거를 만든다”는 말과 함께 밝힌 강하늘의 2017년 목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처럼 사는 것”이다. 사진 오퍼스픽쳐스

항상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한 번씩 자신을 점검한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를 시작할 때 어떤 점검을 했나요?

 

매년 1월 1일에 ‘올해도 변치 말자’고 다짐했는데 올해 1월 1일에는 ‘지금을 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전에 가졌던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집착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한테 오고 있는 ‘지금’을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 삶의 모토가 ‘지금을 살자’로 바뀌었습니다.

 

삶의 모토가 바뀐 계기가 있었나요?

 

<동주>(2015)를 하고 나서 제가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이 OK 사인을 하는 순간 제가 한 연기가 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움직임이 되고, 그 행동이 윤동주 시인이라는 게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촬영하던 시기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 할 연기가 걱정되다가도, 동시에 ‘오늘 내가 연기한 것은 맞을까?’ 그 고민과 계속 싸웠거든요.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하지 않지?’ 생각하면서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도 많이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명상을 시작했는데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좋은 마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동주>가 저한테 여러 의미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주> 덕분에 <재심>도 재밌게 찍을 수 있었고요.

 

지금은 행복한가요?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행복하기 위해서 연기한다고 말해요. 제가 좋아하는 책에 ‘과거는 거짓말이고 미래는 환상이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과거나 미래에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없고 단지 지금만 내 힘이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행복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강하늘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보통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 그때 행복했다’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딱히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나중에 돌이켜보면 행복했다고 할 테니까요. 행복은 ‘지금’입니다.

 

글 채소라 | 사진 오퍼스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