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행범 감형' 논란, 법원 "무죄 사안에 정의 위해 유죄선고" 반박

[the L] 1,2심 모두 '미성년자' 인식했다는 점은 공통 인정... 폭행·협박 인정 여부가 차이

머니투데이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 사진제공=뉴스1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 파면하라".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17일 오후3시 현재 이 청원에 참여한 인원은 7만9500명에 이른다.


청원자는 "피해를 받은 아이의 진술 역시 '아이라는 이유'로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말이 되냐"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없음이라는 이유로 감형한 판사의 판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청원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가 선고됐어야 할 사건이었음에도 정의·형펑을 고려해 유죄를 선고한 것"이라고 이같은 청원에 반박했다. 법원이 본 1,2심 양형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1,2심 모두 '피해자=아동' 가해자 인식은 인정

30대 보습학원장인 A씨는 2018년 4월 한 채팅 앱을 통해 10세 아동 B양을 알게 됐다. A씨는 B양을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가서 소주를 먹이고 성폭행했다는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A씨는 재판 과정에서 "B양이 13세 미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B양과 합의를 거쳐 성행위를 한 것이며 B양을 폭행·협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1심에서는 △피고인 A씨가 미필적으로나마 B양이 13세 미만 아동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성행위를 했다는 점 △A씨가 B양을 폭행·협박해서 성행위를 했다는 점 2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9부도 B양이 미성년자라는 점을 A씨가 알고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B양을 폭행·협박했는지에 대해서는 1심과 판단을 달리했다. A씨에 대한 선고형량이 8년에서 3년으로 대폭 감형된 이유다.


1심에서는 A씨가 B양을 누른 것은 강간죄에서의 범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인 폭행·협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또 A씨가 '성행위 당시 B양이 밀어내거나 옷을 벗기는 것을 거부하는 등 행동을 했다'고 진술한 점도 폭행·협박을 인정할 만한 근거로 들었다.

'그냥 누르기만 했냐' 질문에 끄덕임, 폭행·협박 인정 부족

반면 2심 재판부는 B양이 영상녹화물을 통해 진술한 것이 '폭행·협박'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증거인데 이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종전 "A씨로부터 직접적으로 폭행·협박을 당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B양은 경찰 조사관이 'A씨가 그냥 누르기만 한 거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이같은 진술을 통해서는 A씨가 B양의 몸을 누르게 된 경위, A씨가 누른 피해자의 신체 부위, A씨가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 B양이 A씨 행위로 인해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며 "B양이 만 10세에 불과하다는 사정을 염두에 두고 보더라도 이 영상녹화물만으로는 A씨가 B양을 누른 행위가 반항하는 게 불가능하다거나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B양 어머니가 1심 법정에서 'B양이 A씨에 저항하다가 잠들었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부분 역시 '전문진술'로서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도 2심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형사소송법상 원래의 진술자가 사망하거나 질병을 앓거나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타인이 전달하는 진술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2심 재판부는 B양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B양 측 변호인을 통해 '법정에 출석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받아들여 증인신문을 진행하지 못했다.

"무죄 선고됐어야 할 사안, 형사정의 위해 유죄선고한 것"

이번 사건이 논란이 된 이유 중 하나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몸을 묶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음에도 재판부가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A씨가 B양의 양손을 잡아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했다는 것이지 양손을 묶은 방법으로 폭행했다는 게 아니다"라며 "이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잘못된 보도로서 정정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가 피해자 진술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게 아니라 피해자 진술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피해자 수사 과정에서의 진술내용만으로 A씨가 B양을 폭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의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에 대한 경찰 진술'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피해자 어머니 진술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로 공소장 변경신청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무죄가 선고돼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소장 변경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다면 적정절차에 의한 신속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소송 목적에 비춰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고 판단했다"며 "무죄를 선고하지 않고 이 사건 공소사실의 축소사실인 '미성년자 의제 강간'(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을 직권으로 인정해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이라고 했다.


황국상 기자 gshwang@mt.co.kr

2019.06.1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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