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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투자사기 당한 주부의 분노..혼자서 '550억 다단계 사기 일당' 잡았다

by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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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A4용지 2000장이 넘는 증거를 모았어요.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죠"


지난달 23일 금융감독원에서 '불법금융 피해 예방활동' 감사장을 받은 주부 조모씨(59)는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했다.


금융에 문외한이었던 조씨는 다단계 코인 사기단에 7000만원을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다. 조씨는 이후 1년5개월 동안 긴 싸움 끝에 지난달 다단계 투자사기단 9명을 재판에 넘기는 데 성공했다. 변호사 도움 없이 홀로 증거를 모으고 다른 피해자를 설득해 이뤄낸 결과다.


조씨는 "다단계 투자사기는 이름만 다르지 사기 방식은 모두 똑같다"며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미루지말고 당장 신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인 믿고 투자…한 달 만에 지급 중단

조씨가 처음 투자를 권유받은 건 2018년 7월이었다. 동네 지인의 소개로 대전에 사는 한 50대 여성 김모씨를 만났다. 지사장 명함을 건넨 김씨는 조씨에게 "ELW(주식워런트증권) 자동 매매프로그램에 투자하면 매주 10% 이자를 주겠다"고 했다.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는 조씨는 귀가 솔깃했다. 당장 운동하는 아들의 훈련비가 필요했던 조씨는 전세담보로 대출받은 3000만원을 넣었다. 약속대로 일주일 뒤 300만원이 입금됐다. 조씨는 카드론으로 만든 자금 4000만원을 재투자했다.


조씨는 "아이 운동을 계속시킬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며 "돈이 한번 찍히니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희망은 한 달도 안 돼 무너졌다. 3번째 이자가 지급돼야 할 7월22일, 이자가 통장에 찍히지 않았다. 조씨는 투자를 권유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한 달 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한 달 뒤인 8월 22일에도 김씨는 이자대신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내놓았다. 조씨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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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쫓아다니며 A4 2000장 증거 확보



조씨는 다음달부터 직접 행동에 나섰다. 사기단과의 끈질긴 싸움이 시작됐다.


사기단은 조씨를 상대로 핑퐁놀음을 했다. 조씨가 수소문 끝에 찾아간 서울 구로구 한 사무실에서는 "여기는 영업부니 여의도 본점에 가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여의도 사무실에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조씨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같이 구로구와 여의도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투자권유서, 계약서 등 증거서류를 모았다.


조씨가 끈질기게 매달리자 부회장 직함을 단 한 50대 남성이 나타났다. 남성은 조씨에게 "특별히 써주는 것"이라며 10월까지 원금을 돌려주겠다는 계약서를 써줬다. 그마저도 말뿐인 거짓 계약서였다.


투자자들의 원성이 커지자 사기단은 2018년 10월쯤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조씨는 수소문 끝에 소수의 임원만 참여가 가능한 비상대책위회의 녹음파일을 입수, 피해 규모만 550억원이었고 "회사가 곧 터진다"는 발언을 확인했다.


조씨는 "녹취록, 투자 권유 서류, 계약서 등 A4 용지 2000장 정도 되는 증거를 빠짐 없이 모았다"며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고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돈 주겠다" 회유…고소 10개월 만에 첫 재판



고소를 결심했지만 경찰서 한 번 가본 적 없던 조씨에게 법률 용어는 어렵기만 했다. 조씨는 무작정 인터넷을 검색해 변호사에게 연락했지만 비용의 문턱이 너무 높았다. 조씨는 수소문 끝에 서울동부지검에서 무료법률상담을 받았다.


조씨는 어렵게 피해자 28명을 모아 '계약서', '입금내역서'등을 받아냈다. 이후 조씨가 직접 모은 증거를 들고 법무사를 찾아가 고소장을 작성했다.


조씨는 "개인당 평균 10만원정도만 들여 고소를 진행할 수 있었다"며 "고소가 시작되고 사기꾼들이 직접 집 앞까지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회유했지만 지금까지 당했던 것이 있어서 넘어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사기단이 재판에 넘어가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경찰서에서 피해자들이 발생해 사건을 모으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주요 임원이 지난해 9월 영장실질심사 때 도주해 버리는 사건도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경찰은 결국 지난해 11월에야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검찰은 바로 임원 등 9명을 기소했고 지난해 12월18일 첫 공판이 열렸다.


조씨는 "힘들게 재판까지 넘어갔지만 아직도 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며 "처음부터 투자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는지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고 말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