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이슈 ]

"3억 아파트 3천만원에 싹쓸이"…전국 집값 띄우는 '갭투자 원정대'

by머니투데이

[MT리포트]고삐풀린 갭투자②​


[편집자주] 12·16 부동산 대책이 나온지 반년이다. 무섭게 오르던 서울 아파트값을 잡는가 싶더니 반년도 안돼 다시 상승세다. 다주택자, 고가 아파트에 융단폭격식으로 초강력 대출규제와 보유세 강화를 내놨는데 결국 안 먹혔다. 시장에 풀린 많은 돈과 함께 '묻지마' 갭투자를 못 잡아서다. 서민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전세제도가 부동산 투기 지렛대로 변질된 '웃픈' 현실이다. 고삐풀린 갭투자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머니투데이

(청주=뉴스1) 장수영 기자 = 8일 충북 청주시 오창읍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건립 예정 부지 인근 도로변에 유치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를 충북 청주시로 선정, 5월 중 예비타당상 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주시는 평가항목 전반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리적 여건, 발전가능성 분야 등에서 타 지역 대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2020.5.8/뉴스1

#지난달 8일 오전 8시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정부의 방사광 가속기 유치지역 공식 발표를 2시간30분 앞두고 투자자 수십명이 오창 일대 부동산마다 진을 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방사광 가속기 유치를 놓고 청주시와 전남 나주시가 맞붙었는데 청주시에 베팅하고 미리 내려온 것이다.


부동산 투자 동호회, 인터넷카페 등에서 무리지어 내려온 사람들은 부동산을 돌며 "가계약금을 바로 보낼 수 있다"며 "매도자 계좌번호만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부동산 관계자는 "살면서 이렇게 많은 손님(투자자)이 몰려온 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미분양의 무덤'이었던 청주를 휩쓸고 있는 갭투자 원정대의 얘기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청주 시장은 갭투자 원정대가 어떻게 전국 집값을 띄우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규제보다 빠른 진짜 '꾼'…"급등 전 이미 들어와 있다"

머니투데이

갭투자 원정대는 규제보다 한발 빠르다. 집값이 급등하기 전 시장에 먼저 들어간다. 부동산업자는 갭투자 원정대 중에서도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하는 투자자를 진짜 '(갭투자)꾼'이라고 부른다.


꾼들이 노리는 지역은 매매가 3억~4억원대 저가 아파트, 갭 수천만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지방 순으로 저평가된 곳을 찍는다. 청주 전 수원·용인·성남과 대전, 세종, 천안, 인천 등이 오른 이유다.


청주에 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당시 청주 부동산들조차 "왜 사냐?" 고 물을 정도였다. 수년째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현지 부동산도 좀처럼 상승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청주 흥덕구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8~9월쯤 외부 투자자들이 하나둘씩 내려와서 갭 3000만~4000만원을 끼고 집을 사기 시작했다"며 "전국을 돌며 3억원대 아파트가 남아있는 곳을 찾다가 청주까지 내려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역 찍고 온·오프 모임에 공유…후발대 뒤따라 투자

머니투데이

꾼들은 목표 지역을 정하고 자신이 이끄는 부동산 투자 동호회, 인터넷 카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카카오톡 오픈카톡방에서 투자처를 공유한다. 꾼들이 시장에 선진입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후발 투자자가 뒤따른다.


후발 투자자가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그 지역 집값 상승 속도가 빨라진다. 수천만원이었던 갭은 1억원을 넘어서며 매매가격도 오른다.


청주 오창읍 한 공인중개사는 "외지 투자자가 한번 내려와서 거래하더니 동호회나 모임 사람들도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했다"며 "1~2주 사이를 두고 수십명이 내려와 부동산을 보고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시간차를 두고 더 많은 후발 투자자와 소문을 들은 일반 투자자까지 합세하면 시장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내집마련과 실거주를 꿈꾸며 매매를 망설였던 사람들까지 뛰어들면 지역 전체가 들썩인다.


청주에 꾼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지난해 9월 청주 외지인 투자는 463건으로 지난해 8월 295건 대비 56%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아파트 매입 건수 중 외지인 비중도 14%에서 22%로 늘었다. 이후 지난해 11월 청주 내 외지인 매입 건수는 총 1096건으로 급증해 청주시 전체 거래 중 외지인 매입 비중이 40.3%로 늘었다.

머니투데이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두산위브지웰시티2차아파트 매매/전세 시세 추이 /사진=호갱노노 캡쳐

청주 대장아파트인 흥덕구 두산위브지웰시티2차아파트 전용 80㎡의 지난해 9월 평균 3억6000만원에 거래된 이후 지난해 12월 최고 4억7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9월 당시 이 아파트는 전세가가 3억원대로 3000만~4000만원으로 살 수 있었는데 외지인 투자가 늘면서 갭은 3개월새 1억원 이상으로 벌어졌다.


청주 흥덕구 가경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가격이 계속 오르니 뒤늦게 청주 시민들이 따라서 사기 시작했고 집값은 더욱 오르게 됐다"며 "청주 시민들이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집값 상승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분위기를 보고 더는 안 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공격적인 갭투자 원정대'…수천만원 얹고 기존 계약 깨버리기도

머니투데이

갭투자 원정대의 투자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갭이 작거나 조건만 맞으면 현장을 보지 않는 묻지마 투자도 과감하게 진행한다.


청주 오창읍에서는 방사광 가속기 발표가 나기 전부터 가계약금을 넣을 매도인 계좌번호를 구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이들은 나주에 내려가서도 매도인 계좌를 받아놓은 사람들인데 유치지역 공식 발표가 나면 즉시 매도인 계좌로 바로 돈을 송금하려는 것이다.


청주 청원구 오창읍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발표 당일 매도인들이 청주 오창 확정 소식을 듣고 매물을 대부분 거둬들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어떻게서든지 매물을 찾아내려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계약을 맺은 물건도 수천만원을 얹어서 매입하겠다고 나서서 기존 계약을 깨버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결국 청주 실거주자가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