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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180→300→800㎞→고체연료'…미사일주권 되찾기까지

by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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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 시험장을 찾아 한국 최초의 지대지미사일(백곰) 시험발사를 참관하는 장면. 2015년 6월 국가기록원이 공개했다. /사진제공=뉴시스(국가기록원 제공).

#1. 1978년 9월 26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에선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Nike-Hercules) 미사일을 닮은 탄도미사일 '백곰'은 불기둥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의 탄도미사일 보유국이 됐다. 사거리는 180㎞, 서해5도에서 쏘면 북한 수도 평양까지 닿을 수 있는 사거리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극비리에 추진한 '백곰 프로젝트'의 성과였다.


개발 이후는 순탄치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핵 개발을 의심하던 소련·일본 등 주변국은 백곰 개발을 핵을 실어나를 미사일로 의심했고,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도 한국 정부의 탄도 미사일 개발을 우려했다. 1979년 9월 존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이 탄도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라는 권고 편지를 보냈고, 10월 박 대통령이 사망했다.


이때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은 위컴 사령관에게 '사거리 180㎞ 이상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서한을 보냈다. '미사일 지침'의 시작이다. 미사일 지침은 출발부터 한국이 미국에 통보하는 형식을 띠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과의 사전 합의와 용인을 거쳐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백곰사업을 폐기했지만,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테러를 계기로 미사일 개발을 재개했고, 1986년 백곰을 개량한 '현무'를 완성했다. 이에 미국이 다시 한국을 주목했고, 노태우 정권은 1990년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에서 사거리 180㎞, 탄두중량 500㎏ 이상 로켓시스템 개발을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 했다. 이전에는 군사용 로켓 개발만 대상이었던 반면 과학·산업용 로켓까지 포함돼 오히려 미사일 주권은 후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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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가 1998년 미국 국빈 방문 중 빌 클린턴 대통령 내외와 만찬에 앞서 함께 한 모습. 사진제공=뉴스1(김대중평화센터 제공)

#2. 사거리 확장의 계기는 매번 북한이 마련했다.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1호를 발사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고, 이듬해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 사거리 연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2001년 한국이 미국에 통보한 새로운 미사일 지침은 사거리 300㎞, 탄두중량 500㎏을 개발 제한으로 뒀다. 다만 사거리와 탄두중량 비율을 조절할 수 있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 규정으로 사거리 500㎞, 탄두중량 300kg 이하도 만들 수 있게 됐다.


다음 개정은 2012년에야 이뤄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내 여러 차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미사일 지침 개정을 요구했고, 그해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협상에 속도가 붙었다. 같은 해 10월 사거리 제한을 800㎞로 대폭 늘리는 합의를 이뤘다. 또 트레이드오프 규정으로 사거리 500㎞ 탄도미사일에는 1t의 탄두, 사거리 300㎞ 탄도미사일에는 2t의 탄두를 탑재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반복됐다. 이에 그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미사일의 탄두 중량 제한을 없애기로 합의했고, 같은 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정상회담에서 새 지침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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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2020년 개정 미사일 지침 채택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3. 28일 마지막 숙원 과제였던 고체연료 사용제한이 해제됐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오후 브리핑에서 "오늘부터 우주 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2020년 미사일지침 개정을 새롭게 채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군사용을 제외한 한국의 모든 발사체 개발 연구시설은 고체와 액체, 또는 둘을 혼합한 형태의 발사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고체연료는 저렴하고 구조가 간단해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로켓으로 주로 활용된다. 김 차장은 "미사일 주권 회복"이라 자평했다. 1978년부터 따지면 42년 만의 일이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