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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옥자·킹덤·인간수업…넷플릭스가 한국에 공 들이는 진짜 이유

by머니투데이

넷플릭스 쓰나미(中)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콘텐츠 생태계를 뒤흔드는 키맨이 되고 있다. LG유플러스에 이어 이달부터 KT와도 제휴를 맺고 거실 TV의 핵심 콘텐츠로 서비스된다. 딜라이브-CJ ENM 사용료 분쟁, 토종 OTT와 음악저작권협회와의 저작권료 이견 등 미디어 산업 곳곳에서 촉발된 갈등의 이면엔 넷플릭스가 있다. 현재진행형인 유료방송 시장 개편 역시 넥플릭스가 일으킨 파장이다. 넷플릭스는 과연 국내 미디어 산업의 ‘메기’일까. 아니면 ‘황소개구리’일까.

옥자부터 킹덤까지…韓콘텐츠 투자 넷플릭스 '목적' 따로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한 지 4년이 지났다. 진출 초기만 해도 '찻잔 속 태풍'처럼 반짝하고 사라질 것 같았던 넷플릭스는 어느덧 국내 1위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됐다. 한국 콘텐츠에 대규모 자본을 적극 투자하며 '현지화 전략'을 편 결과였다.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국내에서 잘 나갔던 건 아니다. 지난 2016년 8월 한국 시장에 처음 진출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있어 돈을 지불하는 것에 저항감이 높았다. 그런데다 해외 콘텐츠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에겐 생소한 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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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옥자 / 사진제공=영화 옥자

이 때 넷플릭스가 내놓은 전략이 현지화 전략이다. 국내 시장 소비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콘텐츠로 가입자를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재빨랐다. 2017년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 578억원을 투자하며 한국 콘텐츠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옥자'의 홍보 효과는 상당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옥자'가 공개되기 전인 2017년 6월 이전에 9만명 수준이던 넷플릭스의 가입자는 옥자 공개 이후 20만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후 영화뿐 아니라 '킹덤', '좋아하면 울리는',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인간수업', '나홀로그대'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을 연달아 내놓으며 흥행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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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바로 너 캡쳐 / 사진제공=유튜브 캡쳐

예능으로도 콘텐츠 투자 범위를 넓혔다. 먼저 한국 스타들과 협업한 스탠드업 코미디쇼를 차례차례 선보였다. 2018년 'YG전자' '유병재: B의농담' '유병재:블랙코미디'에 이어 2019년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등이 공개돼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SBS '런닝맨' 제작사인 컴퍼니 상상과 손잡고 추리예능 '범인은 바로 너'와 여행예능 '투게더'를 선보이기도 했다.

방영권이 아닌 '지적재산권' 확보가 목표…韓오리지널 시리즈 더 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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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입장에서는 넷플릭스 최초 공개보다 제작비 투자를 통한 지적재산권(IP)확보가 더 중요하다. 플랫폼에서 지속적으로 유통할 콘텐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영권만 확보하게 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콘텐츠를 활용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


넷플릭스는 △제작 이전단계 투자 △제작 중간단계 투자 △제작 완료 이후 투자 방식으로 드라마를 넷플릭스에 끌어오고, 해외판권을 얻는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아니더라도 넷플릭스는 '사랑의 불시착'(tvN), '이태원 클라쓰'(JTBC), '더킹-영원한군주'(SBS), '슬기로운 의사생활'(tvN), '하이에나'(SBS), '미스터 선샤인'(tvN), '동백꽃 필 무렵'(KBS) 등에 투자했다. 이에 따라 '동백꽃 필 무렵'은 국내에선 KBS 드라마였지만 해외에선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시청하게 된다.


이미 지난해 11월 넷플릭스와 CJ ENM, JTBC는 3년간 20여 편의 콘텐츠 제휴를 맺었다. 넷플릭스는 CJENM의 스튜디오 드래곤 지분 4.99%를 인수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지난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행사에서 "세계가 한국 콘텐츠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 전력의 중요한 일부로서 한국에 큰 투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란도스 CCO는 최근 LA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한국의 콘텐츠 제작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내년에도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 등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가 줄지어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스마트폰 이어 안방·거실까지 점령한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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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발 사업자와 먼저 독점 계약을 맺고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압박해 제휴를 확대하는 넷플릭스의 로컬 전략이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거 같아 씁쓸하네요"(통신업계 고위 관계자)

넷플릭스가 이동통신 2위이자 유료방송 시장 1위인 KT와 전격적인 제휴를 발표하자 국내 미디어 업계에선 "올 게 왔구나"하는 체념과 한숨 섞인 반응이 먼저 나왔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막강한 콘텐츠와 거대한 플랫폼을 두루 갖춘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들이 한국 시장을 본격 공략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란 말도 나왔다. 예정된 수순이긴 하지만 국내 미디어·콘텐츠 산업에 미칠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016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의 기세는 말 그대로 거침없다. 2018년 독점 계약을 맺었던 LG유플러스(가입자 436만명)에 이어 KT(738만명)를 동맹군에 편입했다. SK브로드밴드를 뺀 국내 IPTV 가입자 1683만명 중 70%(1174만명)가 안방이나 거실에서 TV로 넷플릭스를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 넷플릭스와 전략적 제휴 관계인 LG헬로비전(400만명)과 딜라이브(200만명) 등 대형 케이블TV를 합하면 넷플릭스 연합군은 더 불어난다. 넷플릭스의 콘텐츠 동맹도 화려하다.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CP(콘텐츠제공사업자)인 CJ ENM과 콘텐츠 제작과 글로벌 유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JTBC 콘텐츠 허브와도 다년간의 콘텐츠 유통 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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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의 성장성과 중요도를 감안하면 넷플릭스의 외연 확장은 더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강력한 경쟁자인 디즈니플러스와 애플 TV 등 공룡 OTT들이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어서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2018~2023년 아시아 OTT 시장 예상 성장률은 약 18%로 어떤 지역보다 높다. 특히 한국 시장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20%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넷플릭스가 압도적인 콘텐츠 파워로 유료방송과 OTT 플랫폼 시장마저 완전히 장악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적극적인 국내 시장 공략에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우호적인 환경이 더해지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넷플릭스 시대가 열린 것 같다"며 "단기적으론 분명히 긍정 요인이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론 국내 미디어 산업의 생존을 고민해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넷플릭스도 언제든 위기 온다…플랫폼 주도권 포기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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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

넷플릭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는 국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뿐 아니라 콘텐츠 시장 저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에 메기가 될 수도, 황소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


노창희 미디어미래연구소 실장은 “치열한 OTT 경쟁 속에서 넷플릭스도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은 넷플릭스를 잘 활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기회이자 위협…잘 활용해야

그는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이 효율적으로 글로벌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넷플릭스가 우리 미디어 시장에 던지는 최대 긍정 요소로 봤다. 아직 방송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동남아시아에 넷플릭스가 진출하면서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의 수출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노 실장은 “현지화 전략을 펴고 있는 넷플릭스와 우리 콘텐츠 제작 기업의 니즈가 맞는 상황”이라며 “넷플릭스의 홍보 전략과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똑같은 콘텐츠라도 넷플릭스로 유통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다는 말도 나올 정도”라고 언급했다.


국내 콘텐츠 제작 비용이 점점 높아지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콘텐츠 제작사들의 수익원이던 광고 시장마저 위축되면서 넷플릭스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미 지난해 11월 넷플릭스와 CJ ENM, JTBC는 3년간 20여 편 이상의 콘텐츠 공급 제휴를 맺었다. 넷플릭스는 CJENM의 스튜디오 드래곤 지분 4.99%를 인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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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넷플릭스 영향력이 커지면서 필연적인 부정적인 요소를 초기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 실장은 “외국 자본이 투입되면서 국내 콘텐츠 제작비 확보는 수월해졌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외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제작 투자 시장이 공동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콘텐츠 시장의 자생력이 약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 투자가 끊기면 국내 콘텐츠 제작 산업에 적잖은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넷플릭스가 콘텐츠의 2차 저작권과 같은 판권을 가져가게 되면 극단적으로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 기업이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는 “특히 넷플릭스의 영향으로 증가하는 콘텐츠 제작비는 영세한 사업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일부 대형 제작사가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투자 혜택을 독점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언제 변할지 모르는 시장...플랫폼 주도권 포기하긴 일러"

넷플릭스 공세가 격화되면서 국내 토종 OTT 플랫폼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많다. 노 실장은 플랫폼 시장 자체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빠른 상황인 만큼, 국내 OTT가 주도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노 실장은 우리나라 OTT들이 무조건 대규모 투자만 하려 할 것이 아니라 소소하고 다양한 차별화 시도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OTT에 대항하기 위해 대규모 콘텐츠 합작 투자도 필요하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공허해질 수 있다”며 “명확한 목적과 기대효과 없이 무조건 대규모 투자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나라 웹툰이나 소설 등 아직 알려지지 않은 콘텐츠의 판권을 사서 영상화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을 사례로 꼽았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노 실장은 “우리 기업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통해 콘텐츠를 발굴할 기회가 충분히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OTT들이 콘텐츠 확보 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대형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플랫폼을 채울 수 있는 콘텐츠 수급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김수현 기자 theksh01@mt.co.kr, 오상헌 기자 bborirang@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