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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남기자의 체헐리즘]

070 스팸 전화에…"고생 많으셨다"고 했다

by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장애인들 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생전 안 보였던,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뭐든 직접 해보니 다르더군요. 그래서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하나로 합쳐 봤습니다. 사서 고생한단 마음으로 현장 곳곳을 몸소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소외된 곳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미화 여사님·택배 기사님·경비원님·가족·친구에게 '피드백 프로젝트'…"당신은 꽤 괜찮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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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회사를 깨끗하게 청소해주시는 미화 여사님께 드린 피드백. 그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꼭 전하고 싶었다. 그게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힘이 될 거라 믿었으므로./사진=남형도 기자

'우우웅'하는 진동이 울렸다. 070으로 시작하는 번호, '스팸 전화'였다. 이미 신고된 건수만 340여 건이란 정보가 떴다. 거부감이 컸었다. 평소 같으면 으레 거절했겠으나 전화를 받았다. 40대쯤 됐을법한 여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출을 받으라는 속사포 랩 같은 설명이 시작됐다. 약 1분 동안 말할 틈도 못 찾다가 겨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이어졌다.


"저, 선생님. 설명해주신 건 정말 감사한데, 제가 대출은 이미 많이 받아서요(팩트)."


"아 그러세요, 고객님. 그래도 이건 너무 좋은 기회이고 아무 때나 권해드리는 게 아니고요, 또(그리고 1분 정도 설명을 더 들음)."


"예, 정말 잘 알겠는데 빚을 더 늘릴 순 없을 것 같아요(지금도 넘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절박하게 설득하던 직원은 이내 알겠다고 했다. 빠르게 끊으려는 이에게 드릴 말씀이 있다고 잠시 붙잡았다.


"선생님, 매일 모르는 분들에게 전화하기 참 힘드시지요. 상처도 많이 받으실 것 같고요. 그래도 필요하신 분들에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올 한 해 고된 전화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직원은 "일한 지 3년 만에 이런 얘긴 처음 들어본다"며 웃었다. 덕분에 오늘은 기운이 날 것 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그가 전화를 먼저 끊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줬다. 늘 상대방이 끊는 것에 익숙할 테니까.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대출을 권유하는 스팸 전화·문자 중 '대출 사기' 가 많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독자님의 댓글 피드백을 반영해 오전 9시30분에 기사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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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집 사장님께 최고 맛있다고 칭찬했던 것도, 손님에게 어떤 행복을 주는지 전하고 싶어서. 이번엔 독자님들과 함께 했으면 싶어서 SNS를 통해 알렸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인스타그램

누군가 내게 들려줬으면 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당신이란 존재가 왜 귀한지, 그걸 굳이 입 밖에 내어 알려주면 또 다른 하루를 살 용기가 날 거라 믿었다. 이른바 '피드백(feedback) 프로젝트'였다. 지난해엔 다들 참 많이 힘들었으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사소히 여긴 삶일지라도. 매일 눈 뜨면 또 집을 나서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그래도 당신은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고',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더 널리 퍼지길 바라는 맘으로 이번 체험은 독자님들과 함께했다. 지난해 12월 31일까지 받은 사연을 기사에 귀하게 담았다.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마음을 이기고 함께해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 동네 어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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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경비원님께 드린 귤과 쪽지. 그들이 하는 많은 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말씀드리고 싶었다./사진=남형도 기자

타노스가 지구에 쳐들어왔을 때 어벤져스가 맞섰듯, 우리 동네에도 온갖 생활형 악당들로부터 우릴 지켜주는 히어로들이 있다.


우선 동네 경비원님들이다. 그들의 활약은 상상을 초월한다. 짙은 파랑 수트를 입고 매주 한 번씩 24시간 내내 들이닥치는 어마어마한 분리수거 쓰레기 악당들을 물리친다. 가을엔 뒤돌아서기 무섭게 하늘에서 하늘하늘 침투하는 낙엽 빌런과 싸워 기어코 승리를 거뒀다. 벌겋고 노란 악당들은 자루에 차곡차곡 담겼는데, 높이가 아파트 한 층만큼 쌓여 있었다. 겨울철 눈 오는 날엔 바닥에 쌓여 미끌미끌하게 굳어 넘어뜨리려는 악당들을, 아침에 출근하기도 전에 나무 빗자루로 가뿐히 쓸어버렸다.


그날 밤, 동네 어벤져스 본부인 경비초소로 찾아갔다. 경비원님은 몰려드는 비닐 쓰레기 악당을 눌러 납작하게 제압하고 있었다. 그의 활약을 방해할까 싶어 초소에 난 자그마한 유리창을 열고 내 마음을 전했다. 먹기 좋게 익은 주황색 귤, 그리고 쪽지를 담았다. 거기엔 이렇게 남겼다.


"경비원님들 안 계시면 저희 동네 마비되는 것 아시지요? '슈퍼히어로' 경비원님, 늘 고생 많으시고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이어 관리사무소로 갔다. 그들은 동네 민원 해결의 대가. 아파트 출입구 전등이 꺼져 있다 하면 금세 켜놓고, 나뭇가지에 테이프가 감겨 있다 하면 금세 떼고, 추운 날엔 수도 동파가 우려된다며 미리 알려줬다. 이들에게도 귤과 쪽지를 건넸다. 쇼핑백을 열기 전에 후다닥 나왔다.


"올해도 이런저런 민원을 많이 요청했는데 그때마다 척척 해결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감사해요!"


마지막은 주민들의 상큼한 분변이 쌓이는 아파트 정화조를 청소해주는 분들이었다. 1년에 한 번은 꼭 해야 한단다. 그걸 그대로 놔두면 딱딱하게 굳어져 오수관로가 막히고, 악취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청소는 힘들다. 악취가 날 뿐 아니라, 유독가스인 황화수소 등으로 인해 위험하기까지 하다. 실제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동네 정화조 청소는 어느 업체에서 하느냐 물으니 이름을 알려줬다. 그곳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나 :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 동네 정화조를 청소해주신다고 해서 전화했습니다."


직원: "아, 혹시 어느 단지이실까요?"


나 : "OO 아파트입니다."


직원: "아, 거긴 이미 청소를 마쳤네요."


나 : "네,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건 아니에요. 찾아보니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더라고요. 그런데도 기꺼이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직원 : "하하, 아 정말 감사하네요. 주민분에게 전화 온 건 처음이에요. 작업하시는 기사님들께 꼭 전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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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독자님이 경비원님께 전한 손편지 응원. 꾹꾹 눌러쓴 글씨에서 마음이 느껴졌다./사진=이미지 독자님

그리고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미지 독자님(@maisy,***)도 경비원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나보다 더 정성스레 손편지를 써서 음료와 함께 전했다. 그의 따뜻한 응원은 이랬다.


"눈 내린 아침, '오늘은 길이 참 미끄럽겠구나' 하며 집 밖을 나서면 이미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걸 마주합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많은 이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해 준 것이지요. 항상 밝은 미소로 인사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추운 아침이 따뜻했습니다."

집에 편히 계세요, 저희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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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기사님께 드렸던 피드백. 정말 그 분들이 없다면 대한민국이 마비될 거라고, 그런 귀한 일을 하고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문자

집에서 편히 주문하면 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이들, 택배기사님들이다. 비가 퍼붓고 눈이 쌓여도 뚫고 가는 강인한 배달의 달인들. 전국 방방곡곡을 실핏줄처럼 촘촘히 잇는 이들. 지난해엔 코로나19 때문에 물량이 많이 넘쳐 기사님들이 과로로 숨졌단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안타깝고 늘 감사한 마음이라, 이들에게도 표현하고 싶었다.


그날도 택배가 도착했단 문자 한 통이 왔다. 동네서 돌보는 고양이 두 마리(뚱냥이, 연탄이)에게 먹일 밥이었다. 문을 여니, 집 앞에 어느새 사료 포대가 놓여있었다. 재빠른 기사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또 다른 곳으로 향했으리라. 문자를 남겼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덕분에 집에서 편히 물건들 받아보고 있습니다. 배송 안 해 주시면 대한민국 전체가 마비될 겁니다. 너무 고생 많으신데 부디 건강 잘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실 수 있게 어디서든 힘 보탤게요. 감사합니다."


그러니 몇 시간 뒤 기사님께 답장이 왔다.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건강 신경 쓰며 일하고 있다고. '우와~!'라는 감탄사까지 쓰며 고마워하는 그 문자에 내가 더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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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리 독자님이 택배기사님께 보내드린 문자와 비타민 음료 기프티콘./사진=소울트리 독자님

소울트리(@soultree_***) 독자님도 택배기사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를 키워서 육아용품 택배를 많이 받았단다. 분주히 배송해주는 노고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비타민 음료와 함께 문자를 남겼다. 택배기사님은 답장이 없으셨으나 감사 문자를 보낸 것만으로 마음이 왠지 따뜻해졌다고.

"올 한 해 택배 물량이 많아 바쁘셨을텐데 늘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음료 교환해 드시면서 작게나마 휴식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엔 더욱 행복하고 즐거운 일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집에서 작업하려 물건을 종종 주문했다는 드로잉유(@st****_drawingyou) 독자님도 택배기사님에게 "안녕하세요, 선생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택배 잘 받고 있어요. 한파에 건강 조심하시고 안전운전하세요!"라고 문자로 마음을 전했다.

나를 위해, 매일 부지런히 치우는 이에게

삶을 위해 매일 오가는 회사, 익숙한 복도와 내 자리 옆 쓰레기통과 잠시 한숨이 길게 나가는 화장실에서 땀 흘리는 이들은 미화 여사님들이다. 그곳에 먼지가 없고 냄새가 안 나고 잔뜩 넣었던 쓰레기가 말끔히 사라지는 건 모두 이들의 노고 덕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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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미정 독자님이 회사 미화 여사님께 드린 귤과 손편지. 1년 내내 일하는 곳을 깨끗하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사진=김작가미정 독자님

김작가미정 독자님은 정사각형 포스트잇에 마음을 담았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귤을 종이 쇼핑백에 가득 담아서. 그는 "이런 것 하는 건 너무 쑥스러운데, 그래도 한해 마지막이라 용기를 내어 봤다"고 했다. 미화 여사님께 전한 손편지는 이랬다.


"여사님이 계셔서 1년 동안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어요! 평소 전하고 싶었던 감사한 마음 이렇게나마 전합니다 :)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응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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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 독자님이 회사 미화 여사님께 드린 쪽지. 가장 깨끗하게 치워주는 이가, 궂은 곳에서 쉬는 게 속상했다고 했다./사진=이소연 독자님

그러나 쉴 곳도 마땅찮은 게 현실. 이소연 독자님(@sog****)이 만난 미화 여사님은 회사 여자 화장실 청소 도구함에서 쉬고 있었다. 항상 묵묵히 쾌적한 환경을 위해 애써주는 이가, 궂은 곳에서 쉬시는 게 안타까웠단다. 그래서 그는 여사님께 쪽지를 이렇게 남겼다.


"안녕하세요, 여사님. 혹시 일하시다가 휴게하실 공간이 마땅치 않으시면 10층 탕비실에 비치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쉬셔도 됩니다. 전에 계시던 여사님께서도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셨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편히 이용해주세요. 쾌적한 공간을 위해 힘써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여사님이 청소도구함에서 쉬시는 걸 보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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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원룸 앞은 늘 깨끗하다, 치워주시는 사장님 사모님 부부가 있기에. 사진은 눈 오는 날 미끄러지지 말라고 깨끗하게 쓸어낸 모습. 다 누군가의 남모를 노력 덕분이다./사진=독자 제공

광주 한 원룸엔 한결같이 깨끗하게 살게 해주는 '청소 요정'이 있다. 원룸 사장님과 사모님 부부다. 이를 알려준 한 학생 독자님(@rw_***)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은 원룸 복도와 쓰레기 분리수거통, 원룸 앞 도로를 늘 잘 정리해준단다.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그들이 부지런히 치우는 모습을 보고 독자님은 용기를 냈다. 귤과 과자를 손에 쥐고 다가가 부부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날씨가 너무 추운데도 이렇게 청소해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고 다닐 수 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장님, 사모님 부부는 "학생 먹지, 미안해서 어떻게 받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들이 나눈 몇 마디 대화에, 눈 내린 날 원룸 앞 공기는 무척 따뜻해졌다. 독자님 마음도 덩달아 포근해졌다고.

사장님, 우리 사장님, 부디 오래오래

새해가 되면 아내와 가던 단골 카페가 있었다. 소금 크림 라떼가 참 맛있었던 그곳. 첫맛에 탄성이 나오고 마실수록 깊어지는 아늑한 곳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마지막 영업을 했고, 일순간 문을 굳게 닫았다. 그동안 감사했단 인사와 함께. 다른 곳 어디에서도 같은 맛은 없었고, 그 묵직하고 포근한 공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 카페는 내 기억 속에만 아련히 남았다. 안타까웠다.


지난해는 유독 가게 사장님들이 힘들었기에 부단히 찾으려는 단골 손님 마음도 그랬다. 텅 빈 가게를 자꾸 기웃거리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고 괜스레 한 번씩 더 들러 이용하기도 했단다. 긴 터널을 지나는 이들을 위해 응원하고픈 이들 맘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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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미정 독자님이 단골 카페 사장님께 드린 귤 쇼핑백과 손편지. 따뜻하다, 무척이나./사진=김작가미정 독자님

김작가미정 독자님은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있는 단골 카페를 찾았다. 주기적으로 커피 원두를 사고, 가끔은 머물러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풀었다고 했다. 그날도 그는 원두와 스콘을 사러 갔는데, 안엔 직원 세 명만 있을 뿐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안에서 아예 음료를 마실 수 없게 해놓기 때문이긴 했지만, 괜스레 북적이던 옛날 생각에 맘이 안 좋았다고. 그래서 제주산 귤과 함께 응원을 건넸다.


"이곳 원두가 참 맛있어요. 커피는 잘 모르지만, 그냥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끌린다고 할까요. 그래서 올해 힘드셨을 것 같아서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이거 제주에서 삼촌이 보내주신 귤인데 드시고 힘내세요!"


대학원생 다혜 독자님(@darong_****)은 항상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채소와 3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발길이 닿는 가게. 밥과 반찬을 인심 좋게 퍼주는 사장님 덕에 매일 "밥 조금만 주세요!"를 외친다고 했다. 어쩌다 사장님이 밥을 많이 푸신 날엔 사모님이 "적게 달라는 학생인데 많이 푸냐"고 혼내기도 한다고. 단골 가게가 기억하는 손님이란 그런 것. 그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情)도 많이 들었단다.


독자님이 사장님에게 표현하는 방식은 간식이다. 사장님께 바나나도 드리고, 사모님에겐 석류즙을 주면서 "어머님들께 좋대요! 사장님 몰래 드세요"라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바나나 우유 두 개를 드리니 "학생 먹지!"라 하시기에 "맨날 잘 챙겨주시잖아요!"하고 후다닥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가게에서 밥을 포장해 온 뒤 열어보니 포도가 예쁘게 포장돼 있었다고. 그날 하루는 참 기분이 좋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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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이 늦는단 말에 괜찮다고 했을 뿐인데, 그런 분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전긍긍하던 맘이 얼마나 놓였을까 싶어서./사진=즐거운고냥 독자님

손님들의 배려는 사장님이 힘든 순간에 더 빛을 발했다. 즐거운고냥(@viajera_***) 독자님 이야기다. 그는 반려동물용품을 주문했는데, 원단 품절로 배송이 늦어진단 사장님 문자를 받았다. 사장님은 정말 죄송하다며 최대한 열심히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독자님은 멋진 답장을 이렇게 보냈다.


"괜찮습니다. 기다려도 괜찮으니 준비되면 보내주세요! 무리하지 마시고 건강챙기며 일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그리고 사장님 답장은 이렇게 왔다. "감사합니다ㅠㅠ 이렇게 답장해주시는 분은 처음이에요.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리뷰의 희열(喜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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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알아준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리 곱디 고운 리뷰는 사장님들을 춤추게 한다고. 족발 사진을 보니 배고프다. 내일 메뉴는 이것으로 정했다./사진=이선희 독자님

바야흐로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피드백은 배달앱 속에서 진화했으니, 그곳에 리뷰를 열심히 남기는 손님들 이야기도 해야겠다.


실은 대다수 손님이 그렇듯 이선희 독자님(@our_sun***)이 리뷰를 열심히 쓴 건 '서비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누가 즉석 떡볶이엔 계란 두 알을, 치킨에는 콜라를, 족발에는 막국수를 준다는데 쉬이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선을 다해 솔직히 남겼단다. 그런데 거기에 뜻밖에 따뜻하고 재치 있는 사장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고.


독자님 : "솔직히 정말 받는 순간 눈으로 아실 거예요. 눈으로만 봐도 맛이 느껴져요. 족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지는 맛이에요. 코로나로 자영업하시는 분들 힘드신데 이렇게 지친 하루를 행복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적게 일하시고 많이 돈 버세요!!!!!!!!!!!"


사장님 : "오와아아아아아아♥ 장문의 리뷰ㅠ ㅠ 감동감동. 포장할 때 정말 깔끔하게 하려고 신경쓰는데 그걸 알아봐주시니 또 감동감동 ㅠ ㅠ 정말 요새 하루하루 힘들어요. 하지만 이런 리뷰 하나하나에 힘을 얻네요. 오늘 하루는 행복한 맴으로 마무리할 꼬에요(행복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거예요)."


이런 리뷰를 이어가다 보니 그 기쁨을 알게 됐다고. 그에 따르면 '매일 스쿼트 100개 하기'보다 더 뿌듯하고 소박한 실천이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리뷰 서비스와 관계없이 정성스레 사진을 찍고, 한 끼 식사에 대한 감사함을 담는다. '잘 먹었습니다'란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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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는 공간에서 서로를 향한 진심어린 위로가 오가기도 한다. 그저 마음먹기 나름이다. 어떤 말들을 우린 건네야 할까, 그건 무얼 바꿀 수 있을까./사진=지수 독자님

한때 우울한 생각에 힘들었던 지수 독자님(jisoo_****) 이야기는 이랬다. 무척 힘든 나날이었고 너무 지쳐서 하던 일도 다 그만둔 채 방에 누워 있기만 했다. 그러다 참치회가 너무 먹고 싶어 배달을 시켰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가 힘든 걸 알아줬으면 싶어 배달 리뷰에 구구절절 이렇게 적었다.


독자님 : "메까도로(황새치 뱃살) 맛있었다고 했더니 꽉꽉 채워주신 사장님. 사실 요즘 우울하고 입맛도 없고 내 인생도 답도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참치를 먹자마자 '이 세상 맛이 아니다!'하면서 내적 비명을 질렀습니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돈 열심히 벌어서 다음에 또 참치 먹으러 올게요."


사장님: "우울하고 입맛 없고 삶이 나에게만 불친절하다고 느껴질 때 누추한 저희 참치가 위로와 힐링이 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입니다. 힘들 때 힘내라 하면 '이거 뭐 멕이는(먹이는) 건가?' 싶을 때가 저도 있었기에 영혼 없는 위로는 안 하겠습니다. '오늘만 견디자'하며 하루하루를 유예하다 보면 스리슬쩍 자가치유가 되는 일이 없지 않아 있더군요. 다음에 참치 주문하실 때 맛난 부위 아낌없이 챙겨드릴게요^^"


지수 독자님은 사장님 답글을 몇 번이나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단다. 그 뒤로도 사장님은 참치를 꽉꽉 채워주며 "살면서 상처 안 나고 사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상처란 살아 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생명 현상이니 씩씩하게 무소의 뿔처럼 가시길 기도한다"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고. 독자님은 "다들 말을 안 할 뿐이지 각자 삶의 방식으로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있는 거란 생각에 힘듦이 한결 나아졌다"고 했다.

야, 쑥스러워 말 못 했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엔 친구들이 있다. 우리 사이에 표현은 무슨, 감히 겁도 없이 그런 걸 했다간 오글거려 쥐며느리처럼 몸이 돌돌 말려서 데굴데굴 굴러가다 쥐구멍에 쏙 숨어버리리라. 그러나 그걸 이겨내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표현했을 땐, 이런 기쁨이 찾아온다고, 세 분의 독자님들이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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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도 따뜻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넌 내게 어떤 친구인지를./사진=김지윤 독자님

연말이면 김지윤 독자님(@junny_***)은 으레 지인들에게 안부 문자라도 돌리곤 했었다. 삶이 바쁘단 핑계로 최근 몇 년간은 안부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 소원해졌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엔 코로나19로 누구에게나 힘든 한해였으니, 잘 버틴 이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단다. 모두 반가워하며 이리 연락해줘 정말 고맙다고 했다. 답변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뭐야 뭐야아, 지윤아♥ 대학 동기라 해도 자주 얼굴 보지 못해 주저하게 됐었는데, 그런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럽네.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고 멋진 마음을 가진 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큰 힘을 얻고 행복함 가득 느꼈을 거야.


힘들지 않은 사람 없겠지만, 병원에서 일하며 불편한 사람들과 가까이하는 우리네 마음도 많이 지치고 힘든 한해였지.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이렇게 멀리서나마 응원하며 함께 버티고 잘 이겨내자. 고마워, 많이."


지윤 독자님은 "이날 멋진 답변을 받고 정말로 행복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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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맞아서 자매 같은 회사 동료들에게 전한, 연말의 따뜻한 톡 메시지. 일할 맛나겠다./사진=박정윤 독자님

그런가 하면, 회사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한 이도 있다. 박정윤 독자님(@jeongyun****)이다. 그는 원래 공과 사를 구별하고 선을 그어야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후임 친구들과 친자매처럼 지내다 보니 회사 다닐 맛도 나고, 잘 어울릴 수 있게 그들이 맞춰줘서 좋은 에너지를 가득 받는다고. 덩달아 20대 젊은이가 된 것 같다고. 그래서 이렇게 연말 메시지를 선물처럼 보냈단다.


"얘두라(얘들아), 살얼음판 위에서 혼자 서 있다고 느끼며 다니던 회사였는데 너희 덕분에 나도 이젠 혼자가 아니구나. 많이 부족하지만 날 잘 따라와 주고 힘들 때 내 편이 되어주어서, 여러 위기 속에서도 무사히 2020년 잘 보낸 것 같아 너무 고마워. 내년에도 더욱 존버(존X 버틴다는 뜻, 다들 흔히 쓰는 말)하면서 회사 열심히 다니고 올해 못한 캠핑 등 함께하며 더욱 즐겁게 살자잉."


그런 그에게 이런 답장이 왔다. "우리가 더 고마워요, 언니랑 OO씨 덕분에 회사 생활이 재밌쟈나~~~", "효효 감동의 물결, 항상 도움과 사랑을 듬뿍 주셔서 감사합니도♥ 내년엔 더 행복하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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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전한 고마움에 카톡 사칭인줄 알았다고 농담하는 친구, 그러나 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사진= 이미지 독자님

이미지 독자님(@maisy.***)은 친한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맘을 전했다. 무려 살면서 처음 해봤단다. 그리고 톡방에선 눈물 파티가 시작되었다고. 그는 "시작이 머쓱했지, 하다 보니까 오랫동안 연락 안 하고 지내던 친구들에게도 해야겠단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이랬다.


"안녕? 2020년 마지막 날 되돌아보니 네게 고마운 게 참 많았어. 사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도 아닌 친구랑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것도 신기한 인연이지. 내가 감정 표현하는데 낯을 많이 가려서 괜스레 맘에도 없는 모진 표현으로 상처 줄 때도 있고 고마움을 잘 말하지도 못하거든. 혹여나 나로 인해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너그러이 용서해주겠니, 미안해." (친구 박부갈님(별명 추정)에게 전한 편지)


"내가 친할수록 고맙고 미안함을 잘 표현하지 않아 가끔은 심한 말로 상처를 주고도 사과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럼에도 여전히 나랑 친구를 하고 있어 줘서 고마워. 내가 한 말로 상처를 받은 게 있다면 용서해줘, 미안해.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나만 주절거리는 내 수다 들어줘서 고마워."(친구 개니쥬님(역시 별명 추정)에게 전한 편지)

한 자릴 꿈쩍 않고 오래 지켰던, 부모님의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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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이나 감자탕 가게를 이어온 부모님의 은퇴식을, 기특하게 잘 자라준 딸래미가 챙겼다. 현수막이 참 곱다./사진= 리나 독자님

곁을 지키는 가족, 특히나 표현하긴 참 쑥스럽고 어색한 부모님. 자식들 키우느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히 일터를 수십 년씩 지키다 물러나는 마지막 출근길에 속마음을 전한 이들이 있다. 참으로 속 깊고 기특한 딸인, 두 분 독자님 이야기다.


리나 독자님(ri__na__**)은 부모님이 20여년간 운영한 감자탕 가게를 닫는 날 은퇴식을 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족은 네 명에서 여덟 명으로 늘었다. 평생 일군 터전을 떠나려니 시원섭섭하다고 했단다. 2002년 10월에 열어 2020년 12월 말까지 꽉 채운 가게. 자그마치 6639일, 15만9336시간을 달려온 부모님을 위해 가게에 큰 현수막을 걸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었다.


"항상 우리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신 사랑하는 엄마, 아빠.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앞만 보고 긴 시간 달려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지금의 저희 들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지나온 세월보다 더 행복한 앞날을 응원합니다! 앞으론 존경의 마음을 담아 사랑으로 보답할게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해요,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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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타지서 일하는 걸 감수하며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를 위한 메시지. 이날은 마지막 근무 날이었다./사진=김예지 독자님

딸이 중학생 때 대학원에 들어가 늦깎이 공부, 김예지 독자님(@ssumm****) 어머니가 그랬다. 뒤늦은 공부였으나 자녀들에게 늘 따뜻한 밥을 차려주며 부족함 없이 생활하게 해줬다. 그러기 위해선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석사와 박사를 마치고,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다. 집이 아닌 타지에서, 사택에서 10여 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그리 15년을 달린 끝에, 독자님 어머니는 안식년에 들어가게 됐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오게 됐다.


독자님은 그걸 보며 "본인의 삶에 최선을 다한 엄마가 늘 존경스럽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 덕분에 가족이 있었던 거라면서. 너무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속상했다고. 다시 사회에 나가기 전 충전하는 동안 아빠와 함께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근무 날, 독자님은 이렇게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오늘 마지막 근무네^^ 강원도에서 아무도 없이 일한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 근무 마무리 잘해^^ 엄마가 이제 남는 게 시간이라는 말하는데 그런 말 하는 엄마가 조금 낯설더라. 그만큼 열심히 살아온 거니까, ㅎㅎ 쉬는 동안 다른 걱정은 너무 하지 말고, 행복하게 보내서 충전 잘했으면 좋겠어♥"

남형도 기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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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손편지를 보내온 독자님. 정말 고맙습니다. /사진=이다혜 독자님

그리고 내게도 피드백이 왔다. 많이 감사하고, 너무 쑥스럽고, 그저 부끄럽고 그랬다. 실은 이런 이야길 들을 만큼 잘하진 못한 것 같단 생각에 기사에 담지말까 하다가, 그 또한 받아들이고 한해 또 나아갈 좋은 기운으로 삼고 싶어 기록을 남긴다(다 담지 못해 죄송합니다).


"'당신은 꽤 괜찮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겁니다', 그 문구가 야근하고 돌아가는 퇴근길에 왜 그리 생각이 나던지, 아무래도 기자님께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은 독자님)


"한창 언론고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주말 아침에 우연히 선배가 쓴 기사를 봤습니다. 삶의 고단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체헐리즘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기사를 보고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선배 기사를 보며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후배 김혜진 기자님)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가방에 핫팩과 간식, 텀블러에 물을 담아 아기들이 있는 곳마다 놔줍니다.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에 제가 더 기쁘더라고요.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감사해요." (이다혜 독자님)


"기자님 글은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를 조명하여 관심을 끌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가진 개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서 마음을 울리기도 합니다. 세상이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희 독자님)


실은 좋은 기자란 생각보다 한없이 작아질 때가 훨씬 더 많았다. 현장 취재하다 지치고, 여기서 멈출까 고민하고, 감정이입을 너무 해서 자다가 벌떡 깨고, 새벽까지 안 써지는 글을 쥐어짜다 손톱을 물어뜯고 커피를 들이붓고, 많이 안 볼 땐 내 탓 같아 자책하며, 아내 걱정을 샀었던 시간들.


그러나 내겐 너무 과분하고 감사하고 귀한, 독자님들 이야기 덕분에 새해도 힘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살아가는 힘이 된달까. 지쳐 쓰러지려 할 때, 그 힘으로 또 다른 하루를 살게 될 거라고. 누군가 나를 곱게 바라봐준다는 것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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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epilogue).


그런 날이 있었다.


광화문역 계단을 올라가는데


다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데


나만 뒤에서 떠밀려 출근하는 것 같았던.


난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달라진 게 없는 게


세상의 기대에 못 미치는 거라서


왜 어제와 똑같냐고 채찍질하다 지쳐


어느 순간 그냥 멍해져 버렸던.


그때 집안에 놓인 선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물을 줘도 별다른 변화가 없어


식물을 키운단 말이 무색해


영 심심하다 여겼던 녀석이었다.


그러나


다른 식물은 잎 색깔이나 축 늘어진 걸 보며 걱정하는데


선인장은 늘 같은 모습이라 편했다.


그게 어쩐지 위로가 됐다.


사실 그 녀석은


한 독자가 내게 선물해준 거였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달라면서.


오랜만에 물을 듬뿍 주며


나를 위한 피드백을 했다.


어쩌면 그게 정말 필요한 거였다.


대단한 무엇이 아니더라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냥 그리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남형도 기자 huma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