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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테슬라 침공에 칼 뽑은 완성차들 '전기차 세계대전'

by머니투데이

[편집자주]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환경 규제 강화와 함께 폭스바겐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전력투구에 나서면서다. 테슬라 등 전기차 전문 기업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한편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배터리 자체 생산을 검토하면서 배터리 업체들에까지 불똥이 튀고 있다.


[MT리포트]달아오른 전기차, 완성차의 역습 (上)


폭스바겐도 테슬라도 "배터리 독립"…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

폭스바겐으로 대표되는 완성차업체의 '배터리 독립선언' 후폭풍이 매섭다. 폭스바겐이 배터리 내재화(자체생산)를 선언하며 한국 수주가 유력했던 글로벌 발주량의 30% 안팎 물량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배터리사들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테슬라, 현대차·기아 등 중장기적 내재화를 선언한 업체 동향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언제고 넘어야 할 고비가 찾아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재화는 모든 완성차업체 공통의 목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값싼 중국산 배터리의 범용 전기차 시장 잠식도 예정된 변수다. 결국 품질과 성능을 앞세워 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해야 한다. 현대차·기아와 국내 배터리사들 간 협력의 황금비율도 찾아야 한다. 폭스바겐으로 시작된 완성차 업계의 역습이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시장에 던진 숙제다.


◆왜 직접 만드나…"120년만에 처음 경험하는 乙 포지션"



머니투데이

지난 15일 진행된 폭스바겐 '파워데이'는 전세계 배터리시장을 크게 뒤흔들었다. 핵심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최대 고객이던 폭스바겐이 전기차용 배터리 대부분을 중장기적으로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다. 직접 투자한 노쓰볼트를 통해 배터리를 공급받고 그간의 공백은 중국 CATL 등을 통해 메운다고 밝혔다.


완성차업계가 배터리 내재화를 꿈꾸는건 당연하다. 배터리는 전기차 생산단가의 40%를 차지하는 절대적 품목이다. 배터리의 성능이 주행거리·내구력·속력 등 전기차 성능의 거의 모든걸 좌우한다.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하면 당장 생산이 막힌다. 산업 먹이사슬의 정점에 군림하던 완성차업계 입장에서 최근 배터리사들과 관계는 '내연기관 120년사에 경험하지 못한' 을(乙)의 포지션이다.


일본 파나소닉과의 오랜 협력에도 불구하고 테슬라가 최근 배터리 자체생산 계획을 밝힌건 이 때문이다. 폭스바겐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 LG·SK 등 협력사를 보유한 현대차·기아조차 배터리 자체생산 계획을 이미 수차례 밝혔다. 현대차·기아는 다만 '자체 생산 배터리는 차세대 전고체배터리(전해질로 액체 대신 고체 사용)'라고 단서를 달았다. 현 시점에선 사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력이다. LG와 삼성, SK 등은 고품질·고부가가치 배터리에 미리 수십년간 투자해 왔다. 뒤늦게 뛰어들어서 한국 3사나 중국 CATL보다 나은 전고체배터리 수준의 배터리를 만들지 못한다면 내재화의 의미가 없다. 오히려 품질리스크만 안게 된다. BMW와 포드는 이 때문에 사실상 자체생산 포기를 선언했다.


폭스바겐 역시 한국산 파우치형 배터리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단서를 달았다. '각형 80%, 파우치형 20%'로 전기차 생산방식을 배분한다고 밝혔다. 또 올해 예정된 발주물량 400GWh에 대해서는 309GWh를 먼저 발주하고 90GWh가량은 나중에 발주하는 방식으로 나누기로 했다. 내부적으로 각형 배터리 자체생산 계획이 생각처럼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엿보인다.


◆업계 여파는 불가피..."쇼크는 쇼크"



머니투데이

내재화 성공 여부를 떠나서 우선 국내 배터리업계엔 타격이 불가피하다. 폭스바겐이라는 최대 배터리 발주처를 잃을 상황이다. 완성차업계와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신규발주 물량은 1400GWh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약 300GWh~400GWh에 비하면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물량이다.


순수전기차 대당 약 50KWh의 배터리가 장착된다. 대부분 2024년부터 탑재될 올해 발주량 1400GWh는 단순계산으로 2800만대분에 달한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1~2위인 테슬라와 폭스바겐 판매량을 모두 합쳐봐야 80만대 안팎이다. 올해 발주 물량이 탑재될 3년 후부터 전기차 시장도 크게 확대된다는 의미다.


1400GWh 중 폭스바겐그룹(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 등) 발주물량이 400GWh다. 전체의 약 29%에 해당한다. 비공개인 테슬라와 함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런 폭스바겐이 한국의 전매특허인 파우치형이 아닌 각형을 주력으로 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으로서는 유력 타깃이던 물량 29%가 사라지는 셈이다.


국내 배터리사들은 "쇼크는 쇼크"라는 입장이다. 수주전략 자체를 새로 짜야 할 판이다. 한 배터리사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선언은 결국 중국 범용전기차 시장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라며 "지금도 매출의 40%를 중국에서 내는 폭스바겐으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며 국내 배터리사들로서는 가장 큰 도전에 직면한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은 성능과 품질, 고부가에 길 있다



머니투데이

위기감은 있지만 국내 배터리사들은 '언제고 넘어야 할 고비가 왔다'는 분위기다. 겉보기엔 완성차업체들의 내재화가 현안이지만 이면엔 중국 배터리사들과의 첨예한 경쟁구도가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범용의 중국산에 비해 탁월한 성능과 효율을 보유한 배터리를 개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잠잠한 일본 토요타의 물밑 움직임도 변수다.


폭스바겐은 자체생산 브랜드 노쓰볼트를 통해 대부분을 공급받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노쓰볼트는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한 단계다.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해놓은 CATL, 폭스바겐이 역시 지분투자를 한 중국 궈시안에서 훨씬 싼 값에 배터리를 양산할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 1위인 폭스바겐의 덩치를 감안하면 내재화는 구호일 뿐 결국 중국산 배터리 탑재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내재화를 빠르게 진행한다 해도 생산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렵다. 한 배터리사 관계자는 "한국 배터리가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데는 품질과 성능, 안정적 납기 등이 모두 영향을 줬다"며 "한 순간에 순위가 바뀔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 공급선을 바꾸거나 자체생산 비중을 늘리는건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 자체생산 쇼크가 오히려 국내 배터리3사가 나아갈 길을 보여줬다는 해석도 있다. 내재화 시도나 이에 따른 중국산과의 격돌은 언제고 한 차례 벌어졌어야 한다. 다른 배터리사 관계자는 "각형 전환을 선언한 폭스바겐도 초고성능 전기차 타이칸에는 LG가 만든 배터리를 넣고 있다"며 "고부가가치 고성능 시장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길이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배터리 대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배터리사 관계자는 "노쓰볼트도 이제 막 공장을 짓기 시작했을 뿐 무엇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테슬라가 개발한다는 대형 원통형 배터리(46800모델) 등도 성공 여부를 아직은 확정해 말하기 어렵다"며 "배터리 무한경쟁은 사실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우경희 기자


전기차-배터리 협력관계 보니…말그대로 '국경없는 전쟁'



머니투데이

새로운 글로벌 전기차와 배터리(2차전지) 시장엔 국경도 기존 협력관계도 없다. 그야말로 무(無)국경 시대다. 특정 브랜드와 배터리 종류를 구분하지 않고 전방위적 합종연횡이다. 완성차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자체생산) 계획 구체화, 중국기업들의 시장선점에 맞서는 품질 고도화가 한국 배터리업계에 당면 과제다.


배터리 업체를 중심으로 보면 양강인 한국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CATL이 가장 많은 협력 가지를 뻗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현대차·기아와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SDI도 각형 배터리를 앞세워 유럽브랜드들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가장 든든한 우군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물량을 나눠 수주했다. 중국 CATL도 한 몫을 떼 갔다. 한중 협력 형태로 현대차·기아의 미래 전기차가 생산된다. UAM(도심항공모빌리티)사업 구체화로 하늘길까지 열리면 현대차·기아 배터리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기차 시장 1강 테슬라는 기존 일본 파나소닉과의 협력이 공고한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 중국 CATL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볼보 ·지리차나 포드, GM, BMW 등도 한국 브랜드들과 인연이 깊다. 최근에야 배터리 발주시장에 뛰어든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도 눈길을 끈다.


폭스바겐은 전세계서 생산되는 배터리 중 상당부분을 빨아들이는 대규모 바이어지만 최근 배터리 내재화 계획을 선언하며 한국 브랜드들과의 연결고리가 희미해지고 있다. 대신 CATL과의 협력은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자체 투자브랜드인 노쓰볼트의 배터리 양산 성공 여부가 단기적으로는 최대 변수다.


또다른 대형 변수는 잠잠한 거인 토요타다. 토요타는 전기차용 배터리를 초기부터 내재화하기로 하고 개발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 cheerup@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