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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잡놈 최강민의 영화 탐험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by웹진 <문화 다>

다니엘 로비 감독의 <인 더 더스트>(2018)

1. 인류 파멸의 카운트다운, 인류세

눈을 뜬다. 청명한 하늘과 함께 시작하는 상쾌한 하루. 이러한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2019년 3월은 미세먼지와 함께 태동했다. 머리카락의 1/30 크기로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수돗물을 불신했고, 마트에서 물을 사 먹거나 정수한 물을 먹었다. 만원 버스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동차를 구입했지만,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는 매연으로 가득했다. 때가 되면 TV는 녹조라떼로 변신한 강의 알몸을 방송한다. 이것이 우리가 진정 희망했던 발전일까? 문제는 산업화, 근대화가 지구 곳곳에서 계속 추진될 것이기에 우울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미세먼지다. 미세먼지는 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1㎛=1000분의 1㎜) 이하의 먼지다. 미세먼지는 대기오염물질, 화석연료의 연소과정에서 생겨난 탄소류와 검댕, 광물 등으로 구성된다. 자동차, 공장 굴뚝, 화력 발전소는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들이다. 대량의 미세먼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신호이다. 지구는 언제부터 병 들기 시작했을까?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 연료의 대량 사용, 공장식 대량생산을 통한 쓰레기가 양산되면서부터이다. 지구 최대의 적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사람들은 집 안이 더러워지면 청소를 하고, 그 부산물들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방과 집을 청소했기에 쾌적한 환경을 확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쓰레기는 처리된 것이 아니다. 쓰레기는 한 장소에서 특정 장소로 옮겨졌을 뿐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공장식 기계화, 분업 시스템을 통해 비약적인 생산력을 갖게 되었다. 항상 자연에 지배받았던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연을 지배하는 강자의 권력도 갖게 되었다. 인간들은 인간중심주의를 작동시키면서 지구의 자원을 대량으로 소비했다. 땅 속 깊이 묻어 있던 석유와 석탄을 연료로 마구 썼고, 그것이 모자라기 시작할 무렵에 세릴 가스를 개발했다. 거대한 힘을 갖게 된 인간들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19세기초 10억 명을 돌파했고, 2017년에는 세계 인구가 76억 명이라고 한다. 인간들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76억 명의 사람들이 매일 먹고 일하는 과정에서 온갖 부산물들이 나온다. 그것들의 상당 부분은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재활용하지 못하는 쓰레기와 환경 오염 물질을 어떻게 치워야 지구 환경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일부 지구 시스템 과학자들은 온화한 기후가 지배하는 1만년 동안의 홀로세가 끝났다고 말한다. 인류가 초래한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지구 시스템 전반이 급격하게 변하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인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클라이브 해밀턴은 『인류세』(2017)에서 지구 환경의 변화 속에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실체를 경고하고 있다. 과거 빙하시대는 지구를 얼어붙게 한 낮은 온도 때문에 많은 생물들이 죽고 지구가 다시 리셋 되는 시대를 경험했다. 인류세는 바로 인간으로 인해 지구 시스템이 급격하게 변하여 생물이 생존하기 어려운 지구 환경이 도래한다는 것을 말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했던 인류는 자신을 파멸시키는 희극적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똑똑한 이성적 동물이 아니라 지구 최고의 석두인 셈이다.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2019년, 한국을 자주 습격하는 미세먼지는 인류 파멸이라는 인류세의 등장을 알려주는 상징적 징후이다. 아직 그 파멸의 미래가 멀었다고 지구의 미래에 무관심해도 되는 것일까. 인류의 후손들은 인류 종말을 앞당긴 선조들에게 냉혹한 평가를 내릴 가능성이 높다. 후대에 산업혁명은 인류의 축복이 아니라 저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인간의 탐욕과 자원 낭비를 부추긴 자본주의는 지구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경제 시스템으로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2. 살인 미세먼지의 습격

요즘 영화에서 지구 종말을 소재로 한 아포칼립스(apocalypse) 영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아포칼립스 소재로 한 기존 영화들은 전염병, 좀비, 핵폭탄 등을 소재로 했다. 이러한 영화의 등장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관객들의 욕망, 인류세로 대변되는 지구 위기의 징후를 함께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최근에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일상에서 자주 체험하는 것은 미세먼지다. 다니엘 로비 감독은 <인 더 더스트>(2018)라는 영화에서 살인 미세먼지를 통해 인류가 초래한 지구 환경의 재앙을 충격적으로 경고한다. 살인 미세먼지는 인간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지구의 역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오만에 빠져 지구 환경을 인간의 노예나 교환가치로 파악했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부터 지구 시스템에 중대한 교란이 발생했고, 이것이 기후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 더 더스트>는 서두에서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6.7의 지진이 발생하고, 기상이변도 발생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프랑스 파리에서도 지진이 발생하고 갈라진 땅 밑에서 살인 미세먼지가 발생한다. 살인 미세먼지의 습격 속에 파리 시민 60% 이상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 이 영화는 미세먼지의 독성이 강해지는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영화적 상상력으로 관객에게 보여준다. 미세먼지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인들은 살인 미세먼지를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이 영화는 주인공인 마티유와 아내 안나가 살인 미세먼지의 발생 속에 딸 사라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장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 지진과 함께 살인 미세먼지가 땅 밑에서 솟아오르자 마티유는 아내 안나와 함께 맨 꼭대기인 7층으로 대피한다. 딸 사라는 선천성 호흡기 장애인 스팀베르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3층에 있는 보호장치에 머물러야 한다. 6층 높이까지 차오른 살인 미세먼지는 한 층 높이를 2.5미터로 계산한다면 15미터 정도의 높이다. 이 정도면 파리 시민 상당수가 사망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살인 미세먼지의 수위는 시간당 몇 센치 정도 조금씩 높아진다. 살인 미세먼지로 인해 세상이 종말하는 아포칼립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마티유는 산소통을 착용하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살인 미세먼지를 흡입하고 사망한 수많은 파리 시민들의 시체를 확인한다. 살인 미세먼지가 주는 공포와 폭력성은 살인 미세먼지 속에 사람들을 물려고 덤벼드는 사나운 개를 통해 상징화된다. 개에게 쫓긴 마티유는 강물에 추락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강물에서 땅으로 올라온다. 마티유와 안나는 어렵게 합류해 딸을 구조할 특수 방호복을 구하지만 폭발 사고로 마티유가 부상을 당한다. 딸을 생존시키려는 마티유와 안나의 필사적인 움직임은 인류를 생존시키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상징한다. 지진으로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 사라를 구출해야 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전기가 끊어진 상황에서 사라의 생존 보호장치는 배터리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안나는 죽게 된다. 사라에게 남겨진 생존 유예 기간은 인류에게 남겨진 짧은 생존 유예 기간이기도 하다. 마티유와 안나의 노력으로 인해 사라가 생존하게 된다면 인간의 힘으로 살인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극복하고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음을 이 영화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나는 어렵게 특수 방호복을 갖고 돌아가지만 방호복이 손상되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영화에서 엄마는 과학자이자 계몽적 지식인으로서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 문제를 해결한다. 안나는 살인 미세먼지가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파악한다. 엄마인 안나는 이 원인을 알 수 없다. 이것은 과학과 이성으로 구축한 근현대문명이 살인 미세먼지로 대변되는 지구 환경 파괴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는, 아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라의 배터리가 2분 남았다는 표시에 안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3층에 내려가 배터리를 교체하는 모성애를 보여준다. 안나는 과학자로서 비닐봉지를 활용해 임시 산소통을 만드는 과학적 발상을 아예 하지 못한다. 안나는 딸을 보는 데에 몇 초를 허비하는 비이성적 행동도 한다. 결국 안나는 배터리를 교체하고 7층으로 올라가다가 산소 부족으로 살인 미세먼지를 흡입하고 사망한다. 논리적, 과학적 사고를 대변하는 과학자인 안나의 죽음은 과학 문명으로 대변되는 근현대 문명의 죽음을 의미한다.

3. 인류의 미래는?

마티유는 지붕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악덕 경찰을 만난다. 그는 시민들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부터 챙기는 타락한 권력자 내지 지배층을 상징한다. 마티유는 경찰과 사투 끝에 집으로 돌아온다. 인류 멸망이라는 재난 앞에서 지배층의 타락과 피지배층의 폭동은 재난에 대해 효율적인 대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티유는 집에 도착하지만 안나의 비극적인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한다. 살인 미세먼지가 남긴 재난의 비극은 안나의 죽음을 통해 극대화된다. 2차 여진이 발생하고 점점 수위가 올라오는 살인 미세먼지 앞에서 7층의 노부부도 죽음을 맞이한다. 마티유와 관객들은 어떠한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절망적 현실만을 시시각각으로 확인할 뿐이다.

 

마티유는 딸 안나를 살리기 위해 방호복을 구하러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다. 힘겹게 집으로 귀환하던 중 잠시 도로에 앉은 마티유의 눈에 어떤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걸어오는 딸 사라를 발견한다. 딸의 생명을 위해 그렇게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소용없게 되는 현실의 아이러니. 딸 사라는 살인 미세먼지 속에 아무런 지장없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이전에 알았다면 아내 안나는 결코 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극적 결말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기존 세계관을 가진 구세대에게서 지구 환경 재난의 해결법 내지 극복법을 발견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의 반영이다. 다니엘 로비 감독은 마티유의 꿈을 통해 해맑은 모습으로 푸른 하늘 아래에서 꽃밭 속을 뛰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전달한다. 이것은 역으로 새로운 발상의 전환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지 않는 한 아포칼립스의 비극을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감독의 비판적 인식을 반영한다. 보호장치 속에 마티유가 사라 대신에 있게 되고, 사라가 아빠를 돌보아야 하는 위치의 극적 전환도 새로운 세대를 통해서만 지구 환경 재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감독의 절망적 인식을 보여준다.

살인 미세먼지와 인류 종말의 미래

<인 더 더스트>는 살인 미세먼지라는 지구 종말의 재난을 스팀베르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구하기 위해 사투하는 부모의 몸부림을 통해 보여준다. 재난영화에서 보통 과학자가 주인공인 경우 재난의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할 방안을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 안나는 과학자이지만 지구 환경 시스템 과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살인 미세먼지의 원인을 파악할 수도 없고, 그것을 극복할 방법도 제시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안나는 살인 미세먼지의 원인을 규명하고 극복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지구 환경 재난 앞에서 무기력한 근현대 과학문명을 상징한다. 그래서 그녀는 딸을 구하다가 끝내 사망하는 비극에 직면해야 했다. 반면에 남편인 마티유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적어도 딸을 사랑하고 딸에게 자유로운 삶을 주려고 노력하는 부성애로 가득한 존재이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난 딸을 마주할 수 있는 마티유의 모습은 과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부성애, 즉 사랑을 통해 지구 환경 재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영화에서 살인 미세먼지의 발생과 독성은 과학적 논리에 기반하여 등장한 것이 아니다. 성인 개는 살인 미세먼지에 의해 죽는데 강아지는 죽지 않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미세먼지 속에서 마티유와 안나를 습격하는 어떤 성인 개는 살인 미세먼지 속에서도 전혀 지장없이 돌아다니며 인간을 습격한다. 선천성 호흡기 병인 스팀베르거 증후군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오히려 살인 미세먼지 속에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다는 설정도 과학적으로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감독은 과학적 사실과 무관하게 새로운 세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하기 위해 서사를 배치했던 것이다. 이 영화는 소재의 신선함과 발상이 좋다. 하지만 서사적 개연성과 설득력이 약하다. 마티유가 계단에서 죽은 안나의 시신을 그대로 놓고 7층에 올라오는 것도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런 한계를 노출하지만 살인 미세먼지를 통해 지구 환경의 심각성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영화다.

 

앞으로 미래에 가끔이 아니라 365일 비상저감 조치를 실시하는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그때는 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면이 필수 생존도구로 지급될 것이다. 미래에 아이들은 바깥에서,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할 수 있다. 대부분의 활동은 공기청정기가 작동하는 실내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신선한 공기는 큰 마음을 먹고 외식하는 것처럼 사야만 하는 값비싼 사치품이 될 것이다. 이때 가장 치명적인 병은 폐병이나 폐암이 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파란 하늘과 신선한 공기가 있었던 신화같은 과거를 애타게 그리워할 것이다. 이러한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인 더 더스트>에 등장하는 살인 미세먼지가 픽션일지 논픽션일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 중심이 아니라 지구 중심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이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버리고 타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뿌우옇게 다가온 살인 미세먼지는 우리의 숨통을, 우리의 미래를 잔인하게 살해할 것이다. 그때는 아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었을 시간이 될 것이다.

 

인류는 이제 인류의 파멸을 예고한 인류세의 움직임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결단을 해야 한다. 그것은 흥청망청 소비하거나 낭비하던 시대와 단호하게 결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안락함, 편리함 등 기존에 누리던 상당 부분의 문명 혜택을 유보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인류 파멸의 카운트다운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별점

 대중성

 ★★★★☆ 8 

 평균

 최종 별점

 작품성

 ★★★☆☆ 6

7.0

8.0

 

최강민(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