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보초서던 '비밀 벙커'의 변신…미디어아트 전당으로

'빛의 벙커'…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

 

'클림트'전 이어 '반 고흐'전 열려…

명작 쉽게 접근하기 위한 '매개공간'

뉴스1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빛의 벙커'.© 뉴스1 이기림 기자

대한민국의 가장 큰 섬, 제주도의 동쪽 끝에는 성산읍이란 행정구역이 있다. 수중 폭발한 화산이자 일출 명소인 '성산일출봉'이 유명한 이곳에 최근 새로운 '명소'로 불리는 미술관이 등장했다. 제주시청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달리다 보면 있는 '빛의 벙커'가 바로 그곳이다.


처음 빛의 벙커에 들어서면 다소 생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데다 군부대에서나 볼 법한 위장 무늬 벽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빛의 벙커는 원래 미술관이 아니라 외부에 그 존재를 숨기기 위해 건립된 '비밀 벙커'이다.


빛의 벙커는 정부가 국가 기간 통신망 운용을 위해 한국과 일본, 한반도와 제주도 사이에 구축한 해저 광케이블을 관리하던 센터였다. 축구장 절반 크기인 900평 면적의 대형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산자락처럼 보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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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빛의 벙커에서 개막한 반 고흐 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2019.12.6/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센터로 운용됐을 때에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며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180도 바뀌었다. 방어의 목적으로 설계됐지만 이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도 최적의 조건이었다.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내부 높이 5.5m의 1층 단층 건물로, 내부에는 넓이 1m²의 기둥 27개가 나란히 있어 공간의 깊이감이 느껴진다. 또한 자연공기순환 방식이 이용돼 연중 16도 쾌적한 온도가 유지되고 벌레 및 해충이 없다고. 외부의 빛과 소리도 완전히 차단돼 관객들이 전시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돼있다.


그렇게 이 벙커는 프랑스 몰입형 미디어아트 시스템을 통해 화려한 효과를 동반한 거장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장으로 2018년 개관했다. 이 시스템은 작품과 음악을 통해 전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프랑스 레보드프로방스의 폐쇄된 채석장 동굴에 2012년 '빛의 채석장'으로 도입된 이후 파리 '빛의 아틀리에'와 제주 '빛의 벙커'에서 선보이고 있다.


이를 위해 빛의 벙커에 90대 프로젝터와 69대 스피커를 배치했고, 그 첫 번째 전시로 지난해 11월 유명한 황금빛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전을 열었다. 이는 11개월간 55만여명의 유료 관람객을 불러 모으며 빛의 벙커를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반 고흐 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벤치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2019.12.6/뉴스1 © News1 오현지 기자

비밀 벙커의 모습을 유지한 전시장 안에 들어오면 관람객들은 우선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이어 어둠과 화려한 색채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영화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실물보다 확대된 거장들의 작품은 형태와 색을 보다 깊게 느낄 수 있고, 전시장을 가득 채우는 음악으로 작가와 작품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벽과 바닥에 나오는 작품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재현된다. 그림마다 설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 그림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또한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게 준비돼 있다. 공간이 크다보니 앉아서 전시를 볼 수 있게끔 벤치도 마련돼 있다.


성산읍이 제주 도심과 거리가 있는 관계로 빛의 벙커만 구경하고 가기엔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빛의 벙커를 둘러싸고 있는 야외 정원과 삼나무·편백나무 숲, 대수산봉 둘레길이나 올레길을 걸으며 자연을 느끼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빛의 벙커 앞에 위치한 제주커피박물관 바움을 관람하거나 자가용으로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을 들르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된다.

 

담당자가 말하는 '빛의 벙커'

"정통적인 전시방식이 아니라 편안한 환경에서 편한 복장을 입고 산책하듯 그림을 볼 수 있는 친근하고 새로운 방식의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사전 지식 없이 있는 그대로 그림과 음악에 빠져들 수 있게 기획했죠. 오리지널 그림으로 향하는 중간단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계의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전시장을 뛰어다니면서 호기심을 갖고 밖에 나가서는 '이 그림 누가 그린 거야?'라고 묻고 그림을 그릴 때 전시목적을 충분히 이룬 거겠죠." - 박진우 티모넷 대표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lgirim@news1.kr

2019.12.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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