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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기해년 '노동의 새벽' 깨운 6411번 버스 "모두 잘 됐으면"

by뉴스1

故노회찬 언급 구로~강남 '노동버스'…"90% 잡부"

30분 만에 만차…"늘 보는 얼굴" 반갑게 새해인사

기해년 '노동의 새벽' 깨운 6411

기해년 첫 출근이 시작된 2일 오전 5시 6411번 버스가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에 들어서고 있다.2019.01.02/뉴스1 © News1 서영빈 기자

2019년 첫 출근일인 2일, 저마다 '황금돼지'를 꿈꾸며 곤히 잠든 시간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새벽을 깨우는 이들이 있다.


지하철 첫차 시간보다 1시간30분이나 이른 오전 4시 서울 구로역 인근 거리공원에는 영하 10도 추위를 뚫고 '새벽 출근'에 나선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거리공원을 출발해 구로시장·대림동·영등포·노량진·여의도·고속터미널·논현동·개포동까지 한강 이남을 횡단하는 '노동버스' 6411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한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 속에서도 사람들은 정거장에 앉아 정겹게 귤과 사탕을 나누며 새해 인사를 나눴다.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기자에게 귤을 건넨 김모씨(72·여)는 "이 시간에 6411번(버스) 타는 사람은 90%가 잡부"라고 했다. 은 기해년 첫 출근길을 6411번 버스와 동행하며 '잡부'의 말을 들었다.

노회찬이 말한 '노동버스' 6411번…"90%가 잡부"

6411버스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지난 2012년 당 대표 수락연설 당시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하며 세간에 알려진 '노동버스'다.


당시 노 의원은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라며 "6411번 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노동자들은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투명인간'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4시 첫차가 첫 정거장을 출발할 때부터 시끌벅적한 대화와 신년인사 소리가 울렸던 6411번 버스는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도 없는 '만차'가 됐다.


구로시장과 남구로역, 대림역을 거칠 때마다 우르르 버스에 탑승한 승객들은 김씨의 말대로 모두 빌딩관리나 일용직 노동, 건물 청소를 하는 '잡부'였다. 승객들은 마치 '통근버스'에 탄 듯이 스스럼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첫 정류장부터 선릉까지 간다고 말한 김씨도 한 건물에서 환경미화일을 오래 했다. 그는 "이 버스 타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출근길마다 얼굴을 본 사이"라며 "서로 다 안다"고 전했다.


두 번째 정거장에서 탄 박모씨(64·여)는 겨울철 건축 공사장에서 막줄 작업을 했다. 그는 "안 그래도 추운 날씨지만 여자라서 더 춥다"면서 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수 년째 6411버스를 탔다는 경비원 공모씨(64)는 "새해 첫 출근부터 아주머니들 표정이 밝아서 나도 기분이 좋다"며 "다들 건강하고 하는 일도 잘 돼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기해년 '노동의 새벽' 깨운 6411

기해년(己亥年) 첫날인 1일 오전 대전 유성구 엑스포다리에서 시민들이 희망찬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며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2019.1.1/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고된 삶이지만…"새해 소망은 가족·동료 건강과 행복"

'아주머니' '아저씨'들은 새해 소망으로 당신의 고된 일보다 가족이나 주변의 건강과 행복을 먼저 빌었다.


'귤 아주머니' 김씨는 "아들과 딸 모두 결혼해 대학생 손주가 둘이나 있다"고 자랑하면서 "대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여기 버스 타고 일 나가는 사람들도 올해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막줄 작업을 하는 박씨도, 경비원 공씨도 '다 늙어서 새해 소원이 어디 있느냐'고 손사래를 치다가도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버스가 노량진역을 지나며 '만차'가 되자 콩나물처럼 다닥다닥 밀착한 승객들은 답답한 듯 '어우, 어우' 소리를 냈다. 도로는 어둡고 한산했지만, 새벽길을 달리는 6411번 버스 안에는 온통 하얀 김이 서렸다.


승객들을 강남 일대에 차례로 하차시킨 버스기사 박군재씨(58)는 "노량진, 흑석역에서 우르르 몰려 탄 승객들은 고속터미널역이나 학동, 선릉역에서 거의 다 내린다"며 "버스가 3~4분만 일찍 나오거나 2~3분만 늦어도 많이 예민하셔서 늘 정시 운행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지하철 첫차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탓에 출근길 1분 1초가 아쉬운 사람들이라는 설명이다.


오전 5시20분, 승객 5명을 남기고 모두 하차해 텅 빈 버스만 남았을 때도 동은 트지 않았다.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서영빈 기자 = dongchoi8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