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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삼풍百 일식집 막내 "'나가! 이새끼야' 주방장 외침이 날 살렸죠"

by뉴스1

'25년전 참사 생존' 일식집 사장된 이병훈씨 "날 대피시킨 그분 끝내…"

천장 물 떨어지는데 괜찮다던 백화점, 갑자기 보석 챙긴뒤 와르르

뉴스1

사진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서울시사편찬위 제공) 2013.1.27/뉴스1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화양연화'를 통해 최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다시 조명됐다. 주인공 윤지수(이보영 분)가 이 사고로 엄마와 동생을 잃고 그 트라우마로 가정이 붕괴하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올해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5주년을 맞았다. 1995년 6월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초호화 백화점이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으며 502명이 사망했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사람이 많이 죽은 단일 사고였다.


당시 삼풍백화점 5층의 일식집 막내로 일했던 이병호씨는 이제 강남의 한 일식집 사장님이 됐다. 21살의 철없던 이씨는 46살의 지긋한 어른이 돼 자신의 가게에서 매일같이 회를 썰고 초밥을 쥔다.


이씨는 "그 사고가 난 지 벌써 이만큼 지났나"라고 말하면서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2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위치한 이씨의 가게에서 삼풍백화점 사고와 이후 이씨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들었다.

삼풍백화점 생존자, 이병호씨가 그린 25년 전 오늘

그날은 이미 '장사를 공친 날'이었다. 오전부터 주변 식당들의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천장에서 물이 샜고 손님이 시킨 음식 위로 물이 똑똑 떨어졌다.


이씨가 일하던 일식집 사장은 건물에 이상이 없는지 두 번이나 백화점 측에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문제없으니 장사를 계속하시라"였다.


주변이 뒤숭숭하니 이씨가 일하는 일식집에는 20명 남짓한 직원과 손님 2명뿐이었다. 가게가 있던 5층 홀에서는 '흑진주 박람회'를 했는데 백화점 측에서 갑자기 전시한 미술품과 보석을 수거해가는 모습이 이씨의 눈에 띄었다.


"나가! 이 새끼야!" 이씨는 험한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번쩍 차렸다. 홀에서 건물의 상황을 보던 주방장이 식당으로 달려오며 외쳤다. 나이가 지긋한 주방장은 막내인 이씨를 귀여워할 뿐, 이씨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이씨는 대피하라는 말을 듣고서도 정리를 좀 해두고 나가겠다고 했다. 캐셔 누나도 "돈 통을 놔두고 왔다"며 걱정했다. 사장과 주방장 등 가게의 어른들은 "괜찮다, 내가 챙기마"라며 막내들을 먼저 내보냈다. 이씨는 "주방장님은 그렇게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5층에서 대피하면서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건물이 휘청이자 사람들은 주저앉았다. 전기가 나갔고 시멘트 바람이 불면서 창문의 빛을 죄다 가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문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같이 일하던 또래 여자애 둘이 있었다. 이씨는 둘의 손을 붙잡고 같이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은 지하 1층에 모여있었다. 얼굴 높이에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하나 있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건물이 더 무너질까 봐 다들 다가가질 못하다가 백화점 청원경찰 직원이 "여기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자 용기를 얻었다.


이씨는 "사람들이 힘든 사람들, 다친 사람들, 여자 먼저 나가야 한다고 하더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젊고 기운이 있었던 이씨는 제일 마지막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씨의 트라우마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이씨는 자신이 구멍을 통해 나오는 순간 뒤편으로부터 "살려주세요"라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다.


이씨는 '세월호 의인' 김동수씨가 자살시도를 한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가 더 커졌다"며 "한동안 그것 때문에 무섭고 괴로웠다"고 밝혔다. 이 사고로 이씨의 동료 20여명 중 4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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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20주기를 앞둔 26일 오후 서울 양재동 양재시민의 숲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탑에 한 시민이 묵념을 하고 있다.. 2015.6.26/뉴스1 © News1 손형주 기자

"우리나라, 교훈 얻었을 것…서로 도우려는 국민성, 감동"

이씨는 "1990년대 초는 유독 붕괴 사고가 잦았지만, 그 후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다. 우리나라는 결코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시는 외환위기 직전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가장 호황일 시절이었지만, 내실은 개발지상주의와 부정·비리로 얼룩져 있었다. 검찰은 이 사고를 설계 결함, 부실시공 등으로 인한 '전형적인 인재'로 봤다.


이씨는 "아무리 우리가 '안전 불감증'이라고들 하지만 이후로는 이만한 규모의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사고는 없지 않았냐"며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는 몸에 나지 않은 상처는 생각도 못했지만 요즘에는 '트라우마'도 치료를 해준다고 하더라"고 했다. 지금은 붕괴·화재 사고뿐만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질병에 대한 트라우마도 치료해주는 사회로 발전했다.


사고 후 25년이 지났지만 이씨에게는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이씨는 "아직도 큰 건물이나 지하, 밀폐된 곳에는 들어가지 못한다"며 "잠실에 롯데월드타워가 생기고는 건물이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가 나오니까 동네 주민들이 보고 도와주려고 뛰어오더라. 감동이었다"고 했다. 한 학생은 생수통을 들고 뛰어다니며 시멘트를 잔뜩 먹은 사람들이 입을 헹굴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나가던 차들은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사고 직후 사장은 직원들을 한데 불러 퇴직금과 남은 월급을 챙겨줬다. 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사장도 큰 손해를 봤지만 "난 먹고살 만해. 괜찮아"라며 한사코 직원들 손에 돈을 쥐여줬다. 이씨는 "'그땐 어려서 잘 몰랐는데 사장님 나이가 돼 보니 그렇게 하기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씨는 살아난 것에 대해 "천운"이라고 했다. 이씨는 원래 그 시간이면 쓰레기를 버리러 지하 3층에 내려갔다. 하지만 그날따라 쓰레기 카트가 보이지 않아 내려가지 못했던 것이다. 지하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적적으로 살아나면서 이씨는 좀 더 천천히, 참을성을 갖고 살아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원래는 욱하는 성격이었는데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좀 더 참아볼까'하며 참는 게 좀 더 늘었다. 성격도 아주 느려졌다"고 말했다.


인터뷰하면서도 이씨는 초밥을 만들고 회를 썰고 손님들을 접대했다. 이야기를 함께 듣던 손님들은 "난 그때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라며 이씨의 손을 꼭 붙잡기도 했다. 전 국민적인 아픔이었고 모두가 삼풍백화점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heming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