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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자운·만장·선인봉의 합창…道로 이끄는 '제일동천'

by뉴스1

도봉산① 도봉산역-은석암-자운봉-도봉계곡 9.9㎞…도심 속 오아시스

Y계곡 오르면 산이라는 그릇에 서울 담긴 듯…도봉계곡엔 '선배'들 풍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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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정상의 위용. 왼쪽에 선인봉-만장봉, 가운데 자운봉, 오른쪽은 포대능선 정상

도봉산은 북한산과 '따로 또 같이' 취급되는 산이다. 우이령을 경계로 남쪽은 북한산, 북쪽은 도봉산이지만, 살을 맞댄 '한 몸의 산'이다. 북한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당연히 도봉산이 포함되었고, 두 산이 힘을 합쳐 거대한 도시에서 사람에게도 생물에게도 푸른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저번에 북한산을 갔으니 이번엔 도봉산을 가자는 식으로 수도권 2000만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도봉산(道峯山)의 이름은 특별하다. 도(道)는 세상의 깊은 이치다. 하늘로 솟구친 바위봉우리들이 도(道)를 깨치려는 모습이어서, 또는 그런 산의 기상이 사람들을 도(道)로 인도하는 모습이어서 도봉산이다. 한강 인근에 도읍을 정한 백제도, 북한산 아래에 도읍을 정한 조선도 도봉산을 통해 국가의 길(道)을 열었을 것이다.


도봉산 정상은 자운봉(739m)-만장봉(718m)-선인봉(708m)이 가깝게 우뚝 솟아 삼봉을 이루고 있다. 최고봉 자운봉(紫雲峰)은 자줏빛 구름이 어려 신비하고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다는 이름이다. 만장봉(萬丈峰)은 높고 높은 봉우리, 선인봉(仙人峰)은 신선이 도를 닦았다는 뜻이다.


도봉산 산행은 주로 도봉계곡과 원도봉계곡, 송추계곡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능선을 통해 정상에 오른 후, 다른 능선과 계곡으로 내려가는 순환코스가 일반적이다. 어디로 오르든 정상 직전에 가파른 암릉을 거쳐야 하지만, 정상에 닿으면 땀을 쏟은 것 이상의 ‘대단한’ 풍경 선물을 받는다.


기자는 도봉산의 대표 탐방로 중 하나인 도봉계곡-다락능선-Y계곡을 통해 자운봉에 오르고, 마당바위-천축사-도봉서원으로 내려오는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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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도봉산역-다락능선-포대능선 5.1㎞ "다락능선-포대능선은 도봉산 전망대"

도봉산역에 내려 기다란 상가를 통과한다. 아웃도어 매장, 식당, 간이매점이 즐비한 여러 갈래 길은 도봉계곡 입구에서 하나의 길로 모인다.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등산로다. 주말마다 이 넓은 통로로 사람의 물결이 밀물 들어오듯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산이 남아날까? 라는 염려를 할 정도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해 북한산국립공원이라고 쓰인 랜드마크 앞에 선다. 왼쪽의 다리를 건너면 무수골 방향의 둘레길로 가거나 우이암으로 오르는 보문능선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곧 왼쪽에 도봉동문(道峯洞門)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조선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송시열이 1650년에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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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절경이라는 제일동천(第一洞天)의 용주담(舂珠潭) 풍경. 도시에서 벗어난지 불과 5분 만에 만나는 자연이다

이 바위를 지나면 왼쪽으로 북한산생태탐방원이 있다. 도봉공원이라는 대형 음식점을 허물고 지은 환경교육용 건물이다. 이 건물의 뒤편 계곡에 제일동천(第一洞天)이라 새긴 바위가 있다. 천하제일의 계곡이란 뜻이다. 바위를 갈라 쏟아진 폭포수가 암반을 몇 굽이 휘돌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려가는 풍경은 언제 보아도 절경이다.


폭포 옆 바위에 '물이 구슬처럼 떨어져 바위를 찧는다'는 뜻인 용주담(舂珠潭), 모든 물(중국의 황허강)은 동쪽으로 간다(지조가 있다)는 뜻인 필동암(必東岩)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도(道)를 닦던 흔적이다. 이 예쁜 풍경을 내려다보는 장소에 가학루(駕鶴樓)라는 정자가 있는데, 학이 날아올 만한 정자이긴 하지만, 건물은 보수가 시급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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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공단의 산악박물관 내부. 산과 관련된 각종 장비, 기념품, 사진, 도서가 전시되어 있다.

생태탐방원에는 다양한 탐방·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있고, 산악안전교육원에서 하는 등산훈련 과정도 있으며, 산악박물관에는 산과 관련된 각종 전시물과 서적이 비치되어 있어 둘러볼만하다. 생태탐방원을 나와 도봉분소에서 직진하여 둘레길의 도봉옛길 숲에 들어서니 물소리와 매미소리, 새소리가 가득하다. 자연에 들어온 것이다.


부드러운 오르막을 10분쯤 가서, 자운봉 3.2㎞라고 쓰인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커브를 틀고, 거친 바위오르막을 넘어 은석암에 도착한다. 커다란 바위 틈을 막아 산신각이라 하고, 작은 바위마다 작은 석불을 쭈욱 얹어놓았을 뿐, 법당이 없는 암자다. 은석암에서 바위능선을 오르자 경사는 점점 급해져, 바위에 박힌 쇠난간과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다락능선 삼거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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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석암과 미륵봉(은석봉). 법당 건물은 없이 바위마다 작은 석불을 얹어놓았다. 산 전체가 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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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능선에서 올려다 본 포대능선 암봉들의 위용. 그리고 산에 안긴듯한 망월사

여기서 5분쯤 올라가, 길 바깥으로 돌출된 전망바위에서 도봉산의 북쪽 스카이라인을 올려다본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하고, 포대능선에 도열한 바위봉우리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망월사 법당들이 초록숲 사이에서 인형의 집처럼 앉아있다. 여기서 15분쯤 더 오른 바위전망대에서 기다란 절벽으로 보이는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을 가깝게 올려다보고, 멀리 북한산의 인수봉과 더 멀리 보현봉 라인을 바라본다. 시내에 뿌연 안개가 끼어있는 것을 제외하곤 100점짜리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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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능선에서 올려다 본 도봉산 정상. 흔히 ‘도봉산 사령부’라고 부른다. 왼쪽 선인봉-만장봉, 가운데 자운봉, 오른쪽 포대능선 정상

정상에 다가갈수록 '닥치고 오르막'이다. 수직 암릉에 박힌 난간과 쇠줄을 부여잡고 기어올라 418안전쉼터에서 호흡을 고른 뒤, 기다란 데크계단을 올라 포대능선 전망대에 도착한다. 예전에 적기를 격추시키기 위한 방공포대가 있었던 곳일 만큼 전망이 확 트였다. 바로 코앞의 자운-만장-선인 3형제 암봉도, 그 옆으로 멀리 삼각산의 3형제 암봉도, 포대능선에서 사패능선으로 이어지는 암릉도, 멀리 수락산과 불암산 전망도 압권이다. 송추 넘어 일산 방향은 안개가 자욱하다.

◇ 포대능선-신선대-도봉계곡 4.8㎞ "짜릿한 Y계곡 올라, 자운봉 기운 받고, 도봉계곡 풍류에 젖어"

와이(Y)계곡으로 내려선다. Y자 형태로 깊이 내려갔다 올라서는, 급경사라기보다는 거의 수직 암릉이다. 지난 10년 동안 25명의 사상자가 있었다는 경고판이 있고, 그 옆에 안전한 우회로 표지판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Y계곡으로 빠진다. 쇠난간을 꽉! 잡고 난간기둥과 쇠발판과 바위틈을 조심조심 디디며 뒷걸음으로 내려선다. 다리가 짧다고 농을 하는 사람 때문에 낄낄대느라 몸 균형이 흐트러진다.


올라서는 것도 쉽지 않다. 이렇게 '쇠'에게 감사한 적이 있었던가? 쇠난간과 쇠줄과 쇠파이프를 잡고, 밟고, 끌어안고, 끙끙대며 '네 발로' 올라선다. 팔힘이 떨어질 무렵, 마지막 용을 쓰고 암릉 꼭대기에 오른다. 스릴 넘치는 도봉산의 명소다. 주말과 휴일에는 포대능선에서 Y계곡 방향으로만 일방통행제가 실시된다.


도봉산 정상은 정말 쉽지 않다. Y계곡에서 팔힘을 다 쓰고, 이제 정상으로 오르는 기다란 계단에서 발힘을 다 쓴 끝에, 드디어 신선대(726m)에 선다. 사방팔방의 조망 중에서도 우선 코앞의 자운봉을 올려다본다. 커다란 바위가 갈라지고 쪼개져, 여러 개 바위들이 떡시루처럼 쌓여 있는 그곳에 도봉산 최고의 기상과 기품이 서려있다. 온누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봉의 왕이다. 남쪽으로 우람한 바위봉우리들이 솟구친 도봉주능선이 힘차게 뻗어내려 오봉능선과 우이암능선으로 갈라진 골격과 핏줄이 선명하다. 그 너머에 북한산의 윤곽이 이쪽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하얀 도화지같은 도시와 건너편 산줄기를 바라보며, 산은 도시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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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봉. 도봉산의 기운을 모아 온누리에 전하는 듯한 기상이 서려있다. 오른쪽 아래는 만장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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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봉에서 남쪽으로 힘차게 뻗은 도봉주능선.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신선대에서 바로 마당바위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 있고, 주봉을 돌아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주봉(柱峰)은 기둥처럼 생긴 바위봉우리로 위험해서 출입금지다. 주봉에서 금줄을 넘어온 등산객 3명이 다시 금줄을 넘어 샛길로 들어가 "국공(국립공원 직원)한테 걸리면 30만원이다!" 하면서 사라진다. 도봉산과 북한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샛길이다. 샛길은 산을 조각내고, 야생동물 서식지를 옥죈다.


주봉 갈림길에서 15분쯤 급경사 돌길을 내려서니 계곡물이 콸콸 쏟아지는 지점과 만난다. 계곡의 상류에도 물이 넘치니 산도 나도 시원하다. 조금 더 내려가 관음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산허리를 돌면 곧 마당바위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마당바위에 햇빛이 쨍쨍하고, 사람들은 소나무 밑에서 그늘을 즐기고 있다. 배낭을 벗고 간식을 꺼내는데, 부스럭 소리를 들은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고양이 문제는 참 골칫거리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산에서 쥐, 새, 개구리 등의 동물들을 마구 잡아먹는 피해를 주고 있다. 자연생태계에서 고양이는 퇴치해야 할 외래종이다. 황소개구리와 같다. 그러나 '불쌍한' 고양이를 잡아내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고양이를 안전하게 포획해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대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 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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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봉과 천축사. 선인봉이 마치 부처님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절 풍경

돌계단을 길게 내려가 천축사에 닿는다. 천축(天竺)은 천축국(인도)에서 따온 이름이다. 법당은 다른 절과 같은데, 법당 뒤에 우뚝 선 선인봉이 이 절에 엄청난 기운을 주는 풍경이다. 종무소 앞 그늘의 대형 선풍기 앞에서 잠시 졸다가 일어선다. 도봉대피소 삼거리를 지나 계곡 하류에 이르니 평소에 숨어있던 작은 폭포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곧 도봉서원터에 이른다. 조선시대의 유교 이념을 좌지우지했던 조광조와 송시열을 기리는 '엄청 잘나갔던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완전히 헐렸다. 이 서원을 복원하기 위한 작업을 하던 중 불교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복원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서원터 앞 계곡의 바위에 고산앙지(高山仰止)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조광조를 높은 산처럼 우러른다는 뜻이다. 이 주변에 '시냇물을 베개 삼아 누워 즐겼던' 침류대(枕流臺)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천민 출신이지만 큰 인물이 된 유희경이 풍류를 즐기던 장소다. 계곡 왼쪽은 메꾸어져 넓은 길이 되었지만, 오른쪽의 반쪽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 오른쪽 풍광을 왼쪽 길에 중첩시키니 과연 '제일동천(第一洞天)', 천하제일의 절경이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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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계곡의 스토리. 왼쪽 ‘천하제일의 절경’이라는 제일동천, 중간 ‘스승을 높은 산처럼 우러른다’는 고산앙지, 오른쪽 유희경-이매창 시비(詩碑).

도봉계곡 입구에 있는 유희경-이매창 시비(詩碑)에서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 도봉계곡에서 유희경은 그가 사모한 여인을 그리며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오동잎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라는 시를 썼다. 그 여인은 여류시인 이매창이다. 매창은 전라도 부안에서 유희경을 그리며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라고 노래했다. 이 시비는 가운데가 갈라진 두 개의 몸체이지만, 서로 다가서려는 몸짓을 표현하고 있다.


도봉산에 들어가 도(道)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자운봉 정상에서 드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도봉계곡에서 선배들의 풍류와 애절한 스토리를 접했다. 가슴을 넓히고 깊게 한 산행이었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stone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