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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이름만 군자, 괴산의 악산…일망무제 '조망 잭팟' 와~

by뉴스1

속리산국립공원② 군자산-쌍곡폭포 10.2㎞…김홍도 울고간 첩첩산중 중심

네발로 정상 서면 '산악제국' 아득…칠보산 지나 '알탕 금지' 쌍곡계곡 사이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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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산 정상에서. 고사목 두 그루가 사슴의 뿔과 같다. 그 사이로 펼쳐진 ‘산의 바다’ 끝에 백두대간 능선이 늘어서 있다

이름은 점잖지만 길은 거치른 군자산(君子山)을 간다. 군자산이 위치한 충북 괴산(槐山)의 괴(槐)는 한자로 홰나무(회화나무)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느티나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괴산은 '느티나무 산'이라는 뜻이다. 산이 많은 괴산군에서는 50명산을 홍보하고 있다.


괴산의 동쪽 경계는 백두대간인 조령산(1025m), 희양산(998m), 대야산(931m) 등의 험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남쪽은 속리산(1058m)과 맞닿아 있다. 괴산의 안쪽도 박달산, 보배산, 도명산 등의 400~800m급 산이 많아,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괴산의 연풍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첩첩산중이라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런 괴산의 중심산이 군자산(948m)이다. 속리산국립공원에 소속된 '국가대표 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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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강 풍경. 금강산의 한 조각을 옮겨놓은 듯해서 소금강으로 부른다. 사진 이호성

군자산의 들머리는 쌍곡계곡의 입구에 있는 소금강이다. 쌍곡은 화양동, 선유동과 함께 속리산국립공원의 3대 계곡이고, 소금강은 쌍곡의 구곡(九曲, 아홉개의 절경) 중 하나다. 기다란 절벽과 소나무가 계곡과 어우러진 경치가 금강산 같다 하여 소금강이라 부른다.


등산로의 난이도를 표기하는 안내도에 소금강에서 군자산 정상까지 2.5㎞는 '매우 어려움'으로 표기되어 있다. 설악산 대청봉이나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는 것처럼 힘이 든다는 것이다. 하산로 4㎞도 전부 ‘어려움’으로 표기되어 있다. 군자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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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 소금강 주차장~군자산~도마골 6.5㎞ "악산보다 험한 군자산, 내리막 너덜너덜"

등산로는 처음부터 정상까지 거의 급한 오르막이고, 몇 개의 짧은 내리막도 급경사다. 가파른 비탈에 설치된 일부 계단과 로프를 제외하고는 안전시설이 없다. 오르막의 대부분은 나무뿌리나 돌이 발판이고, 발자국으로 다지거나 삽으로 파서 발판을 만든 비탈도 있다. 이정표도 몇 개 없어서 국립공원사무소에서 매단 노란 리본을 따라 올라간다. 한마디로 자연 그대로의 산길이다. '국립공원이 이래서 되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자는 이런 곳이야말로 국립공원답다는 생각을 한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있어야 하는 곳이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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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산 등산로. 계단은 거의 없이, 나무뿌리와 돌을 밟고 올라서는 거친 오르막이다.

계속 올라가기만 하므로, 출발한 지 7분만에 첫 계단의 끝에서 "벌써 이리 고도를 높였나?" 하며 아랫마을과 건너편 산을 바라본다. 이후로는 전망이 터지는 곳이 없어서 아무 생각없이 올라가기만 할 뿐이다. 호흡은 금방 거칠어지고 땀이 송송 솟지만,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기운을 돋우어 준다.


45분쯤 지나니 첫 이정표가 나온다. 2㎞는 온 거 같은데, 불과 1.1㎞ 왔다는 표지다. 이런 악산을 1.4㎞ 더 가야 하다니! 주저앉아 있던 어떤 사람이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이름없는 산'을 우습게 보고 왔지만, 이제라도 자기 체력을 감안해서 현명하게 판단한 것이다. 길은 더욱 거칠어진다. 올라설수록 '훤한' 꼭대기로 가는 게 아니라 '컴컴한' 깊은 산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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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전망대. 한 시간 이상을 치고 오른 오르막에서 마침내 전망이 터진다. "이 맛에 산에 오는거야!"라고 감탄하는 사람들.

700m 이상의 고도에 올라서니 길쭉한 장송(長松)들이 팔 벌려 체조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밋밋했던 경치를 금방 동양화로 만드는 고마운 소나무들이다. 그 사이로 설치한 긴 계단을 올라서니 비로소 장쾌한 조망이 터진다. 그야말로 첩첩한 산들인데, 너무 힘들고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아, 무슨 산인지 확인을 미루고 또 올라간다.


이후로도 조망이 터지지 않아, 언젠가는 정상이 나오겠지!, 나오겠지! 하며 꾸역꾸역 오른 끝에 해발 948m 라고 새겨진 작은 정상석과 만난다. 1시간 45분 걸렸다. 아니? 겨우 이런 협소하고, 전망도 없는 봉우리를 보려고 그토록 고생을 했다는 말인가? 그러나 전망 포인트는 봉우리를 조금 벗어난 곳에 있다. 거기에 고생한 것을 충분히 보상하는 드넓은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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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산의 제국’. 바로 앞산은 작은군자산, 오른쪽 끝에 톱니같은 대야산과 속리산 봉우리들이 하늘과 맛닿아 있다.

이런 경관을 일망무제(一望無際)라고 할 것이다. 시선을 가리는 방해물 없이, 시야의 끝까지 온통 산으로 채워진 광활한 산의 제국이다. 동쪽으로는 쌍곡계곡 너머 보배산~칠보산 라인이, 그 뒤로 조령산에서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아득하다. 남쪽으로는 작은 군자산이 오뚝이 솟았고, 그 너머로 저멀리 대야산과 속리산의 울뚝불뚝한 봉우리들이 톱니처럼 늘어서 있다. 그 사이사이로 무수히 많은 산들이 솟아 있지만, 그 이름들을 다 댈 수 없다. 저 수많은 산들의 수천 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보았으니, 이 산은 군자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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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틈 사이로 보이는 군자산 정상을 카메라로 당겨 보았다. 흔들림 없을 군자의 모습이다

바람이 솔솔 지나가는 소나무 그늘 밑에서, 산너울의 바다를 바라보며 점심을 즐긴 뒤, 이제 하산이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서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하산길이다. 좁은 숲길에서 양쪽의 나뭇가지들에게 팔을 긁혀가며, 급한 돌비탈에서 '네 발'을 쓰고, 점점 많아지는 너덜길에서는 돌부리에 차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내려선다.


하산로 중간에 군자산을 조망하는 봉우리가 있다고 기억하고 있었으나, 계속 이어지는 너덜길에 신경이 집중되어 그 봉우리를 놓쳤다. 그래서 자꾸 군자산 방향을 바라보다가, 마침 나무들 틈으로 간신히 드러난 군자산을 조망할 수 있었다. 주변의 산자락을 지긋이 누르며 점잖게 솟은 당당한 풍채가,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임이 없을 군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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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길. 하산로의 반은 너덜길이다. 발목이 꺾이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발목이 긴 중등산화와 스틱이 필수다

하산길의 절반인 도마재에서 왼쪽으로 꺾으니 급한 내리막과 너덜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떤 내리막은 멧돼지들이 흙과 낙엽을 다 뒤집어서 길 흔적이 사라졌다. 주변을 잘 살펴 돌에 난 발자국 흔적과 노란 리본을 확인하면서 길을 '결정'한다.


고개 숙여 너덜길을 가다보니, 살모사로 보이는 아기뱀이 깜짝 놀라 너덜 틈으로 사라진다. 너덜과 바위지대는 틈이 많아 뱀들이 은신하기 좋은 곳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바위 위에 체온을 높이려 외출 나온 뱀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특히 쌍곡계곡은 너덜과 계곡을 오고가다 로드킬(차량사고)을 당하는 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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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와 갈색여치. 고사목 나무뿌리와 그 위에 드리워진 단풍나무 가지가 마치 하나의 분재처럼 보인다. 갈색여치가 많이 보이면 가을이다. 씨르르 씨르르~ 울어서 씨르래기라고 부르던 곤충

자동차 소음이 크게 들리면서 낙엽송 조림지가 나오고, 곧 도로에 접한 도마골로 내려서서 산행을 마친다. 정상에서 4㎞를 2시간 가까이 내려왔으니, 너덜길에서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이다. 발목은 시큰거리지만, 너덜 지압을 1시간 이상 했으니 발바닥은 느낌이 좋다.

◇ 도마골~칠보산 입구~쌍곡폭포 3.7㎞ "보석같은 칠보산, 맑고 예쁜 쌍곡계곡"

도마골 인근을 둘러본다. 예전에 작은 매점과 민박을 했던 허름한 집들은 고급 펜션으로 변했고, 느티나무에 원두막이 올라가 있던 시골풍경은 음식점과 주차장이 가득한 관광지로 변했다. 기자는 오래전에 군자산과 칠보산의 자연과 길을 탐사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이곳에 머물며 살갑게 어울렸던 주민들과 고향같은 풍경들이 그립다.


도로를 따라 1㎞쯤 걸어 칠보산 입구인 떡바위를 둘러본다. 원래는 떡시루처럼 생긴 널따란 바위 명소였는데, 지금은 양쪽으로 펜션 건물이 들어서서 존재감이 없다. 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니 도로변에 들어선 건물마다 '손님외 출입금지', '사유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많아 발걸음을 긴장시킨다. 원주민들만 살던 때에는 없던 '금지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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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 위 칠보산.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석같이 반짝인다 하여 칠보산이다.

그대로 있는 것은 소나무들이다. 예전보다 더 굵어진 듯한 붉은 기둥의 소나무들이 빽빽한 초록잎을 뽐내며 도로에 그늘을 드리워준다. 이 소나무들은 쭉쭉 곧게 자란 금강소나무다. 이토록 늘씬한 소나무들이 목재로 징발되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 "오랜만에 왔군!"하고 아는 척을 하는 소나무에게 "아직 잘리지 않았군!"하고 화답을 한다.


그림같은 소나무숲 위로 칠보산(778m)의 일곱 개 봉우리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군자산은 험하지만 칠보산은 순해서 등산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멋진 소나무들과 아기자기한 바위와 예쁜 계곡이 어우러진 약 7㎞의 길을 3~4시간이면 다녀온다. 같은 이름의 칠보산(906m)이 북한에도 있다. 북한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치는 산이고,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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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곡계곡. 우거진 수풀 사이로 흘러가는 맑은 물과 시원한 그늘. 끝에 칠보산의 여러 봉우리가 보인다

군자산과 칠보산 사이의 10.5㎞ 계곡을 쌍곡계곡이라 한다. 인근의 화양동, 선유동계곡은 폭이 넓은 하류인데 반하여, 쌍곡계곡은 폭이 좁고 경사가 진 중·상류다. 따라서 더 야성적이고 더 자연미가 넘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쌍곡폭포다. 쌍곡휴계소 주차장에서 1.5㎞의 부드러운 계곡길을 올라가면, 넓고 기다란 물웅덩이 끝에, 둑이 터져 물이 쏟아져내리는 듯한 폭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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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곡폭포의 8월. 다이내믹하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에서 피서를 즐기는 청년들. 레인저들이 이들을 위험선 안쪽으로 유도했다

어르신들은 얕은 곳에서 무릎 밑을 담그고, 청년들은 수영을 하거나 폭포 물줄기를 파고드는 물놀이를 하는데, 레인저 두 명이 사이렌을 울리며 청년들을 위험선 안쪽으로 유도한다. 물이 맑아 얕게 보이지만, 깊은 물웅덩이 아래는 온도가 낮아 심장마비 위험이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 계곡에서 알탕(몸 전체를 물에 담그기)은 금지인데, 오늘 이 계곡은 알탕 천지다. 두 명의 레인저로는 역부족이다.


쌍곡계곡의 진수는 쌍곡폭포의 상류인 살구나무골에 있다. 울창한 숲과 바위협곡 사이로 콸콸, 쏴아, 졸졸 흘러내리는 계류에 발 담그고 멍 때리는 사람들이 신선처럼 보인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강선대(降仙臺)도 거기에 있다.


이름이 중후한 군자산과 여름철의 핫플레이스 쌍곡계곡을 다녀왔다. 군자산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정상에서 광활한 조망은 좋았지만, 중간에 경치가 없어 힘만 들었다는 사람이 있고, 인공시설이 거의 없는 자연 그대로의 산이 좋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묵묵하게 걸어 군자의 길을 알려주는 산이다.


쌍곡계곡은 여전히 물 맑고 경치 좋은 피서지로 사람들이 넘쳐 났다. 그러나 예전의 정감 어린 시골풍경이 사라지고, 낯선 관광지로 변한 것은 안타깝다. 깨끗한 물가에서 고기 굽고 담배 피우는 모습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국립공원다운 품격이 갖추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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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산막이옛길(4km)에서 바라보는 괴산호 풍경. 산막(山幕)이 있던 길이라는 뜻이다

주변에는 들러가야 할 명소가 많다. 깊은 산의 고요한 절 각연사, 걷는 길로 명성이 자자한 산막이옛길, 연풍의 가톨릭 성지가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미선나무와 망개나무 자생지도 있다. 이 고장에서 나는 다슬기로 끓여내는 올갱이국과 괴강의 민물매운탕, 그리고 대학에서 품종을 개발했다는 대학찰옥수수가 일품이다.


‘느티나무 산’ 괴산(槐山)이다. 동네마다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품어주듯이, 괴산은 수많은 산과 물을 품고 있는 생명의 땅이다. 그 중심에 군자산과 쌍곡이 있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stone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