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답지만 가장 어려운 길, 공룡능선에 잠기다

[여행]by 뉴스1

설악산국립공원 ④ 소청봉-공룡능선-설악동 14㎞…산객들의 '로망'

짧지만 먼 5.1㎞ 공룡능선 '3차 고행' 끝 가슴뛰는 '죽이는 풍경' 신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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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에서 바라본 공룡능선과 외설악 파노라마. 왼쪽의 공룡능선에서 뻗어내린 천화대 암릉 뒤로 마등령, 황철봉, 신선봉이 우뚝하고, 오른쪽으로 울산바위 아래에 동해바다가 망망하다.

◇ 봉정암-소청봉-희운각 2.4㎞ "깔딱하며 올라 소청봉 일출 보고, 깔딱하며 내려가니 희운각"

봉정암 숙소에서 잠에 들 때는 바닥에 그어진 선에 몸을 맞추었지만, 비몽사몽 끝에 새벽에 일어나니 사람들 몸은 모두 선을 넘어 뒤죽박죽이다. 절에서 주는 미역국밥으로 속을 뜨끈하게 데우고, 새벽 5시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소청봉을 향해 오른다. 여기도 해탈고개 못지않은 깔딱 오르막이다. 금방 숨이 막혀 쉬엄쉬엄 30분쯤 올라 소청대피소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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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대피소에서 내려다 본 내설악. 왼쪽 구곡담계곡, 가운데 용아장성, 오른쪽 가야동계곡. 사진 박용환

여기도 최고의 설악산 전망대다. 왼쪽으로 힘차게 뻗은 서북주능과 오른쪽으로 위풍당당한 공룡능선이 내설악의 수많은 능선과 계곡을 품고 있는 형세다. 바로 앞에 용의 잇빨처럼 우뚝 솟은 용아장성(龍牙長城)이 내설악의 수문장처럼 당당하다. 시선의 끝에서 백두대간을 비롯한 수많은 산들이 구름이불을 걷어내고 있다. 드러나는 내설악의 몸에 울긋불긋한 가을색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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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봉에서 바라본 일출. 동해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대청봉과 중청봉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10분쯤 올라가면 소청봉이다. 바람은 싸늘하지만, 때마침 망망한 동해바다에서 올라온 태양이 설악산 언저리를 따뜻하게 비춘다. 대청봉-중청-소청-끝청으로 이어진 설악의 산마루에 펼쳐진 단풍숲이 더욱 붉게 빛난다. 자꾸만 뒤돌아보는 화려한 풍경이다.


희운각으로 내려선다. 여기도 깔딱 내리막이다. 아침이슬에 젖은 돌계단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스틱을 탁탁 잘 박아서며 내려서야 한다. 가까이 자작나무의 하얀 껍질과 빨갛고 노란 단풍들이 대비되고, 멀리 공룡능선의 허리가 갈색으로 변신하는 가을풍경을 감상하며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한다. 희운각은 한창 증축 공사중이다. 식수대 옆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것도 부족한 것 같은데, "좀 들고 가이소~" 라고 친절을 베푼다. 한국적인 '산행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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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 공룡능선 : 희운각-마등령 5.1㎞ "짧지만 머나먼 길, 불꽃 바위들의 요새"

산을 좀 다닌 사람이라면 공룡능선은 몇 년에 한번은 꼭 가봐야 하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산행초보자 역시 그들의 초보 딱지를 뗄 가장 좋은 '인증 코스'로 공룡능선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공룡은 결코 호락호락한 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어려운 등산로다.


짧은 5.1㎞의 공룡능선이 만만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그 곳에 가기 위하여는 소공원-마등령(6.5㎞), 소공원-희운각(8.5㎞), 백담사-마등령(7.4㎞), 한계령-희운각(9㎞), 오색-희운각(6.9㎞) 등에서 각각 4-6시간의 '1차 고행(苦行)'을 끝내야만 초입에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체력을 크게 소모하고 나서 공룡에서 '2차 고행'을 한 후에, 기다란 내리막 길에서 '3차 고행'을 해야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2시간 내외의 장거리 산행을 해야 하니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두번째 이유는 해발 1200m의 고지대에서 7-8개의 봉우리를 넘나드는 것은 웬만한 산 2~3개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과 같은 체력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군데군데 쇠난간과 쇠로프를 설치한 급경사 지점에서는 힘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빨리 소진된다. 그래서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안전사고가 이 구간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공룡에 가려면 희운각이나 중청, 소청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산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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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의 수문장 신선대. 설악산에서는 울산바위 다음으로 큰 바위 아닐까, 그리스 신전처럼 웅장하다.

희운각에서 물통을 가득 채우고 5분쯤 가서, 데크 전망대에 올라 신선대를 올려다보고, 천불동계곡을 내려다본다. 여기서 수십 장의 풍경사진을 찍었지만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설악산 기상은 항상 변화무쌍하다.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의 분수령인 무너미 고개에서 공룡능선 방향으로 '안전사고를 조심하라!'는 여러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판을 통과한다. 봄~여름에는 13시 이전에, 가을~겨울에는 10시 이전에 통과하라는 입산시간 표지판도 있다. 처음엔 부드러운 오솔길이지만, 곧 경사가 급하고 돌계단이 높은 오르막이 나온다. 이어서 가파른 바위면에 박힌 여러 개의 철난간을 부둥켜 안고 오른다. 그렇게 30분쯤 헉헉대며 꾸역꾸역 오르다가 마지막 짧은 철난간을 오르니, 드디어 신선대 고개(1214m)다. 여기에 '죽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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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과 외설악의 장관. 왼쪽에 공룡능선, 가운데 범봉, 오른쪽에 울산바위와 동해바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100대 경관' 중에서도 첫 번째가 여기서 바라보는 공룡능선이다. 울쑥불쑥한 십여 개의 뾰족한 암봉이 파란 하늘로 치솟은 공룡의 척추! 그 중에서도 보석같은 바위들이 줄줄이 솟아 하늘의 꽃이라 불리는 천화대(天花臺)의 화려함! 그 중심에 돛단배처럼 떠있는 범봉의 신비로움! 공룡의 끝에서 북으로 북으로 줄달음치는 백두대간 등줄기의 위용! 황철봉에서 힘차게 뻗어내린 능선에 솟아오른 울산바위와 그 너머의 파란 동해바다!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는 서북능선-중청봉-대청봉-화채봉의 우람한 스카이라인! 어떤 미사여구로 표현해도 흡족하지 않은 대한민국 최고의 풍경이 여기에 있다.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여기가 신선대다. 사람(人)이 산(山)에 올라 신선(仙)이 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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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 천화대의 범봉. 여름철 구름에 잠긴 신비와 가을에 우뚝한 기상.

신선대에서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몇 번이고 이 아름다운 장관을 가슴에 집어넣고 출발한다. 기다란 내리막을 내려가면서도 곳곳에 뷰포인트가 많다. 내려간 만큼 또 올라서야 하는 험로가 이어진다. 급경사 암반에서 소나무와 참나무 뿌리들이 발판이 되어준 길에 쇠난간과 쇠로프가 뒤엉켜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도중에 만난 이탈리아에서 온 젊은 부부(Eleonora and Lorenzo)에게 설악산에 온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의 독특한 자연과 k-팝, 맛있는 음식을 체험하기 위해서 왔다고 한다. 공룡능선이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알프스보다는 쉽다는 조크를 한다. 설악산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국제적인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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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의 이모저모. 고개에 쓰러져 아치가 된 고사목 / 강풍 때문에 한쪽으로만 자란 가지 / 급경사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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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능선에서 뻗어내린 천화대 암릉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사람들.

공룡능선의 중심은 1275봉이다. 저 멀리 뾰족한 암봉을 향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지만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입술은 마르고, 숨은 거칠고, 배낭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그저 걷지 않을 수 없다. 쇠로프가 이어진 급경사를 쑤욱 내려갔다가, 기나긴 쇠난간을 끌어당기며 헉헉대고 올라가 드디어 1275봉 고개에 닿는다. 희운각(2.1㎞)에서 2시간쯤 걸렸다. 그러나 마등령(3㎞)까지 아직 반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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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5봉의 이모저모. 아무리 걸어도 다가오지 않았던 뾰족한 1275봉 / 기다란 난간의 급경사지를 쭈욱 올라가면 / 거기에 우주선같이 크고 높고 둥그런 바위봉우리가 있다.

멀리서는 뾰족한 봉우리였지만, 가까이에서는 거대하고 둥그스럼한 '1275 우주선'이다. 우주선의 껍질은 지질 학습장이다. 신이 빚었는지, 세월이 만들었는지 바위들의 몸체와 겉모양이 천차만별이다. 공룡이 어떤 괴물과 격전을 치뤘는지 세로, 가로, 대각선의 칼자국이 수두룩하다.


암봉을 올려다보니 몇몇 사람이 가파르고 미끄러운 암봉을 오르내리고 있다. 스릴은 있겠지만 멋모르고 올라가 쩔쩔매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다. 저기서 사고가 나면 사고자도 구조자도 큰 고행을 해야 한다. 큰 사고의 대부분은 출입금지구간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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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5봉에서 바라본 공룡의 후반부. 가운데에 마지막 봉우리 나한봉, 오른쪽에 마등령.

이제부터는 공룡의 후반부다. 가파르게 올라왔으니 역시 가파른 내리막이 대기하고 있다. 내려서면서 바라보는 마등령까지의 공룡도 만만치 않다. 대여섯 개의 뾰족봉우리들이 너무 멀고 너무 높다. 공룡의 꼬리가 얼마나 기다란지, 얼마나 하늘로 치켜 올렸는지 원망하다가도, 뒤돌아 본 공룡의 척추와 멀리 대청봉-중청봉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원망을 접는다. 바로 코 앞에 서있는 천태만상의 바위들과 휘어져 화석이 된듯한 전나무도 멋지다. 그러면서 몇 번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했을까,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 나한봉(1298m)을 통과한다.


이제 공룡을 끝낸다는 안도감으로 마음은 가볍고, 성큼 다가온 울산바위와 속초시내, 동해바다의 탁트인 조망이 반갑지만, 체력은 거의 바닥이다. 너덜길을 터벅터벅 걸어 공룡의 꼬리 끝인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한다. 희운각에서 4시간이 넘었다.


여기서 지나온 공룡능선을 바라보니 천화대-신선대-1275봉-나한봉 순으로 뾰족한 암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하늘에 열린 수석(壽石) 전시장이다. 그 뒤에 화채능선-대청봉-중청봉의 부드러운 실루엣이 파노라마 그림처럼 아련하고, 그 밑에 천불동계곡의 바위들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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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등령에서 바라본 설악산 파노라마. 왼쪽 세존봉과 속초시, 동해바다, 가운데 설악골, 오른쪽 공룡능선, 맨 뒤 산줄기는 화채봉-대청봉-중청봉.

◇ 마등령-비선대-소공원 6.5㎞ "몸도 마음도 너덜대는 기나긴 너덜길 끝에 드디어 종점"

나무 그늘에 앉아 마지막 간식을 꺼내니 다람쥐들이 다가섰다 물러섰다 하며 분위기를 탐색한다. 냉정하게 아무 것도 주지 말아야 한다. 사람 음식에 맛들인 다람쥐는 야생성을 잃어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어렵다.


조금 앉아있으니 금방 춥다. 여기서 산 밑과의 기온차이는 대략 10도, 강풍이 불면 체감온도는 크게 떨어진다. 어느 겨울 밤에 조난자를 구조하러 출동했던 레인저 중 한 명이 위험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 섰던 스토리가 있다. 얼어서 굳어가는 그의 몸을 동료 레인저가 맨몸으로 부둥켜 안아 녹여 살려냈다. 마등령 주변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꼿꼿하고 당당한 공룡능선을 한번 더 알현하고, 마등령 고개를 내려선다. 내려가는 길도 어렵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너덜 내리막을 1시간 이상 걸으니 체력도 정신도 너덜거린다. 이어서 보통 높이의 1.5배 되는 돌계단을 1시간쯤 '기계적으로' 내려선다. 내려서는 그 누구도 말이 없다. 무릎에 불이 붙어 옆으로, 뒤로 내려서는 사람도 있고, 주저앉아 무릎 속에 얼굴을 파묻은 사람도 있다. 그렇게 비선대에 도착한다.


신선이 놀다 갔다는 비선대의 비경을 즐길 여유는 없다. 종점인 설악동 소공원까지도 3㎞의 장거리다. 소공원으로 가는 신작로에서 절룩대거나 휘청거리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성취감과 행복감이 가득하다. 더구나 공룡능선을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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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왕성폭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320m 폭포. 토왕성(土王城)은 인근의 지명이지만, 우주의 별 토왕성(土王星)에서 떨어지는 폭포라고 해설하고 싶다

웨딩드레스처럼 새하얀 백담계곡, 옥색 초록물이 주렁주렁 이어진 수렴동계곡, 하얀 폭포와 깊은 웅덩이가 어우러진 구곡담계곡, 울긋불긋한 단풍이 칼라풀했던 소청봉 언덕, 그리고 우람하고 짜릿했던 공룡능선을 다녀왔다. 거기에 한용운의 백담사, 김창흡의 영시암, 김시습의 오세암이 있고, 산악인들의 애환이 어린 희운각과 공룡능선의 여러 암릉길이 있다.


최고의 풍경이 모이고, 오랜 역사의 흔적과 스토리가 알알이 들어찬 설악산이다. 아름다운 자연에 민족의 역사와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곳, 그곳이 한국의 산, 한국의 국립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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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옛도로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우람한 바위 밑으로 힘차게 뻗어내린 산줄기에 가을이 가득하다. 사진 국립공원공단.

신용석 기자 = ​stone1@news1.kr

2022.11.0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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