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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인터뷰

연극 배우 백석광 "상을 받고 부족한 걸 깨닫고 있어요"

by뉴시스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연극계 화제작, 와이프·그을린 사랑 다시 출연

뉴시스

[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백석광이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7.14. park7691@newsis.com

깜짝 놀랐다. 배우 백석광(37)이 연극 관련 상을 받은 것이 최근 '제56회 백상예술대상'의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이 처음이라니.


백석광은 지난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한국무용 창작부문 남자부 대상을 받은 촉망받던 무용가였다. 한예종 무용원 유망주였던 그는 돌연 자퇴하고, 같은 대학 연극원 연출과로 새로 입학했다. 여러 굵직한 단편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지난 2013년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도 해오다가 2014년 국립극단 '혜경궁 홍씨'에서 사도세자 역을 맡아 벼락처럼 연극계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문제적 인간 연산'(2015)의 광기에 휩싸인 연산, '로베르토 쥬코'(2016)의 연쇄 살인범, '처의 감각'(2018)의 삶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 역 등을 맡아 '무거운 역 전문 배우'로 통했다.


작년에 예술의전당 2인극 '추남, 미녀'를 통해 밝은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백석광에서 백상예술대상의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안긴 작품 연극 '와이프(WIFE)'의 무게감도 만만치 않다.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인 '로버트', 수퍼게이라 할 수 있는 '아이바', 거리두기의 달인이지만 보통 남자인 '핀' 등 1인3역을 맡아 한 배우가 연기했다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캐릭터마다 다른 연기 스타일을 선보였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백석광은 "보통 연기상을 받을 때는 큰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았을 경우인데 '와이프'는 모두가 주인공이에요. 작품이 담고 있는 퀴어(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단어), 소수의 영역에 손을 들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라고 겸손했다.


작년 서울시극단의 '창작플랫폼-연출가'를 통해 국내 초연한 '와이프'는 영국 극작가 사무엘 애덤슨의 작품으로 여성의 권리 신장과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력 있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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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백석광이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7.14. park7691@newsis.com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작품이다. 1959년 이 작품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시작한다. 1959년부터 2042년까지 네 시대를 넘나들며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는 30일부터 8월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다시 공연하는데 예매 오픈 3분 만에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연극 제목 '와이프(wife)'는 결혼해 남자와 짝을 이룬 여자를 가리킨다. 소수자의 감각과 퀴어의 역사를 통해 세계 역사에서 '와이프'의 자리가 왜 생길까에 대해 톺아본다.


'와이프'와 관련 백성광의 수상소감도 연극계에서는 화제였다. "'와이프'는 폭력과 차별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품입니다. 상대방을 잘 모를 때 폭력과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마음을 통해 폭력과 차별이 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가부장적으로 밀어붙이고 억압하며 폭력적인 남성성을 대변하는 로버트를 연기하면서 고민이 많았다는 백석광은 "너무 폭력을 전시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시상식에서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 "더 열심히 해볼게. 사랑한다"며 수줍고 예쁜 고백도 한 백석광은 '와이프'가 좀 더 좋은 남편되기에 대한 고민도 던져줬다고 했다.


"아내, 와이프, 여자친구라는 수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어요. 놀랍게도 평등, 평화의 상징으로도 읽히는 동성혼 안에서도 '와이프'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와이프' 덕분에 '혐오의 시대'에 소수자를 대하는 본인의 태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도 느끼고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많이 느껴져요. 주변의 퀴어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이 잘 살 수 있으려면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에서 동성애자이자 드랙퀸이지만 누구보다 밝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트레이시'를 연기하기도 한 그는 "다만 그런 지지를 받으려면,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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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백석광이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7.14. park7691@newsis.com

평소 백석광과 친구처럼 지내는 그의 어머니는 트레이시를 보고 "38년간 아들이었는데 무대 위에서는 딸을 얻은 것 같아 행복했다"며 응원하기도 했다.


"와이프에서 (게이인) 아이바가 처한 상황은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아요. 동성애자인 아들과 엄마의 갈등의 크게 나타나죠. 공연을 보시게 된다면 어떤 힘듦을 겪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상대방을 잘 모르를 때 혐오감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와이프' 연습을 하면서 본인을 포함해 배우, 스태프들이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건 아니다. "부족했던 부분이 깊게 표현되고 있어요. 구성원들이 더 작품에 공감을 하게 됐죠. 이번에 '와이프'가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백석광의 활동은 계속 이어진다. 9월 23~27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그을린 사랑'에 출연한다.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작가 겸 연출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화염'(Incendies)이 원작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2010년 드니 뵐니브 감독이 만든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백석광은 러닝타임 3시간30분에 달하는 이 연극에서 3시간 만에 처음 등장하는 '니하드' 역을 맡았다. 출연 분량은 적지만 극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인 캐릭터로 '폭력의 화신' 같은 존재다.


백석광은 그런데 이 캐릭터 역시 폭력이 전시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니하드의 '무지(無知)'에 초점을 맞췄다. "무지로 인해 숱한 폭력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세계의 우경화도 맞물린다. 백석광은 "'그을린 사랑'에 출연한 뒤 큰 담론을 통해 폭력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백석광이 최근 몇년 간 가장 주목받은 배우라면, 신유청은 가장 주목 받는 연출가다. 백석광이 최근 출연한 '와이프',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 '그을린 사랑'을 모두 신 연출가 연출했다.


'와이프'는 지난 1월 '제56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연출상·유인촌 신인연기상 3관왕을 받았고, 신 연출은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그을린 사랑'으로 연극 부문 대상격인 '백상연극상'을 받았다. 신 연출은 '그을린 사랑'으로 '제7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은 대학로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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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주성 기자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백석광이 10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07.14. park7691@newsis.com

이에 따라 백석광과 신유청은 새로운 콤비이며, '백석광은 신유청의 새로운 페르소나'라는 말이 대학로에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두 사람은 스무살 무렵 공통의 지인을 통해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이후 뜸하다가 지난 2014년 이상우 연출로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에 각각 스태프로 참여하며 만났다. 당시 백석광은 조연출, 신 연출은 조명 어시스턴트를 맡았었다.


하지만 이후 크게 친분은 나누지 않았는데, 어느날 신 연출이 백석광에게 '그을린 사랑' 대본을 안겨주면서 두 사람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코로나19 가운데 '와이프'가 매진됐지만 전대미문의 이 사건으로 백석광은 혼란스럽다고 털어놓았다. "갈수록 공연 티켓 구하기가 어려워지잖아요. 작품은 줄고, 거리두기로 인해 자리까지 줄었죠. 관객분들은 마스크를 쓴 채 옴짝달싹 못하고 공연을 보셔야 하고요. 사람이 모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지 절감하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있어요. 관객분들에게 감사한 마음 뿐이죠."


백상예술대상은 연극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도 아우르는 시상식이다. 수많은 배우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들이 운집했는데 사무국에 백석광에 대해 묻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와이프', '그을린 사랑'과 19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죽음의 집'까지 몇차례 안정적으로 공연한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 백석광은 올해가 자신의 그간 이력을 정리하는 해가 될 것 같다고 여겼다. 점차 TV, 영화로 스펙트럼을 넓혀갈 계획이다. "방송과 영화는 연극과 다른 템포와 리듬이 있잖아요. 아쉬워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한발 한발 내딛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