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네이팜탄 소녀' 사진 삭제, 뭣이 중한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소셜 미디어로 자신의 통제 로직에 대한 모순을 인지했으나 즉시 수정하지 않으려 했던 공룡기업 페이스북에 한방 먹인 노르웨이 총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현 노르웨이 총리인 에르나 솔베르그(Erna Solberg) 총리는 우리가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며 중요한 가치로 인류가 지키고 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논란을 대하는 미디어로서 책임 있는 자세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웠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것은 ‘국격은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며 당당하게 옳음을 외치는 자존심 있는 이런 지도자가 있는 나라일지도 모르겠네요
뭣이 중한디? 뭣이 중한디!
전 세계 수억 명의 사용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리고 있는 대표적인 SNS, 페이스북은 포르노, 누드 및 혐오 사진 등이 불특정 다수에게 게시되지 않게 하려고 수많은 필터링 알고리즘을 2015년부터 강화하여 실시간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Photo : Stephen Lam / X02789 http://www.aftenposten.no/ |
목적과 의도는 좋으나 문제는 이런 로직의 수행을 전적으로 컴퓨터에 의존하다 보니 정작 인류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들마저 같은 기준으로 필터링하고 이에 대한 합리적인 이의제기가 있음에도 자신의 파워를 내세우며 실수를 인정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노르웨이 작가 톰 에이란(Tom Egeland)은 전쟁의 공포를 공유하고자 ‘역사를 바꾼 7장의 전쟁 사진’ 글을 신문사에 기고했습니다. 이 기사에는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이 정글을 태우기 위해 사용했던 네이팜탄(소이탄으로 투하지역을 3000도 넘는 고열로 태워버리는 폭탄의 한 종류)으로 인해 불이 붙은 옷을 벗어 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뛰어오는 소녀 킴 푹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톰 에이란은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을 사진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습니다.
노르웨이 작가, Tom Egeland의 페이스북 글과 사진 |
하지만 얼마 있다가 에이란의 페이스북 글에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이 삭제된 것을 노르웨이 신문사 아프텐포스텐(Aftenposten.no)이 발견해 ‘역사적 사진’과 아동 포르노를 구분 못하는 페이스북의 필터링 시스템에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또, 사진 삭제에 항의하고자 신문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네이팜탄 소녀 사진을 다시 게재하였습니다.
이에 페이스북은 아동 누드사진 게시 불가방침에 따라 ‘사진을 삭제하거나 노출부위를 모자이크처리 하라’고 아프텐포스텐 신문사에 요구했죠. 이에 화가 난 신문사 편집장 에스펜 에일 한센(Espen Egil Hansen)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아동 포르노 사진과 역사적 전쟁 사진을 분간 못하는 페이스북의 역사인식 수준 및 사진 삭제조치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삭제조치 수정을 요구하였습니다.
아프텐포스텐의 편집장 에스펜 에일 한센과 페이스북을 향한 공개질의서 Aftenposten.no |
그깟 페이스북? 안 쓰고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 없다!
인권, 자유, 평등에 절대 타협이나 물러섬이 없는 나라 노르웨이의 신문사 편집장인데 여기에서 그칠 리가 없겠죠? 이후 에스펜 에일 한센은 가디언, CNN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인터뷰에는 콕 찍어서 마크 저키버그를 지명)이 모든 언론의 편집장 위의 편집장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신문사 편집장으로서의 편집권이 제한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페이스북을 더욱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신문사와 페이스북의 싸움으로만 국한됐다면 페이스북의 아집을 무너트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를 응원하는 노르웨이 네티즌들이 항의 표시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계속 올리자 페이스북은 사진 게시자들의 계정을 정지시키고 사진을 삭제조치 했답니다. 신문사와 페이스북의 싸움이 이젠 노르웨이 국민과 페이스북의 싸움으로 커진 거죠.
결정적인 사건은 이후에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노르웨이 총리 에르나 솔베르그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정확히는 노르웨이 정부 공식 페이스북 계정입니다)에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몇시간 뒤에 총리의 페이스북이자 동시에 노르웨이 정부의 공식 페이스북 홈페이지가 계정정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페이스북이 자기의 룰에 따르지 않는다고 청와대 홈페이지 계정을 정지시킨 꼴이 된거죠!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홈페이지 게시글, 사진 : Carina Johansen / NTB Scanpix 화면 캡쳐 |
물론 총리의 글과 사진을 공유한 문화부 장관의 페이스북 계정정지는 두말하면 잔소리였죠. 총리실은 페이스북에 노르웨이 정부 페이스북의 계정정지에 대해 유감 표명 및 ‘사진 삭제조치는 우리의 공통된 역사를 수정하려는 행위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으며 실수에 대한 신속한 인정 및 보다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계정 정지된지 3일이 지난 에이란의 페이스북, nrk.no |
총리실의 강력한 항의에 페이스북은 “상징적인 사진임을 인지했더라도 어떤 사진은 노출을 허용하고 어떤 사진은 노출을 금지할 구분 방법을 수립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하지만 개인 표현의 자유와 올바른 페이스북의 사용환경 사이에서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하는 한편 네이팜탄 소녀 사진에 한해 게시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노르웨이 NRK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역사적, 정치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사진입니다. 비록 이 사진 속에 벌거벗은 소녀의 모습이 있더라도 이 사진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보존해야 할 역사이자 지식 그 자체입니다.”라며 여전히 페이스북 사진검열에 불편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석유기금 회의에서 이 안건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생각이 있느냐는 방송국 기자의 질문에는 기금운영과 한 회사의 가치관 문제는 별개라며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공포, 연민 그리고 박애는 인간만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영역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은 사람이 해야 할 일 중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 가치 인식과 공감을 통해 정보와 사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배움으로써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오로지 인간의 판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번 페이스북 사건으로 인공지능도 어떤 가치관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며 SNS의 언론통제 가능성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 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