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신도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섬, 두 번 갔다

[여행]by 오마이뉴스

[파도 타고 한바퀴, 통영섬] 저도(딱섬)의 탄생 일화

바다에 명운을 건 통영의 소중한 보물은 섬이다. 570여 개의 섬 중 유인도는 41개, 무인도는 529개로, 통영의 호위무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8월 8일 제1회 섬의 날을 맞아 통영 섬 중 유인도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통영 저도(딱섬)의 1차 탐방은 2018년 4월 22일 진행됐고 2차 탐방은 2019년 7월 13일 보완코자 재방문했다. - 기자말

통영은 해안선을 따라 360도가 빼어난 경치다. 어디를 봐도 눈이 호강한다. 육지와 동떨어진 섬엔 낯선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 망망대해 속 완전히 고립된 공간이 섬이다. 넓은 바다 위에 펼쳐진 크고 작은 수많은 섬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 특히 사람과 공존한 공간은 무수한 이야기를 낳는다.


도선이 운행하지 않는 섬은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나마 섬 주민을 위한 명령항로가 운행돼 섬으로 갈 길이 열렸지만 그래도 쉽게 입도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모험심 가득한 여행자에겐 이런 섬이 솔깃한 탐험지이자 묘한 해방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일 게다. 예상과 달리 섬의 삶은 뭍만큼 치열하다. 단지 항거할 수 없는 자연과 대적하기보단 순응할 뿐이다.

왜 저도(딱섬)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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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진 통영 광도면 저도. 예포 선착장에서 바라본 저도(딱섬).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면서 붉은 태양빛이 바다 위의 구름에 물든다. ⓒ 최정선

통영의 신도시가 있는 광도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이 있다. 바로 광도면 안정리에 딸린 저도(楮島, 딱섬)다. 광도면 저도를 다시 보고자 예포마을로 향했다. 고성반도 동쪽의 안정만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작은 섬은 육지에서 불과 2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저도란 호칭은 '진도 저도' 이외에 '통영 광도면'과 '통영 산양읍', 그리고 '경남 사천'의 섬에 공통된 이름을 쓴다. 이름뿐만 아니라 지명유래 역시 네 섬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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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서 바라본 저도 마을. 저도는 원래 ‘닭섬’ 또는 ‘딱섬’이라 불렀다. ⓒ 최정선

저도는 원래 '닭섬' 또는 '딱섬'이라 불렀다. '닭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과 '배가 닻을 내리는 형상'이란 설도 있다. 닭은 알을 많이 낳는 날짐승으로 다산을 상징해 우리 조상들은 닭 지명을 선호했다. 이 섬의 모양은 '닭'과 달리 '개'에 비유된다. 본섬은 개머리 모양, 줄여(암초)는 개꼬리 모양처럼 생겼다고 섬사람들은 여겼다. 그러나 후대에 '딱섬'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 '닥나무 저(楮)'의 음차를 빌려 '저도'가 됐다. 한자 이름 탓인지 '닥나무가 많아 종이가 생산됐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통영 안정사에서 종이를 만들어 한양으로 보냈다. 당시 조선 최고의 진상품이었다. 사찰의 주변마을 이름도 '지석골'로 종이와 관련된 지명이다. 통영 광도면 안정사에서 제작한 종이가 조선의 진상품임을 뒷받침하는 공문서도 2건이 발견됐다. 이 문서들은 1752년(건륭 17) 근간에 작성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광도면 저도가 임진왜란 당시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섬인 '춘원도(春院島)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논지는 이렇다. 난중일기에 춘원도가 등장한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한데, 여해고전연구소 노승석 소장이 이 섬은 경남 통영시 광도면의 '저도'로 추정된다는 설을 제시했다.

<난중일기> 중에서


十六日己未。晴。出坐大廳。則咸平倅趙撥逢駁告歸。故饋酒而送。申助防將浩到陣。行敎書肅拜。因與共話。夕。乘船移泊洋中。二更。行船到春院島。日欲曙。慶尙舟師未到。


1595년 2월 16일 맑음.


대청에 앉으니, 함평 현감 조발(趙撥)이 논박을 당해 복귀한다 하소연하여, 술을 먹여 보냈다. 조방장 신호가 진에 도착해 교서를 전달하고 숙배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에 배로 바다 가운데에 정박했다가, 이경(二更, 밤 9시에서 11시)에 출항해 춘원도(春院島)에 이르렀다. 날은 밝아오는데 경상도 수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교서(敎書): 임금이 새로 부임한 관리에게 행하여야 할 것을 적은 명령서.

*숙배(肅拜): 처음으로 관리가 되어 지방으로 나가게 되면, 궁중에 들어가 참배하고 나온다. 난중일기에선 새로 부임한 하급 관리가 상관에게 인사함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 경상우수영은 가배량 부근인 거제 오아포에 있다. 야간에 춘원도로 이동한 것은 가배량에 침입한 적에 반격하고자 함이 크다. 이에 반한 의견으로, 난중일기에서 견내량을 통과했다면 통영시 광도면 '저도'가 맞겠지만 견내량을 통과했다는 말이 없어 한산도 뒤편 추봉도의 '추원포'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과거 안정공단의 지역명이 '춘원포'였으며 칠천량 해전에서 패한 원균의 마지막 피신지로 거론된 곳이다.


난중일기에 언급한 춘원도의 비밀은 충무공 이순신만이 알 것이다. 차후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져 비밀이 풀리기 기대한다. 진실의 열쇠는 역사학자의 손으로 넘기겠다.

섬 삶의 흔적이 고스란한 저도

옛 선비들이 갓을 걸어두고 통영을 들어갔다던 원문고개를 빠져나와 광도면인 죽림 신도시를 지났다. 비릿한 냄새가 울창한 아파트 촌 사이로 풍긴다. 정주도시답게 어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곳이다.


북통영 나들목에 못 미처 오른쪽 굴다리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초록빛이 더해진 벼들이 손을 흔든다. 아스팔트로 잘 닦여 있는 도로의 풍경은 여느 농촌과 같다. 간헐적으로 만나는 덤프트럭은 공단지역임을 실감나게 한다. 트럭이 품는 매연과 흙먼지보다 거대한 몸집이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금방이라도 트랜스포머가 돼 앞을 가로막을 것만 같다.


통영 입도에서 본 적덕마을이 보인다. 바닷가엔 여전히 조선소가 사라졌지만 잔재들이 남아 있다. 급회전하는 구간을 지나자 회색빛 레미콘 회사가 보인다. 굽이굽이 고비 넷을 돌자 커다란 교회가 눈에 띈다.


오른편엔 '예포마을', 왼편엔 '석왕사'를 알리는 팻말이 있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교회를 지나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급경사 언덕에 아슬아슬하게 앉은 예포마을회관이 보인다. 마을 초입에서 왼편으로 들어서자 정자 쉼터가 맞아줬다. 그 뒤로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안정어촌계사무소가 있다.


예포(曳浦)마을은 '베 짜는 도구인 베매기의 끌개'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끌개의 통영 토속어인 '끄신개'를 한자로 훈차한 지명이다. 예포마을은 '범우개', '잿곡', '끄신개'로 나뉘고 앞의 작은 섬인 저도(딱섬)는 '적은내'로 불린다.


예포 선착장에서 저도의 섬사람들이 오고 간다. 이곳에선 저도까지 채 5분도 안 된다. 하지만 도선이 없어 섬으로 간다는 건 녹록지 않다. '물 위 걷기'인 경공법(輕空法)을 펼치지 않는 이상 어찌 가겠는가. 어렵게 섭외한 통통배를 탔다. 꼭 종이배를 탄 것 같다. 저도 북쪽 해변에 집들이 모여 있다. 낡은 슬레이트를 얹은 옛 집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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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딱섬)의 길안내 입간판. 폐가 옆으로 ‘딱섬길’이란 입간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 최정선

'딱섬길'이란 입간판이 선명하게 보인다. 섬에서 가장 온전한 조형물이다. 손수레를 끌고 바삐 움직이는 중년 남성이 보인다. 섬엔 대부분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은데 젊은 분을 만나 반갑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다.


그는 저도와 삶을 같이 한 아버지(김부성 님)가 돌아가시자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2년 전부터 주말마다 섬에 와 집을 수리하고 텃밭도 가꾸고 있다. 방파제 아래엔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바지락으로 삶을 꾸렸던 아버지의 아들이 한 아버지가 돼 섬지기가 된 것이다.


섬 전체가 폐촌이 돼 빈집들만 남았다. 방파제를 중심으로 난 시멘트 임도엔 길이라기보단 해양쓰레기 집합소 같다. 여기저기 쌓인 그물과 스티로폼 부포들이 볼썽사납다. 2001년엔 7가구 13명이나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실제 3가구에 3명 정도만 살고 있다. 섬에 적만 둔 채 가끔씩 드나들어 거주민에 대한 통계는 실제와 행정적 오차가 있다.


예포마을에서 세 명의 어르신을 거쳐 겨우 이부권 이장님(52년생)과 연결됐다. 이장님은 예포와 저도의 이런저런 사정을 풀어주셨다. 예포마을의 주소득원은 '오만둥이' 어장이다. 오만둥이를 통영서는 '오만디'라 부른다. 미더덕 사촌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 이외에 예포마을 어촌계에선 굴과 멸치잡이 정치망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2001년경 한국가스공사의 어업보상 문제로 뭍과 섬은 대립각을 세웠다. 바다가 주는 혜택은 무한한데 인간이 만든 굴레로 불화가 생긴 것이다. 생계 터전인 바다에서 어업만 할 땐 문제가 없지만 이권이 뭍과 섬을 갈라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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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더께가 느껴지는 돌담. 섬의 흔적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돌담길이 좋다. ⓒ 최정선

섬의 흔적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돌담길이 좋다. 안쪽엔 낡은 작업복이 빨랫줄에 널려 있다. 또 다른 섬지기 조일석 님의 집이다. 주인 없는 집의 빨래들과 눈인사하고 언덕으로 올라갔다. 섬마을을 넓게 조망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섬마을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지척엔 예포마을이 손 뻗으면 닿을 듯하고 동북쪽엔 공단이 만리장성처럼 바다를 가로막고 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면서 붉은 태양빛이 바다 위의 구름에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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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의 섬지기 집. 낡은 작업복이 빨랫줄에 늘려있다. 주인 없는 집의 빨래들과 눈인사했다. ⓒ 최정선

  1. 가는 길 : 통영 저도(딱섬)는 오가는 도선은 없다. 광도면 예포마을에서 200m로 선박으로 5분 거리다. 예포마을 선착장에서 사선을 이용하거나 예포마을의 이부권 이장 및 광도면사무소에 문의하시면 도움받을 수 있다.
    1. 예포마을 선착장: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예포길 228
    2. 광도면사무소: 경남 통영시 광도면 노산길 115 (T.055-650-3560)
  2. 잠잘 곳 : 통영 저도와 가까운 곳엔 통영구가네펜션, 휴스파펜션, 꽃담펜션 등이 있다. 더구나 광도면 죽림 신도시가 부근이라 비즈니스호텔과 모텔촌 등이 밀집해 통영에서 편안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3. 먹거리 : 죽림 신도시엔 맛집이 즐비하다. 인구가 집중되는 곳인 만큼 유명 식당이 많다. 이곳엔 관공서가 많아 회식 장소로서 각광받는 음식점이 많을 뿐더러 여행자들이 추천하는 맛집도 풍성하다.

최정선 기자(bangel94@naver.com)

2019.07.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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