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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왜 나는 이 모양이지?'
그런 당신에게 '헤세'를 권합니다

by오마이뉴스

헤르만 헤세 '황야의 늑대'


9년 전,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였다. 지상낙원과도 같은 그곳에서 나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 다시 오지 않을 행복한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이틀째 되던 날 저녁, 노을 지는 해변에서 디너파티가 있었다. 파티 내내 기분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로맨틱한 분위기에 잔뜩 취한 우리는 나란히 밤바다를 보며 앉아 있었다.


우리 옆에서는 한 무리의 중국인 여행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흥겹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은 앉아 있는 우리에게도 함께 춤을 추길 권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섞여 춤을 추기가 영 쑥스러워 한사코 거절하던 나를 보는 그들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눈빛은 분명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거면 굳이 여기까지 뭐 하러 왔느냐'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때까지 마냥 행복에 젖어 있던 내 기분도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사실 그들이 나에게 춤을 권했을 때, 마음 한구석에는 흔쾌히 그들의 손을 붙잡고 신나게 춤을 추고 싶은 열망도 있었다. 하지만 숫기 없고 점잖은 척하기 좋아하는 내가 그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만 것이다.


가끔씩 그때가 생각난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든다. 하지만 그 후로 9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춤은커녕 여전히 낯선 사람 앞에서 농담 한 마디도 못하는 한심하고 재미없는 인간일 뿐이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춤은 전혀 못 춘다고요? 원스텝조차? 그러면서도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고 주장하는군요. 그건 엄살이에요. 당신 나이에는 그런 엄살은 어울리지 않아요. 춤 하나 배울 의지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어요?" (123쪽)

아! 이 책을 10년만 더 일찍 읽었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때 그 여행자들과 멋지게 춤을 추며 완벽하게 파티를 즐길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후회해도 소용없다.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쯤 나는 다시 또 이 책을 펼쳐 읽고 있을 것이다.


40년 가까이 살면서도 나는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럽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럴 땐 어김없이 헤르만 헤세를 찾게 된다. 내 책장 안에는 6년 전 내 생일날 동생에게 선물 받은 12권의 '헤세 선집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오늘도 나는 그 앞을 서성이며 가만히 책등을 훑는다.

오마이뉴스

<황야의 늑대>, 헤르만 헤세 지음, 안장혁 옮김, 현대문학(2013) ⓒ 현대문학

오늘 내가 고른 책은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늑대>. 1927년, 헤세의 나이 50세가 되던 해에 출간된 이 책은 1946년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작품'이다. <황야의 늑대>는 일종의 '자아분열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주인공 '하리 할러'의 수기 형태로 쓰인 소설이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쓴 이 소설에 대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황야의 늑대>가 질병과 위기를 그리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것은 죽음과 파멸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치유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헤세의 작품들이 대게 그렇듯, <황야의 늑대>에도 헤세 자신의 분신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 고독한 '황야의 늑대' 하리 할러도 그렇고, 하리에게 춤과 인생을 가르쳐준 헤르미네 역시 작가의 또 다른 자아였을 것이다.


소설 속 '하리 할러'는 곧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마치 남들에겐 절대 보일 수 없는,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난폭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스스로를 욕하는 대신, 나를 닮은 '하리 할러'를 마음껏 비웃고 조롱했다. 동시에 그를 비웃고 있는 내 모습 또한 너무나 섬뜩하게도 '하리'를 닮아 있었다.


자칭 '황야의 늑대' 하리 할러는 '재능 있는 작가이자 모차르트와 괴테 전문가, 예술 형이상학과 천재와 비극과 인도주의에 대한 괜찮은 논문의 저자, 책으로 뒤덮인 작은 서재 안의 우울한 은둔자'이다. 25년간 고향을 떠나 세상 속에 섞이지 못한 채 방황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는 고독하고 괴롭다.

그냥 모두 안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이 없네'라는 노래 가사처럼 하리 할러의 몸 안에는 수십, 수백 개의 자아가 서로 부딪치고 할퀴며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 고통스러운 삶을 견딜 수 없어 그는 2년 후, 50세가 되는 해에 면도칼로 스스로 삶을 끝낼 작정을 한다.


절망에 휩싸여 밤길을 걷던 그는 전광판의 희미하게 깜빡이는 글자들을 보게 된다. '마술 극장. 누구나 다 입장 가능한 것은 아님. 평범한 사람은 입장 불가. 미친... 사람... 만... 입장 가능!' 안내표지를 따라 하리는 '검은 독수리'라는 바에 들어서게 되고, 그곳에서 그는 매우 매력적인 여인 헤르미네를 만난다.


그에게 춤과 인생을 가르쳐주는 '삶의 예술가' 헤르미네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춤추는 법을 배우고, 그녀 주위의 매력적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느새 하리 안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던 죽음에 대한 욕망도 서서히 사그라진다.


또한 헤르미네의 연인이자 트럼펫 연주자인 파블로는 하리를 마술극장으로 안내한다. 마술극장 안에는 수많은 문들이 있었는데, 각각의 방에서는 다양한 얼굴을 한 하리 자신의 욕망들을 반영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마술 극장에서 그는 달콤한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인생이란 일종의 체스 게임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삶의 기술입니다. 고차원적인 의미에서 광기라고 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출발점이듯이, 정신분열은 모든 예술, 모든 판타지의 출발점입니다. 자, 당신의 형상들로 된 이 말들을 받고 게임을 시작하세요. 이 게임이 당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은 사납게 구는 도깨비 형상이 내일이면 순진한 조연급으로 강등될 것입니다. 잠시나마 불운과 불행을 선고받았던 가엾은 형상이 다음번 게임에선 공주의 역할을 하게 될 거고요." (279쪽)

내 안에서 보기 싫은 흉측한 자아가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힐 때, <황야의 늑대>를 통해 헤세가 전하는 메시지를 떠올려 보면 좋겠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살인마, 염세주의자, 형이상학자, 위선자, 선량한 시민, 철부지 어린아이, 그 어느 것 하나도 부정하지 말고 그냥 모두 안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


내 안의 못난 모습을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그 못난 자아에 잠식당해 결국 질식하게 될 것이라는 것. 그러니 마술극장에서 하리가 만난 모차르트의 말대로 우리 안의 수많은 자아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 그중 '받아들일 만한 것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나머지 것은 그냥 웃어넘겨' 버리면 되는 것이다.


나에게 헤르만 헤세는 평생 곁에 두고 싶은 작가다. 그는 평생 집요하게 '인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사람이다. 그 치열한 고민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가 얻은 인간과 삶에 대한 통찰은 그의 전 작품에 걸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므로 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헤세를 읽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언젠가는 우리도 체스 게임을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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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헤세를 읽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 박효정

박효정 기자(ooooohjenn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