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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코로나 19'의 시대,
집에서만 버티는 방법 알려준 할아버지

by오마이뉴스

영화 <모리의 정원> 슬로우 라이프, 모리의 정원으로 떠나는 힐링 여행

오마이뉴스

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어릴 때 빵 부스러기를 옮기는 개미 떼를 한참 동안 관찰한 적이 있다. 녀석들이 각자 맡은 바 충실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일렬로 줄 서서 빵 부스러기를 열심히 옮기는 모을 보고 있노라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을 것 같은 경외감에 빠져든다.


신속함이 미덕인 시대 느림은 뒤처짐, 시대착오로 비치기도 한다. 조금만 늦어도 따라잡지 못해 낙오된다.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싶은 만큼만 움직이면 안 되는 걸까, 언제부터 빠른 것에 길들여졌을까? <모리의 정원>은 화가 모리카즈를 비추며 삶의 여유와 관조, 느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오기가미 나오코의 <안경>처럼 슬로우 라이프를 통해 천천히 익어가는 인생의 참 맛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30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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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모리카즈(야마자키 츠토무, 이하 모리)는 아내 히테코(키키 키린)와 이 집에서 한 발작도 나가지 않았다. 올해로 94세,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 화가다 집안의 정원에서 30년 동안 나가지 않았다. 어디로도 불러낼 수 없다. 정치적 칩거나 히키코모리와는 다르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람을 자주 만난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통에 외로울 틈도 밖을 나가야 할 이유도 없다.


모리의 집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집 자체가 모리인 까닭에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은 물론, 간판을 써 달라고 멀리서 온 남자, 모리를 오랫동안 촬영해온 온 사진가, 아파트 공사 인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문턱이 마르도록 드나든다. 가만히 있는 꽃에게 벌이 찾아오는 것과 같다.


영화는 집과 정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촬영했지만 답답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원은 자연만물이 소생하는 소우주 그 자체이며, 모리를 신선화하기 최적인 장소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노(老)부부가 사는 집을 극도로 관찰하는 것뿐. 관찰카메라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여유와 힐링을 선사한다.


시끄러운 세상 속 자신만의 은신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말련이 부럽기도 하다. 모리는 어린아이처럼 관찰하길 좋아하는 괴짜 화가다. 정원에는 벌레, 고양이, 물고기, 새 도 살고 있다. 하루 종일 곤충, 식물, 지나가는 구름, 불어오는 바람 구경이 일과인 물아일체. 속세와는 거리가 먼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갈 줄 아는 모습은 신선이 따로 없다.

자연은 언제나 당신을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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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문명사회를 스스로 벗어나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 동안 실험적인 삶을 꾸려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서 <월든>이 떠오른다. 소로는 자신만이 갈 길을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했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다. 예술과 자연을 고집하며 소박하게 사는 고집이 더없이 중요해 보인다.


인간 세상이 어떤 든 자연의 아름다움은 지지 않고 군림하고 있다. 아름다움은 세상 모든 것에 있다. 눈을 돌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어떨까.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만병통치약은 바로 자연이라고 말한 안네 프랑크도 떠오른다. 안네는 숨어 지내야만 하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기운을 북돋아주고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 무언가를 자연 속에서 찾아냈다.


영화는 작은 것에게 만족과 기쁨을 누리는 노(老) 화가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우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너무도 부족함 없이 살아왔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자주 욕망을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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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리의 정원>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하며 자극적인 것들이 난무하는 요즘이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마음의 평안, 자연의 경이로움을 원한다면 <모리의 정원>을 추천한다. 우리에게는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위로와 자극적이지 않아 심심한 미덕이 필요하다.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우리 안에 조용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모리가 자신의 집에서 실천하는 일들은 하찮아 보이지도, 그렇다고 지루해 보이지도 않았다. 정해져 있는 공간과 시간을 최대 행복으로 탈바꿈하는 지혜가 엿보였다. 나만의 케렌시아가 있다면 잠시 일상을 떠나 그곳으로 탈출을 꿈꿔 봐도 좋겠다.


장혜령 기자(doona9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