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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엿장수에게 '고물'로
팔려갔다 돌아온 국보

by오마이뉴스

국보 제143호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

오마이뉴스

1971년 여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구재천 씨의 집 배수로 공사 중에 동검 3점, 청동거울 2점, 팔주령 2점, 쌍두령 2점, 도끼 1점, 새기개 1점 등 청동유물 11점이 발견되었다. 출토지가 확실히 밝혀진 이 청동유물은 1972년 국보 제143호로 지정됐다 ⓒ 국립광주박물관

1971년 여름. 뜨거워진 날씨만큼이나 한국 고고학계를 후끈 달구며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두 가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다.


대한민국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백제의 옛터, 충청남도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은 매년 장마철이 되면 무덤 안에 빗물이 스며들어 벽화가 훼손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심하게 도굴당한 6호분은 그 정도가 심했다.


고분의 사방 벽면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대책으로 배수로 정비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작업 도중 무덤 뒤쪽 언덕을 파내려 가던 인부의 삽날에 뭔가 단단한 물체가 부딪혔다. 자세히 살펴보니 흙을 구워서 만든 전돌 구조물이 나왔다. 보고를 받은 공주박물관장이 급히 현장으로 내려왔고 배수로 공사 대신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구조물 밑을 조금씩 파내려 가자 둥그런 아치 형태의 무덤 입구가 나왔다.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 순간, 지금까지 발견된 고분군 중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백제왕의 벽돌무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훗날, 한국 고고학 역사상 '하룻밤 만의 발굴'이라는 최악의 흑역사를 기록한 백제 '무령왕릉'은 이렇게 공사장 인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또 다른 우연, 잃어버린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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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 3점. 무덤 주인의 허리 좌우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국보 제143-1호 ⓒ 국립광주박물관

충남 공주 송산리에서 '백제 무령왕릉 발견'이라는 매스컴의 열기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던 그해 8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에서는 또 다른 놀랄만한 우연이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째 계속되는 장맛비에 가옥과 창고가 잠기려 하자 집주인 구재천 씨는 배수로를 만들기 위해 삽과 괭이를 들고 창고 옆 땅을 파기 시작했다.


땅을 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삽날 끝에서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계속 밑으로 파내려 가자 땅속에서 괴상한 형태의 쇳덩이 11점이 줄줄이 나왔다. 집주인은 용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이 고물들을 한 동안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엿장수가 마을에 나타나자 구재천씨는 이 고철들을 엿장수에게 넘기고 엿으로 바꿔 먹었다.


녹슨 고물을 넘겨받은 엿장수는 아무래도 범상치 않는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이 쇠붙이들을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 문화공보실 공무원에게 넘긴 후 아무런 연락처도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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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팔령구는 팔각형의 별 모양으로 생겼으며 각 모서리에 방울이 달려 있다. 그 안에 청동구슬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종교의식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국보 제143-2호 ⓒ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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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쌍두령은 양끝에 방울이 있고 그 안에 청동구슬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난다. 쌍두령 2점은 국보 제143-3호로 지정되어 있다 ⓒ 국립광주박물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전남도청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문화재관리국의 조유전 학예사가 전남도청에 내려왔다. 이 물건들을 본 조 학예사는 청동기시대 유물임을 직감하고 청동기 전문가와 함께 화순 대곡리 현장을 방문했다. 쇳덩이가 나왔던 현장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유물이 나온 곳을 파내려 가자 놀랍게도 청동기 시대의 무덤이 발견됐다. 한반도의 청동기 역사가 새롭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에서는 다시 한번 환호성이 나왔고, 각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한반도에는 청동기 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설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동안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들의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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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도끼. 국보 제143-5호 ⓒ 국립광주박물관

화순 대곡리 청동기 유물은 출토지가 확실히 밝혀지면서 그동안 어둠에 갇혀 있던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를 밝히는 계기가 됐다. 시골 농가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11점의 고물은 엿장수의 탁월한 안목으로 그 이듬해 1972년 국보 제143호로 일괄 지정됐다.

신(神)을 대변하는 빛과 소리, 유물이 전하는 말

그로부터 37년이 흐른 2008년 광주박물관에서는 1차 조사 때 다소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재조사를 진행했다. 재조사 결과 유물이 출토된 무덤의 형태가 2단 구조로 통나무 관을 안치한 후에 다시 돌로 덮은 이른바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임을 밝혀냈다. 또한 칼끝에 옻칠이 되어있는 세형 청동검 2점을 추가로 발굴했다. 유물은 총 6종 13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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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잔무늬거울. 거울 뒷면에 기하학적인 문양과 거울을 매달 때 사용하는 두 개의 뉴가 달려 있다. 국보 제143-6호 ⓒ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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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재조사 때 통나무 관 밑에서 추가로 발견된 칼끝에 옻칠이 되어 있는 세형동검 2점 ⓒ 국립광주박물관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은 청동검, 팔주령과 쌍두령, 손칼과 도끼, 청동 잔무늬거울 등 청동기 6종 세트로 구성돼 있다. 이 도구를 사용했던 무덤의 주인은 지금으로부터 약 2400여 년 전 영산강 구릉에 살았던 부족을 다스리는 '제사장(祭司長)'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神)을 대변하는 제사장이 부족을 다스리는 고대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사장은 곧 하늘의 신과 땅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메신저였다. 청동검은 제사장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팔각형 별 모양의 팔주령과 쌍두령은 청동구슬을 넣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종교의식에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제사장은 청동거울로 태양빛을 비추고 팔주령과 쌍두령을 흔들며 하늘의 신에게 부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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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화순 대곡리 인근 효산리에는 청동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무덤 ‘화순 고인돌 유적’이 있다. 1998년 사적 제410호로 지정됐고,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화순 군청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화순 대곡리 인근 효산리에는 청동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인 '화순 고인돌 유적'이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 유적과 국보로 지정된 청동기 유물은 말하고 있다. 먼 옛날, 한반도의 끝자락 화순에서 고대인들은 그들을 지켜준 부족장과 함께 수준 높은 청동기문화를 꽃피우며 살았다고. 광주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국립광주박물관 선사문화실에 가면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전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임영열 기자(youngim147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