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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지금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미술관에서 제대로 보려면

by오마이뉴스

[서평] 문하연 지음 '다락방 미술관'


'아는 만큼 보인다'처럼 지적 경험이 주는 효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도 드물다. 특히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술의 경우는 더하다. 흔히 말하는 '그림을 보는 눈'이란 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미리 고백하자면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다. 고흐와 세잔, 샤갈, 피카소. 내가 댈 수 있는 화가의 이름은 한정되어 있다. 누군가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 물어온다면, 당장 머릿속이 캄캄해지면서 무슨 그런 무례한 질문을 하느냐고 되려 상대를 타박하고 싶어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어쩌다 미술관에 갈 기회가 생겼을 때 쭈뼛쭈뼛 망설인 경우도 많았다. 사실 나는 자연주의니 사실주의니,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미술 용어들을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으로 단정 짓고 있었다.


그러나 지적, 문화적 경험의 빈약함에서 오는 박탈감은 여간해서는 다른 것으로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공들여 화장하고 값비싼 옷을 차려입어도 결국 "어떤 그림 좋아하세요?"란 질문 앞에서 우물쭈물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제벌 2세인 주인공이 선을 볼 장소로 미술관을 택한 장면을 떠올려 보자. '왜 하필 이런 데서?'라고 묻는 표정의 상대방에게 주인공은 대답한다.

"그림 보는 안목 보면 교양 수준이 보이니까."

사실 드라마뿐 아니라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교양 수준'을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 그대로 좀 '젠체해보고자' 바쁜 시간을 쪼개서 미술관도 다니고 서점 안 다양한 미학 서적들 사이를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경우 결론은 늘 비슷했다. 어렵다. 복잡하다. 나와는 맞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다락방 미술관(문하연 지음) 표지 ⓒ 평단

그러다 얼마 전 문하연 작가의 <다락방 미술관>이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림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제 일흔이 다 되어 가시는 나의 어머니가 연륜을 담아 평하셨다. "재밌더라."


<다락방 미술관>은 우리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음 직한 세계적인 화가들과 그의 대표작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단순한 미술 비평 서적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문하연 작가는 작가 특유의 밝고 따뜻한 문체로 그림을 해설하다가 어느 순간, 비밀을 속삭이듯 그림 속에 숨어있는 뒷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으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게다가 함께 실려 있는 다양한 그림 덕분에 '보는 맛'이 주는 즐거움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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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 런던 국립 초상화 박물관 소장

누군가는 "저렇게 자신을 감춘 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속을 다 까서 보여준다고 그 사랑이 영원하리란 보장도 없다. 마음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살아 움직이니까. 하얀 천으로 가려진 얼굴이, 숨겨진 진실이 궁금해진다. 마그리트는 이 고전적인 주제로 여러 버전을 그렸다. 진부한 표현을 극도로 꺼렸던 그는 그림을 통해 명백히 잘 아는 것을 혼동시키고자 했다. 그가 회화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건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은폐된 것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 213~214p. 르네 마그리트 '연인들')

감각적 키스 너머에 담긴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그림', 결국 '예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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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코코슈카-바람의 신부 ⓒ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의 주인공은 코코슈카 자신과 그의 치명적인 사랑 알마 말러Alma Mahler이다. 인물의 심리 상태를 표현함으로써 미래까지 예언한다고 해서 붙여진 그의 별명 '화필의 점사'답게 이 그림 또한 둘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 같다. 이별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 남자와, 설사 이별이 코앞에 있다 하더라도 카르페디엠(carpe diem, 이 순간에 충실하라)을 본능적으로 알고 그렇게 살았던 여자. 그래서 그는 불안하고 평화롭다.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해본 사람이면 이 남자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318~319p. 오스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작가는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들에게 예술적 사조나 화가 특유의 화풍과 같은 건조한 지식 습득을 강요하지 않는다. 바로크 풍이 뭔지 몰라도 얼마든지 그림이 주는 감동에 빠져들 수 있도록 안내할 뿐이다. 마치 친절한 큐레이터처럼.


사실 우리는 미술이라는 것을 우리의 일상에서 동떨어진, 어렵고 생경한 것으로만 생각하며 덮어놓고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위대한 화가도 그들의 일생 전반에 걸쳐 온갖 악의적인 루머와 열등감과 가난, 질병으로 고통받았다. 믿었던 사랑으로부터 배반당하거나 멸시받기 일쑤였다. 화가가 그 모든 아픔 속에서 비명을 내지르듯 이를 악물고 그려낸 그림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자면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 그가 느꼈을 비장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기꺼이 작가가 이끄는 대로 그림을 보고, 알아가고, 느낀다. 지극히 경이로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는 실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의 사진과 약도까지 함께 담겨 있어 불현듯 다음 휴가 계획에 미술관 방문 일정을 넣고 싶은 충동이 일게도 만든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용기 내서 진짜 미술관 문을 두드리기에 앞서 <다락방 미술관>부터 정복해보자.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


조하나 기자(safebet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