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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산정호수에 갔는데,
돌담병원이 왜 거기서 나와?

by오마이뉴스

산과 호수를 품은 도시 포천의 명품 둘레길...

'낭만닥터 김사부' 촬영지 돌담병원도 눈길

산과 호수를 품은 도시 포천 산정호수 여행

지명에 천(川)자가 들어가면 물이 많고 맑은 지역이다. 하천도 많고 계곡도 많다. 포천도 예외는 아니다. 의정부에서43번 국도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포천에 닿는다. 최근에는 포천-세종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울 방면에서의 접근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런데도 포천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멀게만 느껴진다. 그만큼 깊고 깊은 내륙에 위치해 있다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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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둘레길. 명성산 기슭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1925년 부족한 농업용수를 위해 축조된 인공저수지로, 포천의 대표적인 국민관광지이다. 산정호수의 둘레만 3.6 km에 달한다. ⓒ 변영숙

강원도 철원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포천시의 면적은 서울시의 1.5배에 달하고, 인구는 서울의 1/70에 못미치는 15만명 정도이다.


포천시에는 북한의 평강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한탄강이 지난다. 한탄강 줄기의 길이는 139km. 한탄강이 흐르면서 만드는 계곡과 강의 풍경이 절경이다.


또한 철원지역에서 발생한 화산폭발로 형성된 화산지역을 포함하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지형에 위치한다. 그 덕에 한탄강 주상절리를 포함해 기암절벽과 수많은 폭포 등 포천시의 자연경관이 압권이다.


포천은 가을이면 명성산 고원에 펼쳐지는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억새물결을 비롯해 영평천, 백운계곡, 포천아트밸리, 포천허브랜드, 평강식물원, 산정호수, 신북 온천 등 사시사철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경기 북부 관광명소 1번지다.


4월말 오랫만에 엄마와 포천 나들이를 다녀왔다. 포천의 남쪽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소흘읍을 지나 산정호수가 있는 영북면으로 향한다. 영북면은 철원과 맞닿아 있는 포천의 최북단 지역이다.


"엄마 이번에 재난 기금으로 포천시는 1인당 40만 원이나 준대."

"그래, 포천은 그전부터 돈이 많다고 했어."

"정말? 어떻게? 이런 시골이?"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전부터 그랬어. 땅도 무척 넓고."


엄마 말은 포천에 대한 함축적인 정의같다. '땅 넓은 부자동네 포천.' 엄마와 이런 저런 포천 얘길 나누는 사이 오늘의 목적지인 산정호수에 도착했다.

산정호수 명품 수상 둘레길, 수상 데크길과 솔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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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둘레길. 산정호수 둘레길은 수상 데크길과 수변길과 솔숲길이 있다. ⓒ 변영숙

산정호수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포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이다. 산정호수를 조금 큰 저수지 정도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둘레가 자그마치 3.5 km에 달하고 수심은 23.5m에 달한다. 넓고 깊은 호수다. 곳곳에 수심이 깊다는 경고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으로는 명성산, 남으로는 관음산에 둘러싸여 있는 산정호수는 영북면 지역의 농지개간사업을 위하여 부족한 농업용수를 충당코자 1925년 관개용으로 축조한 인공저수지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이토록 거대한 인공저수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산정호수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수 둘레길을 걷는 것이다. 수상데크길을 걸어도 좋고 솔 숲 따라 조성된 솔 숲 길을 걸어도 좋다.


수상데크길은 하동 주차장에서 인공폭포로 연결된 가파란 계단 산길을 올라가면 바로 시작된다. 호수 위를 약 1km 가량 걸을 수 있다. 데크를 따라 걸음을 뗄 때마다 어깨 동무를 한 듯 이어지는 명성산 봉우리들이 펼치는 산상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물 위를 걷는 맛도 일품이고, 눈 맛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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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둘레길. ⓒ 변영숙

가끔 걸음을 멈추고 수변 절벽에 파도치듯 밀려드는 물결을 바라보거나 절벽에 핀 진달래며 이름 모를 작은 야생화를 감상하는 것도 즐겁다. 보면 볼수록, 봐도 봐도 절경이다.


해발 921m의 명성산 자락에 있는 산정호수와 그 일대는 도심보다 한 계절이 늦다. 4월 말에도 여기저기 벚꽃이 피어 있고, 심지어 노란 개나리까지 활짝 피어 있다. 엄마와 나는 동시에 탄성을 지른다. 올 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꽃구경을 산정호수에 와서 하다니. 그것도 4월말에 개나리라니. 지나간 시간을 선물로 되돌려 받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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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1925년 농업용수용으로 축조된 산정호수는 인근 화재지 방화수 보급지이기도 하다. 지난 달 25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시 투입된 산림청 소속의 소방헬기가 물을 보충하고 있다. ⓒ 변영숙

숲 속 길은 모양 좋은 소나무들과 함께 하는 길이다. 호수 위로 척척 늘어진 소나무 모양새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군데 군데 궁예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궁예와 얽힌 역사를 접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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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둘레길. 4월말 산정호수 둘레길은 벚꽃 시작이다. ⓒ 변영숙

호수 쪽으로 내려서면 호수와 맞닿는 수변 숲속 산책로가 있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과 솔 숲이 벗이 되어준다. '여기가 산정호수다', '꽃길만 걷게 해줄게', '우리 행복하자' 등의 글귀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짚으로 만든 소의 형상을 한 조형물과 하트 모양의 아치길 등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아기자기하게 세워진 조형물들이 제대로 양념 노릇을 한다. 조형물들은 모두 포토존이 된다.


수변과 솔 숲을 따라 걷다 차 한 잔이 생각나면 숲 속의 작은 카페를 이용하면 된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보트가 일으키는 물살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산정호수는 국민관광지답게 호수 주변에 놀이동산과 식당, 카페 등 많은 위락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다. 호수 위에 동동 떠 있는 오리배들이 오래 전 추억들을 소환한다. '엄마, 나 저거 탈래…' 하며 엄마 아빠의 손을 잡아끄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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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호수. 놀이동산, 조각공원, 둘레길, 식당 등 모든 것이 갖춰진 국민관광지 산정호수가 명성산을 배경으로 조성되어 있다. ⓒ 변영숙

강가에 설치된 아름다운 조각 작품들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토끼, 도마뱀 등 동물 모향의 조형물들은 분명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할 것이다. 그런데 물 속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조형물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괴스럽다.


임진강 평화누리공원에 설치된 땅속에서 솟구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와 의도와 관객이 받아들이는 간극이 큰 예술분야가 조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옮긴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나타날 것만 같은 '돌담병원' 세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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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 돌담병원.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인 돌담병원의 배경이 된 (구)가족호텔 ⓒ 변영숙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촬영지였던 돌담병원. 많은 이들이 강원도 정선을 촬영지로 알고 있는데, 아니다. 실제로는 산정호수 구 가족호텔에서 촬영되었다.


산정호수 상동 주차장에서 자인사 방향으로 5분 정도 이동하면 도로변 우거진 솔 숲 사이로 눈에 익숙한 돌담병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솔 숲 너머 병원 모습과 '돌담병원'이라 새겨진 돌 간판, 응급실 간판 등이 TV속 모습과 똑같다.


드라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수시로 차를 몰고 들이닥쳤던 솔 숲이 이렇게 멋졌던가. 남녀 주인공이 함께 바라보던 호수 풍경이 이렇게 근사했던가. 딱히 볼 것은 없지만 한동안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더 없이 좋다.


벽면에 걸린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이 눈에 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시작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얼마나 많은 의료인들이 이 숭고한 귀절을 새기며 의료인이 되었을까. 코로나 정국에서 그들의 희생과 노고는 두 말 할 필요없이 증명되었다. 그들은 존경과 감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된다. 물론 의료행위를 부의 축적과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는 '의료기술자', '돼지원장'들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의료인들의 뜨거운 가슴처럼 소나무들이 붉게 타오른다. 문득 의학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썼던 명작 드라마 '하얀거탑'이 생각난다. 어디선가 바비킴이 부른 '소나무' OST 가 들리는 듯도 하다. 그러고 보니 포천의 시목이 소나무다.


변영숙 기자(rupai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