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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엘리트 변호사가 엄마의 변호인이 된 이유

by오마이뉴스

[리뷰] 영화 <결백>, 살인 용의자 엄마의 죄를 변호하다

오마이뉴스

▲ 영화 장면 ⓒ ㈜키다리이엔티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힘든 삶이 계속 이어질 때,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떠남을 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길이 세상과 연을 끊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살던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다른 삶을 찾는 방법일 수도 있다. 같이 사는 가족에게 폭력을 당하고, 인격적으로 무시당하는 가운데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조차 설정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의 삶은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살아가던 터전을 떠나기를 결심하는 것은 굉장히 큰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지만, 깊은 어둠 속에 갇혀있는 사람은 회복될 적은 가능성을 보고 떠남을 결정한다.


그 떠남은 아픔을 낳는다. 남는 가족은 떠나는 사람을 최대한 막아보려 하지만 그 어둠 속에 있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남은 가족 중 누군가는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오히려 떠난 사람은 어둠을 떠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홀가분함 덕에 아픔을 잊고 살지만, 남은 사람은 그 아픔을 마음 깊숙이 담아 계속 꺼내어 본다. 어쩌면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찾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아픔을 참아내고 떠난 사람이 좀 더 편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남겨두고 온 가족에게 벌어진 일을 추적하는 이야기

영화 <결백>은 남겨두고 온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대천에서 태어나고 자라던 정인(신혜선)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구타와 그것을 방치하다시피 한 어머니에게 서운함을 느껴 무작정 그곳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닌다. 자신이 원하던 대로 변호사가 된 그는 법조계에서 유능함을 인정받아 이런저런 사건을 맡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장에 참석한 사람 중 일부가 농약이 든 막걸리를 먹고 사망하거나 입원한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특히나 그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배종옥)를 변호하기 위해 급히 다시 고향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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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면 ⓒ ㈜키다리이엔티

그가 다시 살던 집을 찾았을 때,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십 년 전 집을 떠난 이후 거의 처음으로 다시 찾은 집이었지만 치매에 걸린 엄마와 정신지체 남동생, 그리고 차가운 마을 사람들뿐이다. 정인은 이미 독하게 마음먹고 자신의 집을 떠났다. 그를 다시 돌아오게 만든 건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장도 찾지 않던 그는 자신의 엄마가 용의자로 몰렸단 소식에 바로 대천으로 내려간다. 아마도 떠났던 그 순간부터 그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속 깊이 눌러왔었을지 모른다.


정인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차갑고 이성적이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심각한 사건을 맡으면서도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려 노력한다. 심지어 치매에 걸린 자신의 엄마를 변호하면서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앞에서 자신이 딸이라는 사실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은 차가운 시선으로 일반 고객을 변호하듯이, 엄마의 무죄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그렇게 이성적인 접근을 하는 데에는 친적이나 주변 이웃들의 차가운 반응도 한몫한다. 그는 그저 그 마을에 살던 내부인들이 반기지 않는 외부인으로 취급될 뿐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정인

정인의 자신감 넘치지만 굳은 얼굴은 보는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준다. 그가 법정에서 말하는 내용들로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이 부분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데, 배우 신혜선은 주인공 정인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단서를 찾을 때 실룩대는 얼굴의 미묘한 떨림을 통해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영화 내내 그는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며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려 애쓰지만 결국 그가 과거에 묻어놓았던 자신의 감성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속 정인이 사건을 쫒으며 과거의 인물들을 한 명씩 만나가는 과정은 그가 외면했던 과거의 기억으로 점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는 중반까지 굉장히 이성적으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영화의 말미에 정인이 모든 과거의 인물을 만났을 때는 그가 그 과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감성적인 접근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정인이 엄마와 관련된 그 살인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를 수사해 나갈수록 그 자신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와 엄마의 진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영화에는 몇몇 플래쉬백이 등장하는데,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플래쉬백이 포함되어 있다. 엄마 화정이 노래 '꽃밭에서'를 부르는 장면이 반복되는데, 이 두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는 부분이 추리나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의 잃었던 감정을 찾고, 추리의 스릴을 포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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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면 ⓒ ㈜키다리이엔티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가장 이성적인 인물이었던 정인이 자신의 과거와 만나면서 서서히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는 초반부터 가지고 있던 추리의 서사가 서서히 약해진다. 반면에 엄마와 정인 간의 감정선이 살아나면서 이 둘 간의 드라마가 강해진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진행되면서 영화 속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자 숨겨진 과거를 가진 시장 추인회(허준호)의 여러 계략들이 너무 쉽게 무너져 버린다.


영화는 정인이 남겨두고 온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정인이 숨겨져 있던 진실을 알아내고 치매인 엄마 화정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모습은 상처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며 위로하게 되는 뭉클한 장면이다. 정인과 화정 둘 중에서 더욱 외로운 삶을 살았던 건 엄마 화정일 것이다. 숨겨진 과거를 모두 알고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딸의 미래를 위해 꾹꾹 마음에 담고 있던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누군가가 좋아했던 '꽃밭에서'를 부르며 자신의 삶을 위로하며 살아왔다. 치매에 걸려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는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쩌면 그 마을을 떠난 건 정인이었지만, 삶의 의지를 먼저 떠나보낸 건 엄마 화정이었을 것이다. 버티고 또 버티면서 깊은 어둠 속에서 갇혀 살던 화정을 밖으로 끄집어낸 건, 결국 딸 정인이다. 너무 늦게 어둠에서 돌아왔지만, 진실을 모두 마주한 두 사람은 호숫가 벤치에 앉아 온전히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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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키다리이엔티

김동근 기자(lovepositi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