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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오늘날의 영화읽기

개인의 취향이 비난받아야 하는 세상이, 정상인가요?

by오마이뉴스

<소공녀>가 보여주는 강요된 삶에 대한 질문

오마이뉴스

▲ 영화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개인의 취향을 포기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2017)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감독은 미소가 언제부터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전사를 자세히 소개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미소의 선택을 관객이 편견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는 듯하다. 그녀와 함께 젊음의 한때를 '뜨겁게' 보냈던 친구들은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데 반해, 미소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헛된 희망'으로 보이는 '자신의 취향'을 지켜내느라 세상의 기준에 맞출 의지가 없다. 그녀의 선택을 유일하게 지지하던 남자친구인 한솔마저, 결국은 현실을 선택하며 그녀를 떠났다.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영화는 명백하게 판타지적인 결말을 열어놓은 채 끝을 맺는다. 이 또한, 미소의 비극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드러나는 결말이다.


최근의 한국 영화를 새롭게 하는 중요한 변화는, <벌새>의 김보라나 <우리집>의 윤가은,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으로 대표되는 신진 여성 감독이 주도하는 여성에 의한 여성서사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더 많은 여성 감독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의 영화가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를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껏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지던 여성이 아닌 여성이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이야기가 끌어내는 공감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소공녀>에서 주인공 미소가 그려내는 '새로운' 방식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지지도, 지금껏 여성에게 규정되었던 사회의 금기가 무겁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담배와 술을 포기할 수 없어서 거리로 나서는 여자 주인공이, 이처럼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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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CGV 아트하우스

미소가 찾아가는 옛 친구들은 '여행'을 끝내고, 사회가 규정한 영화는 사회가 규정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이 함께한 밴드 이름이 '더 크루즈(여행)'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그들에게서 개성과 취향을 빼앗아간 것처럼 보인다. 카메라에 비치는 친구들의 모습이 불행해 보인다면, 그들의 고난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들의 힘겨운 현실을 미소의 현재와 대비시킴으로써, 우리 사회가 강요한 '선택'이 그들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간 것인지 집요하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취향과 개성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떠오른 질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더 큰 데 갈 거야." (문정)

"난 결혼하고 매일 그렇게 엄마가 보고 싶다." (현정)

"나 같은 게 결혼을 왜 해가지고." (대용)

"나랑 결혼할래? 결혼하면 집도 생기고 가족도 생기고, 좋잖아." (록이)

"아휴, 그 사람 참 염치없다." (정미)

"남자랑 단둘이 잤다고?" (한솔)

"언니는 내가 무슨 일하는지 아세요? 그런데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요?" (민지)


밴드를 함께했던 친구들은 개인의 선택으로 위장된 과로, 개인을 포기한 결혼, 관계의 상처와 전통적인 가족에 대한 부모의 기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는 현실이 힘겹다. 그녀를 이해했다고 믿었던 남자친구마저 여성에게 덧씌워진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요하며 비난한다. 그녀가 느꼈을 배신감이 순식간에 내 것이 된다. 성매매 여성을 담담하게 위로하는 미소의 모습이 반가운 것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들의 연대가 미래를 밝게 할 것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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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CGV아트하우스

감독이 미소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삶의 기준은, 세상에 정답만이 존재한다고 강변하기에 폭력이다. <소공녀>의 세계관이 색다른 이유는 지금껏 '옳다'고 강요되었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집'을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재산이나 과시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과감했지만 반가웠다. 의식주가 안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개인의 취향을 선택하는 것만으로 '염치없다'며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여전히 미소의 고난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던진 질문에 조금이라도 집중하면서, 미소의 선택에 동참할 수 있다면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고 싶다. 적어도 나는, 미소가 '취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해져야만 한다고 얘기하는 세상에 동의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녀가 계속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우리, 함께하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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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이창희 기자(crazyl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