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비디오' 설명했더니 비웃어" 감독이 전한 뒷얘기

[컬처]by 오마이뉴스

[현장]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언론 배급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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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에서 이조훈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주)인디플러그

"'당신이 목격자다.' 현장의 기자, 시민들, 계엄군들까지 모두 '사라진 4시간'에 대한 목격자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그 증거를 찾아내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기점이 됐으면 좋겠다."(이조훈 감독)


올해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항쟁의 역사와 진실을 부정하고 폄훼하고 있으며, 책임자 처벌은 요원해보이기만 한다. 오는 17일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영화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역사의 목격자들에게 양심 고백을 촉구하는 작품이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 언론 배급 시사회가 진행됐다. 연출을 맡은 이조훈 감독은 영화를 통해 1980년 5월 21일 광주 시내 전남도청 앞에서 벌어진 참혹했던 집단 발포 현장을 기록한 영상을 추적한다.


당시 군 정권과 언론들은 광주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항쟁을 폭동 소요사태라고 명명하며 그 실상을 숨기기 바빴다. 그러나 그 때에도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영상 기록물을 제작하고 삼엄한 감시를 피해 널리 전파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 감독은 당시 실제로 '광주 비디오'를 제작, 배포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재연을 통해 이를 영화적으로 복원했다.

"40년이 지났지만 광주는 해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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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에서 이조훈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주)인디플러그

이조훈 감독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시민이 정치적 주체로 나서면서 스스로의 자유를 추구하는 기록을 남겼고, 이를 접한 미국 교민들이 비디오를 유통하는 일련의 역사적 흐름들이 민주주의 물결을 만들었다. 그게 다시 촛불 정신으로 현대의 시민들에게 이어져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40년이 지났지만 광주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영화에서 더 강조하려고 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광주 출신인 이 감독은 국민학교 2학년 때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직접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폭행 당하고 오신 일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털어놨다.


"저는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지냈다. 5.18을 국민학교 2학년 때 겪었다. 아버지가 (영화에 나오는) 무등고시학원의 역사 선생님이셨다. 직전까지 수업을 하셨고, 군인들에게 두들겨 맞으셨다. '애들(군인)한테 술 냄새가 많이 났다'고 말씀하셨다. 휴교가 끝나고 나가봤더니 모래 주머니로 만든 벙커에 총알자국이 많았던 것도 기억난다.


어릴 때는 잘 몰랐고 대학생 때 선배들을 통해 '광주 비디오'를 처음 봤다. 영화 < 1987 > 보셨겠지만 저도 영화 속 김태리씨처럼 광주 비디오를 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왔다. 기억은 있었지만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그제야 알게 됐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고 언젠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광주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겠다는 그런 부채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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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인디플러그

'광주 비디오' 제작기에 더해, 영화는 그 어디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4시간'의 기록을 찾아 나선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군은 전남도청 앞에 모인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해외 언론들이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한 '광주 비디오'는 물론, 국내 기자들의 카메라에도 그 4시간은 담기지 않았다. 지난해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령부)는 5.18 당시 전두환 보안사에서 생산한 광주 시민 및 계엄군 활동에 대한 채증 사진 등을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4시간에 대한 자료는 전혀 없었다. 이조훈 감독은 처음부터 사라진 4시간을 조명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광주 비디오'의 제작과 재편집, 유포까지만 다루려고 했다. 그런데 단순히 광주 민주화항쟁이 40주년을 맞았다는 기념비적인 이야기 만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웠다. 현재의 의미를 찾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결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비디오 소스를 분석하다보니 21일 발포 상황에서 4시간이 비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국가기록원 연구원 분들에게도 얘기했는데 그분들도 40년 동안 찾고 있다고 하더라. 합심해서 찾아보자고 하시더라. 그래서 영화에서 4시간을 함께 추적하는 결말로 만들었다."

감독이 기무사 취재 과정에서 겪을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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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에서 이조훈 감독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주)인디플러그

영화에서 이조훈 감독은 박지원 전 국회의원의 말을 빌려 군이 기록을 숨기고 있다고 추측한다. 지난해 10월 박지원 의원은 "5.18 당시 기무사령부가 생산한 사진첩 외에 비디오 테이프(영상물)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감독은 기무사가 당시 촬영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며 "비디오는 물질적으로 있는 것인데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점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감독은 기무사 취재 과정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취재를 하면서 기무사 쪽에도 문의했는데 담당 공보관 대위가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뭘 찾느냐'고 하기에 광주 비디오에 대해 설명했는데, 허허허 하고 비웃었다. '왜 비웃으시냐' 물었는데 '애쓰시는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몇 시간 지나서 전화가 오더니 '그 웃음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무마하려 했다. 뭔가 감추고 있는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 비디오: 사라진 4시간>은 12세 관람가이지만 40년 전 참상의 기록을 그대로 보여주는 만큼 영화엔 잔인한 대목도 적지 않다. 어린 학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고민스러웠다는 이조훈 감독은 "21일 전남 도청에 시민들이 모여있을 때 가장 앞에 서 있었던 사람은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이었다. 그 당시 제 친구들이나 혹은 몇 살 많은 형들은 거기서 죽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아이들에게 자극적이고 너무 충격적이지 않을까 싶어 최대한 (잔인한 장면을) 빼려고 했다"면서도 "100%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이미지는 기억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아이들이 커서 또다른 매체나 학습을 통해 스스로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어린 시절 기억으로 '광주 비디오'를 봤던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보여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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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 컷 ⓒ 인디플러그

한편 영화 말미에는 2008 광우병 촛불집회,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2019년 검찰개혁 촛불집회까지 차례차례 보여준다. 이를 통해 5.18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해당 장면에서는 현재 재판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집회 장면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조훈 감독은 이에 대해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는 말아달라고 경계했다.


"조국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은 정치적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단지 집회 현장에 참가했던 ('광주 비디오'를 제작한) 청년회 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장면을 넣었다. 그들은 어떤 정치적 입장이든, 거기서도 집회를 휴대폰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또다른 광주 비디오를 생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민을 많이 했다. 편집할 때도 조국이라는 이름은 되도록 보이지 않게, 검찰개혁 팻말만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최근에 일어난 집회였고 제가 취재하는 대상이 그 시기에 참여할 수 있는 집회였다. 이미지의 맥락에서 넣었다고 판단해주시면 가볍게 지나칠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한다."


오수미 기자(foul.homerun@gmail.com)

2020.07.0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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