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욱 보고 개 스터디까지 했는데...'현타' 온 아이들

[이슈]by 오마이뉴스

3일 동안 맡아 돌본 말티푸 구름이...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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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 된 말티푸 강아지, 구름이. 여행간 주인을 대신해 잠시 맡게 된 구름이 ⓒ 조영지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개는 응당 마당에서 도둑을 지키며 엄연히 사람과 구분되어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름이가 왔다. 아주 작고 뽀얀 털을 가진 4개월 된 말썽꾸러기 말티푸 구름이...


한동안 우리 집엔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아이들과 절대 안 된다는 나의 끈질긴 신경전이 이어졌다. 심지어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개 사랑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말끝마다 개 얘기뿐이었다. 책을 사도 개에 관한 책, TV에서도 '개는 훌륭하다', '동물농장',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고, 동네 애견 센터를 심심할 때마다 오갔다.


종일 "개, 개, 개" 해대는 아이들 때문에 머리까지 아파올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은 아이들이 정말 원하면 데려오는 것도 방법이라고 거들기까지 했다.


아이들도 처음에만 예뻐라 하지 종국엔 모든 뒤치다꺼리는 내 일이 될 게 뻔한데... 어쩜 다들 저렇게 쉽게 말하지 싶어 섭섭했다. 개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점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임시 견주'가 되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팽팽한 접전이 계속되자 남편이 임시 보호를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무턱대고 개를 사주는 것보다 경험해본 후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말이다. 아이들도 찬성이었다. 나 역시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고, 우리 가족은 임시 보호가 필요한 강아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강아지였는데 임시 보호가 필요한 개는 대부분 나이가 있는 개가 많았다. 조건이 맞는 강아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입양이 정해질 때까지 무기한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임시 보호마저 무산되자 아이들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때마침 강아지를 키우는 지인이 여행을 간다고 했다. 제발 우리 집에 맡겨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4개월 된 강아지 말티푸 구름이는 우리 집에 오게 됐다. 구름이가 온다는 소식에 아이들은 이틀 전부터 '개 집중 스터디'에 들어갔다. 개 상식은 강형욱 버금갔다. 시간, 분, 초까지 세어 가며 구름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마침내 구름이가 오자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그러니까 그게... 무섭다고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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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온 구름이, 예상과는 달리 무서워 하는 아들. 강아지 짖는 소리에 놀란 아들 ⓒ 조영지

구름이는 우리 집에 도착하자 짖기 시작했다. 낯선 환경이라 불안한 듯했다. 아이들은 개 짖는 소리에 놀라 선뜻 만지지도 못했다. 아들은 삼복더위에 귀마개까지 했다. 당황한 건 아이들이나 나나 구름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구름이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놀아달라고 할짝대는 걸 겁냈고,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설득과 회유와 협박까지 하며 친해지길 강요했다. 종국엔 내가 2박 3일간 아이들의 아바타가 되어 개 엄마 역할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본 건 많아서 구름이의 행동에 이렇게 해줘라 저렇게 해줘라 가열차게 훈수를 두었다. (자식이 웬수)


역시 강아지를 돌보는 건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배변 훈련이 아직 안 돼 있어 여기저기 오줌과 똥을 싸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또 매일 한 번씩 꼭 산책을 시켜야 했으며, 놀아달라고 짖을 땐 공을 굴려주거나 안아주고 쓰다듬어 줘야 흡족해 하며 낮잠을 잤다.


개를 키우는 것은 아이 키우는 것과 신기하리만큼 똑같았다. 우리 아이들의 아기 시절이 생각나 그때 힘들다고 못 해줬던 놀이와 애정을 구름이에게 듬뿍 쏟았다.

개를 키우는 건 책임과 의무가 동반되는 일

그렇다고 아이들을 그냥 둘 순 없는 노릇. 아이들에게 직접적인 접촉보다 밥 주기, 배변 처리, 구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 제공 등 역할 분담을 시켰다.

"○○야~! 구름이 똥 쌌네."

"엄마~ 또 내가 해야 해?"

"그럼 누가 해? 예쁜 짓 할 때만 우리 집 강아지 할 거야? 네 동생이야. 끝까지 책임져야지."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할 일을 해나갔다. 강아지만 데려오면 세계 1등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점차 지쳐가는 표정이었다. 구름이만 두고 친구를 만나러 갈 수도 없고, 강아지가 삼킬까 봐 장난감으로 놀 수도 없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까지 챙겨줘야 하니 아이들도 힘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바뀐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누차 말했듯이 나는 개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다. 개는 응당 바깥에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 했지만 이렇게 작고 여린 구름이에게 바깥은 춥고 위험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구름이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마다 조여진 목줄이 답답하진 않을까 걱정됐고 사람을 좋아해서 따라가는 구름이를 보고 무섭다며 피하는 사람들을 보면 섭섭하기도 했다(개가 근처에만 와도 기겁하던 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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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를 안고 있는 딸. 직접 키워보며 나와 아이들 모두 강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 조영지

아이는 아이대로 녹록지 않은 개 언니, 오빠의 현실을 깨닫고, 나 역시 임시 견주로서 개를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뀌었다. 뭐든 장담하면 안 되는 법이다. 구름이와 함께 지낸 3일 동안 나와 아이들은 책과 티브이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몸소 부딪치며 깨닫게 됐다.


구름이를 안았을 때의 그 따뜻함, 숨 쉬는 소리, 기분 좋을 때 세차게 흔들어대던 꼬리, 날아갈 듯 힘찬 뜀박질. 나에게 구름이는 동물이 아닌 사랑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사랑보다 앞선 책임이었다.


구름이는 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새 정이 들었던 딸은 통곡을 했고, 아들은 강아지 간식 한 움큼과 자신이 아끼는 야구공을 구름이에게 주는 것으로 이별의식을 치렀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구름아~"라고 부르며 현관문을 열었다.


구름이가 정말 구름처럼 사라져 버리자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지금도 개 키우고 싶어?"

"... 지금은 우리가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 후 구름이가 삼킬까봐 그동안 꺼내 놀지 못했던 레고함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구름이 진짜 엄마에게 연신 구름이의 안부를 묻고 있다.

"언니, 구름이 뭐해요?"

"구름이 지금 잘 시간인가요?"

"구름이 산책할 때 목줄 좀 길게 해줘요."

구름아, 잘 지내지? 보고 싶다...


조영지 기자(joji0221@naver.com)

2020.07.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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