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여행 ]

신선 세계에 들어온 듯...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

by오마이뉴스

지리산 '김종직 길' 탐방기

오마이뉴스

환희대에 오른 김종직 길 합동탐방단. ⓒ 주간함양

"소매 가득 청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하네"


지장사 갈림길을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허리를 감고 도는 능선에 큰 바위 서너 개가 불꽃처럼 포개져 있다. 환희대(歡喜臺)다. 흐린 날씨지만 환희대에 올라서니 멀리 마천면 내마·외마마을과 금계마을, 휴천면 견불동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영규 선생님(대전제일고 교사)은 "왼쪽으로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가 솔봉인데 지역민들은 문필봉이라고 부른다"며 "아마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지역민들의 바람을 담은 것 같다"고 했다. 잠시 땀을 식히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선열암 촉촉수 548년 전 광경 그대로

오마이뉴스

노장대 독바위 등으로 불리는 독녀암. ⓒ 주간함양

가파른 산길을 15분 쯤 더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선열암 터가 나온다. 절터 입구 거대한 바위에서 연신 옥구슬 같이 영롱한 물방울(촉촉수)이 떨어진다. 차가운 구름이 바위를 만나 이슬이 되고 물방울로 맺혀 떨어지는 것인데 548년 전 점필재 일행이 당도 했을 때도 이런 광경이 그대로 연출되었던 모양이다. 점필재는 그 자리에서 '선열암(先涅庵)'이라는 시를 남긴다. 지리산 유람 중 지었던 여러 시 중 첫수다. 이영규 선생님은 해설을 덧붙여 점필재의 선열암을 소환한다.

문은 등라에 가리고 구름은 반쯤 빗장을 질렀는데(門掩藤蘿雲半扃)

우뚝 솟은 바위의 촉촉수 소리 맑고도 깨끗하구나(雲根矗矗水冷冷)

하안거를 마친 고승은 석장을 날리며 돌아갔는데(高僧結夏還飛錫)

다만 깊은 산속에서 은거하는 선비가 놀라는구나(只有林間猿鶴驚)

시에 대한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길을 다잡는다. 경사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호흡도 점점 가빠진다. 30분이 지나 독녀암에 닿았다. 노장대 또는 독바위로도 불린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있다. 바위 틈 3분의2 지점에 또 다른 바위가 끼어 큰 석문을 연상케 한다. 바위사이를 통과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만 같은 신비감마저 감돈다.


일행은 독녀암 석문을 통과해 고열암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고열암까지는 다소 완만한 길이다. 신열암을 지나 고열암에 당도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고열암에 여장을 풀고 지척에 있는 의논대(議論臺)를 탐방 했다. 10평(33㎡)은 족히 넘음직한 너럭바위다. 비스듬히 누워 있다. 사방은 먹구름에 싸여 천지를 분간할 길이 없다.


"부처님 입안에 선방(禪房)이…"


이 선생님은 정면을 가리키며 "직선거리 600m에 미타봉(阿彌峯)이 있다. 맑은 날은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거리다"고 했다. "와불산(臥佛山) 중 부처님 입부분에 해당하는데 봉우리 로 그 속에 석굴이 있다. 그 것이 점필재의 유람록에 나오는 소림선방이다. 부처님의 입안에 선방이 있으니 기막힌 조화다"고 했다.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兩箇胡僧衲半肩)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선방이라고 가리키네(巖間指點小林禪)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 있으니(斜陽獨立三盤石)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하네(滿袖天風我欲仙)

이 선생님은 점필재의 '의논대'를 읊조린다. 마치 500여년 전 의논대에 섰던 김종직 선생이 환생한 듯 그침이 없다. 이 선생님은 점필재의 시에 매료돼 지난 2006년부터 <유두류록>을 수백번 읽고 김종직 길을 150번이나 답사했다고 한다.


100회 답사 때까지는 김종직 길이 거의 보이지 않더니 100회가 넘어서자 그때부터 겨우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만 벌써 21번째 답사다. 올해 소림선방과 아홉 모랭이(九隴, 구롱), 방장문(方丈門) 석각 등을 발견함으로써 김종직 길에 대한 퍼즐이 거의 완성돼 가고 있다. 오후에 탐방할 코스다.

신선세계에 들어온 듯 감탄사 연발

오마이뉴스

김종직의 지리산 유람 첫 숙박지인 고열암. 암자는 사라지고 석굴만 남아있다. ⓒ 주간함양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고열암으로 이동했다. 고열암은 점필재의 1472년 지리산(당시 두류산) 유람(음력 8월14일부터 4박5일) 첫 숙박지다. 지리산 유람 첫 밤을 이곳에서 맞은 것이다. 바위동굴과 석축,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는 토기와 기와조각 등이 고열암 터였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석굴 앞 샘물로 목을 축였다. 김종직 길 탐방시간이 한 두 시간쯤이면 충분할거라는 착각에 빈손으로 따라나선 필자부부도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 온 일행들 덕분에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꿀맛이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비를 맞으며 점심을 먹는다. 20여분이 지나자 안개비로 바뀐다.

미타봉 아래 소림선방. ⓒ 주간함양

고열암에서 한 시간쯤 머문 뒤 오후 일정에 들어갔다. 고열암~소림선방(1.01km)~동부샘터(0.92km)~방장문(1.84km)~청이당(0.98km)~광점동(5.48km) 코스다.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쯤 쉼 없이 걸어 미타봉(해발 1164.9m) 아래 소림선방에 닿았다. 외부로 노출되지 않은 바위틈에 넓은 공간이 있다. 참선승(胡僧)의 수행 도량으로 이보다 더한 곳이 있을까?


선방 외곽에 누군가가 쌓았을 석축이 세월의 흔적을 머금고 있다. 선방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니 좌선대(坐禪臺)다. 구름에 가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다. 발아래 펼쳐진 운해(雲海)는 끝이 없다.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신선세계에 들어선 듯 황홀경에 빠져든다. 바로 옆은 미타봉을 이루는 수십미터 직벽 암벽이다.

해발 1100m 고지 우마차 돌길 '곳곳에'

오마이뉴스

방장문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석각 앞에서 탐방단 일행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주간함양

신선계를 빠져나와 속세로 향했다. 몸은 흠뻑 젖었다. 땀인지 빗물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간간이 나타나는 산죽군락은 일행의 키를 훌쩍 넘었다. 길손의 얼굴을 때린다. 발걸음도 무겁다. 한 시간 반쯤 걸었을까? 주막터로 추정되는 사거리가 나왔다. 축대로 쌓인 터는 제법 넓다. 우물터의 흔적도 남아 있다. 다음 코스는 방장문과 구롱(아홉 모랭이)이다.


약초의 보고로 불리는 동부(洞府)를 지나 방장문으로 가는 길은 거의 평지다. 조용섭 이사장(지리산권 마실 협동조합)은 등고선을 따라 간다는 의미로 '등고선길'이라고 했다. 중간 중간 돌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리산 박사' 민병태 대장(지리산국립공원 경남사무소)은 "자연적으로 만든 것인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며 "사람이 만든 돌길은 반드시 고임돌(받침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길은 고임돌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인공(人工)의 길이 분명하다"고 했다.

오마이뉴스

해발 1100미터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돌길. 신라 화랑이나 가야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주간함양

이영규 선생님은 "적조암에서 지장사 갈림길 등으로 이어지는 길은 현재도 지적도상에 도로로 표시돼 있고, 폭도 평균 1.5m나 돼 우마차가 교행 가능할 정도"라며 "이 돌길은 신라의 화랑 영랑이 낭도 3000명을 거느리고 영랑대(永郞臺)에 올랐다는 점필재의 유두류록(1472년)에 미루어 짐작하면 화랑이 만들었거나 그 이전 가야인들이 이미 구축한 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발 1100m 고지에 인공으로 돌길을 조성한 것도, 지금까지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신비롭다"며 "주변에 숯가마 터와 야철지가 여러 군데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철기문화가 발달했던 가야시대에는 사람과 물류의 주 이동통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랑대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

오마이뉴스

방장문 석각 ⓒ 주간함양

어느덧 방장문(方丈門)이다. 오른쪽 바위 상단에 방장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당시 지리산 북동부지역과 천왕봉을 잇는 주 통로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코스인 천이당(淸伊堂)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등고선 길을 따라 구롱(九隴)을 지나 쑥밭재를 넘어서자 천례탕(天禮碭, 하늘에 제를 지내던 바위)이 나타났다. 조금 더 가니 크고 작은 계곡 두 개가 연이어 나왔다. 큰 계곡 옆 천이당 터에는 석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천이당 앞 평평한 바위는 점필재 일행이 휴식하며 차를 마셨던 자리다. 우리 일행도 이곳 바위 주변에 둘러 앉아 차를 나누었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2.27km만 더 올라가면 영랑대다. 어둠이 내리기 전 하산해야 하기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마지막 목적지 마천면 추성리 광점마을까지는 5.48km다. 장맛비를 잔뜩 머금은 하산 길은 생각보다 미끄럽다. 산중턱을 쉼 없이 내려와 계곡을 갈지자(之)로 몇 번을 건너고 나서야 3시간만에 광점마을 외딴집에 도착했다. 이날 김종직 길 탐방여정은 지도상 거리 15km, 실제거리 약 18km이다. 해설을 곁들이다 보니 무려 12시간이 걸렸다.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과 마음은 더없이 건강해진 하루였다.

"함양의 큰 자산 옥석으로 다듬어지길"

탐방 내내 차분한 어조로 해설을 이어갔던 이영규 선생님은 "오늘 우리가 탐방했던 길을 통해 영랑대를 거쳐 천왕봉에 오른 '김종직 길'이 곧 '가야인의 길'이며 '고대의 길'이다"면서 "이 길은 역사적으로도 소중한 유산이자 함양의 큰 자산"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종직 길은 현재 대부분 비법정탐방로로 묶여 있지만 세상에 드러나 이 길을 통해 많은 사람이 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깨우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선답자들이 그랬듯이 나의 연구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함양의 소중한 자산에 대해 함양 분들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발굴해 옥석으로 다듬어 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도 남겼다.

오마이뉴스

미타봉 소림선방 석축 담장 ⓒ 주간함양

오마이뉴스

영랑대, 고열암, 소림선방(미타봉), 송대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주막터 사거리. ⓒ 주간함양

오마이뉴스

좌선대 옆 미타봉 직벽 ⓒ 주간함양

오마이뉴스

좌선대 ⓒ 주간함양

주간함양 기자(news-h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