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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뉴트로는 아는데,
'빽판'은 모른다고요?

by오마이뉴스

'빽판의 전성시대' 발간한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59)씨가 최근 560페이지가 넘는 <빽판의 전성시대>(태림스코어)를 발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숨기고 싶은 흑역사이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국내 팝송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이 책은 불법음악이 판치던 시절의 기록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대중음악이 걸어온 길을 다룬 것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책을 낸 계기에 대해 그는 재작년 청계천박물관에서 열린 '빽판의 시대' 전시를 짚었다. "빽판들을 보며 많은 관람객이 추억에 빠진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이후 최씨는 회현상가, 동묘, 청계천을 비롯해 부평, 동두천, 파주, 대전, 부산까지 전국을 헤매며 2년 넘게 빽판을 수집했다. 그 바람에 주머니가 빌 정도로 수집한 1만 장에 가까운 원판과 라이선스 중 4천 장 정도를 선별해 책을 완성했다.


1972년 음반법 제정 이후에도 백화점 진열대에서 중심을 놓지 않을 정도로 빽판은 전성기를 달렸다. 심지어 라벨엔 정부에서 발행한 필증까지 붙였으니 저작권 개념조차 없던 시대의 해프닝이라 기억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법음악을 폐기하는 모습을 보이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책이 중장년에겐 추억의 대상이지만 다양한 팝송이 언제 유입됐고, 누가 번안했는지에 집중해 그 의미를 더했다. 침체 일로의 음반 시장에 회생의 기운을 수혈한 빽판은 최근 뉴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아날로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추억의 산물이자 한국 팝 문화 형성을 증언하는 역사자료로 가치가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대면 인터뷰를 하지 못하고 서면과 유선을 통해 그의 책에 관한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오마이뉴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는 최근 560쪽이 넘는 를 발간했다. ⓒ 최규성

이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 2018년 청계천박물관에서 열었던 <빽판의 시대> 전시에서 출발했다 들었다. 전시 이후 책을 나오기까지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2018년 청계천박물관에서 <빽판의 시대> 전시를 기획하면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전시된 빽판들을 보며 많은 관람객들이 추억을 소환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빽판에게 처음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의식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빽판의 유입 역사에 대한 논고를 쓰면서 빽판이 한국의 팝송 유입 역사이면서 팝 문화 형성의 과정을 증언하는 의미 있는 자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빽판은 숨기고 싶은 흑역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무도 정리하지 않은 미개척지란 점도 매력적인 연구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문득 불법 빽판에 대한 인식의 재발견을 하면서 책으로 내고 싶은 욕망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쓰려니 제가 소장한 음반으로는 전체 시대를 다루기엔 부족해 서울 회현 지하상가, 동묘, 청계천을 비롯해 인천 부평, 경기도 동두천, 파주, 그리고 대전, 전남 무안, 부산 등 전국을 찾아다니며 빽판을 수집했습니다. 처음엔 빽판을 구하면 원판과 비교해 보여주려 동시에 수집을 시도했습니다.


그 바람에 제 주머니가 텅텅 빌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정작 책에는 수집한 빽판 1만여 장이 너무 방대해 4천 장 정도만 선별하는 작업이 더 어려웠습니다. 원판도 중요한 음반만 선별했습니다. 수집 과정에 보니 과거와는 달리 원판은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빽판은 돈이 있어도 구할 곳이 없어 정말 어려웠습니다. 끝내 구하지 못해 소개하지 못한 빽판도 많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빽판은 트로트 일변도의 대중음악에 다양성을 수혈하여 지금의 발전을 이룬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지금같이 저작권이 중요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에는 불법의 개념이 전혀 없었나? 당시 상황을 조금 더 부연 설명해 달라.


"솔직히 말하면 한국 대중에게 지금처럼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확립된 것은 불과 1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시작된 2000년대 초반에도 불법 MP3가 빽판이 그랬던 것처럼 국내 음반시장을 파괴시켰죠. 블로그, 음악카페, 싸이월드 등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불법 음원뿐 아니라 사진 도용 등 광범위한 저작권 위반이 이뤄져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973년부터 빽판의 전성시대가 마감되는 1990년대 중반까지 20여 년 동안 빽판을 직접 구입하고 음악을 향유했던 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금지되어 들을 수 없게 된 음악을 구해 듣는 것이 중요했지 불법 제작된 빽판이 문제라는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대였습니다.


음질과 음반의 품질이 열악한 점은 불만이었지만 금지된 노래가 수록되어 있고 음반가격이 정식 음반에 비해 3~5배 저렴했던 점도 빽판의 보급과 파급에 일조했던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1972년 음반법 제정 이후에도 실제로 동네는 물론이고 서울 명동의 유명 백화점 음반매장에는 1970년대 말까지 신보로 나온 빽판이 버젓이 진열대의 중심을 장식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빽판 라벨에는 정부에서 정식 발행했던 납세필증 인지와 지방자치단체의 검인 인지까지 붙여 판매했는데 저작권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어설픈 시대의 해프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속이 강화된 것은 빽판의 팽창이 너무 심해 국내 음반시장의 60~70%를 잠식할 정도로 피해를 주었던 1980년대에 들어서야 전수조사를 정기적으로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당시 언론을 통해 불법 음반류들을 폐기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종종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빽판의 존재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수형하는 자양분 역할을 한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한 팩트입니다. 당시 외국 팝송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라디오와 빽판, 그리고 음악다방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제가 <빽판의 전성시대> 책을 집필한 진짜 이유는 중장년들에게 추억의 대상이라는 점도 어느 작용했지만 단순히 빽판과 팝송 자체를 심도 깊게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빽판에 담긴 다양한 장르의 팝송들이 어느 시점에 한국에 유입되었고, 어떤 팝송들이 한국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어떤 한국 가수가 그 팝송들을 번안했는지에 집중하려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60~70년대 국내 대중음악계는 팝송이 주류음악으로 대접받았을 정도로 번안곡 전성시대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를 통해 물밀듯이 유입되었던 서양의 장르 음악들이 담긴 원판을 복사해 제작된 빽판은 트로트 일변도의 한국대중음악에 다양성을 수혈하며 성장과 발전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60~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서구 장르가 유입되어 다양한 장르 음악이 공존했었으니까요. 또한 빽판은 전쟁으로 붕괴 직전이었던 국내 음반시장의 재건에도 상당 부분 공헌했습니다. 초창기의 빽판들은 춤바람 난 50년대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각종 사교춤을 추기 위한 댄스용 연주음반의 인기가 절대적이었습니다.


60~70년대는 더욱 다양해진 빽판을 통해 접한 서구 장르음악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팝송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잡지들과 방송, 다운타운 디제이(DJ)들이 등장하면서 형성된 팝 문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했습니다.


80년대는 라이선스 음반이 정착되기 시작한 국내 음반 산업을 황폐화시켰을 정도로 과도한 팽창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들어서는 합법 라이선스가 완전히 정착하고 또한 아날로그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빽판의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오마이뉴스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씨는 최근 560쪽이 넘는 를 발간했다. ⓒ 최규성

지금 가지고 있는 빽판들 중에서 가장 첫 빽판, 가장 소중한 빽판,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빽판을 각 하나씩 꼽는다면?"


"제 음반 수집 인생의 시작은 빽판입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1973년에 동네 친구 집이었는데 딥 퍼플(Deep Purple)의 < Highway Star >를 듣고 충격을 받아 소름 돋았던 전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강렬한 팝송 한 곡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으니까요. 처음으로 구입했던 빽판도 소중하지만 처음 빽판을 수집하면서 제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구입 순번과 날짜, 가격까지 재킷에 적었습니다.


당시 제가 쓴 자필이 들어 있는 단색 빽판들은 음악적 가치와 상관없이 제겐 가장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구하기 어려웠던 빽판은 너무 많지만 이번 책 집필을 위한 수집과정에서 처음으로 실체를 확인한 이미자의 일본어 <동백아가씨> 7인치 빽판은 다시는 구하기 힘든 소중한 사료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에게 빽판은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타임머신으로 보인다. 점점 잊히는 빽판이 요즘 시대에 왜 중요한 가치가 있는가?


"책을 쓰는 내내 주말마다 청계천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어떤 음반을 구할지 흥분했던 추억이 떠올라 행복했습니다. 빽판은 낭만이 넘쳤던 아날로그 시절을 증언하는 추억의 산물이기에 향유했던 세대에겐 추억으로, 존재 자체를 모르는 세대에게는 새로운 문화적 발견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대중에게 익숙한 과거의 히트 팝송은 거의 대부분 빽판에 담겨 있으니 매력적이죠.


불법적으로 제작되어 음성적으로 유통된 빽판은 태생적으로 숨기고 싶은 '흑역사'라는 원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땅에 서구의 팝송을 전파시킨 통로라는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빽판은 보존될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인식되었지만 국내 팝송 문화의 보급과 침체 일로의 한국 음반시장에 회생의 기운을 수혈한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현재 빽판은 내국인보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커버 디자인으로 인해 해외 수집가들이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일부 빽판은 100만 원이 넘게 호가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문화가 '뉴트로'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 빽판은 아날로그 시절을 증언하는 추억의 산물이고, 한국 팝 문화 형성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직을 보니 한국일보에서 20년간 기자활동을 해왔다. 기자로서 활동이 지금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나?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하며 민주화운동, 노사분규, 아시안게임, 올림픽, 홍콩반환, 베트남 엠바고 리프트, 김대중ㆍ김정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현대사의 굵직한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얼핏 대중문화나 대중음악과 연관성이 없을 것 같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 강릉KBS어린이합창단으로 활동하며 공연과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남들보다 일찍 대중문화를 접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인 1965년의 아주 어린 나이부터 동네 극장을 들락거렸고, 공연을 하고, 방송을 하고, 전용 라디오와 TV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1973년에 빽판을 통해 음반의 실체를 알게 된 후 팝송에 빠져들면서부터 지금까지 음반을 비롯해 대중음악관련 자료들을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요즘은 대중음악 관련 수집가로도 제법 알려져 국공립 박물관과 기관에서 많은 전시 의뢰가 들어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를 마친 2001년부터 '추억의 LP여행'이란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후 대중문화 관련 칼럼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대중문화를 향유해온 경험과 본격적으로 대중문화 칼럼을 쓰면서 특히,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애정을 가지고 연구하고 정리하고 있기에 이번 <빽판의 전성시대>를 집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수년간 수집해온 역사와 산증인으로서 한국대중문화에게 바라는 점, 대중문화에게 쓴 소리. 요즘 대중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


"한국 대중문화는 기록 보존이 열악합니다. 영화 쪽은 그나마 영상자료원이 있어 보존과 발굴이 진행되고 있지만 대중음악 쪽은 자료를 보존하고 발굴하고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공립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실정입니다. 요즘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음악선진국에선 한국대중음악이 아이돌 음악밖에 없는 걸로 착각합니다.


한국대중음악은 1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해외 대중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독자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음악인력 인프라가 풍성하고 다양한 장르 음악이 공존하고 있지만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주류음악과 트로트처럼 화제성을 일으킨 장르만이 지상파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규승 기자(sortiro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