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때문에' 선생님을 헤치려는 13살 소년의 광기

[컬처]by 오마이뉴스

[리뷰]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진 소년 이야기 다룬 <소년 아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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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 살인미수를 저지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2019) ⓒ 영화사 진진

어느 날 갑자기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진 소년 아메드(이디르 벤 아디 분)는 유대인 남자친구가 생긴 이네스(메리엄 아카디우 분) 선생님이 매우 원망스럽다. 아메드가 어릴 때부터 그를 헌신적으로 가르쳐 온 이네스는 아메드의 급진적인 변화가 무척 당황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아메드는 이네스를 증오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신의 이름을 앞세워 그녀에게 칼을 휘두른다.


이름만 들어도 믿고 보는 거장의 반열에 완전히 오른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하 다르덴 형제) 감독의 신작 <소년 아메드>(2019)는 다르덴 형제 영화 최초로 무슬림이 전면에 등장한다. <소년 아메드> 이전 작품에서도 난민, 이주 노동자 이슈에 꾸준히 주목해온 다르덴 형제가 이슬람 근본주의에 사로잡힌 소년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한 건 단 하나.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주제라는 확신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부합하는 인물에 관심을 갖고, 그 인물을 통해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다르덴 형제, <소년 아메드> 보도자료 발췌)


지난 몇 년간 파리와 터키, 벨기에 등지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을 목도한 후, 종교 극단주의에 빠진 이슬람 소년들의 '현재'에 주목한 감독은 신의 이름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마구잡이로 벌이는 소년들을 규탄하기 보다, 그러한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들의 심리를 헤아리고자 한다.


현실 세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다르덴 형제의 영화 속 사람들 역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충격적인 사건 발생 이후 아메드를 교정하고자 하는 가족과 지역 사회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네스를 향한 아메드의 증오와 살해 시도는 사그라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 볼 지점은 배교자를 처단 하겠다는 아메드의 증오와 삐뚤어진 집념이 오직 어머니, 이네스, 누나 등 여성에게만 향해 있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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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 살인미수를 저지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2019) ⓒ 영화사 진진

여성에만 적개심 품는 소년

아랍계 아버지와 벨기에 혈통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드는 무슬림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히잡을 쓰지 않는 엄마와 누나가 눈엣가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아메드가 어릴 때부터 친엄마 이상으로 존경하고 따랐던 이네스는 다른 종교의 애인을 만나고 있다. 하지만 아메드가 그녀들을 향한 증오심을 가지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의 일이고, 여기에는 아메드의 분노를 부추기는 극단적인 종교 지도자 이맘(오스만 모먼 분)의 세뇌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배교자를 처단 하라고 아메드를 끊임없이 주지시킨 이맘은 정작 아메드의 범행이 발각되자 아무런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는 야비한 모습을 보여 준다. 이어 교정 보호 시설에 들어간 아메드는 그곳에서 종교가 다른 남성 교도관, 사회 복지사와 빈번한 갈등을 이어가지만 정작 그들을 해칠 마음을 추호도 품지 않는다. 오직 이네스에게 복수할 계획만 있을 뿐이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따르지 않는 여성에게만 적개심을 품는 소년. 물론 이네스만 공격할 생각만 있었던 아메드와 달리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종교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다. 허나 이슬람 사회 특유의 여성 차별, 혐오 문화는 오랫동안 무슬림 여성들을 억압하고 통제해왔는데, 이슬람 근본주의는 여기에 더 강도높은 여성 억압을 주문한다. 유독 주변 여성에게만 엄격한 종교 관습을 강요하고 심지어 신의 이름으로 벌을 내리려고 하는 아네스의 종교적 광기가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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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 살인미수를 저지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2019) ⓒ 영화사 진진

영화에도 잠깐 배경으로 등장 하지만 유럽 사회 속 무슬림 공동체는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해 보인다. 모국어인 아랍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들도 보기 힘들 뿐더러, 아무리 무슬림 인구 비율이 타 유럽 국가에 비해 매우 높은 벨기에라고 한들, 무슬림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도통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 속 빈곤과 결핍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아메드가 종교 원리주의에 급격히 빠져드는 과정이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이유다.


그럼에도 잘못된 종교의 감옥에 갇혀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인 소년을 감쌀 생각이 추호도 없는 다르덴 형제는 충격적인 엔딩을 통해 소년이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진심으로 돌아볼 시간을 보여준다.


"애초 18~19살 나이의 무슬림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공의 나이를 20살로 설정하면 이 이야기가 믿기지 않을 것 같았다. 조사를 해보니 20대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죽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13살로 설정했고, 이를 통해 극단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고자 했다" (다르덴 형제, <소년 아메드> 보도자료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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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근본주의에 빠져 살인미수를 저지른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2019) ⓒ 영화사 진진

종교적 맹신에 사로잡힌 광신도가 광신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하나의 영화 안에서 보여주기 위해 13살 소년 아메드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다르덴 형제. 그들의 바람처럼 <소년 아메드>는 혐오와 극단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대 간, 종교 간, 인종 간 마찰과 해결방법에 대해 묵직한 사회적 화두를 던질 수 있을까. 신의 이름으로 선생님을 해치려고 하는 소년의 혼란스러운 여정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되묻는 <소년 아메드>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권진경 기자(kneodol@naver.com)

2020.07.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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