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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기획-여름휴가 대신해 줄 영화

시어머니에게 '일침' 날린 4선 의원, 속이 다 후련했다

by오마이뉴스

속 시원하게 웃겨준 영화 '정직한 후보'

오마이뉴스

▲ '진실의 주둥이'이가 당신의 시들시들한 하루에 웃음을 선사할 영화, 의 포스터 ⓒ (주)NEW

'코미디 영화' 하면, 떠오르는 몇몇 배우의 얼굴이 있다. 능청맞은 표정과 말투는 물론, 적재적소에 꽂아 넣을 줄 아는 촌철살인과 단순히 넘어지는 것에도 영혼이 실린 듯한 화룡점정의 몸개그.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다가도 혹은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서 체면 불고하고 나를 키득거리게 만드는 고마운 얼굴 중, 나는 요즘 라미란 배우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사실 코미디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그동안 그저 무료할 때 가볍게 시간 때우기 적당한 영화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다. 웃음 안에 담긴 메시지의 진지한 해석은 차치하고 말이다. 코미디 연기 또한 유독 남자 배우들의 몫으로 한정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 틈에서 배우 라미란은 자신만의 색깔로 우리 주변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법한 캐릭터를 과하지 않으면서도 또 얄밉지 않게, 말 그대로 '볼 맛 나게' 연기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정환의 엄마이자 호피 무늬 옷을 즐겨 입고 야한 농담을 거리낌 없이 늘어놓는, 화끈한 치타 여사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그녀는 또 다른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체통도 염치도 없지만, 도무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강인한 생활력의 라 부장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리고 이 웃기는 '여배우'의 등장을 충무로가 그냥 두고 볼 리만은 없었다.

말이 '똥'처럼 나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상숙

<정직한 후보>는 2010년 영화 <김종욱 찾기>로 데뷔한 장유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라미란이 4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주상숙 역을 맡아 호연을 펼친 코미디 영화다. 2020년 2월 12일 개봉해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라미란은 이 영화를 통해 연기력은 물론 스타성마저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기억의 밤>이나 <악인전>같은 작품을 통해 주로 거친 남성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선 굵은 연기를 해온 배우 김무열이 이 영화에서는 상숙 바라기인 보좌관 박희철 역을 맡으면서 그동안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코믹하면서도 나 홀로 진지한 캐릭터로 극에 무게 중심을 잡고 극 중 상숙과 만만치 않은 '케미'를 선보인다.


선거를 앞두고 4선에 도전하는 국회의원 상숙은 시민 운동가 출신으로, 오래전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에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이제는 닳고 닳은 타락한 정치인 중 하나일 뿐이다. 그녀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내뱉고 진심이 아닌 선심 쓰기용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를 현혹한다. 그런 상숙을 지켜보는 것이 늘 조마조마한 그녀의 할머니 김옥희 여사(나문희)는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빈다.


"제발 우리 상숙이 그짓말 좀 그만 하고, 착하게 살게 해주세요."


옥희 여사의 간절한 기원은 곧 현실이 되고, 상숙은 그녀 대사에 따르면 말이 '똥'처럼 나오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멈추지 않는 괄약근처럼 그녀의 입에서는 결코 뱉고 싶지 않았던 진실의 언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이것 참 큰일이다. 거짓말을 못 하게 된 정치인이라니?!


라디오 토론회에 나가 "대통령은 한번 해 먹어 봐야지요"라는 경악스러운 발언을 던진 후, 남편과의 무미건조한 부부생활까지 화끈하게 털어놓은 상숙은 순식간에 실검 1위를 찍으며 폭주한다. 그리고 덕분에 밑도 끝도 없이 하락하는 지지율. 이에 고심하던 희철은 선거판의 지략가 이운학을(송영창) 캐스팅하고 이운학은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상숙의 치명적인 단점을 거꾸로 이용할 계획을 세운다.


상숙은 운학의 계획대로 '정직한 후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불리하게 돌아가던 선거판 상황을 한 번에 뒤집으며 4선 고지에 바짝 다가간다. 이래서야 어디 우리 상숙이 좀 착하게 살게 해달라던 김옥희 여사의 소원이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평범하고 소심한 주부 상숙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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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한 장면 ▲ 코믹하면서도 나홀로 진지한, 보좌관 역의 김무열 배우와 4선 고지를 앞둔 국회의원 주상숙 역의 라미란 배우는 찰떡같은 캐미를 선보이며 관객의 웃음을 책임진다. ⓒ (주)NEW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재밌었던 대목은 무려 4선을 바라보는 국회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남편과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앞에서는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간 속으로만 삭여왔던, 평범하고 소심한 주부 상숙의 속사정이다. 그래서 상숙이 그동안 참아왔던 한풀이라도 하듯이 남편과 시어머니를 향해 쏟아내는 막말에 가까운 진실의 소리는 관객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번듯한 직장도 없이 그저 상숙의 돈으로 놀고 먹으면서도, 남들 앞에서 그럴 듯한 남편 역을 연기하는 대가로, 상숙에게 고된 시집살이까지 감수하길 바라는 남편을 향해 내뱉은 상숙의 오래 묵은 '똥'은 이렇다.


"놈팽이! 백수! 한량!"


라디오 토론회 이후, 국민 욕받이가 된 며느리를 드잡이하기 앞서서, 걱정이 되어서 찾아왔다는 핑계를 대는 시어머니를 향해 던지는 상숙의 대사 또한 언젠가 한 번은 나도 꼭 써먹어 봐야지,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웬 불청객? 걱정은 뒤에서 조용히 하는 건데?"


<정직한 후보> 속 상숙은 한 마디로, '나도 저렇게 할 말 좀 하고 살았으면' 싶은 관객들의 판타지를 백 퍼센트 충족하는 캐릭터다. 게다가 국민을 위해 헌신과 봉사하겠다는 번드르르한 거짓말 뒤에 숨어 실은 자기들 잇속 챙기기에 바쁜 일부 정치인들을 떠올려보면 이 영화의 웃음 속 숨어 있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사실, 바로 그것!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요즘만큼 웃음에 각박해진 때도 드문 것 같다. 그래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뒹굴다가 문득 시들시들해진 영혼을 달래줄 만한 딱 한 편의 영화가 간절한 당신에게, 나는 제대로 웃길 줄 아는 배우, 라미란 주연의 영화 <정직한 후보>를 추천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낄낄댈 수 있는 코미디 영화만큼 지친 마음에 위안이 되어 줄 만한 것도 또 어디 있을까?


이제 곧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온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인해 휴가 계획 세우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도 너무 낙심하지는 말자. 여름은 분명 또 돌아오니까. 그러니 올여름에는 사람 북적이는 해변 말고, 온 가족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방구석 1열을 즐겨보자.


<정직한 후보>로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면, 시무룩한 일상에도 조금은 활력이 생길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결국, 웃음이 보약이다.


조하나 기자(safebeti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