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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최후의 오지마을'에 대한 환상과 현실

by오마이뉴스

파키스탄과 맞닿은 최전방 마을, 투르툭


19세에 처음 인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여행기는 지난해 2019년 8월, 인도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의 내용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파키스탄과 맞닿은 최전방 마을, 투르툭을 향해

오마이뉴스

'최후의 오지마을'로 불리는 투르툭 마을 ⓒ 이원재

라다크에서는 파키스탄과 가장 가까운 마을.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0년에야 개방된 오지마을. 나에게 투르툭 마을에 대한 이미지는 그게 다였다.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산골짜기의 한적한 작은 마을만 생각하고 갔다면 충분히 좋은 여행지겠지만,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을 상상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고.


내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지마을에 대한 환상, 그리고 이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 본질을 잃어버린 여행지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애당초 나에게 투르툭은 예정에도 없는 여행지였다. 일주일에 한 번 다닌다는 로컬버스로 찾아가기도 보통 일은 아닐 게 분명하고,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영화 <세 얼간이> 촬영지 판공초나 티베트 불교사원만 가려 했을 뿐 투르툭은 안중에도 없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구태여 투르툭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열거하다시피 하며 노트에 적었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당장 내일 아침 숙소 앞에서 지프를 타고, 며칠 전 다 같이 이곳 레(Leh)까지 온 여행자들과 함께.


투르툭과 판공초를 지나 다시 레로 돌아오는 4박 5일간의 지프투어, 단순하게 나는 판공초를 로컬버스보다는 편하게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투어라고 해서 가격 면에서도 크게 부담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 가는 것보단 여러 명과 가는 게 훨씬 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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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바라본 누브라밸리 전경 ⓒ 이원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동차도로인 카르둥 라를 지나자 끝없이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한 카라코람산맥과 누브라 강. 흔히 누브라 밸리라고 불리는 곳으로 강의 줄기를 따라 초록 숲이 이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경관과 다르게 인도와 파키스탄이 맞닿아 군사적으로 예민한 지역인 탓에 수시로 여권 검사가 이루어졌다.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이 맞닿은 카슈미르. 실제로 2020년 6월 인도-중국 국경분쟁이 일어난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듯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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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툭 마을 사람들의 일상 ⓒ 이원재

인도-파키스탄 전쟁으로 1970년대 이후 인도령으로 편입된 투르툭 마을. 파키스탄과도 불과 2~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최전방이다 보니 GPS가 말썽인 것도, 왜 최후의 오지마을로 불렸는지도 이해가 갔다.


무슬림이 살고 이슬람의 색채가 강한 마을, 거리엔 파키스탄의 언어인 우르두어로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이곳 사람들의 인상은 여느 인도에서 본 힌두교도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라다크의 같은 풍경을 두고 오직 문화만 사람만 달랐다.


자동차 번호판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폐, 작은 상점에서 유통되는 상품만이 인도임을 말할 뿐, 마을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앞으로 가게 될 파키스탄 북부의 훈자와 비슷해 보였다. 국가만 다를 뿐, 사실 같은 문화권이나 다름없는 건 맞다.

'최후의 오지마을'의 환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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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밭으로 가득한 마을 풍경 ⓒ 이원재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 하루였다. 아침이라기엔 이른 새벽 가려움증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 보니 내 얼굴은 곰보라도 되듯 잔뜩 부어올라 있었다. 나도 놀랐고, 여정을 함께한 동행들은 더 놀랐다. 빈대 때문인 걸까? 하지만 같은 방을 사용했던 민식이 지나치게 멀쩡한 거로 봐선 빈대는 아닌 것 같았다. 보통 침구류에 서식하는 빈대가 원인이었다면, 나만 이렇게 물렸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알레르기가 원인일 듯한데, 어젯밤 별 사진을 찍기 위해 메밀꽃밭에 들어간 게 화근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알레르기 증상이 없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도시에서 살아온 탓에 오랫동안 메밀꽃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여태까지 모르고 살아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예진과 유미가 가지고 있던 상비약 덕분에 증상은 반나절 만에 나아졌지만, 원인은 아직도 알지 못한 채 오리무중으로 남았다.


오후쯤 되자 알레르기 증상은 꽤 괜찮아져서 혼자 마을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사방은 온통 메밀밭,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현지인들이 사는 집들이 여럿 보였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서양인 여행자도 꽤 보였다. 여느 시골 마을과 같이 좁은 골목을 놀이터 삼아 자전거를 타거나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여행지를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 스쳐 지나갈 여행자의 관점에서 봤을 땐 조금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초콜릿을 달라고 하거나 소액의 돈을 달라고 하는 일부 아이들의 모습에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투르툭 마을이 개방된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행자가 찾아왔으며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고 갔을까. 최후의 오지마을은 영원히 오지마을로 남아 여행자의 출입을 제한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어느 정도 마을의 특색을 잃겠지만 이렇게라도 관광산업으로 지역발전을 이루는 게 맞는 걸까.


최근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 바두이 족처럼 공동체의 파괴를 우려해 자신들의 마을을 더 이상 관광지로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낸 사례가 있는가 하면, 이곳 투르툭 마을과 같이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사실 정답은 없다. 다만 외부에 어느 정도 공개가 되면서도 이전부터 고수해온 마을의 문화와 특색,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그건 여행자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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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는 살구의 주요산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 이원재

이틀 정도 머물다 간 여행자의 관점에서 본 투르툭은 충분히 좋은 여행지였다. 외부 세계와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작은 마을과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오직 라다크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당도 높은 살구 주스까지.


하지만 이는 투르툭에 큰 기대감을 갖지 않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풍문으로 들었던, 진정한 오지와는 거리가 먼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를 부정한 채 이곳을 찾았더라면 실망만 안았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원재 기자(aksdnjsrnj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