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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7년이나 흘렀지만, 진정성 느껴지는 이준익 감독의 선택

by오마이뉴스

설경구-엄지원-이레 주연 영화 <소원>(2013)

오마이뉴스

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인터넷상이나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해요. "나는 무서워서 이런 영화를 못 보겠어요" 저는 엄마들에게…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영화 소원은 예방주사 같은 영화라고… 주사를 맞는 순간은 아플지 모르지만, 예방주사는 예방을 하기 위해 맞는 주사니까요. - 아동 성폭행 피해 아동 어머니가 이준익 감독에게 전달한 편지 내용 중

예방을 하기 위해 맞는 주사지만 아프고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망설여지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된다. 배우 설경구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먹기 정말 힘든 음식인데, 망설여지는 음식인데 그걸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어!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했거든요. 감독님이랑. 그런 영화였으면 좋겠고 보기에 따뜻한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 배우 설경구

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아동 성폭행 사건 피해자인 소원이와 가족들이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재원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실 '아동 성폭행'이라는 소재는 보기 불편하고 무겁다. TV에서 살을 헤집고 수술하는 장면이 나오면 고개를 돌리듯이 떠올리기 싫은 아픈 상처를 헤집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싶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쓴 소재원 작가는 집필 중단을 여러 번 하기도 했었고,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도 영화 〈소원〉의 시나리오를 차마 못 읽겠더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재원 작가는 소설을 써 내려갔고, 불편하지만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만들었다.

답을 못 쓰는 것일까 안 쓰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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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원(이레) : 영수는 연필 아홉 자루를, 진희는 연필 세 자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 과정과 답을 쓰시오.

미희(엄지원) : 그래서 니 뭐라 썼는데?

소원(이레) : 아무것도 안 썼다.

영화 <소원>을 보는 내내 '아무것도 안 썼다'라는 소원이의 대답이 마음 한구석에 불편하게 자리 잡는다. '못 썼다'가 아니라 '안 썼다'라고 하기에 더더욱이나. 소원이는 왜 아무것도 안 썼을까?

미희(엄지원) : 와? 이 문제만 길지, 9에 3을 더하고 둘로 나누라는 소리 아이가.

소원(이레) :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내가 이 영수를 영석이라 생각하고 진희를 내로 생각해봤거든?

미희(엄지원) : 영석이?

소원(이레) : 영석이 가가 호락호락 연필을 주겠나? 둘이 똑같아질라믄 영석이가 내한테 세 자루를 줘야 되는데, 영석이가 내 거 뺏으면 뺏었지 지 거 내한테 안 준단 말이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소원이(이레)와 엄마(엄지원)의 대화는 언뜻 별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원이의 대답에 이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삶의 불행에 대해 어떤 태도로 대하면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산수 문제 풀듯이 딱 떨어지는 답을 현실에서 찾는 건 어렵다. 현문우답처럼 들리는 소원이의 말처럼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답을 못쓰는 것일까 안 쓰는 것일까.


소설가 김훈은 '죽음은 보편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삶의 불행도 그런 것 아닐까. 영화에서 광식(김상호)이 소원이의 아빠 동훈(설경구)에게 '네 마음 안다'면서 소원이의 사건을 그냥 교통사고로 생각하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러자 동훈은 벌컥 화를 내며 한 마디 한다. "니 새끼가 당해도 사고일 것 같나?"


'네 마음 안다'라며 위로를 전하지만 당한 입장이 아니라면 감히 '안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또한 사람들은 너무 가슴 아프고 무서워서 외면하고, 공감하면서도 쉽게 잊는다. 불행을 당한 입장이 아니라서 답을 못 쓰는 것일까, 불행을 외면하고 쉽게 잊기에 답을 안 쓰는 것일까.


결국 각자가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 같은 불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외면하지 않고 쉽게 잊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영화 <소원>은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물론 남의 불행에 대해 섣불리 단언하거나 위로하기가 애매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보편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님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p.143)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문학동네, 2015)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찍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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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원(이레) : 아줌마,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꼭 옛날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제는 딱 내 느낌에 자고 일어나면 꼭 옛날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약도 안 뱉고 다 먹고 기도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대로였어요.

소원이는 소아정신과 전문의 정숙(김해숙)의 도움으로 성폭행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소원이와 정숙의 대화 중에 소원이가 "자고 일어나면 꼭 옛날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 비슷한 피해를 당한 가족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이상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들한테 가장 행복한 결말은 '사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죠." - 이준익 감독(한겨레 '9살 소원아, 얼마나 아프니? 나도 아프구나' 기사 중)

영화 <소원>의 진정성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 이후 피해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는 것'에 있다고 이준익 감독이 밝혔듯, 이 작품은 성범죄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복수나 분노가 아니라 치유와 회복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러한 이준익 감독의 연출 의도는 성폭행 사건 장면을 제외하고 모든 화면을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나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영화 <소원>은 민감한 성폭행 소재를 직접적이고 자극적인 장면으로 전달하지 않는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카메라 시선으로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이른바 '재현의 윤리'라는 난제 앞에 '절대 불순한 태도를 가지고 영화를 찍지 말자'는 이준익 감독의 진정성이 빛을 발한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성폭행 사건도 바닥에 버려진 노란 우산으로 간단히 묘사한다. 기타 수사 과정이나 아이 치료 과정 등에서도 성폭행과 관련된 자극적인 장면이나 폭력성을 최대한 자제하고 영화의 진정성에 모든 초점을 맞추려는 세심한 노력이 엿보인다.

카메라 시선으로 타인의 고통을 포착해도 될까요? 카메라에 포착되는 순간 학살 현장은 편안한 의자에서 '감상당하는' 구경거리로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누가 카메라에게 그런 비윤리적 권능을 부여했을까요? 반대로 구경거리로의 추락을 막으면서 타인의 고통을 포착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그때의 카메라 시선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은 결국 하나의 이슈로 수렴됩니다. '재현의 윤리'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의 세계관이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윤리적 인물을 형상화한다는 의미 역시 아닙니다. 윤리적 인물이 윤리적 세계관을 주장하더라도 영화는 비윤리적일 수 있습니다. (p.109)


재현의 윤리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찍을 것인가의 문제, 즉 카메라 시선의 윤리입니다. 카메라 시선의 폭력성에 대한 경계이자 피사체를 대하는 카메라의 태도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p.110) (『영화 언어』, 박우성 지음, 아모르문디, 2017)

니, 참 태어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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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원(이레) : 아줌마, 이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자고 일어나면 꼭 옛날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어제는 딱 내 느낌에 자고 일어나면 꼭 옛날로 돌아가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약도 안 뱉고 다 먹고 기도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대로였어요.

정숙(김해숙) : 그럴 땐 어떤 기분이 들어, 우리 소원이?

소원(이레) : (한숨 쉬며) 너무 속이 타서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그러셨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정숙(김해숙) : '아이고 죽겠네, 아이고 죽겠네' 그게 무슨 뜻일까?

소원(이레) : 왜 태어났을까.

이준익 감독의 진정성이 통했을까. 소원이와 가족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장면 하나하나에 관객은 자연스럽게 마음이 움직이고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 눈물이 단지 가슴 아픈 슬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소원>은 눈물이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 <소원>의 힘은 아픔을 헤쳐 나가는 희망이다." - 이준익 감독(오마이뉴스, 아동 성폭행 다룬 '소원'..."다르게 만들고 싶었다")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평생 인공항문을 쓰고 배변 주머니를 차야만 하는 9살 소녀 소원이. 그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온 '왜 태어났을까'라는 말 한마디에 관객은 가슴 먹먹해진다. 성폭행 트라우마로 아빠조차 두려워하는 소원이. 그러한 소원이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캐릭터 인형 옷을 입는 아빠의 모습에 관객은 안타까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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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원(이레) : (한숨을 내쉬며) 내 때문에 내가 아빠야를 자꾸 피해서 이라고 있나? (웃으며) 덥제? 집에 가자.

하지만 나중에 소원이가 마음을 열고 캐릭터 인형 옷을 입은 아빠에게 손을 내밀며 아빠 땀을 닦아 주는 장면에 관객은 눈물을 흘린다.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여 왔던 이준익 감독. 영화 <소원>은 그러한 이준익 감독의 휴머니즘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작품인데, 무엇보다도 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따뜻한 감동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게다가 이러한 감동의 중심에 소원 역을 맡은 이레 양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연기 경험도 거의 없는 데다가 그 나이에 느낄 수 없는 민감한 감정을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한마디로 놀라울 뿐이다.


영화 속에서 소원이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동생 소망이가 태어나고 친구 영석이와도 사이좋게 지낸다. 아빠 동훈도 예전처럼 야구 재방송을 보며 투덜거린다.


사실 영화에서 소원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편견 없이 따뜻하게 대해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영화 속 이러한 설정은 피해자가 사회에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준익 감독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


물론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참혹하다.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고통,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의 편견 등. 끊임없는 싸움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도 없다.


"왜 태어났을까" 한숨 쉬었던 소원이가 태어난 동생 소망이를 보며 "니, 참 태어나길 잘했다"라고 말한다.


현실은 비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왜 태어났을까" 하며 한숨 쉬는 날도 많겠지만, "니, 참 태어나길 잘했다" 하며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날도 많다고. 그렇게 오늘을 버텨야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상처를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에 힘든 것인데, 그걸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당사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오판한다. 반복하자면 아팠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 얘기가 외면당하고 공감 받지 못해서다. 거기에 더해 내 고통이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다.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상황이나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 공감을 받고 털어내야만 머릿속에서 자기 상처가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아픈 기억의 습격' 속의 삶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다. (p.282)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해냄출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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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수는 연필 아홉 자루를, 진희는 연필 세 자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 과정과 답을 쓰시오.

이제 소원이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떻게 쓸까? 여전히 아무것도 안 쓸까? 우리는 어떤 답을 써야 할까?


안상우 기자(ezmind9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