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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넷플릭스로 옮겨온 '드라큘라'가 고전의 명성 잃은 까닭

by오마이뉴스

[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큘라>


1897년 헝가리의 한 수녀원에 피폐해진 몰골의 남자가 도착한다. 그의 이름은 '조너선 하커(존 해퍼넌)'. 그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을 지닌 채 일반인과는 다른 행동 양식을 보인다.


그런 그가 들고 온 일기와 편지를 읽어보던 '애거사 수녀(돌리 웰스)'는 오랜 기간 자신이 조사하고 연구하던 '드라큘라(클라에스 방)'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그녀는 드라큘라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미로와도 같은 그의 성에서 조너선이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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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한 장면. ⓒ 넷플릭스

다양한 매력 지닌 고전 '드라큘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큘라>는 기대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작품이었다. 영화가 탄생한 이래로 수없이 영상화될 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고전 소설 '드라큘라'를 영국 드라마 <셜록>의 제작자 마크 게이티스와 스티브 모팻이 재해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티스와 모팻은 빅토리아 시대라 불리는 19세기 영국에 활동했던 탐정 '셜록 홈즈'를 현대에 맞춰 적절하게 녹여내면서 수많은 덕후들을 양산한 바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손에 주어진 또 한 편의 고전 소설의 재해석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드라큘라>를 보고 나면, 안일했던 제작진이 용두사미의 결과를 내놓는 데 그쳤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원작 소설 드라큘라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지닌다. 첫째, 소설은 주인공 드라큘라의 시점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편지가 한데 모인 서간체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철저히 주변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둘째, 드라큘라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거나 그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분량이 매우 적다 보니 소설은 즉각적인 공포나 놀라움 대신 암시와 복선을 통해 음산하고 서서히 조여 오는 형태의 공포를 자아낸다. 마지막으로 소설은 드라큘라 혹은 뱀파이어와 관련한 여러 가지 법칙들을 종합했다. 드라큘라는 사람보다 월등히 힘이 세고, 박쥐를 조종하거나 늑대로 변할 수 있으며, 햇빛과 십자가를 두려워한다는 식의 클리셰들이 처음으로 한 작품 안에 모인 것이다.


드라마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원작 소설의 특징을 충실히 반영한 재해석을 보여준다. 에피소드의 말미에 이르기까지 드라큘라의 정체나 음모는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드라마는 드라큘라의 성에서 흡혈 노예가 된 채 탈출한 조나단 하커의 회상, 편지, 구술에 의존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간체 소설의 형식을 영상 매체에 적합하게 변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나단이 어떻게 성을 탈출했으며, 수녀들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복선을 깔아 두는 것은 덤이다. 또한 아가타 수녀와 드라큘라가 대면하는 장면은 이후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거듭해서 활용될 드라큘라의 법칙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드라큘라는 성경을 비롯해 예수와 관련된 물품을 극도로 피해 다니며, 초대를 받지 않는 한 인간을 해칠 수 없다.


하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가 보여준 원작의 적절한 재해석은 이내 균형을 잃는다. 드라큘라가 스토리 전개의 중심에 나서다 보니 원작의 분위기는 금세 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탑승한 드라큘라의 이야기를 다룬 두 번째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원작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데메테르 호의 9호실과 관련된 복선을 통해 긴장감을 적당히 조성하는가 하면,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드라큘라와 인간 사이의 싸움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기 때문이다. 단지 드라큘라 성과 수녀원에서 함선으로 배경이 달라졌을 뿐이다.


문제는 세 번째 에피소드다. 현재의 영국으로 넘어온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순간 드라마는 급격하게 동력을 잃은 채 방황하기 시작한다. 호러와 SF 장르 간의 차이점을 간과한 채 드라큘라를 무리해서 현대로 불러왔기 때문이다. 영화학자 비비언 소브책은 "호러 영화는 자연법칙과 경쟁하고 SF 영화는 그것을 확장시킨다"라고 말했다.


두 장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대상 혹은 현상을 사람의 상상력을 통해 해석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호러 영화가 알 수 없는 것을 알려고 하다가 응징받는 장르라면, SF 영화는 알려지지 않은 세상을 과학적인 상상력으로 기어코 알아내는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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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한 장면. ⓒ 넷플릭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드라큘라는 생물학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완벽히 간파당한다. 그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사람들을 응징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러한 과학적 방법은 어디까지나 호러 문학의 캐릭터인 드라큘라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문제를 초래한다.


스티븐 킹은 <죽음의 무도>에서 그가 외부의 악, 절대적인 악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프랑켄슈타인이 로봇과 핵전쟁처럼 인간의 이성과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공포를 뜻하고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선악이 공존하는 두려움을 의미할 때, 드라큘라는 또 다른 영역의 공포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원, 목표와 트라우마까지 모조리 밝혀진 이상 드라큘라는 더 이상 차별화된 매력을 지니지 못하며 이는 드라마의 방향성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성공하지 못한 '셜록' 방정식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장르가 매끄럽게 결합되지 않는 문제점은 결국 <셜록>의 성공 방정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제작진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셜록>은 고전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전의 현대화는 단지 마차를 타고 파이프를 피던 괴짜 탐정이 현미경으로 단서를 분석하고 블로그와 아이폰을 사용하는 소시오패스 탐정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셜록>이 원작 소설의 이야기 구조와 단서들을 변형하되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추리극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듯이, 고전이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그 매력을 살려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큘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흡혈귀를 21세기의 런던으로 데려오는 데만 집중할 뿐, 정작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했던 매력이 무엇인지는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드라큘라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은 드라큘라의 성에서 벗어나 런던의 한 고층 빌딩으로 옮겨 오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공포 영화의 캐릭터로서 그를 그답게 만들어주는 내러티브와 인간관계는 제대로 챙겨 오지 못했다. 그 결과 드라큘라라는 이름값에 부풀었던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지난 14일,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바르셀로나는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2:8로 완패했고, 전 세계 축구팬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이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바르셀로나가 기존 성공 방정식의 유효기간이 지났는 데도 이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변함없는 빌드업 중심 전술, 동일한 포메이션과 리오넬 메시에게 의존한 플레이는 10년 사이 활동량과 압박 중심으로 변화한 현재 트렌드에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노쇠화된 선수단은 기존의 플레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이러한 바르셀로나의 실패 원인은 <드라큘라>가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와 사실상 동일하다. 네 개의 시즌을 거치며 <셜록>조차도 매너리즘에 빠져서 팬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종영한 상황에서 고전 소설 속 주인공을 현대에 불러오는 것은 이미 유효기간이 끝난 방식이었다. 그 와중에 심지어 본래 장르마저 완전히 파괴하는 방식으로 고전을 재해석하려 했으니, <드라큘라>의 실패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종빈 기자(potter1113@naver.com)